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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e & Sebastian – The Life Pursuit – Matador, 2006

 

 

소심 보이, 본격적으로 어깨를 들썩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되어간다고 했던가.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의 일곱 번째 정규 앨범 [The Life Pursuit](2006)을 들으며 문득 떠오른 농 어린 단상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조울증과 신경쇠약의 이미지가 평생토록 잘만 어울릴 것 같던 밴드의 리더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이 예전과는 조금 다른 조짐을 곧잘 내비친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 점이 비교적 노골적으로, 그리고 때론 긍정적으로 감지된다는 것은 징후적이다. 물론 3년 전 [Dear Catastrophe Waitress](2003)에서 나타난 그들의 변이적 꿈틀거림은 넌지시 나름의 향방을 가리킨 바 있지만, 이 신보를 통해 벨 앤 세바스찬이 들려주는 사운드의 실루엣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발그레 홍조를 띤 장난꾸러기 소년의 표정’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물론 눈가에 드리운 쓸쓸함의 잔상은 여전히 몇몇 가락과 노랫말의 짠한 여운을 통해 새어나오고 있지만.

근래에 발매된 EP 및 싱글 수록곡 모음집 [Push Barman To Open Old Wounds](2005)를 제외한다면 햇수로는 3년 만에 선보이는 벨 앤 세바스찬의 이번 정규 앨범은, 그들이 그간 쌓아온 전형적 감수성과 외피의 무게감을 상당량 벗어던지며 한층 사뿐하고 다채로운 소리의 스텝을 밟아가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음반은 (멤버들로선 그럴 의도가 딱히 없었겠지만서도) 여태껏 벨 앤 세바스찬에게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해온 브릿팝 팬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밴드를 가장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정도의 재기발랄한 인사로까지 들린다. 비록 이들에게 극히 무심했던 사람이 금새 유혹당할 만큼의 급변은 아니지만, 밝은 듯 어둡고 열린 듯 닫혀있던 이 외톨박이 청년들에 대한 기존의 고정적 시선이 부분적으로 깨질 여지는 앨범 곳곳에서 드러난다.

문을 여는 “Act Of The Apostle”의 잔향은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지 모른다. 극단적인 박자의 배열이라든가 현란한 화성력의 남발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있던 벨 앤 세바스찬의 자태 그대로, 그들만의 그윽한 리듬감과 서정적 멜로디는 첫 곡을 통해 잘 발산되고 있다. 하지만 곧이어 2번 트랙 “Another Sunny Day”서부터 청자의 궁둥이는 조금씩 들썩여질 확률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사뭇 뇌리를 스쳐가는 불길한(?) 판단 하나. 소심하고 때론 철부지 같아만 보이던 머독의 보컬색이 챔버팝 특유의 공간감 속에서 무척이나 발랄하고 신명나게 울려 퍼진다는 사실. 그렇담 뒤따르는 곡들을 좀 더 체크해 볼 필요가 있을 터, 3번 트랙 “White Collar Boy”를 재생시켜본다. 흠칫, 이 둔중한 베이스/스네어 드럼 터치가 몰고 가는 투 비트와 묵직한 베이스 기타의 리듬감은 정녕 벨 앤 세바스찬의 그것이란 말인가. 한편 또 다른 변화는 매인 보컬 스튜어트 머독의 창법을 통해 암시적으로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부기우기 디스코풍의 “The Blues Are Still Blue”에서 머독은 아예 엘비스 프레슬리 모창 대회에라도 나간 것 마냥 업템포의 블루스에 몰두하는데, 이는 이번 앨범의 ‘변질’에 관한 알리바이로 들먹여도 그들로서 반론하기 힘든 명증이다.

확실히 벨 앤 세바스찬의 새 앨범엔 춤추기 좋은 로큰롤의 문양이 전례 없이 다양한 색색무늬로 수놓아져 있다.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의 심드렁한 쾌활함을 연상시키듯 명랑하게 불러제끼는 “Sukie In The Graveyard”의 분위기는 “We Are The Sleepyheads”에서의 사각거리는 기타 리프로 도배된 그루비 사운드와 차별되고, “Funny Little Frog”에서 베이스 기타가 꾹꾹 찍어대는 리듬감은 “For The Price Of A Cup Of Tea”의 살랑거리는 ‘복고 댄스’와도 다른 무드를 연출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전반적으로 풍부한 듯 보이는 수록곡들의 조합이 일면 음반의 일관성을 해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Tigermilk](1996), [If You’re Felling Sinister](1996), [The Boy With The Arap Strap](1998) 등 초기작들에서의 가볍게 넘실대는 댄스곡들과 재질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들 본위의 창작력만큼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점도 쉽게 지나치기엔 비중이 높은 부분이다. 코드 진행의 흐름이 유독 독창적이면서 느낌이 좋은 그들만의 창의성은 여전하고, 언제나처럼 각각의 버스와 코러스들은 ‘강렬한 훅 한 방’으로 승부 짓는 여타 모던록보다 쉽게 물리지 않는 은은한 맛으로 듣는 이의 귀를 잡아챈다. 다만, 가늘고 고운 선을 그려내기에 알맞은 4H 연필에서 두껍고 진한 드로잉을 위한 6B 연필로 소묘의 재료가 바뀌듯 전자기타와 키보드가 주도적으로 나선 오케스트레이션이 전작들에 비해 그 농도를 한층 높이고 있으며 보컬색 또한 꽤 짙어졌다는 점 등이 특기할 만한 변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당신이 대중적인 포크팝이나 인디록 기반의 기타팝 정서를 바탕으로 벨 앤 세바스찬을 들어온 팬이라면 이 앨범은 어렵잖게 당신의 아이돌 음반이 될지 모를 일이다. 허나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과 같이 ‘달게 씹히는 맛’의 트랙들에 거부감을 느낄 당신이라면 앨범의 몇 안 되는 ‘청명한’ 트랙 “Dress Up In You”나 “Mornington Crescent” 정도로 위안 받아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편곡상의 광택을 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한 앨범’으로 꼽히게 될 이번 일곱 번째 정규 음반은, 분명 전작들에서 보여 온 특유의 섬세하고도 내성적인 성격을 희석시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들이 ‘훵키한 기타팝’을 연주하고 ‘의외로 쿨한’ 목소리를 섬뜩하게 발성한다 하더라도, 휘몰아치는 법 없이 ‘튀지 않는 스타일로 튀는 사운드를 만들어 온’ 벨 앤 세바스찬은 이번에도 똑같은 자리, 바로 그 곳에 서있다. 그러니 ‘늦바람이 무섭다는데 춤바람이라도 난 건 아닐까’ 하는 기우를 품기 보단, 유쾌하게 ‘로큰롤(rock’n roll)’하고 있는 이들의 몸짓에 동의해주는 것도 이들의 팬으로서 손해 볼 장사는 아닐 듯싶다. 까불어도 모두 함께 까불면 쪽팔림은 덜 해지고 재미는 두 배가 되지 않던가. 소녀 벨과 소년 세바스찬은 그렇게 조금씩 소심함을 벗어던지고 있다. 20060329 | 김영진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Act Of The Apostle
2. Another Sunny Day
3. White Collar Boy
4. The Blues Are Still Blue
5. Dress Up In You
6. Sukie In The Graveyard
7. We Are The Sleepyheads
8. Song For Sunshine
9. Funny Little Frog
10. To Be Myself Completely
11. Act Of the Apostle II
12. For The Price Of A Cup Of Tea
13. Mornington Cres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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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벨 앤 세바스찬 공식 홈페이지
http://www.belleandsebastian.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