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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소년 – Peace – 문라이즈/서울음반, 2005

 

 

소년들의 품속으로

이 땅의 대중음악 기류에 있어 ‘소년적 (혹은 소녀적) 감수성’이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물론 미국이든 일본이든 그처럼 모던한 감각의 센티멘털리즘을 주요 컨셉으로 내걸고 노래하는 가수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같은 문화적 토양 위에서 비슷한 세대를 거치며 내가 느끼게 되는 이 곳에서의 감흥은 왠지 이웃나라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보니 한국의 예민한 청춘들이 애호할 만한 대중음악의 카테고리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이십년 전으로까지 돌아가 어떤날이나 동물원을 떠올리기보다는, 십년 전 언니네 이발관과 델리 스파이스를 필두로 등장하기 시작한 몇몇 ‘감성 충만’ 밴드들을 회상해보는 게 더 나을 듯싶다. 왜냐하면 이 밴드들의 주요 특징이야말로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집약되기 때문이다. 하나는 20세기 후반 영미권 팝/록의 멜랑콜리하고 말랑말랑한 작법의 부분적 수용, 또 하나는 1990년대 한국 문예사의 한 축이었던 (포스트)모더니즘적 가치관의 반영이 그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21세기 현재 대한민국 언더그라운드 팝음악의 지형 위에 여전히 부동의 대세로 자리하고 있다. 마이 앤트 메리, 루시드 폴, 불독 맨션, 그리고 넬 등등의 서정성 흘러넘치는 밴드들은 인디 음반들 중에서도 단연 판매 일순위를 달린다. 그리고 그러한 폭풍 안에 고요한 태풍의 눈 문라이즈(Moonrise) 레이블이 있다. 델리 스파이스의 김민규가 5년 전 설립한 문라이즈에는, 현재 김민규 자신의 개인 프로젝트 스위트피(Sweetpea)를 비롯해 토마스 쿡(Thomas Cook), 전자양(Dencihinji), 재주소년, 하키(Hockee) 등의 뮤지션들이 소속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다들 각자의 스타일 안에서 ‘한 감성’ 하는 팀들이 아닌가. 그리고 이 중에서도 국내 발라드의 맥을 한켠에서 꾸준히 이어온 포크음악을 전면에 내세운 그룹이 있으니 그게 바로 남성 듀오 재주소년이다. 데뷔작 [재주소년(才洲小年)](2003)에 이어 올 해 발표한 두 번째 앨범 [Peace]는 한결 매끄러워진 사운드로 이 땅의 소년소녀들을 다시 찾았다.

사실, 조금은 지겨워질 법도 하다. 싸한 엠비언트 기운 속에 녹여낸 맑은 스트링 소리, 사근사근 입 안에서 머무는 듯한 읊조림 창법, 별다른 기교 없이 아르페지오와 스트로크 주법의 적당한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청량한 기타 간주, 그리고 다소간 키치스러움과 쿨함의 미장센에 천착하는 이미저리(imagery)의 심상화 따위는 이제 ‘센치할 만큼 센치해 본 어른이’들에겐 별다른 감흥을 안겨주지 못할 수도 있다. 허나 이건 어쩌면 나만의 괜스런 착각일 뿐, 여전히 우리네 소년소녀 음악애호가들의 감수성은 최소 10년 계보의 깊은 내향주의와 이미지즘을 적극 수용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냉정하게 보건대, 아무래도 진실은 후자 쪽에 가까운 듯 하다.

어찌됐든 재주소년의 첫 번째 앨범은 순조롭게 출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일반 가요와는 또 다른 무언가를 원하던 청자들에게 “눈 오던 날”, “귤”, “비오는 아침” 등의 싱글들은 꾸준한 인기를 얻었고, 방송사의 공개방송과 클럽 공연 등을 통해 팬들을 확보해갔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 예의 그 예쁘장한 커버의 음반을 들고 ‘수줍게’ 그들이 찾아왔다. 우선 데뷔작과의 비교를 통해서는 ‘홀가분한 기운’이 두드러진다. 전반적으로 1집에서 약간의 닭살 돋는 정갈함이 강박적으로 느껴지곤 했다면, 이번 앨범은 일단 분위기 자체가 보다 자유로워졌으며 멜로디 상의 두터운 정적도 한 꺼풀 떨어져나갔다. 1집의 새콤 넘버 “귤”과 적절한 대위를 이루는 발랄 넘버 “이분단 셋째줄”은 듣기에도 따라 부르기에도 훨씬 부담이 없어졌다. 첫 ‘미는 곡’으로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풋풋한 가사와 깔쌈한 구성은 단 한 번만 들어도 누구나 타이틀곡 삼고 싶어 할만하다.

이전 앨범과 비교했을 때 단연 돋보이는 점은 바로 2번 곡 “PEACE!”에서부터 중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트랙들의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전작의 트랙들이 진행되어가는 모습이 조금 숨 막힐 듯한 구성을 띠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그에 비해 훨 경쾌한 면모를 보여준다. 3번 트랙 “이분단 셋째줄”에 이은 4번 “새로운 세계”의 미드템포와 안정된 코드는 딱 그만큼의 미덕(대중에의 호소력)을 가감 없이 발휘하며 듣는 이의 고막을 달콤하게 자극하고, 다음 곡 “방갈로”는 다시 한번 “이분단 셋째줄”의 경쾌한 감각을 받아넘긴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섯 번째 곡 “그래서 그런지 현실이 낯설었어”부터 10번 트랙 “마음의 지도”까지는 1집에서 들려준 ‘재주소년표’ 포크의 감성을 고즈넉한 편곡 룰에 고이 짜맞추어 본연의 색깔을 진하게 확인한다. 그나마 ‘본연’의 자세로부터 현악과 타악 상의 외면을 잠시 시도한 “루시아나”를 제외하면 이후의 곡들 역시 이러한 전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2집이 나온 현 시점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재주소년의 음악을 바라보자면, 사실 스위트피나 토마스 쿡, 루시드 폴 등의 결과물들보다 그 멜로디나 가사가 썩 귀에 잘 감기는 편은 아니다. 앞의 뮤지션들이 정초한 센치 무드는, 실은 그런 심심함의 여백을 매혹적으로 채워줄 수 있는 저마다의 개성있는 작곡, 작사 능력이 따라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예컨대 저들의 기타 연주는 엄연히 제 영역을 차지한 채 활발히 살아 움직였으며 보컬의 애잔함에는 통속가요의 정형성을 뛰어넘는 나름의 파격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허나 재주소년의 멜로디 라인과 노랫말들이 그 수준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 이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비록 그러한 한계가 한편으론 이들과 대중들의 간극을 좁혀줄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보면, 재주소년이야말로 ‘언더 가요’로서의 지향점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채 전선(?)에 내보내진 대중친화적 밴드라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문라이즈 레이블의 앨범들 중 대중으로부터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팀이 바로 재주소년 아니었던가. 어쩌면 우리는 한국 주류가요씬의 상업성 강한 프로듀서들에게 가장 좋은 주력 대상으로 지목된 십대들의 ‘정체된 취향’과 유사한 것을, 국내 언더그라운드의 수요 매커니즘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짐작컨대, ‘예쁜 감상주의적 취향’ 역시 그만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거대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혹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 대중음악계에 있어선 오버나 언더나 결국엔 똑같이 편중된 취향을 공유하고 있는 소년소녀들이 가수들의 주된 밥줄을 쥐고 있다는 얘기? 에이, 이렇게 나가다보니 자꾸만 내용이 비약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이쯤에서 멈추자. 하기야 깊은 고민 없이 쉽게 떠벌릴 사안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정리한다. 재주소년의 이번 앨범에 대한 최종 결론은? 1집보다 조금 나아졌다. 그러니 적어도 그들의 골수팬들에게만큼은 강추다. 20051023 | 김영진 [email protected]

5/10

수록곡
1. LOVE &
2. PEACE!
3. 이분단 셋째줄
4. 새로운 세계
5. 방갈로
6. 그래서 그런지 현실이 낯설었어
7. 잠시 스쳐갈 뿐
8. 봄비가 내리는 제주시청 어느 모퉁이의 자취방에서…
9. TAKE 1
10. 마음의 지도
11. 루시아나
12. 여름밤
13. 이분단 셋째줄 (REPRISE)
14. 노란수첩
15. 겨울의 첫날

관련 사이트
재주소년 공식 사이트
http://www.jaejooboys.com
문라이즈 공식 사이트
http://moonris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