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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t – Du & Jag Doden – SonyBMG, 2005

 

 

세계 시장에서 지역 밴드로 생존하기

록음악에 대한 편견 중 하나는 록음악이 영어로 불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게 편견이라고 말하긴 정확히 어렵지만, 일단 ‘영어가 아닌 록음악은 상상하기도 쉽지 않고 막상 접해도 낯설다’는 의미로 편견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하자.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록음악의 시초가 영국과 미국, 즉 영어권의 종주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크다. 록음악이 가장 보편적인 대중음악 스타일이며 그것이 현지의 민속 음악과 결합한 사례들은 록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은 자발적이고 자연적인 수용 과정을 통한 지역에서의 보편성이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반강제적으로 이식되었다고 보는 편이 정설이다. 2차 대전 이후, 혹은 한국 전쟁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 주둔한 미군(및 연합군)에 의해서 이식된 록음악은 다소 기형적으로 변화, 발전해왔다. 어쨌든, 이 글은 그에 대한 얘기가 아니니 이쯤에서 접고, 다시 ‘비영어권 록음악’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비영어권 록음악은 말 그대로 영어가 아닌 언어로 불리는 록음악이다. 프랑스나 러시아와 같은 유럽 국가들과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소위’ 제3세계에서의 록음악은 특유의 민속 리듬과 결합한 록음악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며 파생, 분열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 나라의 대중음악은 록 음악이면서도 록 음악이 아닌 것, 혹은 록 음악 이상의 어떤 것이 되었다. 이른바 록 음악을 확장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서정적인 기타 멜로디와 록킹한 백비트가 강조되는 스타일, 이른바 모던한 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그리고 대중음악 시장을 영국과 미국이 점령하면서 이른바 비영어권 록음악들은 사운드는 보편화되고 영어로 된 노래들이 많아졌다. 고유한 언어나 문화적 배경이 아니라 가수나 밴드들의 출생지에 따라 음악을 분류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록 음악은 평준화되어 왔고, 현재진행중이다. 글로벌화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스웨덴 록 밴드 켄트(Kent) 역시 그러하다. 1990년 결성된 이 밴드는 1995년 셀프 타이틀 앨범 [Kent]로 메이저 데뷔를 한 순간부터 스웨덴에서 순조롭게 인기몰이를 한 밴드이기도 하다. 데뷔 앨범이 스웨덴 그래미상을 수상하고 1996년 2집 [Verkligen]부터 스웨덴의 국민밴드가 되었다. 1990년대 후반 즈음부터 한국에 알려지게 된 계기인 1997년 앨범 [Isola]는 영어와 스웨덴어 두 버전으로 제작된 앨범이면서 동시에 미국과 영국 시장에 이들의 존재를 알린 앨범이기도 하다.

연약하지만 스웨덴어 특유의 강한 악센트가 인상적인 발음의 보컬 요아킴 베르그(Joakim Berg), 멜로디컬하면서도 훅이 넘치는 연주를 들려주는 기타의 새미 서비오(Sami Sirvio)와 마틴 루스(Martin Roos: 1995년 말에 해리 맨티(Harry Manti)로 교체), 그리고 베이스의 마틴 스콜드(Martin Skold)와 드럼의 마르쿠스 머스토넨(Markus Mustonen)으로 구성된 켄트는 자국어로 부른 록음악으로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몇 안되는 밴드이기도 하다. [Isola] 이후 2000년에 발표한 [Hagnesta Hill]은 미국 시장에서 평론가들의 찬사와 함께 대중적인 성공을 얻었고, [Vapen&Ammunition]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음악은 흔히 당시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하며 온 세계 록 밴드들에게 영향을 줬던 라디오헤드(Radiohead)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고, 스웨이드(Suede)나 오아시스(Oasis)와도 비교되었다. 최근에는 (순서도 무시한 채) 콜드플레이(Coldplay)와 비교되기도 하는 넌센스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켄트의 음악을 보다 대중적으로 소비될 수 있게 한 힘이었다. 이들이 당대 최고의 밴드들과 비교되었던 것은 켄트의 사운드가 보편적이라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켄트의 음악이 이렇게 대중적일 수 있던 것은, 다시 말하자면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던 것은 멜로디가 강조되는 사운드와 함께 역설적으로, 스웨덴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영어권 시장에 등장했을 때에는 영어로 부른 앨범이 판매되었지만, 그 후에는 자국어로 부른 앨범을 발표했다. 이들의 음악은 곳곳에 훅이 절묘하게 사용되어 쉽게 따라 흥얼거릴 수 있는 동시에 스웨덴어 가사는 신비함을 더하기도 한다. 아이슬란드어(및 ‘희망어’)로 노래한 시규어 로스(Sigur Ros)와도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 중 켄트의 2005년 신작 [Du & Jag Doden]은 발매되자마자 스웨덴 음반 판매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앨범이다. ‘너 그리고 나, 죽음’이라는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수록곡들의 내용은 모두 우울하고 어둡다. 관계, 고독, 죽음(자살), 상실, 버림받는 것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이 앨범의 사운드는 그러나, 서정적이면서도 록킹하다. 무겁게 바닥을 치며 둥둥 울려대는 베이스 리듬과 드럼, 그 위로 미끄러지듯 아름답게 흐르는 기타 멜로디와 보컬의 맑은 음성을 듣다보면, 켄트의 최고작이었던 [Isola]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만큼 더 대중적이면서도 세밀해졌다는 얘기다. 밴드 스스로도 ‘음악적 한계를 뛰어 넘었다’고 말한 사실이 허영이나 과시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혼외 임신’ 혹은 ‘에이즈’가 떠오르는 첫 곡 “400 Slag”으로부터, 첫 곡과 비슷한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면서도 독특한 훅이 박혀있는 “Du Ar Anga”, 몽환적인 사운드에 성장과 고통을 담은 “Du Var Min Arme”, 그리고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쉽게 잊혀지지 않는 “Klaparen”, 싱글로 발표되었던 “Max 500”과 “Palace & Main”의 적당한 빠르기의 어둡지만 흥겨운 멜로디, 6분이 넘는 분량에도 흐트러짐 없는 일관성과 호소력이 돋보이는 “Mannen I Den Vita Hatten (16 Ar Senare)”까지, 켄트의 새 앨범은 흠잡을 데 없이 매끈하며 또한 아름답다.

사실, 켄트는 아바(Abba)나 카디건스(Cardigans)와 같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웨덴 출신 음악가들이 영어로 노래한 것과는 달리 자국어로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는 데 성공한 경우이고 그건 좀 특별한 경우다. 그 성공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들의 음악이 당대의 유행에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곳곳에 특유의 멜로디 라인을 적절하게 부각시킨 점이 우선이겠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언어가 스웨덴어라는 한계를 역으로 이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보편적인 멜로디에 비영어권 언어로 노래하는 것은 희소성과 신비함을 부각시키는 전략이다. 물론 이 밴드에게는 지리적으로 영국과 가깝다는 장점이 있었고, 스웨덴의 대중음악 시장이 이미 세계 시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겠지만, 이것만으로 켄트의 성공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자국어로 된 록 음악으로 성공하기, 한국 밴드들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051101 | 차우진 [email protected]

8/10

* 컬쳐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 실린 글을 수정했습니다.

수록곡
1. 400 Slag
2. Du Ar Anga
3. Den Doda Vinkeln
4. Du Var Min Arme
5. Palace & Main
6. Jarnspoken
7. Klaparen
8. Max 500
9. Romeo Atervander Ensam
10. Rosor & Palmblad
11. Mannen I Den Vita Hatten (16 Ar Senare)

관련 사이트
Kent 공식 사이트(스웨덴어)
http://www.kent.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