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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완 – 당신의 노래 – 쌍나팔뮤직/비트볼, 2008

 

 

취한 눈으로

시인으로서의 성기완에 대해서는 내가 뭔가를 말할 처지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 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성기완에 대해서 말하라면 아무래도 ‘지적’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곤 한다. 그의 가장 최근 작품이라 할 수 있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세 번째 음반이 ‘지성적 접근’이 워낙 두드러진 감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평소에 갖고 있던 막연한 느낌이 굳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지성적 뮤지션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특정한 장르의 뮤지션들을 연상시킨다(이를테면 일렉트로닉 뮤지션). 그래서 ‘감성적인 지성’이라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둘 중 하나를 빼라면 ‘감성’이지 ‘지성’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걸 딱 잘라 구분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다. 결국 그것이 모두 성기완의 음악이다. 둘 중 하나를 떨구어내려 하면 다른 하나도 따라오게 마련이다.

이 음반에 대해 말하기 위해 성기완의 예전 솔로 작업인 [나무가 되는 법](1999)을 들어야 할까? [나무가 되는 법]에 대해 [weiv]의 평자는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수록곡 제목을 봐도 그럴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음반은 ‘친절’하다. 이리 저리 고려를 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조율한 사운드가 소박하지만 매끈하게 정리된 발라드를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초반부와 중반부의 곡들, 그러니까 “꽃”과 “내 영혼의 마지막 한 방울”, “깊어진다 계절이” 같은 곡들은 뭔가를 털썩 내려놓은 것처럼 나른하지만 내려놓은 그 무언가에서 시선을 거둔 것 같지는 않은 긴장감을 야기한다. 그리고 그 긴장은 “그렇게”처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활용하여 노골적으로 긴장을 일으키고 있는 부분보다 이런 발라드들에서 오히려 잘 드러난다.

또한 그 사운드가 감싸고 있는 것은 시(詩)이기도 하다. 이 음반의 수록곡 중 네 곡은 ‘곡’이라기보다는 ‘스포큰 워드’다. 그의 시집인 [당신의 텍스트]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멍하니 낭송만 해서는 재미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운드 미장센’을 꾸며 놓았다. 이를테면 “당신의 텍스트 1” 같은 경우는 스테레오의 분리를 강조하는 ‘음향적’ 방식으로, “이불솜 틀어드립니다”는 실내극에 가까운 분위기로 ‘대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이 시도는 흥미로우며, 향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여지를 충분히 남기고 있다.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백현진의 [반성의 시간]과 비교하게 된다. 둘 다 달콤쌉싸름하지만 만만찮은 텐션이 걸린 곡들을 담은 발라드 음반이고, 비슷한 시기에 나왔으며,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순간들을 (무)의식적으로 불러들이고 있다(더군다나 백현진과 성기완은 서로의 음반에 품앗이를 해 주고 있다).

그러나 백현진이 취한 눈을 사방으로 굴리며 자기 주변의 사물과 감정을 깡그리 집어삼키려 한다면 성기완은 취기 어린 눈에 들어온 풍경들을 ‘궁리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다시 ‘지적’이라는 말로 돌아가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누구건 취해 있을 때는 똑같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이 슬퍼지고, 좀 더 많이 냉정해지고, 좀 더 많이 즐거워지며, 때로는 춤도 추고 싶어진다. 시와 음악을 같이 내놓는 이가 취해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080731 | 최민우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꽃
2. 내 영혼의 마지막 한 방울
3. 마흔 이끼
4. 당신의 텍스트1 – 사랑하는 당신께
5. 사랑해 사랑해
6. 깊어진다 계절이
7. 이불솜 틀어드립니다
8. 쌍동이 우주 (브로콜리에 대한 믿음)
9. 그렇게
10. 버섯
11. 안녕 앵두꽃
12. 겨울 숲
13. 무의식의 자서전1 – 50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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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완 [나무가 되는 법] 리뷰 – vol.2/no.4 [20000216]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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