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전후의 젊은 음악팬들에게는 생소할 구닥다리 얘기를 꺼내고자 한다. 이런 사소한 기억들이 무슨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테고, ‘불편하고 열악했지만 추억으로 남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음악 듣기 편해진 지금의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 이 글은 그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잊혀져가는 그 시절 음악 매니아들의 다소 절박했던 기억들을 기록해두고 싶은 작은 욕망에서 작성된 것일 뿐이다.

그 연약한 플라스틱 박스들

요즘 카세트 테이프(cassette tape)를 쓰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CD가 보편화되기 전, 아니 그 후로도 상당 기간 동안, 아니 지금도 카세트 테이프는 판매되고 있다. 카세트 테이프는 음을 기록하는 얇은 자성체(magnetic body)의 테이프를 릴로 감아 플라스틱 박스에 고정시키는 클로즈드 릴(closed reel) 형태의 저장매체이다(방송국에서 쓰는 큰 테이프는 주로 오픈 릴 형태이다). 카세트 테이프는 도청에만 활용된 것이 아니다. 카세트 테이프는 크기는 작지만 몇십곡의 음악을 비교적 깨끗한 음질로 담을 수 있는 효율적이고 유용한 ‘소리의 전령(sonic messenger)’이었다. 테이프가 없었다면 데모 테이프를 만드는 것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하는 밴드들의 상당수는 탄생도 하지 못했을 것이며, 음악팬들이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의 절반 가량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길거리 테이프로 유통되었던 1970~80년대 포크/그룹사운드 음악들의 금지곡 모음집은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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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에서 1982년에 발매한 카세트 테이프 [John Lennon Collection]

카세트 테이프는 국내 가요나 해외 앨범의 라이선스 발매용으로 널리 쓰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휴대 및 재생의 편의성 덕분에 돈 없는 학생들에게 카세트 테이프는 LP 디스크의 값싼 대체재였다. 특히, CD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그리 흔하지 않았던 편집앨범은 주로 카세트 테이프 형태로 발매되었다(저작권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에 국내 음반사들이 LP 디스크로 찍어낸 편집음반들도 있었으나 정식 음반은 흔하지 않았다). 예전에 고백한 바와 같이 필자가 비틀즈(The Beatles)를 처음 접한 것은 집안 식구 누군가가 사다 던져둔 정체불명의 초기 히트곡 모음집을 통해서였다. 구린 커버 디자인과 조악한 음질이었지만 그 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누군가는 수많은 버전이 있는 아바(Abba)의 [Greatest Hits] 중 하나를, “Bohemian Rhapsody”가 뭉턱 잘려나간 퀸(Queen)의 [A Night at the Opera]를, 충격의 도가니였던 너바나(Nirvana)의 [Nevermind]를 테이프가 늘어지고 케이스가 박살날 때까지 들었을 것이다.

카세트 테이프, 음악 복제의 대선배

카세트 테이프는 기본적으로 소모품이다. 이 ‘귀엽고 연약한 물건’은 테이프가 물리적으로 늘어지거나 구겨지는 등의 결정적 결함 때문에 음질이 영구적이지 못하고, LP 디스크나 CD에 비해 소장가치나 음반으로서의 ‘뽀대’가 부족해 몇 번 듣다 처박아두는 식의 홀대를 받기도 했다. 또 비싼 돈 주고 산 원판 테이프가 씹히거나 테크 속에서 엉켜서 진땀을 흘리고 결국 테이프가 끊어져 절망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이것들은 애물단지이기도 했던 듯하다. 이런 이유로 카세트 테이프는 공식적인 음원 기록매체로서의 가치는 크지 않았다. 아니, 이런 취약한 소모품에 뮤지션의 공들인 작품인 음원을 기록해 발매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는지도 모른다. 카세트 테이프는 이른바 ‘길보드’라 불리던 길거리 구루마 복제 테이프의 싸구려 이미지로 인식되는 게 보통이다. 또 요즘도 카세트 테이프를 많이 듣는 자동차 안에서 이것들은 케이스도 없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차안 여기저기 처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카세트 테이프는 정말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까?

현재 첨단 디지털 기기는 휴대성(portability)을 넘어 유비쿼터스(ubiquitous)를 지향하는 시대이다. 카세트 테이프 복제의 주 대상이었던 LP 디스크는 이러한 휴대성 측면에서 보자면 빵점에 가까운 매체이다. 때문에 워크맨보다 비싼 CD 플레이어가 없거나 카세트 테이프 앨범을 살 돈도 없는 가난한 학생들이 길을 걸을 때나 학교 점심시간 등 시도 때도 없이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LP 디스크나 CD를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 워크맨이라는 묵직한 휴대용 카세트 데크를 통해 재생시켜야만 했다. 카세트 테이프의 진정한 가치는 LP 디스크와 CD 등을 카피하거나 자가 편집앨범을 만드는 이러한 과정에서 발휘된 것이다.

흔히 공(空) CD라고 하는 라이터블(writable) CD가 나오기 전까지 음악 녹음은 주로 ‘공 테이프’를 이용했다. 녹음기기는 카세트 데크인데 이 하드한 기계는 원본의 재생과 함께 실시간으로 카피물을 찍어낸다는 점에서 지금의 레코더블 씨디롬의 기능을 수행한 불법 복제기기의 대선배격이다(그 때에도 지금도 음반을 개인용도로 복제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이를 유포하는 경우는 불법이다. 물론 당시의 저작권 개념은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았고 규제나 감시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옛날에 동네 레코드 가게들은 녹음하고 싶은 싱글곡들이나 앨범을 적어주면 테이프에 복사해주는 서비스도 했다). 또 원본이 카세트 테이프일 경우에는 더블 데크를 이용했고 오디오처럼 턴테이블이나 CD 플레이어와 카세트 데크가 같이 장착되어 있지 않은 경우 잭을 이용해 연결하는 방법이 있으니 기술적 한계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아날로그적 노가다의 기억

카세트 테이프가 천편일률적인 싸구려 소모품인 것만은 아니다. 당시 테이프는 음을 기록하는 마그네틱 테이프의 재질과 재생시간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음악 매니아들은 복사할 앨범의 러닝타임과 가치에 따라 제품을 골랐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카세트 테이프는 재질에 따라서는 노멀(normal), 크롬(chrome), 메탈(metal) 테이프로 나뉘었고, 가장 보편적이었던 국산 선경 스마트 카세트 테이프의 경우 용도에 따라 회화용, 팝 음악용, 클래식 음악용으로 등급을 구분했다. 보통은 노멀 팝 음악용 테이프를 쓰지만 정말 아끼는 음악을 모아 담거나 소중한 지인에게 선사하고자 할 때는 크롬이나 메탈, 클래식 음악용 등 고가의 테이프를 구입했다. 그리고 용돈이 떨어지면 예전에 만들었지만 잘 듣지 않는 테이프에 재녹음을 하기도 했다(심지어 형의 어학 테이프나, 어머니의 찬송가 테이프 등에도…물론 ‘매’라는 댓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테이프 재활용은 음질 저하를 수반하기 때문에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 음악을 녹음해주거나 그다지 좋아하거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지만 남겨둘 필요는 있는 음악들을 저장할 때 주로 썼다. 만일 재생과정 등에서 실수로 재녹음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단의 탭을 제거한 테이프를 재활용한다면 스카치 테이프나 종이뭉치 등을 이용해 탭이 제거된 하단의 홈을 막아야 했다(이 탭은 레코딩시 카세트 테이프 본체를 밀어올려 데크에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잘 모르시는 분들은 카세트 테이프를 자주 사용했던 주변의 형과 누나들에게 문의하면 될 것이다). 이런 짓은 지금 같이 디지털 기기와 음원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아주 바보스러운 번거로움으로 인식될 것이지만 나름대로 경제적이고 환경친화적인 귀여운 노가다가 아니었나 싶다.

재생시간에 따라서는 45분, 60분, 90분, 120분짜리 카세트 테이프 등이 주로 쓰였다(120분짜리 테이프는 경제적이지만 아날로그 방식의 특성상 테이프 길이가 너무 길어 재생시 테이프가 늘어지거나 잘 감기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기피 대상이었다). 지금은 실험적 성향이 아닌 웬만한 앨범들이 10곡 이상의 수록곡을 담고 러닝타임도 60분을 넘기는 경우가 많지만 그 당시 보편적인 록 음반의 수록곡 수는 8~10곡이고 러닝타임은 45분 내외였다. 따라서 앨범 한 장을 담기 위해서는 45분짜리 테이프를 주로 이용했고, 90분짜리 테이프의 양면에 앨범 2장을 담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 앨범 한 장 단위로 만드는 것보다 의미가 반감되지만 가격 부담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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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된 카세트 테이프

난감한 경우는 복사할 앨범의 러닝타임이 45분이나 60분을 살짝 넘어가거나 아예 30분밖에 되지 않을 때이다(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TDK나 소니 등 일본 회사가 만든 46분, 74분짜리 제품도 있었지만 너무 비싸 잘 사용되지 않았다). ‘앨범 러닝타임보다 넉넉한 테이프를 쓰고 남으면 남는 대로 두면 그만이지 않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경우 재생시 되감기나 빨리감기 등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테이프 여분을 해당 아티스트의 싱글 곡이나 라이브 버전 등으로 채우는 사람도 있었으나 절약과 기능성보다는 ‘앨범 단위의 신화’에 사로잡힌 완벽주의자들에겐 경외시되는 작업이었다. 집요하게 완벽을 추구했던 당시의 음악 매니아들이 주로 썼던 방법은 어처구니없게도 테이프를 분해하여 나머지 부분을 잘라내 이어붙이는 것이었다. 준비물은 시계 드라이버, 칼, 접착 테이프 뿐이니 할 일이 없다면 시도해 봐도 좋겠다(자세한 방법은 생략한다. 이 방법은 웬만한 형누나는 모를 것이고 고수에게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자가 카세트 테이프 제작기술의 극치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 있다. 지금도 MP3 파일을 이용해 즐겨 듣는 곡들을 편집할 경우 파일명과 수록곡 정보 등을 꼼꼼히 기입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테이프를 이용한 컴필레이션 앨범 작업에 비하며 그 수고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LP 디스크를 턴테이블에 걸고 녹음할 곡 앞의 블랭크 부분에 바늘을 위치시켜 레코딩을 시작하는 과정 자체가 세심함을 요구하지만, 가장 기술적 숙련도가 필요한 부분은 곡이 끝나 테이프 녹음을 멈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툭’하는 잡음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저마다 노하우가 있었는데, 카세트의 일시정지(pause) 버튼을 살짝 누르는 방법, 아예 전원을 내리는 방법, 레코딩시 음량을 조절할 수 있는 기기를 이용할 경우 볼륨을 서서히 줄여 잡음을 최소화하는 방법 등이 쓰였다(마지막 방법의 경우는 저급한 믹싱 개념이지만 자칫 원곡의 엔딩 부분을 망친다는 점에서 피해야 할 방법이었다). 필자의 경우 일단 스톱 버튼이나 일시정지 버튼을 이용해 잡음이 그대로 녹음되도록 하고 다음 곡을 이어 녹음하기 전 테이프를 손가락으로 조금 되감아 잡음 부분이 다름 음악에 의해 덧입혀지도록 하는 방법을 주로 썼다(아마 최고의 고수급들이 애용한 미치도록 불편한 방식이었지 싶다). 그 때는 왜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어쨌든 이쯤 되면 아날로그 방식의 시간비용과 사소한 집착이 극치에 달한 \’불편함의 디스토피아\’라 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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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 테이프, 음악이 절박했던 시절의 유물

트럭 한 대 분량의 카세트 테이프와 맞먹는 용량이라고 광고하는 한 MP3 플레이어와 역설적이게도 카세트 테이프 모양으로 디자인된 MP3 플레이어

대중음악을 즐겼던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르겠지만, 이런 사소한 작업을 했던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공부를 위해서 잠을 줄이지는 않아도 구하기 어려운 명곡들을 틀어주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녹음하기 위해서는 밤을 지새우던 음악광들도 있었고, 수학 필기는 엉성하게 해도 자신이 아끼는 곡들을 녹음할 때에는 꼼꼼함의 화신이 되는 친구도 있었으며, 방구석은 돼지우리같이 어질러 놓더라도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테이프는 곰살스럽도록 예쁘게 꾸미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한 수고는 그 시절 음악 매니아들의 일상이기도 했지만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일종의 ‘의식(ritual)’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카세트 테이프에 음원을 녹음해 돌려듣는 행위는 음악저작권법의 서슬이 퍼런 지금과 마찬가지로 불법 행위였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죄의식도, 비난도 없었다. 그 번거로운 노가다로 댓가를 지불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컴필레이션 앨범은 공CD로, MP3 플레이 리스트로 간편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바보같은 아날로그식 노가다의 시간낭비와 땀냄새 만큼 뿌듯하지는 않다. 카세트 테이프에 자신만의 애청곡을 세심하게 녹음하던 살떨림과 희열 대신 이제 남은 것은 P2P 사이트를 찾아 헤매는 퀭한 눈과 한 번도 제대로 듣지 않은 곡들로 가득 채워진 묵직한 하드 디스크일지도 모른다. 서두에 그 시절이 그립지는 않다고 했지만 소중한 기억인 것만은 확실하다. 음악이 그렇게 값어치 있고 절박하지 않은 시대가 되고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20050827 | 장육 [email protected]

P.S. 이 글에 언급된 내용 대부분은 현재에도 해당되는 것이지만 거의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으로 여겨 일부 표현은 과거형으로 처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