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27일 금요일, 비둘기우유의 단독공연.

“….그런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럴 만한 조건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죠.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고 서로 뜻이 맞아야 하니까…”
– 조동진, [weiv]와의 인터뷰 중 그룹 음악을 계속 할 생각이 없었냐는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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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7일 금요일, 홍대의 레이디피쉬 팝홀(LADYFISH POPHALL)에서는 비둘기우유의 단독공연이 있었다.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인 이종석은 몇 년 전 시부야케이 스타일에 기타노이즈를 접목해 국내 인디씬에서 호응을 얻었던 라비앙로즈(La vie en rose) 출신 기타리스트이다. 라비앙로즈 안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이 든 이종석은 라비앙로즈의 첫 앨범이 발표된 직후 밴드를 탈퇴했고 2003년 8월에 슈게이징 밴드 비둘기우유를 만든다. 이날 공연에서 비둘기우유는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을 커버했다.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타 노이즈를 잔뜩 먹여서.

공연시간은 오후 9시였다. 홍대거리엔 설날연휴 덕인지 사람들로 더 가득 차 있었고 세븐 일레븐 근처 삼거리는 방향마다 분위기가 달랐다. 술집들이 즐비한 방향의 클럽 FF 앞엔 젊은이들로 시끌벅적했으나 레이디피쉬로 가는 주택가 방향은 매우 한적한 분위기였다. 얼마 걷지도 않아 도착한 레이디피쉬 입구 앞에는 사람들이 거의 안보여서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자 관객들이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로 비둘기우유의 공연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 보였고 외국인과 그들의 공연을 처음 보러온 사람들도 보였다. (그들이 처음 왔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었냐면 그들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공연은 9시 10분쯤 시작했다. 비둘기우유의 멤버들이 무대에 오르자 관객의 시선이 (그들의 대부분이 남성인 관계로) 미모의 두 여성 멤버들에게 고정되었다. 색상만 봐서는 그날 공연의 메인으로 착각할 재킷을 걸친 사회자가 나와 그들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보컬인 함지혜는 질문에 조용히 대답했다. 어색했지만 호의적인 짧은 소개가 끝난 후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첫 곡인 “너의 눈으로 나를 본다”는 슬로 코어(slow core)스타일의 도입부를 가진 곡이었다. 이곡은 도입부를 지나자 갑자기 매우 폭발적인 기타 사운드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곧 폭발음은 끊길 듯 계속 이어지는 선율을 가진 노이즈 사운드로 다시 변했다. 곡의 멜로디보다는 기타사운드가 가진 음감에서 정서가 전달이 되었다. 그런 느낌은 두 번째 곡인 “siren”에서 더욱 짙게 느껴졌는데 이들이 전달하는 캐취한 정서는 슬로다이브(Slowdive)가 생각나기도 했고 그들보다는 동적이었다.

막연하고 아름다운 꿈에서 관중들을 깨운 것은 이펙터로 왜곡된 엄청난 크기의 소음이었다. 기타리스트 이종석은 몸을 숙여서 연신 이펙터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는 그러한 극단적인 소음을 연출하는 것에 익숙해 보였는데 그러한 음감은 실로 압도적이어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이러한 특이한 노이즈는 주로 곡의 끝부분에 위치해 있었다.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폭력에 관중들 중 몇몇은 귀를 막아버리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서 몇 곡을 제외하곤 각각의 곡들이 끝이 날 때마다 사회자가 나와 인터뷰를 했는데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했다. 호의적인 관객 중의 한명이 “수요예술무대?”하고 외쳐 폭소를 유발했다. 사회자는 그들의 연주가 신기한 듯 세세한 것을 질문하기도 했다.

이어 밴드는 연주곡인 “Murmur’s Room”을 연주했다. 초기의 익스플로젼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가 퍼즈 톤을 더 사용했다면 이러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곡은 서정적으로 시작했고 중반부에서 선명한 베이스라인과 행진곡풍의 드럼이 이어지면서 곡의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비둘기 우유의 멤버들이 드럼 쪽을 보다가 그쪽으로 다가가 연주했다(그것은 이날 공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둘기우유 멤버들이 한 모션이었다).

“I Might Be You”에 이어서 연주한 “Even Freedom”은 비둘기우유가 이날 공연한 곡 중에서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곡이었다. 라이드(Ride)식의 드림팝과 쟁글기타팝 사이에 위치한 사운드로 보컬의 음색이 우울하지만 비관적이지 않게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커버곡인 “행복한 사람”을 연주하기 전에 보컬 함지혜는 이 곡에 대해 ‘망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이 곡은 그들이 가진 음악적 색깔을 전부 섞어놓은 듯 했다. 1990년대 슈게이징, 퍼즈톤의 기타팝과 모과이 같은 익스페러멘틀 락의 영향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후반부에 함지혜의 보컬이 등장하자 혼란과 질서사이에서 출발한 이 곡이 절정에 이른다. 아마 원곡자인 조동진이 이곡을 듣는다면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독특한데? 근데 누구 노래야?”

노이즈가 가득한, 팝적인 센스가 돋보이는 “Elephant”를 마지막으로 이날 공연은 끝이 났다. (기타리스트 이종석은 공연이 계속 될수록 시선이 돌아가더니 이 곡을 연주할 때쯤엔 뒤의 벽을 보고 있었고 연주를 혼자 하기 시작해 보컬 함지혜가 다시 시작하자고 그에게 일러줘야 했다). 비둘기우유의 이날 공연의 사운드질감은 1990년대 슈게이징 밴드들이 만들어 냈던 것에 가깝게 들렸고 근래의 인디팝을 듣는 청자들의 취향을 반영하는 사운드가 섞여 있었다. 또한 근래의 포스트 록 성향의 밴드들보다는 구조면에서 단순했고 이펙터가 만들어내는 소음에 더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거나 추함, 명료하거나 모호함 사이에서 설레는 감성을 잘 짚어내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들의 음악이 귀를 끄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무대에서 내려온 비둘기우유의 멤버들이 몇몇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악기들을 챙겨 공연장 바깥으로 나가자 비둘기우유의 그루피로 생각되는 관객들도 따라 나가기 시작했다. 시계는 어느덧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20060203 | 프시초 [email protected]

관련 사이트
비둘기우유 공식 사이트
http://cafe.daum.net/pigeonmi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