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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른-흐른-튠테이블무브먼트, 2009

 

 

흐른, 남다른 데뷔작

흐른은 2006년에 데뷔 EP [몽유병]을 발표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흐른이란 이름을 쓰기 전에 그녀는 나의처절한앙뜨와넷이란 듀오로 활동했다. 밀림닷컴과 미니홈피를 통해 자작곡을 공개하던 그녀가 흐른이란 이름으로 [몽유병]을 ‘정식으로’ 발표했을 때 그건 어떤 기점으로 보였다. 나의처절한앙뜨와넷과 흐른의 거리는 어쿠스틱을 타고 침잠하는 정서와 멜로디를 타고 상승하는 정서의 거리기도 했다. 이를테면 방향과 밀도의 차이였다. 그런데 EP [몽유병]과 정규앨범 [흐른]의 차이는 명백하게 사운드에 있다. 이 차이는 그 사이, 2006년과 2008년 사이에 이 싱어송라이터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흐른의 데뷔앨범은 두 가지 점에서 신선하게 들린다. 우선 내용에 있어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전형으로부터 벗어나있다는 판단(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이 대부분 ‘자기고백’과 ‘자의식 과잉’의 모호한 경계에 위치한다고 생각한다)때문이고, 사운드에 있어서는 어쿠스틱 기타가 아니라 톡톡튀는 신서사이저 사운드가 앨범을 지배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은 스케일의 차이를 환기시킨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우리가 은연 중에 기대하는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이 아니라 밴드 음악에 가깝다. 이건 꽤 의미심장한 차이다.

우선 개별 곡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신서사이저가 인상적이다. 록 기타와 신서사이저의 활용은 21세기의 트렌드라고 할 정도로 일반화된 룰이다. [흐른] 역시 그 룰에 충실하다. “누가 내 빵을 뜯었나”와 “You Feel Confused As I Do”, 그리고 “Global Citizen”을 지배하는 뿅뿅거리는 사운드는 80년대 신스팝을 연상시킨다. 직관적으로 팻샵보이스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건 ‘가요’의 정서가 제거된 결과기도 하다. 이에 대해선 그루브가 형성되는 지점이 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양한 소리에 더 세심하게 집중한 레코딩도 이런 생각에 힘을 보탠다. 악기와 보컬은 얼렁뚱땅 뭉개지지 않고 강약이 선명하게 부각되는데 다른 음반과 비교할 때 그 차이는 보다 확연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술적인 디테일이 아니라 그게 환기시키는 정서다. 이에 대해선 앞서 언급한 곡들보다 상대적으로 정적인 “다가와”, “어학연수”, “그렇습니까”를 예로 들 수 있다. 한국어 노래임에도 발라드 가요가 아니라 외국 팝에 가깝다. 이를테면 모던하다.

내용적으로도 이 앨범은 내적고백이나 자의식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관계, 소통, 일상에 대한 단상들이 이어지지만 그걸 관통하는 건 잘 다듬은 비유와 은유다. ‘누가 내 빵을 뜯었나/누가 내 눈을 먹었나/누가 내 손을 가졌나/누가 내 뺨을 때렸나’로 시작되는 “누가 내 빵을 뜯었나”가 겨냥하는 건 자기 몸(경험)에 대한 통제권의 상실과 그로 인한 정체성의 뒤틀림이다. 이게 확대해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흐른은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취향에 대한 성찰로도 확장시킨다. ‘국제뉴스 면에선 온통 만물이 죽어가/나는 대한민국에서 케냐산 커피를 마셔’ 같은 가사(“Global Citizen”)는 모든 게 얽히고 엮인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취향이 과연 탈정치적일 수 있는가란 질문과 같다. 이 질문의 본질은 누구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흐른은 질문의 방향을 스스로에게 돌린다. 대부분의 곡에서 명확하지 않은 어미 혹은 말줄임표로 끝나는 노랫말 역시 그 지점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 많은 경우, 질문은 답이 아니라 과정을 요구한다. 그건 고민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고민과 갈등의 지점은 의미심장하다. 동시대의 수많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에서 흐른이 남다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 때문이다. 20090510 | 차우진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Don’t Feel Sorry
2. 누가 내 빵을 뜯었나
3. 다가와
4. 어학연수
5. Wake Up In The Morning
6. You Feel Confused As I Do (Summer Mix)
7. 산책
8. Global Citizen
9. 할 수 없는 말
10. 그렇습니까
11. Song For The Lonely
12. You Feel Confused As I Do (Autumn Mix)

관련 글
인터뷰: 흐른, 비겁해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 vol.11/no.9 [20090501]

관련 사이트
흐른, 공식 사이트
http://flowingsong.cyworld.com
흐른, 마이스페이스
http://www.myspace.com/myflo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