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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 지은 – 해피로봇, 2009

 

 

디미누엔도

오지은의 데뷔작 [지은](2007)에 얽힌 이야기는 이른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다. 선주문 제작 방식은 오지은이 처음 시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온라인 샵 상품설명에 적힌 ‘유례없는 방식으로 기존의 음반 제작의 패러다임을 깼다’는 [지은]의 홍보 글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오지은만큼 성공을 거둔 경우가 없었다는 점에서 패러다임을 깼다는 주장이 아예 틀린 건 아니다.

오지은의 데뷔작은 솔직함과 강렬함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솔직함은 가사고 강렬함은 음악이다. (성적) 욕망을 종종 날것으로, 때로 묵직한 관념어(이성, 이론, 존엄, 권위)를 동원하면서 드러내는 것이 솔직함이다. 피아노와 기타만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긴 사운드, 음의 낙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곡 스타일, 간드러지게 뒹굴다가도 할퀴듯이 후려치는 보컬이 강렬함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 솔직함과 강렬함이 세 명의 그림자 속에서 나온 것 같다는, 그리고 그 그림자들의 검댕이 묻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 명은 김윤아와 시이나 링고와 리즈 페어다. 그러니까 [지은]은 시이나 링고와 리즈 페어가 김윤아를 매개로 한국 인디 포크 씬에 강림한 것 같은 음반이었다.

데뷔작 이야기를 길게 하는 까닭은 오지은의 두 번째 음반이 기본적으로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밴드 편성을 취한 곡들(“진공의 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웨딩송”)이 들어갔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손님이 빠져나간 해수욕장에서 넋 놓고 부르는 것 같은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이 이채롭다 해도 마찬가지다. 음반 제목도 전작과 똑같은 [지은]이다. 하지만 오지은의 경우 패턴을 반복한다는 것은 매너리즘이 아니라 스타일이다. 외적인 확장의 와중에도 자기 스타일을 흔들림 없이 유연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두 번째 [지은]이 거둔 가장 큰 성과다. 후텁지근한 기타 노이즈가 출렁이는 “진공의 밤”에서 전작의 대표곡 “華”를 잇는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를 거쳐 카랑카랑한 “웨딩송”까지 흐르는 여정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 뒤부터 음반의 힘은 디미누엔도라도 붙은 것처럼 점점 줄어들다가 사라진다. 전체적으로 두 번째 [지은]은 첫 번째 [지은]에 비해 능숙하고 자유롭지만 대신 느슨하고 산만하다. 시이나 링고의 흔적이 뚜렷한 “진공의 밤”과 “인생론” 같은 곡들을 듣다 보면 오지은이 해결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김윤아가 시이나 링고를 많이 가져다 쓴 바 있다는 불길한 연상까지 스치면서). 왜냐하면 이 곡들이야말로 형식적인 면에서 전작과 신작을 뚜렷하게 구분 짓는 곡들이니 말이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복합적인 시선과 (성적) 욕망은 여전히 오지은의 중심 테마다. 그러나 “진공의 밤”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결정하는 ‘원할 때마다 자빠뜨리면 / 니가 버텨내지 못하고’라는 예리한 가사가 음반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생론”의 ‘최선을 다하면은 화창한 아침/도망만 다닌다면 어두운 아침/응원가는 싫지만 응원을 해주길 바래/… /변명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절약합시다’ 같은 대목이 음반의 정서에 더 가깝다. 가사들은 솔직함의 수위를 약간 줄이고 신선함과 기시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인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카롭기도 하고 무르기도 하다. 좋게 말하면 유들유들하고 나쁘게 말하면 전작에 비해 안이하다. 어쨌거나 ‘여성-주체의-(분열적)-진정성’ 같은 건 아니다. 그런 말을 하면 이성과 이론과 존엄과 권위로도 수습이 안 된다.

나는 두 번째 [지은]이 좋은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트집 저런 트집 다 잡고 난 뒤에 이런 훈훈한 마무리는 대체 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또한 변명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절약하겠다. 두 번째 [지은]이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은 음반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최근 나온 음반 중 다 듣고 난 뒤 이 정도로 독특한 여운을 남기는 음반이 별로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심지어 누구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난 뒤에도 말이다. 그건 [지은]의 에너지가 강렬하다는 뜻이다. 독창적이지만 아무 인상도 남지 않는 음반과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끌어다 쓴 티가 나지만 재미있는 음반 중 뭐가 역사에 남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당장의 선택이 어느 쪽인지는 분명하다. 두 번째 [지은]은 후자다. 20090525 | 최민우 [email protected]

덧. 첫 번째 [지은]의 마지막 곡 제목은 “작은 방”이다. 두 번째 [지은]에서는 보너스 트랙의 형식으로 달려 있는 “작은 자유”다. 둘 다 ‘작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우연인지 아닌지 궁금하다.

6/10

수록곡
1. 그대
2. 진공의 밤
3. 요즘 가끔 머리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
4.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5. 인생론
6.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
7. 웨딩송
8. 푸름
9. 잊었지 뭐야
10. 익숙한 새벽 3시
11. 두려워
12. 차가운 여름밤
13. 작은 자유 (Bonus Track)

관련 사이트
오지은 공식 사이트, 지은닷컴
http://www.ji-eun.com
오지은의 레이블, 사운드니에바
http://www.soundniev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