개인적으로 2009년에 발매된 국내 앨범 중 황보령 3집 [Shines In The Dark]를 가장 탁월한 앨범으로 생각하고 있다. 올해도 얼마 안 남은 지금, 이 생각을 바꿀 마음도, 그럴 계기도 없을 것 같다. 이전까지, 황보령은 이른바 ‘인디 1세대의 성과’로 여겨지며 소소하게 회자되었으나 그 영광은 모두 과거의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1년 동안 그녀가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2008년 12월 말에 2.5집이 발매되었고, 2009년 4월에 3집이 발매되었다) 홍대 앞을 근거로 끊임없이 공연을 선보이는 현재, 황보령이야말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이름이다. 그녀는 복잡하다. 정체성도 그렇고 경험도 그렇다. 그러므로 그녀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복잡함을 정리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아래의 인터뷰는 90년대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황보령이란 음악가의 경험을 추적한다. 그녀는 한국어와 영어를 겹쳐서 사용하면서도 단어의 뜻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고심했다. 되도록 그 간극을 제대로 옮기기 위해 애썼다. 개인적으로 이 인터뷰가 황보령이라는 지도를 살피기 위한 나침반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오지은과 마찬가지로, 인터뷰는 오래 걸렸으며 정리는 더 오래 걸렸다. 어려운 시간을 내어준 황보령 본인과 1999년 당시 홍대 앞 라이브 클럽 ‘블루데빌’의 핵심이자 이 인터뷰에 여러가지로 도움을 준 이현숙님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일시: 2009년 6월 3일
장소: 카페 <벨로주>
질문: 차우진 | 사진: 박김형준
정리: 최성욱, 차우진

[weiv]: 의외로 인터뷰 자료를 찾기가 어려워서 좀 길어지더라도 1집 활동 때로 거슬러 가고 싶다. 그래야 새 앨범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고. 일단 1985년부터다. 그때 미국으로 갔다.
황보령: 그게 중학교 때였는데, 그땐 내가 학교를 거의 안 나갔다. 그러니까 불량학생? 그거였는데. (웃음) 하지만 초등학교 때는 모범학생이었다. 서울에 살다가 부산에 한 1년 있었는데 그때 언니들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서울에 집은 있었고. 서울에 가기 싫었는데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니까 집에서 보냈다. 그런데 부모님 없이 언니들하고 살면서 학교도 점점 안 다니게 되고, 사고치고. (웃음)

[weiv]: 그러다가 미국으로 간 건가. 식구들하고 같이?
황보령: 언니들이 먼저 갔다. 나는 엄마랑 갔고. 아버지는 왔다 갔다 했다. 그때 학교를 1년에 4번이나 옮겼다. 조지아에서 메릴랜드로 갔다가, 로체스터에서 고등학교를 갔고. 엄마는 친척 분들이 조지아에 있어서 거기 계셨다.

[weiv]: 미술을 전공하게 된 건 어떤 계기였나.
황보령: 한국에서 그림을 배운 적 없는데, 거기선 상도 받았다. 나는 그냥 그런가보다 그랬고.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하긴 했는데, 그래서 만화 그리고. 또 그 옛날 제임스 딘도 좋아해서 포스터를 벽에 붙여 놓기도 하고. 그럼 아버지가 떼라고 하고. 막 싸우고. 그랬지만 구체적으로 미술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그 맨체스터 고등학교에서 숙제로 낸 그림을 선생님이 미술대회에 보내서 상을 받았다. 그때 담당 선생이 너는 미술 해야겠다, 미술대학교 가라,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갔다. (웃음)

“얘는 장난이 아니구나. 진짜 음악 하는 사람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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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그게 90년이면 뉴욕에서 20대를 보낸 거 아닌가. 그 당시 뉴욕에서 어떤 음악을 접했는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렸는지도 궁금한데.
황보령: 아, 맨체스터는 뉴햄프셔에 있다. 캐나다랑, 나이아가라 폭포랑 가까운, 그러니까 미국 동부 위쪽에 있는, 하늘이 거의 항상 회색인 동네. 눈도 많이 오고, 5월 말까지 막 겨울이고 그래서 친구들은 다 고딕메탈 듣고, 좀 어둡고, 막 스모크 화장 하고 다녔다. 그 옛날에. (웃음) 듣던 음악들도 바우하우스, 큐어, 소닉유스, 벨벳언더그라운드 같은 거. 물론 건즈앤로지스 듣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런 애들하고는 친구 안하고, 또 힙합 듣는 애들하고도 친구 안하고. (웃음) 나는 메탈리카도 몰랐다. 어쩌다가 그런 음악을 듣는 애들하고 친해졌는데 걔네들 집은 다 시골에 있고. 맨체스터가 유동인구가 적은 동네다. 대부분 농사짓는데 좋은 학교들이 몇 개 있었다. 그 중에 이스트먼 음대도 있고. 그래서 애들이 두 부류로 나눠지는데, 선생님이나 연구원들 자제 아니면 농장이나 목장 애들이었다. 그런 동네라서 뭐 한국 사람도 없었다. 지금은 많이들 가지만, 그 당시에는 한국 유학생들이 한 세 명? 워낙에 춥고 뉴욕시와도 먼 동네였다. 그런 데서 선생님이, 미술 선생님이 나보고 미술을 하라고 한 거다. 그런가보다 하고 있는데, 그래서 어느 학교 갈래? 그래서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아니면 프랫 인스티튜드 간다, 해서 프랫에 다니게 된 거다.

[weiv]: 그러면 그 당시엔 고딕 메탈만 들었나. 날씨 때문에? (웃음)
황보령: 그 전에는 언니들이 듣던 음악, 산울림 같은 음악도 들었다. 클래식 음악도 듣고. 그냥 좋은 거만 듣고 그 정도.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산울림도 펑크 록에 가까운 것 같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록큰롤하고는 거리가 먼데. 내가 생각할 때 록큰롤은 블루스가 들어간 거, 롤링스톤스 같은 게 아닌가. 아니면 말고. (웃음) 그런데 산울림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얼터너티브한 록을 한국에서 이미 했던 거다. 얼터너티브를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에 벌써 산울림이 했던 거다. 좀 대단한 거 같다. 그걸 외국 애들도 알까. 참 나라가 작아서 이게. 음악이 거기로 좀 가야되는데.

[weiv]: 대학 시절 얘기 좀 해 달라. 공연은 많이 봤나.
황보령: 센트럴파크 같은 데서 공연도 많이 봤다. 소닉유스도 오고, 폴 사이먼도 오고. 이렇게 큰 사람들이 오면 진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사람 머리만 작작작작작. 그런데 소리는 빵빵하고. 그러니까 91년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거리에 진짜 거지들이 깔려 있고, 데모도 많이 하고. 나도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스티그마라는 클럽에 맨날 갔는데 돈이 없으니까, 거기가 토큰으로 입장료를 대신했는데, 자판기를 어떻게 해서 돈 안내고 들어가고 막 그랬다. (웃음) 어떻게 하면 그냥 들어갈까 연구하던 때. 그때는 치안이 불안했지만 굉장히 자유스러운 분위기도 있었다. 공원마다 거지들도 되게 많았고. 그러던 게 93년에 민주당의 루디 줄리아니가 시장이 되면서, 말 그대로 버스에 거지들을 태워 보내면서 정말 깨끗해졌다. 그때부터 뉴욕이 살기 좋아졌다고 하는데 2001년에 로버트 블룸버그가 시장이 되면서는 또 분위기가 변했다. 클럽들도 문을 많이 닫았는데, 정말 펑크 밴드 공연엔 사람들이 거의 없고. 이미 음악 흐름이 알앤비, 힙합 쪽으로 변해서. 하여간 90년대 초 뉴욕은 살벌했다. 정말 친한 애도 그냥 집에 가다가 시비가 붙어서 칼에 난자당한 일도 있었고. LA에서 폭동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우리 학교에 다니던 중국애가 한국애로 오해받아 도끼로 살해당한 적도 있었다. 나도 슈퍼에 맥주 사러 갔다가 머리에 총 겨누는 것도 당했고. 밤마다 사이렌 소리, 총 소리 들리고. 그래서 부모님이 사는 집에, 시골에 가면 사이렌 소리가 안 들려서 이상하다, 너무 조용해서 잠도 못 잤다.

[weiv]: 90년대에도 그렇게 살벌했다는 얘긴가.
황보령: 맞다. 게다가 동네에서 학교가 좀 유명하니까, 프랫에 다니는 애들은 부자라는 인식, 이미지가 있어서 위험했던 적도 많았다. 우리는 진짜 돈 없는데. (웃음) 집에 오면 또 시끄럽다고 밑에 집 사람이 올라와서 총 쏘고. 경찰이 와도 증거가 없다고 그냥 가고. 집에는 벽에 총알 구멍이 막 나 있고. 90년대 진짜 살벌했다. 다 까먹고 있었는데 얘기하다보니 진짜 말도 안 되네. (웃음)

[weiv]: 그런데 공식적으로 데뷔한 게 이상은 5집이었다. 1993년에 나온 앨범. 거기에서 “여름밤”을 작곡했고 “언젠가는”에선 피처링도 했는데.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
황보령: 아, 얘기가 되게 길다. 그때 커크, 세준이란 친구와 밴드를 하고 있었다. 그냥 방에서 치다가 길에서도 하고 그랬는데. 내가 통기타를 치고 그 친구는 베이스를 쳤다. 그땐 그래도 우린 음악에 목숨을 걸었다는 마음으로. (웃음) 그때 그 친구랑 맨날 부르던 노래가 “비, 뉴욕, 사람, 거지”, “탈진” 같은 노래들.

[weiv]: 그 곡들은 그때 이미 완성된 곡들이었나.
황보령: 고등학교 때 이미 만들었던 노래들이다. 89년, 90년? 그때 어떤 거지를 만났는데, 비쩍 말라서 자기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그러면서 죽을 건데 돈을 달라고. 근데 나는 그 말을 안 믿었다. 거지니까 당연히 말랐을 거고. 근데 또 보면 당장 길에 쓰러져 죽을 것도 같은데. 그런 얘기였다. 하여간 이상은을 만난 건 커크랑 밴드하면서 그런 노래를 부를 때였다. 학교에 누가 왔다는 소문이,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가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나는 누군지 모르잖나. 오랫동안 한국 소식을 몰랐으니까. 그런데 커크가 이상은 노래도 알고, 좋아했다. 그래서 한 번 보러가자고 그랬는데. 어느 날 우연히 비 오던 밤에 커크랑 이상은이 살고 있다는 건물에 가봤다. 그냥 갔다. 심심하니까. (웃음) 그런데 주소는 모르고 건물만 아는 상태에서 가보니까 입구에 딱 한 집, 명함이 없는 집이 있었다. 그래서 그 집 벨을 막 눌러댔다. 재밌다 그러면서. 아무도 안 나와서 내가 열 번 누르고, 걔가 열 번 누르고.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또 열 번 누르고. 그랬더니 그 옆집 사람이 너무 시끄럽다면서 내다본 거다. 친구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까 그냥 문을 열어 줬다. 그래서 들어갔다. 미쳤지, 뭐하는 짓이래. (웃음)

[weiv]: 왜 그랬나. (웃음)
황보령: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라니까 우리의 음악을 들려주자 뭐 이런 거? (웃음) 근데 막상 거기선 만나지 못했다. 대신 매니저를 만났는데, 돌아가기 전에 우편함에다가 쪽지를, ‘우리는 어디어디에 사는 누구다. 우리 음악을 들려주고 싶으니까 관심 있으면 찾아와라’고 써서 넣었다. 이상은은 그 얼마 뒤에 학교에서 만났다. 키가 크더라고. 쪽지를 본 매니저가 ‘괜찮아 보이니까 친구라도 사겨보라’고 해서 온 거였다. (웃음) 그래서 음악을 해보라고. 하하. 소파에 정자세로 앉아서. 그래서 막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는데, 나는 그 상황이 웃기니까 대충대충 피식피식 웃으면서 우리 이거 왜 하고 있는 거야, 쪽팔려. 그랬더니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음악 하는 게 장난이세요?” 그러더라고. 진짜. 내가 그때 우와, 얘는 장난이 아니구나. 진짜 음악 하는 사람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고, 음악 좋다는 말도 듣고. 그러면서 친해졌다. 그걸 계기로 같이 녹음도 하고. “여름밤”도 넣고.

[weiv]: 그럼 그때 한국에 처음 온 건가.
황보령: 그 전에 잠깐씩 왔다갔다하긴 했는데, 95년, 97년? 그때 한국에서 블루데빌을 소개받았다. 거기서 황신혜밴드도 만나고 유앤미블루도 보고. 자우림, 그때 미운오리였는데, 그 친구들 공연도 보고. 나는 혼자 노래하고. 그때 매번 한 곡 부르고 기타줄 끊어먹어서 죄송합니다 그러고. 그때 이상은과 뭐도 만들었다가 망하고(주: 혜화동에 있던 카페 [해와 물고기]) 그랬다. 블루데빌에 다닐 때는 이상은과 좀 따로 다녔는데, 그때 [또 하나의 문화]랑 [피어라 들꽃] 같은데서 공연을 하다가 난장뮤직의 현정언니를 만나서 앨범을 내자는 말을 들었다.

“1집에서는 음악적으로 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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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아, 난장과 그렇게 만나서 1집 앨범에 이인, 그러니까 유앤미블루의 방준석이 프로듀싱을 하고 김윤아가 코러스로 들어가고 뭐 그런 그림이 나온다.
황보령: 그땐 제의를 받고 아무 생각 없이 냈다. 자우림은 친했다기보다는 (이)선규랑 (김)윤아가 바닥을 쓸다가 들어가면 언니, 누나 그러면 나는 어~ 하고 들어가서 자고 뭐 그런. (웃음) 그런 상태에서 제안을, “네가 대중음악을 할 의향이 있냐” 뭐 그렇게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것 같다.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 앨범 내면 좋은 것 같으니까 내긴 내는데 아, 이제부터 음악을 하는구나, 이런 건 아니었다. 일단 1집 채울 정도의 노래는 있었으니까. 그래서 앨범을 내면 코러스는 (김)윤아한테 시키자. 뭐 하면 좋고! 이런 분위기. 그때 어어부 밴드의 (백)현진은 참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비슷해서 매일같이 둘이 술만 마시고 그랬다. 그러다가 (이)상은이한테 매번 정신 좀 차리라고 혼나고. 그런데 술 좀 그만 마시라고 하면서 자기도 같이 마시고 있어. (웃음)

[weiv]: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는 그래도 중요한 앨범으로 꼽힌다. 당시에 인기도 있었고.
황보령: 모른다. 정말로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낸 앨범이니까.

[weiv]: 그 당시 신촌과 홍대 주변에 배포되던 스트리트 매거진, [인 서울]이나 [페이퍼]같은 잡지에 앨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황보령, 남상아, 김윤아를 묶어서 인디계의 여성 아티스트로 소개하기도 했고.
황보령: 1집을 냈을 때는 그냥 뭐 냈네, 이런 분위기였다. 그때 인터뷰 할 때, 본인 앨범에 점수를 몇 점 주겠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70점? 65점? 대답안하기도 했고. 그때 내가 우울증 같은 게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사실, 생각해보면 되게 좋은 기회였는데도 계속 도망만 다녔다. 1집 녹음할 때 제안을 받고 녹음실에 들어가기까지 거의 2년이 걸렸다. 그때 난장에서는 나를 어느 정도 오버그라운드로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정작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있어서… 몰라 맘에 안 들어, 그러면서 미국으로 가고.

[weiv]: 어떤 게 불만이었나.
황보령: 피어싱을 빼라, 머리는 검은색으로 염색해라… 뭐 그런 거. 그때 내 머리가 초록색이었다가 노란색이었다가 그랬다. 그래서 머리 색깔을 바꾸라고 하면 그랬다. 막 앨범 낸 주제에 감히 방송 잡아오면 염색하겠다, 그러고. (웃음) 인터뷰하는 날에는 기본이 세 시간을 늦었다. 아침에 안 일어나지, 집에 전화도 없지. 매니저 하시는 분이 집에 오면 문도 안 열어주고. 들어와 보면 술 먹고 자고 있고. 그러니까 내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2집 내고. 지금 생각해보면, 1집은 (방)준석이 굉장히 세밀하게 신경 쓴 앨범이었다. 날 것 같은 내 노래를, 혼자 노래하고 기타치고 그런 걸 나름 해석을 열심히 해서 진짜 지금 들어도 소리가 비지 않을 만큼 잘 만들었는데 내가 그때는 마음이 없어서. 그래서 지금은 미안하다.

[weiv]: 개인적으로도 당시 그 앨범을 참 좋아했다.
황보령: 근데 내 생각엔, 너무 포장된 것 같았다. 갑갑했다. 사실은, 음악적으로 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 내가 뭘 표현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나로선 하드록도 좋고, 조용한 노래도 좋고, 일렉트로닉도 좋고 실험적인 음악도 좋으니까. 그래서 2집에선 그걸 다 넣었다.

“서른 두 살이면 죽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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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그런 점에서 2집은 좀 다르지 않나.
황보령: 프로듀서는 (장)영규 형한테 맡겼고, 고경천도 부르고. 삼청교육대도 들어왔고. 또 우리 밴드, 스맥소프트도 있었고.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하나로 일관되게 잡을까 하다가 나온 게 [태양륜]이란 제목이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색깔이 다양한 게 태양이 사물을 비추기 때문인데, 그런 느낌을 좀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엔 표지도 회색의 까만 잉크로 그렸고, 그 그림을 딱 펴면 컬러풀한 색깔도 나오고. 아, 정확하게 뜻이 전달되면 좋을 텐데. 그때도 나는 설명도 안하고 가버렸다. 공연도 안했고.

[weiv]: 그래도 밴드까지 결성했으면 일단 1집 때와는 태도부터가 달랐을 것 같다.
황보령: 그땐 졸업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그 뒤로 7년이나 걸렸는데. 난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7년이란 시간이 되게 길더라. 아기가 어린이가 되는 시간이니까. 그런데 그때 미국으로 갔을 때도 음악을 계속 한다, 안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1집 때와 똑같았다. 그런데 졸업을 해보니, 전시회도 하고 졸업장을 딱 받아보니 사람이 시간약속을 잘 지켜야 하는구나, 그런 걸 이제야 알게 된 거다. 나는 내가 32살에 죽는 줄 알았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후로 줄곧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런데 참, 안 죽더라고. (웃음) 어릴 때는 서른만 넘으면 쭈그렁 늙은이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의 삶은 상상이 안 되니까 뭐, 그때쯤이면 아마 죽어 있지 않을까. 그랬던 거다. 뭐가 되고 싶니? 이런 질문 받아도 아무 생각이 없고. 그래서 서른 두 살이면 죽겠지 했는데, 안 죽는 거다. 안 죽고 살아서 33살 생일이 되고. 그때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보니까 앨범도 냈고, 전시도 하고. 이건 뭐 계속 살라는 건가, 아 그러면 진짜 뭔가 해야 할 텐데. (웃음) 밤새서 그림 그리는 작업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고, 음악도 공연 할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아. 아, 그럼 나 이걸 해야 되겠다. 그게 최근이다.

[weiv]: 그래서 3집을 내겠다고 결심한 건가. 정규앨범 전에 미니앨범도 먼저 냈는데.
황보령: 신중하게 해야 되니까. 이렇게 막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온 거다. 이젠 음악을 해도 대충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총동원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하고 싶은 거니까 제대로 해야겠다.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을 대충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된 거다. 바보였던 거다. 그래서 아직도 주변 친구들은 날 못 믿는다. 너를 어떻게 믿냐고 하면 내가 이래. 믿어 달라, 내가 이번엔 진짜 제대로 한다. 무슨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웃음)

[weiv]: 이제 좀 감이 잡힌다. 서른 즈음에 우왕좌왕하던 시기를 지나서 이제 3집을 냈다. 다른 각오로. (웃음) 3집 발매 전에 2.5집을 냈을 때 나는 이게 무슨 의도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정규 3집을 들었을 때는 뭔가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감지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황보령: 물론 2.5집과 3집이 똑같진 않다. 2.5집에 실린 “한숨”의 어쿠스틱 버전이 3집에는 빠졌다. 2.5집 사신 분들이 아깝다는 생각하지 말라고. (웃음) “한숨”은 한국에 오자마자 작업을 시작해서 제일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곡이다. 3집 작업할 때는 마스터링도 곡마다 다 따로 소리를 잡았다. 곡 순서를 새로 잡으면 그 순서에 맞게 마스터링을 또 하고. 굉장히, 뭐랄까, 그…

[weiv]: 노가다?
황보령: 그런 거다. 녹음은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집에서 컴퓨터로 하고, 믹싱은 그, 사운드 스튜디오라고 이대 후문 쪽에 있는 데서 하고. 정리하면 믹싱은 스튜디오에서 하고, 마스터링은 집에서 했다. 소니 코리아에 있는, 기계랑 똑같은 걸 갖고 있는 친구 집에서 밤새면서 작업하고, 각자 집에 있을 때도 뭔가 생각나면 바로 전화해서, 야 이거 목소리가 이런데 이거 좀 어떻게 하면 안 되나, 그렇게 트랙을 주고받으면서 작업했다.

[weiv]: 그러면 1집과 2집은 각각의 곡들의 프로듀싱을 모두 다른 사람이 했는데, 3집에선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직접 다 한 건가.
황보령: 맞다. 심지어 1집 땐 노래 녹음 할 때를 제외하곤 거의 스튜디오에 가질 않았다. 그래서 더 오래 걸렸나봐. 그땐 저 새끼 밥은 잘 먹고 다녀? 이런 말만 듣고. (웃음)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weiv]: 3집 얘기를 하자. 이 앨범의 느낌이 일단 다르다. 뭐랄까, 이렇게 말하면 무식해보여서 싫은데(웃음) 일단 어떤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음악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장르적으로도 딱히 뭐라고 부르기 애매하고, 그렇다고 뭉뚱그려서 한국 록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 같고. 일단 멜로디가 그런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론 이게 녹음의 방식이나 믹싱의 포인트에서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았다. 3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작업한 거라면 뭐를 더 강조하고 싶었나.
황보령: 일단 거슬리는 소리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녹음할 때 트랙별로 한 곡씩 가는데 어떤 소리는 남겨놓고 어떤 소리는 빼고 이런 게 굉장히 어려웠다. 균형감을 지키는 게 어려웠지.

[weiv]: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황보령: 방법이고 뭐고 없었다. 모두 감으로 했다. 들어보고, 아무리 좋아도 여기서는 안 맞는 것 같으면 뺏다가, 다음날 또 들어보고 허전하다 싶으면 다른 소리도 넣어보고. 굉장히 상투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들어서 좋은 소리를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weiv]: 이제까지 알려진 황보령의 곡들은 몽환적이면서 서정적인 곡들이었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지만, 질감이 좀 다른 것 같은데 의도한 부분이 있나.
황보령: 이 앨범을 작업하면서 내가 물소리 같은 걸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기타소리도 쨍쨍한 게 아니라 약간 낮은음에서 울리는 소리를 좋아하고. 들어서 좋다는 건 굉장히 주관적인 느낌인데 일단 나는 그걸 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메탈을 안 좋아한다. 기타가 세게 막 울리면, 뭐야 뭐 장기자랑도 아니고. (웃음) 음악이 너무 앞에 나오는 걸 피하려고 했다. 2집에서 배운 거라면 나는 하드록과는 안 맞는다는 생각이 굉장히 명확해졌다. 정리가 많이 된 것 같다.

[weiv]: 나는 황보령 음악에서 그런 서정성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앨범에서 그랬다. 당신한테는 독특한 고유함, 이를테면 오리지널리티가 있는데 나는 그게 ‘한국적인 정서’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황보령: 나는 그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연할 때, 내가 4비트를 치면 그게 5박으로 종종 바뀐다. 주위에서 그런다. 4-4로 가야하는데 어느 순간 3-5-3-5 / 5-3-5-3 이렇게 바뀐다고. (웃음) 나는 한국리듬을 굉장히 좋아한다. 따로 배우지도 않았고 의식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된다는 게 신기했다. 내가 아무리 미국에서 오래 살았어도 한국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감정이 사라지진 않는 거다. 만약 90년대에 한국으로 안 왔으면 없어졌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국적인 어떤 것, 그러니까 풍류라든가 멋이랄까 그런 게 지금 많이 사라진 게 너무 아쉽다. 누가 목마르다면 물에 나뭇잎 하나 띄워주고, 뭐 달을 떠서 마신다는 정서도 있고. 어느 나라에도 그런 건 없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그런 걸 다 잊고 돈만 쫓고 바쁘게만 살고, 그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속이 상한다.

[weiv]: 그건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얘기 같은데. (웃음) 흔히 말하는 전통을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
황보령: 철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되도록 가사를 적게 쓰는 것도 그런 이유인데. 막 설명하는 걸 피하고 싶다. 물론 내가 한국말도 좀 하고, 영어도 좀 하고, 중국말도 좀 해서 뭣 하나도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내가 가사를 쓸 때는 어쩔 수 없이 영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게 정확하지 않으니까, 앞뒤 맥락을 보고 다시 적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다시 살아나” 같은 경우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가사를 몰라도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서 제목을 “Blossom”이라고 붙였다. ‘다시 살아나는’ 건 ‘다시 피어나는’ 건데, 그건 이미 한 번 피어났던 상태를 반복, 그 상태를 기억해서, 다시, 피어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Blossom”이 된 건데, 나로선 굉장히 이미지적으로 갈 수 밖에 없다.

[weiv]: ‘이미지’가 꽤 중요하지 않나. 그림을 그려서인지 모르겠지만,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 사운드스케이프라는 게 선명하다. 서사적인 부분이 없어서 음악 자체가 독특하게 들리는 것 같고. 언젠가 자신의 그런 태도를 뭉뚱그려서 ‘펑크’라고 얘기한 걸 봤는데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나.
황보령: 내가 볼 땐 예수님도 펑크다. (웃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정해진 것에 대해서 의심을 잘 안 하는 것 같다. 뭐든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말하는 ‘펑크’도 그런 의미인 것 같고.

[weiv]: 한국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모순’도 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Smacksoft’나 ‘Shines In The Dark’라는 말부터가 그렇다. 빛과 어둠, 도시와 도시가 아닌 것, 살고 죽는 것이 노래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는 것 같다.
황보령: 모순은 보는 방향과 관점에 따라서 달라지는 면이다. 진실과 거짓이란 말로 딱 나눠질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불이나 물이나 무서운 면도 있고 좋은 면도 있다. 결국 어느 쪽으로 가든 자기가 하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내게는 일종의 화두다.

[weiv]: 이번 앨범에는 신윤철, 신석철 등이 객원으로 참여했는데 어떻게 만난 건가.
황보령: 블루데빌에서 만나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이)현숙 언니가 “해” 공연하는 걸 몇 번 보더니, 여기 기타는 (신)윤철이 쳐야 되겠다면서 소개해줬다. 내가 밴드를 다시 만들고 나서 기타만 세 번 정도 바뀌었는데 아까 말했듯이 이번엔 제대로 음악 해보자는 의지가 있었는데 원하는 기타소리를 찾기가 너무 어려운거다. 언니랑도 그런 얘기를 자주 했는데 딱 듣더니, 이건 (신)윤철이네, 그런 거지. 그전에도 약간 안면이 있었는데 언니가 연결을 해젔다.

[weiv]: 사실 밴드 멤버가 있는데 왜 별도로 기타 세션을 썼는지 궁금했다.
황보령: ‘해’의 기타는 누가 맡아도 내 맘에 안 들었다. 그런데 신윤철 씨가 스튜디오에 와서 딱 연주를 하는데 내가 막 이렇게 뛰어다녔다. 바로 이거다! 네 트랙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게 녹음했는데, 다 좋았다. 나는 계속 뛰어다녔고. (웃음) “해”를 부를 때는 약간 살풀이 같은 느낌이 있다. 제목을 “해 海 解 GO”라고 한 건 한 단어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는 걸 말하고 싶었고.

[weiv]: 이번 앨범에도 그렇고, 전 앨범에 리믹스 트랙이 들어가 있다. 이유가 뭔가. 앨범의 일관성을 해친다는 생각도 드는데 꾸준한 걸 보면 ‘고집’으로 보이기도 한다.
황보령: 내가 그런 걸 좋아한다. 너무 재미없으니까. 원래 트랜스, 일렉트로니카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작업을 할 거다.

[weiv]: 차라리 비정규로 리믹스 앨범을 내는 건 어떤가.
황보령: 그것도 생각 중이다. “한숨”도 리믹스로 넣고, 좀 이렇게 저렇게 생각 중이다.

[weiv]: 곡을 만들거나 앨범의 컨셉트를 구성할 때 멤버들과는 어떻게 작업하나.
황보령: 사실 이번 앨범에선 내가 단독적으로 다 해버렸는데, 녹음할 때는 얘기를 많이 했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었지만. 그 외에 공연할 때 곡 선정이나 순서는 멤버들과 얘기해서 결정한다.

[weiv]: 밴드, 스맥소프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스스로 밴드의 구성원이란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는지 아니면 황보령의 밴드라는 의미인지.
황보령: 나는 이 밴드가 지금 구성으로 같이 잘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러 앨범에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넣었다. 내가 음악을 하는 한 그냥 이 이름으로, 이 멤버로 같이 가면 좋겠다. 이게 3집이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느낌으로, 우리의 소리를, 그러니까 한국적인 어떤 소리를, 스맥소프트만의 소리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황보령 밴드라고 하면, 일단 내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우니까. 영어권에서도 스맥소프트라고 하면 의미가 좀 선명해지기도 하고. 일단 나는 멤버가 있는 게 좋다. 같이 술도 마시고.

“나는 그저 상식적이다, 좀 좋은 세상이면 좋겠다고 바라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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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오래 전에 [피어라 들꽃]이나 [또 하나의 문화], [하자센터] 등에서 당신의 이름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한동안 내게 황보령이란 음악가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페미니즘, 생태주의, 공동체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황보령: 물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냥 복잡하게 살고 싶진 않다. 페미니즘도 너무 복잡해. 뭐라 그럴까… 분명히 여자랑 남자랑 다르지 않나. 남자가 잘하는 일이 있고, 여자가 잘하는 일이 있다. 중요한 건 평등이 아니라 존중이라고 생각하는데, 서로 인정할건 인정하는 게 굉장히 이상적일 것이다. 그게 잘 안 되니까 세상이 좀 힘든 거고. 나는 그게 굉장히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좀 좋은 세상이면 좋겠다 정도.

[weiv]: ‘식물펑크’라는 말도 경우에 따라선 생태주의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건 어떻게 나온 얘기인가.
황보령: ‘식물펑크’는 친구가 꿈에서 본 아파트 단지 이름이었다. (웃음) 번쩍번쩍한 아파트에 한국글씨로 ‘식물펑크 아파트’라고 써 있는데, 거기서 친한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식물펑크’를 내 식대로 해석을 한 거였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들었을 때의 느낌이, 다 같이 모여서 잘살자 뭐 그런 거였다.

[weiv]: 외국에서도 좋아할 음악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런 면에선 유리하지 않나.
황보령: 사실 뉴욕이나 시카고, LA 같은 곳에는 가기만 하면 된다. 친구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좀 잘하면 큰 페스티벌에서 제의도 올 것 같고. 그러면 굉장히 좋겠구나 싶은데 내가 일단은 신문도 안보고, 이메일도 잘 체크 안하고, 텔레비전도 없어서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른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마이스페이스라도 잘 하라던데. (웃음)

[weiv]: 공연과 전시를 함께 할 계획은 없나.
황보령: 공간을 계속 물색 중인데 몇 군데 생각해 놓은 데가 있지만 딱 여기다, 하는 느낌이 아직 없어서… 전시도 하고, 조각 작품도 갖다 놓고, 공연도 하고, 공연을 안 하면, 사람들 와서 보고 가고. 대안공간이라는 곳도 알아봤는데, 공고를 하는 시기가 있어서 그때 맞춰서 내야한다고 하더라. 일단은 계속 알아보고 있다.

[weiv]: 마지막 질문이다. (웃음) 이 앨범이 3집이지만 의미적으로는 1집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한데. 어떤가, 오가던 입장에선 지금의 홍대 앞도 다르고 한국의 음악 시장도 달라졌을 것 같다.
황보령: 일단은 많이 산업화된 것 같다. 구조도 복잡해졌고 사람도 많아졌고. EBS [스페이스 공감]같은 방송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그런데 좀 안타까운 건, 클럽들이 저마다의 개성이랄까, 그런 게 많이 없어진 것 같다. 클럽의 특성, 이 클럽에선 누가 하더라도 20명은 온다, 뭐 그런 게 없어서 아쉽다. 계획은 뭐 일단, 계속 공연이나 열심히 하는 거? (웃음) 20091030 | 차우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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