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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 – 싸구려 커피 EP – 붕가붕가레코드, 2008

 

 

아아, 이런 통기타 소리에는 대책이 없다. 귓구멍을 간질이다가 어느 순간 예리한 뭔가로 푹 찌른다. 방심하고 낄낄거리다가 대책도 없이 당한다. 아차, 정신을 추슬러도 어쩔 수 없다. 원래 그런 법이다. 지극히 단순한 기타 리프에 맞춰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라고 읊조리는 무심한 목소리가 처절한데 웃기다, 아니 웃긴데 처절하다. 이토록 팽팽하게 통기타 줄을 튕기는 청년의 이름은 장기하. 눈뜨고 코베인의 드러머이자 청년실업의 멤버다. 눈뜨고 코베인이야 제법 알려졌지만, 청년실업이라니. 이 낯선 이름의 밴드는 2005년에 첫 앨범 [기상시간은 정해져있다]를 발표한 3인조 밴드다. 장기하와 마찬가지로 눈뜨고 코베인의 멤버인 목말라, 이자람밴드의 일원으로도 활동했던 이기타가 멤버로 있(었)다. 이 앨범은 21세기형 청춘송가, ‘앵콜요청금지’를 부른 브로콜리 너마저의 레이블로 알려진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한 수공업소형음반’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었다. 붕가붕가라는 단어는 ‘록큰롤’이 애초에 그랬던 것처럼 성행위를 뜻하는 속어다. 그러니까 붕가붕가레코드는 어쨌든, 록음악으로 한국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려는 목적을 가진 레이블이다.

장기하의 EP [싸구려 커피]는 그 9번째 작품으로 최근작이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붕가붕가레코드는 2004년에 설립된 ‘무예산 레이블’이다. 서울대 스쿨밴드들의 컴필레이션 [뺀드뺀드짠짠] 시리즈를 제작한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이 레이블은 자본금 50만원으로 문을 열었고, 제작비 800원짜리 앨범을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 판다. 재생지로 만든 장기하의 앨범도 마찬가지다. ‘싸구려 커피’, ‘느리게 걷자’, ‘정말 없었는지’의 3곡이 수록된 이 앨범의 가격은 4천원이다. 장기하는 현재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로 활동 중이다. 밴드 이름이 이 모양인 건 멤버들을 ‘얼굴보고 뽑았기 때문’이다. 장르적으로 포크로 분류되지만 그건 통기타로 편성된 악기 구성 때문이고 뭐 그렇다. 중요한 건 이런 것들이 아니다. 장기하가 부르는 이 노래들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이게 ‘청춘’이라는 시간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참으로 무기력하게.

사실 청춘이라는 시간은 무기력하다. 오랜 경제 불황과 고용불안과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비정규직 양산과 장기적인 청년실업 사태 때문만은 아니다. 청춘은 원래 그렇게 무기력하다. 뭔가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이것저것 도와주는 게 없으니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연애도 서툴고 공부도 서툴고 사회생활도 통장잔고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으니 그렇다. 그러다보니 비교하고 비교하니 제 못난 것만 보이고, 그런데 ‘나는 나를 사랑한다!’ 따위 광고 카피 덕분에 자신감은 가져야겠고, 가끔 객기를 부려도 머쓱해지기 마련이고, 뭐 그런 거시기한 시간이 바로 청춘이다. 초고속 광랜이 정의하는 시대의 속도에 정신 못 차리면 휙, 나가떨어지는 시대라 어쩔 수 없다지만 돌이켜보면 20년 전이라고 더 나았을 리 없다. 그래서 이 청춘들은 그저 막막하다. 내가 뭘 잘 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 게 있기나 한 것인지 도대체 모르겠는데 시간은 척척 잘도 가고 뭐하나 제대로 된 것도 없는데 졸업장 하나 달랑 들고 내동댕이쳐진다.

습하고 더러운 자취방의 일상을 노래하는 장기하의 목소리가 우습다가도 섬뜩해지는 순간은 그때다. 이 노래는 홍대 부근 근사한 카페에 앉아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는 누군가가 아니라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장판’ 위에서 싸구려 커피를 마시는 누군가를 위한 노래다. 게다가 이 노래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게 단지 나의(혹은 너의) 잘못은 아닌 것 같다고 은근히 말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모기나 때려잡는 이 청년은 남들이 ‘열공’할 때 탱자탱자 기타나 치다가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고학력 딴따라일지 모르지만, 그가 환기하는 찌질한 청춘의 문제의식은 그게 아니다. 시민사회, 혹은 공화국의 본질이 구성원들 누구나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최소한의 범위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면, 장기하는 2008년의 한국이 과연 그런 사회인가라는 점을 은유적으로 묻는다.

그래서 그가 레게 풍의 ‘느리게 걷자’에서 “죽을 만큼 뛰다가는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보고 지나치겠네” 노래하고, “점심때쯤 슬슬 일어나 가벼운 키스로 하루를 시작하고, 양말을 빨아 잘 널어놓고 햇빛 창가에서 차를 마셔보자”라고 말하는 건 대안이라기보다는 판타지다. 그래도 이런 판타지는 ‘청춘은 열정의 시간’이라거나, ‘록은 젊음의 음악’이라는 구태의연한 판타지보다는 낫다. 그건 60년대 이후 록음악을 글로벌하게 팔아먹기 위해 기업이 만들고 미디어가 홍보한 이데올로기다. 그래서 이들은 ‘록큰롤’을 ‘붕가붕가’라는 말로 바꾸고, 통기타로 지금 여기의 노래를 만든다. 젊음은 열정도 뭣도 아니고 그저 어떤 시간일 뿐이다. 그 시간은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환희에 차 있고 때론 무기력하다. 그걸 어떻게 지내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악 물고 뭔가 끝장을 보라지만 그 다음은 누가 아나. 오히려 예측불가능성이야말로 청춘의 정의고, 지속가능한 어떤 것이야말로 청춘의 화두가 아닌가.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과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가 만나는 지점은 바로 거기다. 대책 없는 이십대를 관통하는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그 자리. 그러니,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당신은 기꺼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게 이 지랄맞은 상황을 엿먹이는 방법이다. 20080731 | 차우진 [email protected]

7/10

*[씨네21] 2008년 7월 4째 주에 실렸음

수록곡
1. 싸구려 커피
2. 느리게 걷자
3. 정말 없었는지

관련 글
브로콜리 너마저 [앵콜요청금지] 리뷰 – vol.10/no.3 [20080201]

관련 사이트
장기하와 얼굴들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beatlemom
붕가붕가 레코드 공식 홈페이지
http://www.bgb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