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asis 첫 내한공연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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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30분, 예상보다 그리 크지 않은 올림픽 홀에 다다라 약속된 표를 전달받았고, 예상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 입구에서 주황색 종이 팔찌를 나눠받았다. “스탠딩 좌석 C 구역은 이쪽에 일렬로 서서 대기해주십시오” 라는 행사 진행요원들의 요청(이라기보다는 요구에 가까운)에 다시 한 번 초등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쨌든 질서정연히 공연장으로 들어서자 이미 실내는 장사진. 특히 여타의 외국밴드 공연 때보다 더 많아 보이는 수의 (아마도 영국인인 듯한) 외국인들이 사뭇 놀라웠다. 중장년층을 포함한 외국인 관객들을 바라보며 ‘오아시스가 영국의 국민가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스탠딩 공연에 올 때마다 ‘바닥의 경사를 조금만 비스듬히 만들어주면 뒤쪽에 서있는 사람들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공연을 볼 수 있을텐데…’ 라고 투덜대며 까치발을 들고 조금이라도 무대를 잘 보기 위해 기웃거려 보지만, 애당초 부질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그렇다고 맹렬히 무대 앞쪽으로 파고들 의지 또한 갖고 있지 않았다.

소란스런 웅성임과 귀를 웡웡하게 울려대는 DJ의 선곡 리스트가 플레이 되는 동안, 본 공연은 9시에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연이 너무 늦게 끝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드는 찰나, 예정된 오프닝 밴드 뷰렛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2005년 발매된 데뷔EP의 수록곡과 하드록 버전의 “Lady Marmalade” 커버곡으로 이루어진 20여분 남짓한 시간 밴드는 열과 성(그리고 다량의 애교)을 다해 공들인 무대를 선보였지만, 이미 오아시스를 기대하고 있는 5,600여 명의 관중들은 그들의 무대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곡과 곡사이 마다 마음 급한 관중들은 “오아시스”를 연발했고, 무대는 결과적으로 관중, 밴드 모두에게 유쾌하지 않은 진행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30분이 조금 더 되는 시간 동안 2차 DJ 선곡 플레이가 이루어졌다. 그 이름만 들어도 고색창연한 존 레논(John Lennon), 후(The Who),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등의 올드록 플레이가 이어졌고, 관중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려는 순간 조명이 어두워지며 강렬한 일렉트릭 드럼 비트의 “Fuckin’ in the Bushes”가 흘러나왔다. “전작([(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1995, 이하 [Morning Glory])에 비해 어딘가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던 3집 [Be Here Now](1997) 이후 심기일전하며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로의 탐색에 나섰던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2000)의 성격을 축약해서 들려주는 연주곡(instrumental) “Fuckin’ in the Bushes”는, 앨범 발표 이후 항상 오프닝을 장식(대개의 경우 라이브보다는 MR 플레이로 진행된다)하는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로서, 들썩한 비트감을 제공하며 공연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켰다.

연주가 진행되는 사이 밴드 멤버들이 무대 위에 등장하자 장내는 그야말로 열광적인 환호성을 연발했고 (무대 정중앙에는 유니온-잭과 태극기를 이어붙이 깃발이 나부끼기도 했다), 밴드는 최신작 [Don’t Believe the Truth](2005)의 첫 곡 “Turn Up the Sky”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선곡이었지만 이미 기다림에 지친 관중들은 개의치 않았고, 이어진 행진가풍의 싱글히트곡 “Lyla”의 연주 시에는 “hey, Lyla”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대단한 호응을 보여주었다.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팔린 데뷔앨범’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쥠과 동시에 ‘브릿팝(BritPop)의 미국진출’이라는 사명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던 [Definitely Maybe](1994)의 “Bring It On Down”에 이어 싱글로 발매되지 않았지만 라디오 에어플레이만으로 차트에 진입하며 [Morning Glory]의 대대적인 성공을 예고했던 “Morning Glory”에 이르자 관중의 흥분은 더욱 거세졌다.

이어지는 리엄 갤러거(Liam Gallagher, 보컬)의 짧은 멘트, “next song’s our signal song”, T-Rex의 걸작앨범 [Electric Warrior](1971)의 “Bang a Gong (Get It On)”으로부터 리프를 무단 도용한, 그리고 표절시비가 제기되자 “우리의 노래를 듣고 T-Rex의 앨범을 처음으로 들었다는 10대 팬들의 얘기가 종종 들린다. 그렇다면 그것은 좋은 일 아니겠는가. 태양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뻔뻔하게 주장했던, 그리고 이후 록 씬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버린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과 유사한 음악을 만들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기폭제가 되었던 “Cigarettes & Alcohol”에 이르자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공연장의 분위기는 한 절정을 맞이하게 된다.

잠시간 공연이 중단되고 좌측에서 묵묵히 기타를 연주하던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기타)가 무대 우측 마이크로 자리를 옮기자, 관중들의 함성도 더욱 거세졌다. ‘눈썹 형제’ 중 의외로 동생 리엄 갤러거보다 더 많은 국내 팬을 보유한 듯한 형 노엘 갤러거가 신보의 히트곡 “The Importance of Being Idle”을 부를 무렵 관중석은 “Noel, Noel”을 연발하기 시작했고, 이는 밴드 스스로 ‘오아시스 최고의 곡’이라 자부하는 “The Master Plan”에 이르기까지 계속됐다. 노엘 갤러거는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들을 향해 “thank you very much”라고 짧게 코멘트. ‘형제간의 불화’를 매스컴 홍보용으로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밴드답게 노엘 갤러거가 보컬을 맡은 곡이 연주되는 동안 리엄 갤러거는 무대 뒤로 퇴장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다시 리엄 갤러거가 무대 위로 올라오고, 이날 연주된 유일한 5집 앨범 [Heathen Chemistry](2002)의 수록곡인 폴 매카트니 풍의 어쿠스틱 소품 “Songbird”와 6집의 “A Bell Will Ring”이 차례로 연주되었다. 갤러거 형제의 무척 드문 듀엣곡 “Acquiesce” 다음순서는 이들 최고의 싱글 중 하나라 할 데뷔앨범의 “Live Forever”. 존 레논에 대한 추모라는 노엘 갤러거의 주장과는 별개로, ‘태양아래 나보다 잘난 사람은 없다’는 밴드의 캐릭터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곡으로 통하는 “Live Forever”는 [Definitely Maybe]의 성공적인 미국진출을 견인한 기념비적 성격이 강한 곡이었고, 그에 걸맞게 관중 역시 뜨거운 호응으로 이 곡을 환영했다.

다시 한 번 신보의 수록곡 “Mucky Fingers”가 연주된 후, 밴드 최대의 차트성적을 안겨주었던 “Wonderwall”에 이르자 관중들은 참으로 보기 힘든 ‘전곡 싱얼롱 타임’을 연출하기도 했다. 언제나처럼 뻣뻣한 열중쉬어 자세로 노래하던 리엄 갤러거도 이날 한국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에는 다소간 마음이 동했는지, 중간중간 이상한 ‘춤사위’를 선보이기도. 그리고 이어진 “Champagne Supernova”. “Wonderwall”과 함께 밴드의 ‘유이한’ 빌보드 모던록차트 1위 곡이자(하지만 싱글로 발매되지는 않았다) [Morning Glory]의 앨범지향적 성격과 절정에 달한 노엘 갤러거의 송라이팅 능력을 유감없이 증명해낸 곡으로서, 7분이 넘는 앨범수록 버전 그대로 무대에서 연주되었음에도 결코 지루하지 않은 훌륭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아쉬운 점이라면 이때부터 리엄 갤러거의 보컬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거의 아무런 멘트도 없이 진행한 탓에, 15곡이 연주되었음에도 시간은 10시가 채 되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 “이 곡이 오늘의 마지막 곡이다”라는 리엄 갤러거의 발언은 충분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아쉬움을 토로하는 관중에게 리엄 갤러거는 ‘입다물라’는 멘트와 제스처를 취하며 역시나 성격 나쁜 인간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데뷔앨범의 첫 곡, ‘너 따위가 믿든 말든 나는 로큰롤 스타’라고 뻔뻔한 자신감을 표로했던 “Rock’n’Roll Star”와 함께 공식적인 이들의 첫 내한공연은 막을 내렸다. 길게 잡아 빼는 곡의 말미, “this is rock’n’roll~”이 음반으로 들을 때와는 달리 묘한 여운을 남기며 밴드는 주섬주섬 악기를 챙겨 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밴드를 환호하는 관객들의 함성과 이어지는 당연한 수순인 앵콜 무대. 신보의 “Guess God Thinks I’m Abel”과 “The Meaning of Soul”이 연주된 후, 리엄 갤러거는 다시 한 번 무대 뒤로 퇴장했고, 노엘 갤러거가 마이크 앞에 나서자 관객들은 이어질 곡이 무엇인지를 눈치 챈 듯 열광하기 시작했다. 노엘 갤러거의 영원한 송라이팅 스승(혹은 차용대상)인 존 레논의 “Imagine”과 동일한 건반 반주에 이어 “제발 네 인생을 로큰롤 밴드에 맡기지 마 / 그들은 그걸 전부 내던져 버릴테니”라는 인상적(혹은 자전적?) 가사의 “Don’t Look Back in Anger”. 관중은 “Wonderwall”에 이어 두 번째 ‘전곡 싱얼롱 타임’을 선보였고, 곡 중간 노엘 갤러거는 아예 마이크 뒤로 물러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Don’t Look Back in Anger”로 이미 충분히 만족했을 관객들에게 후(The Who)의 커버곡 “My Generation”은 어쩌면 사족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충성스런 관중들은 여전히 오아시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공연 내내 들고 있던 탬버린을 관중들을 향해 던져버린 리엄 갤러거를 따라 퇴장한 밴드멤버들과 무대정리를 위해 올라온 스텝들, 그리고 어느새 환해진 조명과 장내에 조용히 울리는 밴드의 최근 싱글 히트곡 “Let Them Be Love”는 이제 더 이상의 앵콜은 없음을 주지하는 듯했다. 시간은 10시 30분에 달했고 관객들은 주섬주섬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비록 3, 4집의 수록곡들이 완전히 배제된 (공연의 오프닝 “Fuckin’ in the Bushes”야 MR에다 이들 공연의 관례이니 제외하기로 하고) 셋리스트를 선보인 점이 아쉽긴 했지만, 오아시스는 첫 내한 공연답게 히트곡과 새 음반의 수록곡이 적절히 안배된 무대를 선사했다(국내에서 가장 히트한 싱글일 “Stand by Me”가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국내에서 오아시스는 1, 2집만 존재하는 가수에 가깝다). 거의 연주로만 이루어진 무대진행은 성의 없어 보일수도 있는 반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진행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거물급 밴드다운 안정적인 연주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은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물론 공연장 시설의 열악함이라던가, 지나치게 울림(howling)이 심한 사운드시스템(혹은 공연장 구조) 등의 불만 역시 존재했다. 무엇보다 성숙하지 못한 일부 관객들의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과격한 액션이야 인기밴드의 공연에서 피할 수 없는 요소라지만, 별 인지도 없는 인디밴드라 하더라도 성심껏 준비한 뷰렛의 오프닝 무대에 야유를 보내는 모습을 보며 과연 저럴 필요까지 있었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문제점에도 이날 공연이 거둔 큰 성과가 있다면, 그간 척박하기 이를데 없다고 생각하던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록밴드 공연이 의외의 시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풀 꺾인 줄 알았던 오아시스의 능력이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 역시 즐거운 경험이었다. 3, 4집의 실패 후 ‘좀 더 라이브 무대에서의 재현성에 치중했다’는 최근의 작업들이 밴드의 말대로 실재 공연에서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 또한 이번 내한공연을 통해 알게 된 바이다.

오아시스라는 밴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대다수의 한국인에게는 이번 공연이 밴드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썩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오아시스 급의 밴드가 단 한 번의 공연으로 손쉽게 설명될만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오아시스의 내한공연은 이미 밴드를 잘 알고 있는 팬들에게 있어, 그간의 내한공연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줄 만한 충분히 만족스러운 무대였다. 이런 모습이 현재 새로운 팬 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밴드의 현 상황을 의미심장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2006년 2월 21일의 공연은 오아시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소수의 이상한 컬트 팬 집단이 아니라는 점만은 훌륭히 증명한 듯하다. 20060223 | 김태서 [email protected]

Set List
※ 앨범 순서는 숫자로 표기, B는 B-Side 수록곡(혹은 컴필레이션 [The Master Plan], 1998)
1. Fuckin’ in the Bushes (4)
2. Turn Up the Sun (6)
3. Lyla (6)
4. Bring It On Down (1)
5. Morning Glory (2)
6. Cigarettes & Alcohol (1)
7. The Importance of Being Idle (6)
8. The Master Plan (B)
9. Songbird (5)
10. A Bell Will Ring (6)
11. Acquiesce (B)
12. Live Forever (1)
13. Mucky Fingers (6)
14. Wonderwall (2)
15. Champagne Supernova (2)
16. Rock’n’Roll Star (1)
17. Guess God Thinks I’m Abel (6)
18. The Meaning of Soul (6)
19. Don’t Look Back in Anger (2)
20. My Generation (The Who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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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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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asisi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