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인디 씬에 등장한 싱어송라이터들 중에서 오지은이야말로 가장 논쟁적이다. 논쟁적이기 때문에 공격과 옹호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공격과 옹호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논쟁적이기도 하다. 말장난하자는 게 아니다. 오지은이란 음악가의 등장은 지난 10여 년 간 한국 인디 씬의 토대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팽창한 결과라는 점에서, 또한 그녀의 등장과 함께 10년 전처럼 여성 음악가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다. 또한 같은 맥락으로 그녀가 종종 ‘인디’에 대한 논쟁의 핵이 된다는 점 또한 의미심장하다. 단언하건데, 오지은은 성공한 음악가다. 나는 한 음악가가 대중성을 획득할 때 중요해지는 건 음악적/미학적 가치보다는 사회적 맥락이라고 믿는다. 대중성이란 어떤 의미에서 창작자가 제기한 긴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기도 하다. 이 인터뷰는 그걸 살피기 위한 과정이다. 진행은 오래 걸렸고 정리는 더 오래 걸렸다. 늦었지만 이 인터뷰를 위해 신경을 써준 모든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일시: 2009년 5월 12일
장소: 카페 <벨로주>
질문: 차우진 | 사진: 박김형준
정리: 최성욱, 차우진

[weiv]: 요새 인터뷰를 꽤 많이 하는 것 같다.
오지은: 잘 모르겠는데. (웃음)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꽤 하는 건가. 하루에 두 개 정도 한다.

[weiv]: 1집 때와 확연히 달라진 점이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오지은: 사람들이 앨범을 접한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단 1집은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통해 그냥 퍼졌다고 생각하는데, 2집은 사람들이 기다렸단 생각이 든다. 1집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오지은을 우연히 알았지만, 이젠 아니니까.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도 나와, 동아일보에도 나와. (웃음) 어떤 사람들은 나만 아는 오지은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싶지 않다, 뺏기고 싶지 않다는 얘기도 하는데 나로서는 그게 꽤 당황스러운. 그래서 한번은 홈페이지 일기장에다가 그런 기분을 썼다. ‘그냥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안 되냐. 내가 오지은을 더 빨리 알았다 해주면 안 되냐.’

[weiv]: 인터뷰에선 주로 어떤 얘기를 하나.
오지은: 얼마 전 <블링>과 인터뷰를 하는데 ‘평론가와 기자가 많이 아끼는 뮤지션이라서 2집에 대해서 되게 많이 걱정했다’는 말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 나는 스스로를 평론가와 기자가 버린 뮤지션이라 생각했으니까. (웃음) 1집에 대해서 그 어떤 매체도 정식으로 리뷰나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다. 개인 블로그에는 좋은 말이 나와도 정식으로 한 적이 없었단 얘기다. 내 생각에 첫 번째에서 판단을 내리기 뭔가 애매했던 게 아닐까. 전형적이지도 않고 너무 다른 이야기 거리도 많으니까. 공연 보면 열라 밴드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판단유보 했다가 2집이 나오니까 정식으로 인터뷰도 하고 리뷰도 하는 게 아닌가. 혼자 추측하고 있다.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그대로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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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오지은 공식 홈페이지

[weiv]: 개인적으로 1집을 좀 늦게 접해서 말하기가 애매했던 게 있다. 2집 때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정작 1집과는 너무 달라져서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가 뭘까 싶었다.
오지은: 1집과 2집의 사운드가 다른 건, 당시 내가 어쿠스틱 사운드에 엄청 꽂혀있기도 해서 그랬고, 또 악기가 네 개 이상 들어가면 힘들다, 사실은. 하지만 2집 같은 경우는 한 번 해볼까, 생각 때문에 그렇게 했지. 사실 “화”같은 노래는 피아노 두 대로 가는데, 어떤 지점에서는 웬만한 록 넘버보다 세다는 생각도 한다. 근데 2집에서는 셀 건 세게, 약한 건 약하게 뭐 이렇게 했다.

[weiv]: “화”가 세다는 건 가사 때문인가?
오지은: 노래를 할 때 토해내는 기분이 “진공의 밤” 못지않다. 단지 반주가 피아노 2대였을 뿐이다. 리스너로 음악을 들을 때와 음악을 할 때의 입장 차이, 보는 지점이 다른 게 있다고 생각한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내 음악을 보자면, 기본은 다르지 않다.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만 들으면 청순녀인데(웃음) 그것도 내 모습이다. 여러 모습들 중에 특정한 것만 강조해서 세일즈하고 싶지 않았다.

[weiv]: 사람들은 오지은의 음악에 대해서 사운드보다 가사를 더 많이 얘기한다. 실제로 너무 적나라하거나 너무 직접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비평하는 입장에서는 그래서 더 설명할게 없기도 하고. 실제로 “화”를 들으면 노래의 화자는 ‘남자가 겁내는 여자’같다.
오지은: 페퍼톤스의 (신)재평 씨가 “화”의 라이브를 듣고 나서 “얻어맞는 줄 알았다”고 했는데. (웃음) 맞다, 그런 여자인데 사실은 되게 약한 여자. 내게는 그런 게 아이러니다. 상품화란 관점에서 보자면 아주 센 여자로 확 가든가 약한 여자로 가든가 해야 한다. 그게 뮤직 비즈니스니까.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는 생각도 든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거나 강조하지 않고 (나를) 그대로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그래서 농담처럼, 내 장르는 ‘오지은’이라고도 하고.

[weiv]: 노래에서 인상적인 가사는 주로 관념어나 개념어, 그러니까 ‘존엄’, ‘분노’ 같은 단어들인데 그건 어떤 순간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거기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 점 때문에 오지은의 노래가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좀 봤다.
오지은: 가사를 먼저 쓰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거의 대부분 그렇다. 나는 사운드나 멜로디가 아니라 나한테 있었던 일을 가지고 가사를 먼저 쓴 다음에 멜로디를 고민한다. 그게 내 음악의 근간이라서 사람들이 내 노래에서 가사를 먼저 주목하는 건 납득할 수 있다. 나도 그걸 기대하고 있고. 불편하다거나 싫다는 분들에겐 딱히 할 말이 없다. (웃음)

[weiv]: 개인적으로는 “원할 때마다 자빠뜨리고”란 가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여성이 ‘주체’가 된다는 걸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주체란 자기 욕망을 실천하는 사람일텐데 그게 가장 적나라한 지점은 성적인 관계일 거다. 거기서 ‘자빠트리고’의 주체는 나, 오지은이란 여자인데 그게 뭐랄까. 남자들이 좋아하는 어떤 여성상은 아니니까. 말하자면 좋긴 한데 무서운 느낌이랄까. (웃음) 자기 의지대로,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다.
오지은: 아, 그 가사 때문에 “진공의 밤”이 MBC에서 금지를 먹었다. 그런데 KBS는 통과했고. (웃음) 나로서는 그 곡으로 모두의 기대를 배반했다고 보는데 이젠 회사에 들어갔으니 좀 바꿔야할 것도 같은… 하지만 더 심해졌다. 이게 뭐야, 하하.

[weiv]: 사실 당신 노래에서 의미심장한 건 발음이다. 가사에 사용된 개념어나 관념어는 오히려 부차적이고 발음이 먼저 각인되는데 뭐랄까, 일본어처럼 들린다.
오지은: 정말? 나는 오히려 영어 같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일본에서 살아서 그런가. 그래봤자 몇 년인데. (웃음) 2002년에 일본에 갔는데, 사실 3회 연속으로 학사경고를 받아버려서 그냥 가버렸다. 뭔가 주술 같은 게 걸린 기분이었는데 외국에라도 나가면 그게 나아질까 해서. 진짜다. 그때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아서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2006년까지 알바의 노예였다. 겨우 2년 정도 있었는데도 몸이 엄청 약해졌다. 그런데 거기서 너무 힘든 덕분에 쓸데없이 나한테 붙어있던 것들이 많이 떨어졌다. 내가 진짜 별거 아니구나, 라는 깨달음 같은 것들. 누군가가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 세상을 우습게 봤다가 거기서 제대로 얻어터졌다. 먹고 살려고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번역도 하고 통역도 하고 그랬다.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구하고 그걸로 빚을 갚고. 이런 얘기, 진부하다. (웃음)

[weiv]: 여자 가수들의 발성에 대해서 나는 남자들과 비교되는 지점이 있다고 본다. 어떤 경험의 차이 같은 게 작동한다고 보는 거다. 그러니까 여자가수로서의 롤 모델을 쉽게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자 가수들이 오리지널리티를, 자기 목소리를 만들어내기까지 시행착오를 거친다고 보는 거다. 실제로 대부분은 영어권 가수들을 먼저 접해서 한국어를 영어처럼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고 보고. 하지만 당신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일본어처럼 들려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오지은: 그렇다면 내 생각은 그게 일본 정서가 아니라 아시아 정서라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영어나 스페인어로 된 음악에서 얻는 정서와 일본 팝에서 얻는 정서가 굉장히 다르니까. 거기엔 설명하기 어려운 동양적인 정서가 있다. 내 노래에 그런 정서가 있다면 좋은 거거고. 내가 내 노래에서 위로를 받는 거니까. 하지만 딱히 일본 쪽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건 아니다. 아빠 덕에 오래 전의 한국 록 음악도 많이 들었고, 클래식도 하루에 3시간 이상씩 듣고 자랐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메리 포핀스]나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영화 음악도 따라불렀고. 비틀스나 카펜터즈, 로버트 플랜트 같은 온갖 6, 70년대 탑 텐 곡들도 마구잡이로 들었고 빌보드차트를 실시간으로 구해서 듣기도 했다. 시이나 링고와 닮았다는 얘기를 들을 때 차라리 “네, 그 여자에게서 영향 받았어요.”라고 하면 편할지 모르지만 내가 그렇게 해버리면 뻥이 된다.

[weiv]: 워너비가 없나.
오지은: 있다면 결국 커트니 러브다. 길에서 스트리킹을 해도 태연한 사람, 정말 자연체니까. 그 사람이 갑자기 가슴을 하나 드러낸다면 그게 돌아이라서가 아니라 그러고 싶으니까 그러는 거다. (웃음) 특정한 누군가가 내게 영향을 줬다면 결국 커트니 러브다. 중학교 때 정말 좋아했다. 시이나 링고라면, 뭔가 미묘하다. 아니라고 하기에도 뭣하고. 비염이 있어서 발성이 비슷하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웃음) 사실 누구랑 비슷하다는 말은 좋지도 싫지도 않지만, 따라했다고 하는 건 싫다. 따라하지 않았으니까.

[weiv]: 사실 시이나 링고 어쩌고라고 하는 건, 1집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2집에서는 창법이나 곡의 구성이 많이 바뀐 것 같은데, 1집에서 그랬던 건 오히려 환경의 제약 같은 것 때문이 아닌가 싶고. 홈 레코딩 아니었나.
오지은: 아니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앨범이다. 네이버에 ‘가내수공업’이란 말이 등장하는 바람에 그렇게 알려졌는데 결코 아니다. (웃음)

“타이틀이 생기는 건 싫다. 무조건 피한다. 얄팍하지만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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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사람들은 종종 오지은과 김윤아와의 연관성을 말하기도 한다. 특히 여자 팬에게 먼저 어필했다거나 여성으로서의 발언권을 가졌다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2009년이잖나. 김윤아 이후에 10년이 흘렀는데 과연 지금은 뭐가 다른가, 란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오지은이란 가수를 어떻게 소비하는가, 이런 점에서도 비교되고.
오지은: 적어도 여자가 만든 노래를 이상하거나 신기하게 여기진 않는다고 본다. 나로선 땡큐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김윤아라는 인물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했다고 본다. 물론 모두가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많은 일을 했고 그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와 비교된다고 해서 그녀처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배신당했다고 생각할 여지가 많을 것 같은데. 나는 내가 절절한 여자애의 정서가 내 음악의 포인트가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거기에 발목을 잡히고 싶지 않다. 절절하게 보이려고 절절한 태도를 취하는 건 거짓말이다. 그런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weiv]: 오지은의 팬들은 주로 여자들, 특히 20대 초중반의 여자들이라고 보는데 그건 당신에게서 ‘역할모델’을 기대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지은: 의외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자들이 많다. 언니들이 대견하다고 예뻐하는 케이스? (웃음) 누구에게나 자신이 어릴 때 힘든 경험과 지점이 있는데, 그걸 내가 어쨌든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하는 꼴을 보면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본다. 인터파크 공연 예매율은 여자가 60%, 남자가 40%다. 평균연령 28.3세. 30대 이후가 많다는 얘기다. 방명록에도 조용히 지켜보는 언니들이 있다. 이번에도 잘했네, 종종 들어주마, 오지은 잘한다, 뭐 그런. 근데 나는 그게 좋다.

[weiv]: 어쨌든 당신은 현재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에서 자신의 여성성을 자각하면서 어떤 발언을 하는 여자 가수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그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오지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농담 삼아 ‘마초’라고 하는데. (웃음) 만약 누군가 거리에서 담배를 물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연기를 내뿜고 다니면 “이 새끼가 걸으면서 담배를 피워?” 뭐 이런 거죠. (웃음) 내 안에는 엄청난 꼰대나 마초 같은 마인드가 있는데 그걸과 별개로 나는 어쨌든 여자잖나. 그걸 벗어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걸 굳이 강조할 마음도 없고. 하지만 내 후배, 언니네 사이트에서 일하는 니나란 후배는 나보고 “언니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해도 페미니스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내게 어떤 타이틀이 생기는 건 일단 싫으니까 무조건 피하게 된다. 얄팍하지만 그게 나다.

[weiv]: ‘홍대마녀’란 별명은?
오지은: 영화 <순정만화> 홍보팀에서 그걸 붙였는데 그게 착 붙어버린 거다. 업보라고 생각한다. 그런 타이틀이 있어야 미디어에서 쓰기 편하니까. 내가 거기에 매몰되지 않으면 되는 문제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말은 계속 생기겠지만 한 10년 지나면 그냥 오지은 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weiv]: ‘홍대마녀’ 같은 별명이 오지은에게 붙으면서 진정성, 여성성, 전복과 탈주, 인디 씬의 기대주 같은 이미지들도 생기지 않았나.
오지은: 인정한다. 그런데 지금 ‘인디’라는 단어는 좀 모호하지 않나. 인디 씬에 있다고 인디펜던트하게 음악을 한다는 보장도 없고, 또 해피로봇 레이블이 인디냐 아니냐, 뭐 그런 논쟁도 있지만. 사실 지금 한국의 인디 씬은 메이저에 수용되지 못한 싱어송라이터가 버글버글한 상황이잖나. 나도 그러니까. 그래서 인디란 말에 갇힌다는 느낌도, 거부감도 없다.

[weiv]: 오지은 1집 이후로 ‘노래하는 여자들’에 대한 관심도 다시 생기는 것 같은데. 홍대 앞에서 노래하는 여자들, 혹은 동시대에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나.
오지은: 재미있는 지점이다. 씬을 분석하는 게 평론가들의 일이겠지만, 내가 볼 땐 일종의 2세대가 나오는 것 같다. 인디 1세대일 때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던 친구들이 지금 막 활동한달까. 그러니까 ‘우리도 자작곡이 있어’라는 게 1세대의 정서였다면 2세대는 ‘당연히 자작곡이고 완성도도 높아야지’라는 정도? 그래서 1세대의 고민과 노력이 터를 많이 닦아 놓은 덕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는 그걸 옆에서 지켜봐서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언니네 이발관, 크라잉 넛, 허클베리 핀 같은 팀들이 있어서 지금이 가능한 거 아닌가. 나는 리스너로서도 지금이 재밌다. 이곳의 음악이.

[weiv]: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이라니, 무슨 뜻인가.
오지은: 나는 꼬맹이 때부터 밴드를 했다. 그런데 꼬맹이 친구들과 밴드를 한 게 아니라 뭐 73년생 오빠들과 함께 했다. 그런데 그때 나랑 잘 놀아주던 사람들은 모던 록 밴드들이 아니라(자기의 우울이 깊어서 어린애와 놀아줄 틈이 없으니까, 하하) 헤비메탈 밴드 ‘형님’들이었다. 볼 때마다 밥은 먹었냐고 물어봐주고. (웃음) 그래서 형님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모던 록 계열의 인디 1세대와 거리가 생겼고, 그걸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속에 있던 게 아니라 그 주변에 있었으니까 편입되지 않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었다. 일종의 관찰자였는데 그들을 동경한 건 아니었다. 그게 95년, 96년. 홍대 앞에 뭔가 생기기 시작한 시절인가. 완전히 초기였다.

[weiv]: 그런 경험이 오지은에게 어떻게 작동할까 좀 궁금해진다. 내 생각에 당신은 음악에서도 뮤직 비즈니스에서도 큰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오지은: 맞다. 하지만 나는 내 안에 있는 뮤직 비즈니스적인 관점을 살벌할 정도로 누른다. 그게 각성을 해버리면 한도 끝도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내 정규앨범에는 그런 게 1%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로선 그런 점에서 가치가 있는 앨범이다. 내 앨범은 너무 솔직해서 불편할 정도라고 생각하고, 그게 어떤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내 경험이 뮤직 비즈니스적인 관점에 도움을 줬는데 동시에 그걸 경계하게도 만든다. 게다가 나는 10대 시절에 아이돌 기획사에도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때 모 기획사에서 스카우트되어서 일단은 기획사에 들어가 있었다. 물론 뭘 하게 될진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냥 관리만 받고 있는 상태였는데 성형을 한다 안한다, 살을 뺀다 아니다, 뭔가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다 아니네 그런 상태? 어떻게 보면 불분명한 연습생이었는데 솔직히 내가 거기에 들어가 있던 건 완전 허영기 때문이었다. 나, 기획사에 있어, 라는 허세. 그래도 그 당시엔 가사나 멜로디는 쓰지 않았다. 지금 쓰면 완전히 쓰레기 같은 게 나올 거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좋고 나쁨을 관찰한 시기다. 음악을 왜 하고 있나, 뭐 그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음악은 중2때부터 했는데 데뷔 앨범은 스물일곱에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돌아온 거.

[weiv]: 기획사에는 오래 있었나.
오지은: 처음 있던 곳에서 다른 기획사로 옮겼던 적도 있다. 거기선 나를 록 밴드 컨셉트로 뭔가 해볼까 했던 거 같은데, 섣불리 했다가 망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청소년 가요제를 나가보라는 제의도 있었고. 성형을 하자는 말도 있었다. (웃음) 그런데 막상 나는 지금 나가면 뭔가 큰일이 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망만 다녔다.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나 갈망 같은 게 없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친하게 지내는 여자 가수가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다른 걸 보면서 ‘나는 이런 게 싫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그러다가 그 가수가 정말 거짓말처럼 완전히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진짜 뮤직 비즈니스계는 지옥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중을 즐겁게 해주고 제작자의 배를 불려주지만 본인은 결국 일반인보다 불편한 삶을 살게 되니까. 그게 가장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러다가 고3때 부산으로 전학을 가면서 회사와 단절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서울에 있을 땐 45kg만 되어도 세계가 멸망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거라. (웃음) 죽만 먹는 게 아니라 떡도 먹고 닭을 먹어도 되잖나! 그렇게 50kg이 넘어갔는데 너무 좋아. 그러면서 많이 바뀌었다. 일본유학도 하고 거기서 먹고 사려고 아르바이트도 닥치는대로 하고.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거리를 뒀던 음악으로 돌아온 거라고 본다. 그때 사람들, 홍대 앞에서 고집스러게 음악하던 사람들이 여러 조언을 해줬다. 음악을 관둔다고 했을 때 유일하게 ‘네가 아깝다’고 한마디 했던 사람들, 음악적으로도 존경하는 그런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아, 내가 허투루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하고.

“나는 간파 당하는 게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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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얘기를 들어보면, 당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모두 완벽하고 싶은 것 같다. 이쪽과 저쪽을 동시에 모두 만족시킨다, 그러니까 진정성과 대중성, 미학적 완성도와 상업적 성공까지 모두 가지고 싶다는 걸로 보인다.
오지은: 맞다. 거기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굉장히 멜로딕한 음악이 좋다. 결국 노래는 사랑얘기다. 그래서 멜로딕한 음악으로 사랑얘기를 하는데 나는 그게 왜 싫은가, 라는 생각을 했다. (웃음) ‘너를 생각하면 너를 갈아먹고 싶어’라는 가사를 쓰고 나서, 이건 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는데 뭐,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누군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거라는 얘기니까. 내게 솔직할 때 남들이 공감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1집의 성공이 바로 그 때문이라면 2집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다음은 나도 모른다. 포커를 친다고 하면, 나는 내 패를 다 까보인다. 그럼 상대방은 더 미치겠지. 뭘 어쩌자는 거야? 그런데 나는 그 뒤에 숨긴 카드가 없는 거다. 전술이 없다. 그냥 다 드러내고 다 보여주고. 자 이게 나야. 아, 이런 말도 떡밥으로 의심받을까. 하하.

[weiv]: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든 생각인데, 당신은 뭔가, ‘나는 이 모든 상황들은 다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최소한 그런 척하고 싶은 사람 같다.
오지은: 아니다. 나는 통제를 못한다. 오히려 통제를 전혀 안하려고 하는데. 나는 내 멋대로 할 테니까 그냥 그대로, 멋대로 봐 주세요, 이런 생각이 있다. 그런데 결국 멋대로 한다는 것에 일관성이 있을 거 가티도 하고. 그걸 읽어주는 분들은 땡큐고. 오해가 생기면 뭐 어쩔 수 없고, 아니. 오해는 풀면 좋겠고. (웃음)

[weiv]: 하지만 실제로 상황을 모두 통제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내 얘기를 좀 더 하자면, 당신은 계속 자기를 분리하고 싶은 것 같다.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건 기획자의 마인드인데, 창작자로서는 그걸 벗어버리고 싶은 욕망도 있으니까.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스스로를 포장하는 순간 망한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그게 완전히 분리되는 게 아니지 않나.
오지은: 그래서 내가 잠을 못 자나. (웃음) 이번 앨범에서 나는 앨범 자켓의 프로듀서 역할을 했다. 사진 같은 것까지 모두 내가 관리했는데 뮤직 비즈니스적인 면에서 어떤 무의식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알게 되는 거지만. 일단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거겠지.

[weiv]: 그래서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그 둘의 입장이나 태도를 동시에 가지고 싶어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내 취향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풀까, 그걸 어떻게 잘 포장할까 고민하는 거다. 하지만 보통 인터뷰에서라면 그런 태도는 숨겨진다. 그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아서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오지은: 아, 알겠다. 나는 간파 당하는 게 싫은 거다. 그래서 아예 다 푸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잘 감춰도 결국 단 한 명한테라도 간파당하는 게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냥 나는 이래, 라는 식으로 다 풀어버리는 게 낫지.

[weiv]: ‘허세’를 굉장히 경계하는 것 같다.
오지은: 맞다.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경계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weiv]: 오히려 그런 지나친 경계가 허세로 보이진 않을까. 예를 들어 “인생론”은 경험적이라기보다는 달관한 어떤 존재의 노래처럼 들린다. 제목도 거창한데 이미 답을 내놓고 있는 노래란 점이 불편한 것 같기도 하다.
오지은: 나는 내가 뭔가 컨셉트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걸 굉장히 경계하고 그래서 솔직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데, 그게 가사로 나왔을 때, 함축적이거나 완성도가 있어야한다는 강박 같은 게 없다. 그런데 “인생론”은 그렇지 않았다. 그 정도로 뭔가 전하고 싶었을 거다. 또 그걸 로큰롤로 표현했을 때 즐거웠고.

[weiv]: “진공의 밤”은 어떤가.
오지은: 속이 시원했다. 그 놈의 ‘포크 이미지’가 사라져서. (웃음) 물론 포크는 너무 아름다운 장르지만 내 근거는 거기가 아니라 여기라고 생각하니까. 세션이 좋았기도 했고.

“상업적인 앨범이지만 상업적인 부분을 고려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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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용린(디어 클라우드), 짐복(Jimvok, 골든팝스), 이언(못), 전자양 등이 참여했는데 어떻게 섭외했나.
오지은: 용린은 로로스 제인의 친구라서 알게 되었는데 디어 클라우드의 스타일을 좋아했다. 편곡도 한시간만에 끝났다. 짐복은 빵에서 함께 공연할 때 내 노래를 좋아해서 “그대”의 기타를 부탁했다. 노트를 많이 쓰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이 있는 기타라서 좋았다. “그대”는 사실 어른의 노래라는 마음으로 썼다. 사랑하지만 그만큼 어긋나고, 그런데도 헤어질 수도 없고 답도 없는 그런 마음. 그 감정을 표현하는데 짐복의 기타가 어울리겠다 싶었다. “잊었지 뭐야”도 그렇고. “차가운 여름밤”은 전자양에게 부탁했는데, 처음에는 그 노래를 막 해체하려고 했다.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는데 그냥 뒀다. 전자양이 그 노래를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했고. 그러다가 전자양이 이거저거 해본 뒤에 보컬과 기타를 그대로 두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내 의견에 동의해줬다. 몽유병에 걸려 여름밤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런 막연한 걸 멋지게 구체화시켜서 뭐랄까, 뽑기에서 너무 멋진 걸 건진 기분? 이런 식으로 작업한 결과물이 좋아서 운이 좋았다고 본다. 친구 하나가 그걸 보고선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이라고 하던데. (웃음) 물론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특히 “날 사랑 하는 게 아니고”는 이언에게 못의 차가우면서도 격렬한 느낌을 기대했는데 작업을 원격으로 했다. 기타녹음을 할 때는 새벽까지 함께 했지만 그전에는 한 달이나 원격 작업을 했다. 메신저로 쏘고, 그걸 또 받고. 둘이 모두 동의하는 지점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기다린 것도 있고.

[weiv]: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가 가장 골치 아팠던 곡인가.
오지은: 아니다. 그건 차라리 재밌었다. 이언이 맡았던 포지션과 그가 제시한 것들도 굉장히 흥미로웠고. 다른 트랙들과 어울리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 오히려 “그대”가 어려웠다. 짐복이 되게 난감해 했다. 아예 드럼을 찍어서 작업했다. 옆에서 내가 얘기한대로 드럼을 찍고, 또 내 얘기대로 기타를 찍고. 너무 내 스타일대로 하니까 그런 점에서 타인이 이해하기 어렵구나 싶기도 하고. 머리론 아는 걸 마음이 안 따라주면 어려운 그런 상황. 그 외에는 힘든 게 없었다. 푸름의 바이올린은 원테이크로 끝냈다. 잘 아는 친구인데다가 내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다. 내 음악을 좋아한다면 일단 80%는 성공이라고 본다.

[weiv]: 그게 섭외의 기준은 아닌가.
오지은: 기준은 아니다. 내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내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뿐이니까. 사실 이 뮤지션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음악에 참여해주면 얼마나 멋질까, 뭐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 기획을 얘기했을 때 주변에서는 좀 어이없어 했다. 일관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주로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 앨범이 내겐 어떤 점에선 영광이기도 하다. 1집 만들 때 너무 외로워서. (웃음) 그러니까 인터넷에다가 작업기를 연재할 정도로 외로웠다. 그래서 2집은 1집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weiv]: 2집에서는 밴드 편성도 있고, 전자음도 많이 들어가서 꽤 다양한 사운드가 나온 것 같다. 그런데 1집의 연장 같은 곡들도 있어서 그게 좀 부딪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앨범의 전반부와 후반부, 혹은 대표곡 몇 곡과 나머지 곡들로 편의상 나누게 되는데 이 앨범은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오지은: 일반적인 앨범의 프로듀싱 컨셉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했다. 오히려 컨셉트가 없다는 게 더 솔직한 얘기일 듯 한데. 곡 순서는 내가 가장 먼저 듣고 싶은 노래를 우선으로 하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그냥 직관에 의해 짰다. 나는 동물적인 직관이 중요하다고 보고 거기에 의지를 많이 하는 편이다. 무의식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 앨범을 구성할 때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사람들을 편하게 놔두는 게 아니었다. 남들이 듣기 편한 앨범을 만드려면 “인생론”을 빼버리면 된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리스너들이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를 듣고선 거기에 젖어 있는 게 싫은 거다. 그래서 “인생론”을 포기 못하는 거지. 사람들을 깨게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우울해하지 말라고. 사랑이라는 게 마침 내 손에 들어와서 기쁜 마음에 힘껏 잡았더니 바스라져 버리는 것. 아픔으로 남는 것. 그런 걸 전하고 싶었다. 내 인생이 그랬으니까. 상업적인 앨범이지만 상업적인 부분을 고려하진 않았다.

[weiv]: 하지만 그게 상업적인 포인트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 같은데?
오지은: 라기 보다는, 다른 길을 가려면 너무 머리를 많이 써야하니까(웃음) 그냥 다 던지는 마음? 내가 가진 카드를 다 보여주는 거?

[weiv]: 2집에 대한 선곡과 배치, 편곡에 대해선 어떤 고민을 했나.
오지은: 말했듯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했다. 트랙 리스트를 2008년 2월에 만들었는데 그게 바뀌진 않았다. “그대”로 먼저 시작하고, “진공의 밤”으로 몰아치고. “요즘 가끔 머릿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를 어쿠스틱 기타로 예쁘게 시작하면 “진공의 밤”으로 피곤했던 게 약간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다가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로 갈 데까지 갔다가 “인생론”으로 리프레쉬가 되면 좋겠고. 이런 식이었다. 대충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8년 2월부터 2009년 2월까지 꼬박 1년을 검토했다. 섭외하려고 마음먹었던 사람들도 그때랑 똑같다. 계약은 2008년 9월에 했지만.

[weiv]: 녹음은 언제 한 건가.
오지은: 2009년 1월과 2월에 집중적으로 했다. 1월에는 좀 힘들어서 쉬었고, 2월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일했다. 믹싱은 3일 걸렸고. 그래서 토할 것 같았다. (웃음) 하지만 믹싱을 맡기고 싶었던 사람이 그때 딱 3일밖에 시간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었다. 100% 완벽한 건 아니지만 이 사람과 하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갈 것 같아서. 시간적으로 아쉬운 게 있지만 대부분 만족한다.

“남에게 팔려버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무서운 상황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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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사운드 니에바’ 얘기를 좀 듣고 싶다. 운영은 어떻게 하나.
오지은: 그런 거 없다. 하하.

[weiv]: 그래도 처음 만들었을 때 어떤 비전이 있지 않았나.
오지은: 없다. 앨범을 내려면 레이블이 있어야 해서 만든 거다. 막상 만들어놓고 보니, 주변에서 나랑 비슷한 처지에 앨범을 못내는 친구들이 있더라. 그래서 그냥 여기서 내라. 이 정도? (웃음) 예를 들어, 시와는 노래를 너무 잘 쓰는데 그것만으로는 앨범이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앨범 작업을 혼자 다 한다? 그건 거의 불가능한데 내 경우는 그냥 운이 좋았던 거다. 그렇다고 시와가 나랑 똑같은 고생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내가 그런 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weiv]: 시와, 임주연이 ‘사운드 니에바’에 있는데 모두 다른 스타일이라서 좀 궁금하다.
오지은: 나는 시와를 그녀 자신이 아닌 곳으로 데려갈 마음이 없다. 지금의 시와 음악이 너무 좋으니까. 요즘엔 다들 ‘전형에서 벗어난’ 뭐 이런 말을 하는데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나는 너무 좋다. 조니 미첼이 그렇잖나.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뭐가 나빠! 결국 모두 듣고 싶은 건 이런 음악 아냐? 농담 같지만 결국 이런 음악이 오랫동안 사랑받는다. 임주연에 대해서는, 첫 앨범을 이적이 프로듀싱했지만 다음 앨범에선 직접 프로듀싱하길 바란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약간 곤란함을 느끼는 걸 옆에서 누가 서포트해주면 정말 잘 할 거다.

[weiv]: 어쨌든 ‘사운드 니에바’는 회사잖나. 당신이 대표고.
오지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사람들을 이 친구들에게 붙여주고 제작비도 대야하는데 그걸 내가 못하면 언제든 다른 데로 가라고 한다. ‘사운드 니에바’에서 같이 하자는 건, 음악 만드는 걸 불편해하지 말라는 뜻인데. 글쎄 (임)주연이는 이렇게 말하면 섭섭해 할까. 나는 어쨌든 그 아이가 편하게 음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나는 (임)주연에게도 많이 기대고 시와한테도 기대는데, 가족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 해야 할 일과 좋아하는 걸 하는 즐거움이 합쳐지는 진짜 작은 지점을 거기서 얻으면 최고다. 물론 이익은 내야지, 회사니까. (웃음) 그래서 인터뷰하면서 명함 받은 기자들한테 전화도 걸고 뭐 그렇게 프로모션을 하면서. 그런데 음원 유통은 내가 하는 게 어려워서 해피로봇 레코드에 부탁했고.

[weiv]: 그런 점에서 해피로봇 레코드에서 2집을 낸 건, 일종의 실험이 아닌가 싶다. 거기서 충돌하는 건 없나.
오지은: 아직까진 없다. 일단 나로선 그걸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해피로봇 레코드에 들어가서 뭘 만들어내나, 어떤 시너지가 나오나, 아니면 뭔가 안 좋은 게 나오나 경험해보는 중인데 일단은 세이프다.

[weiv]: 어쨌든 그게 결국은 다 ‘사운드 니에바’를 위한 경험 아닌가.
오지은: ‘사운드 니에바’는 오지은을 떼고는 얘기할 수가 없는 거 아닌가. 지금으로선 오지은의 네임밸류가 커지는 만큼 ‘사운드 니에바’를 운영하기가 쉬어질수 있다. 그러면 시와 앨범을 알리기도 쉬워지고. 그런 생각을 한다. 인디 씬에서는 음악으로 돈을 버는 경험이 드문데 그걸 깨면 완전히 다른 상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래서 장기하급의 밴드나 뮤지션이 동시다발로 활동하면 뭔가 판이 재미도 있고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나로선 일종의 좌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실하게 늘어놓고 싶은 거다.

[weiv]: 내가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면, 내 옆의 사람도 같이 뜬다는 생각?
오지은: 맞다. 그렇게 되면 좋겠다. 오지은 때문에 임주연을 알았는데 임주연이 더 좋아, 이런 거다. 음악 팬들의 자유, 아닌가. 뮤지션들을 이렇게 저렇게 비교하면서 노는 거. (웃음)

[weiv]: 그런 게 바로 CEO 마인드다. 자꾸 부정하지 말자.
오지은: 남에게 팔려버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되게, 뭔가 너무 무서운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 걸 많이 봤다. 그렇지만 남에 의해서 팔리지 않으려면 내가 날 팔 수 밖에 없지 않나. 그게 CEO 마인드라면, 어쩔 수 없다. (웃음) 20091030 | 차우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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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오지은, 공식 사이트
http://www.ji-eun.com
오지은의 레이블, 사운드 니에바
http://www.soundniev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