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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드래곤(G―Dragon)  – Heartbreaker – YG Entertainment, 2009

 

 

두 파산

G-드래곤의 솔로 데뷔작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말이 오갔다. 통찰력 있는 견해(‘표절 프레임’에서 ‘감별 프레임’으로 사고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도 있었고 한심한 주장(음반/음원차트 ‘정복’의 의미가 무엇인가? 음악으로 논란을 돌파했다는 뜻이다)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전자는 표절에 대한 새로운 윤리적 태도를 만들려 한다는 점에서, 후자는 민망한 역사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러니 이 글은 가벼운 뒷북 정도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대세에 영향이 없을 뒷북 말이다. 이런저런 반론을 그리 고려하지 않는 까닭은(즉 ‘쉴드’를 치지 않는 까닭은) 다른 여러 곳에서 이제 밝힐 생각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덕에 비교적 편하게 얘기해도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뜨거운 냄비/눈 깜짝하면 식을 테지”(“Gossip Man”)라는 그의 판단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은 속내도 조금은 있다. 또한 겸사해서 비슷한 논쟁에 휘말린 바 있는 다른 뮤지션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G-드래곤의 이 음반은 비평적으로 파산한 음반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음반에 노골적으로 흐르는 모작의 냄새가 비평적 개입을 중단시킨다(라 쓰고 ‘찜찜해서 평가를 할 수 없다’고 읽는다). 얼마나 잘 팔리건, 차트 1위를 얼마나 오래 하건, 연말 시상식에서 얼마나 많은 상을 타건, 심지어는 노래가 얼마나 좋게 들리건.

이를테면 “Heartbreaker”를 들을 때 우리는 이것이 플로 라이더(Flo Rida)의 “Right Round”와 얼마나 닮았는지, 또 얼마나 닮지 않았는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린 몇 주째 그 얘기만 했다. 그렇지 않은가? 오로지 그것만이 고민이다. 곡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가, 곡의 비트가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되었는가, 그 외에 어떤 특색을 가졌는가는 더 이상 관심거리가 아니다. 이 곡은 이미 다른 길로 들어섰다. 이 곡은 이제 샘플링과 오마주와 레퍼런스와 리메이크와 표절의 무간지옥을 떠돌게 생겼다. 영원히. 그리고 그건 우리 탓이 아니다. 힙합이나 일렉트로닉 음악의 장르적 특성을 이해 못한다고,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차이를 모른다고, 샘플링과 오마주와 레퍼런스와 리메이크와 표절의 차이를 모른다고 경멸당하는 우리 탓이 아니란 말이다. 이걸 우리가 만들었나? 그걸 아는 사람들이 왜 이런 걸 만들었나?

아쉬워할 수는 있다. “소년이여”의 독특한 흐름과 멜로디를 그냥 무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The Leaders”를 특징짓는 넵튠스 스타일의 날카로운 비트를 유연하게 타 넘는 G-드래곤과 CL의 맛깔나는 랩을 그냥 묻어버리기 싫을 수도 있다. 의아하리만치 적대적이고 냉소적인 가사(“소년이여”, “Gossip Man”, “Korean Dream”)를 통해 일찍 스타가 된 뮤지션의 고달픈 내면을 조금이나마 엿볼 기회를 버리는 게 아까울 수도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한창 재능을 꽃피울 나이의 촉망받는 뮤지션이 품은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어쨌거나 G-드래곤이 이 음반에서 그 동안 다져온 예민한 감각을 선보이고 있다는 건 사실이니까.

그러나 이 음반을 듣다 보면 그가 그 감각이란 것을 너무 쉽게 획득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미래를 보며 얻은 것이 아니라 거인의 발등 위에 누워서 얻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우리가 독창적이고 흥미롭다고 말하는 작품들은 남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이 아니다. 남의 영향을 잘 소화하고 거기에 자기의 인장을 새겨넣은 작품이다. 그렇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그러나 그 말이 새롭지 않은 걸 만들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정도를 넘어선 모작을 애매하게 옹호하는 근거가 될 수도 없다.

우리가 창작자의 윤리 혹은 본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리는 창작자에게 도덕적으로 올바른 인간이길 요구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G-드래곤이 무슨 티셔츠를 입건 상관하지 않는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건 상관하지 않는다. 훔치지 말라는 말도 할 생각이 없다. 훔쳐도 된다. 훔칠 수 있으면 훔쳐라. 스승에게도 훔치고 동료에게도 훔치고 후배에게도 훔쳐라. 안될 게 뭔가? 모든 위대한 예술가가 그렇게 시작했다.

그것들을 훔친 뒤에 작동하는 것이 바로 창작자의 윤리 혹은 본능이다. 창작자는 훔쳤다는 데 만족하는 게 아니라 훔친 것들로 자기만의 것을 만들려 노력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걸 만드는 데 성공한 순간 자기가 훔쳤던 것들을 버린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버린다는 것이 말이다. 예술의 세계에서는 지붕에 올라간 이상 사다리는 차 버려야 하고 토끼를 잡은 이상 사냥개는 삶아먹어야 한다. 훔친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고 그것들을 그냥 갖고 있으면 모작이 나오고 아류작이 나온다. 왜냐하면 그가 훔친 것들은 정말로 좋은 것들, 그냥 내 거라 주장하고픈 충동이 일어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처음에 그것들을 훔쳤던 것이다.

G-드래곤은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는 순간 믿음이 무너진다. 내가, 혹은 다른 이들이, 이게 뭘 어디서 어떻게 따라한 건지 아닌지 장담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우리가 세상의 모든 곡들을 듣고 기억하는 건 아니다) 이 곡들을 독창적이고 흥미롭다고 말할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있을까? 다시 말하건대, 이것들을 우리가 만들었나? 신뢰를 저버린 게 우린가?

그게 G-드래곤의 이 음반이 뻔뻔한 이유다. 다른 아티스트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로 설명하거나 옹호할 수 없을 정도로 모작의 흔적이 심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뻔뻔하고, 그걸 결과론(잘 팔리면 대중이 음악성을 인정했다는 뜻 아니냐)으로 정당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뻔뻔하다(희한하게도 결과론을 내세울 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대중이 순식간에 ‘모든 걸 아는’ 대중으로 변한다). 이 음반은 또한 최신 트렌드의 수용과 그에 대한 세련된 응용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온 YG의 최근 행보에도 치명타를 가하는 음반이자(내가 태양과 2NE1을 무척 좋아한다는 걸 알아주기 바란다) 뮤지션으로서의 G-드래곤의 향후 커리어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음반이다. 간단히 말해 너무 큰 희생을 치른 음반이다.

나는 그의 솔로 작업을 기대했던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내가 이제 그의 다음 작업을 믿을 수 있을까? 내년 이맘때쯤에,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올 연말쯤에 이 음반이 무엇으로 기억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많이 팔리면 그걸로 좋은 건가? 단지 그런 거라면 티셔츠를 만들 수도 있고 와인을 빚을 수도, 자동차를 만들 수도 있다. 왜 음악을 만드는가? 처음 음악을 하고 싶다고 결심했을 때, 이것이 어쩌면 내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 나이 열 셋 우린 어렸어/Me and ma man 전부를 걸었”(“Korean Dream”)을 때, 소년이여, 그때 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자신뿐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팬들까지 지치게 만드는 표절 논란에 시달리던 두세 달짜리 히트곡이었는가 아니면 진짜 제대로 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저릿저릿한 열망을 불러일으킨 음악이었는가? 20090830 | 최민우 [email protected]

1/10

덧. 글의 제목은 염상섭의 단편에서 따 온 것이다.

수록곡
1. 소년이여
2. Heartbreaker
3. Breathe
4. Butterfly (feat. Jin Jung)
5. Hello (feat. 다라)
6. Gossip Man (feat. 김건모)
7. Korean Dream (feat. 태양)
8. The Leaders (feat. Teddy , CL)
9. She’s Gone (feat. KUSH)
10. 1년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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