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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리온 “무투(武鬪)”
: 힙합의 극렬 안티가 아닌 이상 이 곡의 비트와 엠씨잉을 거부할 수는 없다. 가리온의 새 싱글 “무투(武鬪)”는 곧 발매될 그들의 두 번째 음반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린다. 소리의 핵심은 도망가는 오리처럼 뒤뚱거리는 리듬과 가볍게 떠도는 플루트, 그리고 잽을 날리듯 끼어드는 심벌을 뒤섞은 프라이머리(Primary)의 비트다(곡 제목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이 싱코페이션 심벌 비트를 듣다 보면 [록키(Rocky)]가 생각난다). 메타와 나찰의 엠씨잉 또한 절묘하다. ‘힙팝 멜로디’ 같은 건 없다. 라임과 플로만으로 한껏 흥청거린다. 가리온의 데뷔 음반은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그들의 두 번째 음반이 이 싱글의 탁월함을 배반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다른 결과가 나와야 한다. ‘무장된 라임과 불타는 비트’의 건투를 빈다.

2. 자우림 “Penny Royal Tea”
: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농락하는 것 중 하나는, 느리고, 무겁고, 거친 음악이 빠르고, 가볍고, 매끈한 음악보다 더 멋지고 심각하게 들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음악이다. 드라큘라 백작의 관뚜껑을 열 때 흘러나올 법한 삐걱거리는 소리, 박쥐로 변신할 수 있는 귀뚜라미들이 지저귀는 것 같은 효과음이야말로 모래그림처럼 퍼석거리는 이 곡의 중심이다. 마지못해 연주한 것 같은 기타 프레이즈 몇 소절과 웅얼거리는 보컬은 액자 뒤에 뚫은 벽걸이 구멍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다. 눈두덩을 검게 칠한 고딕 패션 소녀처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이 곡의 품 속에 모두가 기다리던 악마의 눈 같은 건 없다. 코스프레 대회 참가자가 그런 걸 갖고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3. 클래지콰이(Clazziquai) “Fill This Night”
: 내가 자미로콰이(Jamiroquai)의 “Little L”을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언급한다면 ‘포스트모던적 창조성’의 기준으로 이 곡을 칭찬해야 할까 대책 없는 짜깁기에 한숨쉬어야 할까(그런데 도대체 언제적 포스트모던인가?). 클래지콰이의 신보를 듣다 보면 어떤 록 밴드에 대해 한 잡지에서 내렸던 평가(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가 떠오른다. 내수용으로는 넘치고 수출용으로는 모자란 음반. 그러나 넘칠 일이 없는 내수시장의 상황을 감안해보면 그저 수출용으로 모자란 것뿐인지도 모르겠다. 돌아서면 잊어버릴 훅과 무난한 시퀀싱과 평범하게 퉁기는 파티 그루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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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lbow “Station Approach”
: “Be everything to me tonight”이라는 코러스가 이렇게 간절하게 들리기도 어렵다. 뭔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던 엘보우(Elbow)의 두 번째 음반에서 가졌던 실망감은 그들의 세 번째 음반 [Leaders Of The Free World]의 첫 곡에서 가을 바람을 따라 저 멀리 날아간다. 부드럽게 진동하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살갑게 일렁이는 키보드의 글리산도로 시작하는 이 곡은 차츰 몸부림을 치며 두텁고 거친 사운드를 쌓다가 막판에는 기타 노이즈의 쓰나미로 대미를 장식한다(이러한 느낌은 천정이 높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듯 휑하게 울리는 공간감의 덕이 커 보인다). 브릿팝 버전의 펄 잼(Pearl Jam)? 올 가을의 가장 스산하고 아름다운 발라드 중 하나다.

5. Bloc Party “Two More Years”
: [Silent Alarm]은 훌륭한 음반이었다. 그러나 많은 밴드들이 훌륭한 데뷔작’만’을 내놓았다. 그래서 ‘새로운 희망’ 같은 말을 블록 파티(Bloc Party)에게 성급히 들이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새 싱글 “Two More Years”를 듣다 보면 그런 말을 들이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주 잘하는 밴드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훅을 뽑아낼 수 있는 밴드라는 건 몰랐던 것이다. 이 곡의 멜로디는 ‘인디 팝’스럽다기보다는 메인스트림 팝/록의 세련된 음률에 더 가깝다. ‘음악성과 대중성이 적절히 조화되었다’는 평을 술집 팝콘처럼 쉴새없이 우물거리는 이들의 입을 근지럽게 할 만 하다. 음악성과 대중성이라는 이분법을 따르는 것은 과도로 소뿔을 자르는 것처럼 웃기는 일이지만 이 이분법을 솔기 없이 봉합하는 것은 감동적이다. 뻔한 걸 뻔하지 않게 들려주는 솜씨는 때로 뻔하지 않은 것을 뻔하지 않게 들려주는 것보다 더 멋지다. 이 곡이 바로 그렇다.

6. t.A.T.u. “All About Us”
: 러시안 팝 듀오 타투의 음악은 ‘뽕끼는 어느 곳에서도 통한다’는, 동서고금 남녀노소 장유유서(…는 아닌가. 어쨌든)의 진리를 확실히 깨우쳐 준 바 있다. 거기에 일본 동인지 스타일의 여고생 레즈비언 이미지가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니 화제가 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화려하고 단순하고 비장미 넘치는 사운드와 멜로디는 어딘지 모르게 패배가 예정된 만화 속 영웅들의 주제가처럼 들렸다. 팝의 통속적 비장함이 극도로 드러났던 것이다(하얗게 불타올라 재가 되리라). 그들의 두 번째 음반은 처음 재미를 보았던 바로 그 요소들을 다시 써먹으려 한다. 그래서 순식간에 귀를 사로잡긴 하지만 잔향은 덜 남는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들이 이제 교복을 입을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 그 중 하나가 아닐까. (비디오에서 암시되는) 양성애적 팜므 파탈은 여고생 레즈비언에 비해 시장에서 덜 먹히는 아이템인 것이다. 20051027 | 최민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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