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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eche Mode – Playing The Angel – Mute/EMI, 2005

 

 

타락천사

25년 동안 굵직한 경력을 이어 온 신서 팝 밴드의 열한 번째 음반에 대해 글을 쓸 때는, 그 신서 팝 밴드의 계승자처럼 보였던 이들이 속절없이 사라지고 그 밴드만 남는 모습을 지켜봐 왔을 때는, 그럼에도 그 밴드가 여전히 성공적인 음반을 내놓는 광경을 목격할 때는, 서랍 속에 넣어 둔 존경을 꺼내 창 밖으로 아낌없이 흩뿌려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혹은 나 혼자)의 예상을 뒤집은 디페시 모드(Depeche Mode)의 신보 [Playing The Angel]은 간단히 말해 ‘나이 값 못하는’ 음반이다. 존경받을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이미 자기 세계를 이룬 뮤지션의 신보에 대해 말할 때는 그(들)의 전작과 비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Playing The Angel]이 [Violator](1990)와 [Ultra](1997)를 [Songs Of Faith And Devotion](1993)처럼 변형한 뒤 [Exciter](2001)의 베일로 덮은 음반이라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보자. 공습경보처럼 울리면서 청자를 음반 속으로 밀어 넣는 “A Pain That I’m Used To”의 도입부와 중간중간 폭격처럼 귀를 덮치는 일렉트로닉 노이즈는 “Barrel Of A Gun”처럼 연출한 “I Feel You” 같다. 들썩이는 비트와 요한계시록을 공격하는 가사가 뒤엉킨 디페시 모드 특유의 이중나선을 거침없이 풀어헤치는 “John The Revelator”는 음반 최고의 곡 중 하나로서 업그레이드된 “Personal Jesus Pt.2″처럼 들린다.

“Precious”를 기점으로 차츰 가라앉는 음반의 후반부는 [Exciter]의 정적인 세계를 칼칼한 질감으로 정교하게 배치한 소리와 더불어 능숙한 손길로 매만진다(음반을 특징짓는 이 성기고 생생한 소리는 공동 프로듀서인 벤 힐러(Ben Hillier)의 공이 커 보인다). “Nothing’s Impossible”이나 “Damaged People”, 비할 데 없이 어두운 “The Darkest Star”는 일견 평범한 발라드(‘에스닉(ethnic)’한 기운을 풍기는 “Nothing’s Impossible”은 좀 뻔하다)에서도 정중동의 낙법을 구사하는 디페시 모드의 솜씨를 만끽할 수 있다.

동시에, 그들은 좀 더 오래 전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기도 한다. “Something To Do”와 “A Question Of Time”을 인상적으로 만들었던 강박적인 디페시 표 베이스 라인이 “Suffer Well”(이 곡은 음반에서 게이언(David Gahan)이 작곡한 세 곡 중 가장 좋다)에서 다시 한 번 화려하게 등장한다. 인더스트리얼의 어법과 아날로그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훌륭하게 뒤섞이며 황량하고 헐벗은 분위기를 빚어내는 “The Sinner In Me”는 리믹스 DJ들을 유혹하는 쇳소리 짱짱한 비트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돈다(곡 자체는 다소 지루하게 들림에도).

상상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음반이지만, 아쉽게도 [Playing The Angel]을 [Violator] 이래 최고의 음반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전히 그 영예는 [Songs Of Faith And Devotion]이나 [Ultra] 중 하나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 음반들을 오랫동안 기억하도록 한 살을 에는 듯한 긴장감이 [Playing The Angel]에는 약간 부족하다. 마틴 고어(Martin L. Gore)의 가사는 늘 그렇듯 섬세하지만 그는 [Exciter] 때부터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종교적’으로 구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실망스러웠던 첫 싱글 “Precious”가 애써 ‘라디오 친화적’이 되려 하는 바람에 재미없는 곡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Playing The Angel]이 어떤 외지의 표현대로 ’25년 된 밴드가 만들 법한 종류의 음반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 음반에는 가라앉은 열정과 휘황한 어둠이 공존한다. 바로 그것이 디페시 모드다. 사람들은 [Playing The Angel]을 들으면서 손등에 바른 알콜만큼이나 싸늘한 쾌락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20051020 | 최민우 [email protected]

8/10

*이 글은 벅스뮤직(http://music.bugs.co.kr/webzine)에 실린 글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수록곡
1. A Pain That I’m Used To
2. John The Revelator
3. Suffer Well
4. The Sinner In Me
5. Precious
6. Macro
7. I Want It All
8. Nothing’s Impossible
9. Introspectre
10. Damaged People
11. Lilian
12. The Darkest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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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Depeche Mode 공식 사이트
http://www.depechemo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