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2043129-c0018608_48e0e2629ec61

한희정 – 너의 다큐멘트 – Pastel Music, 2008

 

 

겨울이 끝나고

인디씬을 나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펑크나 그런지 같은 음악 스타일로 나누는 방법, 스트리트 펑크쇼 같은 사건 중심으로 나누는 방법, 레이블 중심으로 나누는 방법 등. 레이블 중심으로 본다면, 인디씬은 3기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인디 레이블 시스템 탄생, 레이블 중심으로 인디씬 재편성, 레이블의 전문화 혹은 특성화. 현재에 해당되는 3기의 특징은, 장사할 줄 아는 레이블과 장사할 생각 없는 레이블이 보다 뚜렷하게 나누어졌다는 것이다. 이들 중 파스텔뮤직은 장사할 줄 아는 대표적인 레이블이다. 한희정의 3번째 파스텔뮤직 앨범인 [너의 다큐멘트](2008)는 어느 때 보다도 파스텔적인 앨범이라 할 수 있다.

푸른새벽 해체 이후 한희정의 솔로 앨범이 기획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앨범의 방향을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었다. 푸른새벽의 첫 번째 앨범인 [Bluedawn](2003)의 연장선, 아니면 마지막 앨범인 [보옴이 오면](2006)의 연장선. 하지만 파스텔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12 Songs About You](2007)에 수록된 “우리 처음 만난 날”은 그 두 가지 방향과는 거리가 있는 곡이었다. 그 곡처럼 [너의 다큐멘트]는 푸른새벽이나 더더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보컬 변화다. 앨범을 시작하는 곡인 “너의 다큐멘트”부터 알 수 있는 것처럼, 푸른새벽 시절에 비해 목소리의 감정이 더 열려있다. 이것은 더더 시절 록 보컬과도 다르다. 두 번째는 주제와 정서 변화다. 이별과 그리움 등을 아프고 서늘하게 표현하던 푸른새벽과 달리, 보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 [12 Songs About You]에 수록된 버전보다 생기 있게 변한 “우리 처음 만난 날”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휴가가 필요해”같은 곡은 앨범이 발매된 시기와 제목을 보면 여름노래처럼 들린다. 곡 자체도 이전의 서늘함과는 다르게 시원함을 주고 있다. “푸른자살”같은 곡을 부르던 시절과 달리 밝은 가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세 번째는 앨범 전체적 분위기 변화다. 보컬, 곡, 가사, 앨범 아트워크 모두 주류 가요에 가까워졌다. 인디 순수주의자에게는 중요한 일이겠지만, 이런 변화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한희정의 경우 이러한 변화로 인해 얻는 것도 있었지만, 잃는 것도 컸다는 것이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전에 낸 앨범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너의 다큐멘트]가 푸른새벽의 음악과 단절된 앨범이란 뜻은 아니다. “브로콜리의 위험한 고백”은 [보옴이 오면] 느낌이고, “Drama”는 [Submarine Sickness]같은 앨범에 수록되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한 곡이다. 이러한 점들은 정상훈의 투명물고기 EP인 [Through The Glass Wall](2008)과 비교해 보면 더 흥미롭다. 한희정의 솔로앨범이 발매되기 몇 달 전에 발매된 이 EP는, 푸른새벽 시절에 비해 더 접근하기 힘든 곡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보옴이 오면] 이후 정상훈이 더 추운 겨울을 찾아 떠나는 동안, 한희정은 올 것 같지 않던 봄에 도착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보면 푸른새벽이 왜 해체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너의 다큐멘트]는 괜찮은 앨범이다. 부담 없이CD를 넣고, 3분 내외의 깔끔한 곡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부터 한희정을 꾸준히 좋아했던 팬이라면 다소 평범한 결과물에 아쉬워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스스로 프로듀싱까지 하며 낸 첫 번째 앨범이란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앨범에 아쉬움을 느낀 사람은 앞으로의 결과물을 기대해봐도 되겠다. “산책”에 들어있는 커피는 뜨거운 커피도 냉커피도 아니었지만, 향은 여전히 좋았기 때문이다. 20080929 | 고두익 [email protected]

* [보옴이 오면]과 달리 이번 앨범은 싸인이 부클릿 뒤가 아닌 커버로 왔다. 싸인 해주는 사람이 반으로 줄었지만 크기는 비슷하다. [보옴이 오면]의 싸인은 약 7.5×3.5cm, [너의 다큐멘트]의 싸인은 약 5.5x8cm. 팬들을 위한 배려인 것 같은데, 적어도 커버에는 싸인을 안 했으면 좋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클릿 안쪽의 사진들이 앨범 커버의 사진 보다 훨씬 예쁘다는 것이다.

6/10

수록곡
1. 너의 다큐멘트
2. 브로콜리의 위험한 고백
3. 우리 처음 만난 날
4. Drama
5. 잃어버린 날들
6. Re
7. 산책
8. Glow
9. 휴가가 필요해
10. 나무

관련 글
머뭇거리지 않기, 돌아보지 않기: 한희정 인터뷰 – vol.5/no.13 [20030701]
더더 [The Man In The Street] 리뷰 – vol.3/no.12 [20010616]
더더 [The The Band] 리뷰 – vol.5/no.13 [20030701]
푸른새벽 [푸른새벽] 리뷰 – vol.5/no.4 [20030216]
푸른새벽 [Submarine Sickness/Waveless] 리뷰 – no.7/vol.14 [20050716]
푸른새벽 [보옴이 오면] 리뷰 – vol.9/no.6 [20070316]

관련 영상

“우리 처음 만난 날”

관련 사이트
한희정 공식 사이트
http://dawnybo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