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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ous Artists – Lost Highway (O.S.T) – Nothing/Interscope, 1996

 

 

유혹은 밤그림자처럼

무의미로 가득한 영화를 의미없이 볼 수 없는 까닭은 본다는 행위 자체가 인과(因果)라는 의미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미를 원하면서 보고 의미가 없으면 만들어 낸다. 그것이 생존의 방법이다. 흄(David Hume)처럼 한 번 말해 보자. 우리는 하얀 당구공을 잘 조준해서 치면 빨간 당구공에 맞는다는 인과론을 믿어야 한다. 중간에 하얀 당구공이 파리와 부딪히거나 당구대에 패인 홈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지 모른다는 우연적인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야 한다. 그 두려움이 인과론적 결론과 대등하거나 그보다 크다면 그는 평생 당구를 칠 수 없을뿐더러 편의점에서 라면도 못산다. 따라서 인과관계를 무시한 영화에 관객들이 품는 분노의 감정은 생존의 위협에 따른 당연한 반응이다.

[로스트 하이웨이(Lost Highway)]는 데이빗 린치(David Lynch)가 1996년에 발표한 영화로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두 영화([현기증(Vertigo)]과 [싸이코(Psycho)])를 토대로 만든 듯한 느와르물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애용하는 충동들(배신과 탐욕과 성욕)로 비롯한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충동의 인과론적 동기는 미약하다. 여기에 린치 특유의 ‘저 너머에서 온 두려움의 개입’이 남아 있는 동기들마저 희석시킨다. 그래서 기의없는 기표가 된다. 즉 그것이되 그것이 아니게 된다. 그것이되 그것이 아니게 됨으로써 보는 이들이 의미를 만드는 과정을 막지만 다른 대답을 주지도 않는다. 논쟁을 피하는 논쟁적인 영화를 만드는 영리한 방법이다.

그러나 영화 속 음악의 연출은 영화만큼 복잡하지 않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블루 벨벳(Blue Velvet)](1986)의 ‘얼터너티브’한 효과를 노리지는 않는다. 바비 빈튼(Bobby Vinton)과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을 잘린 귀의 클로즈업이나 구타 장면과 병치시키는 것과 같은 수법 말이다. 린치의 오랜 파트너 안젤로 바달라멘티(Angelo Badalamenti)는 여전히 훌륭한 곡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각 장면과 밀고 당김을 벌이는 대신 긴밀하게 달라붙는다.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주인공(영화를 보면 안다)이 마당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는 장면에 흐르는 조빔의 “Insensatez”는 진심으로 평온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비유기적 영화에 유기적으로 결합된 음악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 자체로 영화속 세계의 부조리함을 조리있게 결합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 특집의 일환으로 쓰여진 글인데 정작 음반의 음악감독인 레즈너에 대해서는 별 말을 않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위의 문단 전체에 그의 흔적이 드리워 있다. 실제적인 예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보위(David Bowie)의 “I’m Deranged”와 “Videodrones: Questions”을 연결하는 부분을 들 생각이다. 질주하다 멈춘 뒤 이상한 세계로 들어가는 영화의 첫 부분을 간단한 리믹스와 일렉트로닉 효과음 몇 개만으로 솜씨 좋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드럼 앤 베이스(drum n’ bass)를 적극 도입한 “Perfect Drug”은 NIN 최고의 코러스를 가진 곡 중 하나고 리믹스 음반이 따로 나올 만큼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The Downward Spiral]로 당시 경력의 절정에 올라 있었던 뮤지션의 왕성한 창작욕에 대한 즐거운 기록이다.

더불어 [Natural Born Killers]를 통해 드러난 음악광으로서의 레즈너가 가진 면모는 이 영화에서도 영상과 조응하는 놀라운 순간들을 자신이 선곡한 노래들로 만들어낸다. 음반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디스 모틀 코일(This Mortal Coil)의 “Song to the Siren”이 어슴푸레하게 울리는 부분은 짧으면서도 극도로 환각적이다. 저 너머 세계에서 온 두려움의 스며듦을 표현하는 이 장면은 깜깜한 방안에 스며든 검은 그림자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의 기분과 흡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두려움도 유혹도 그렇게 다가온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 안에 빠져 질식할 것처럼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와 맨슨(Marilyn Manson), 람슈타인(Rammstein)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에 대한 특집이 아니니 생략하기로 하자. 무의미하고 두려운 유혹의 향을 내뿜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20050423 | 최민우 [email protected]

7/10

수록곡
1. I’m Deranged (Edit) – David Bowie
2. Videodrones: Questions – Trent Reznor
3. The Perfect Drug – Nine Inch Nails
4. Red Bats With Teeth – Angelo Badalamenti
5. Haunting & Heartbreaking – Angelo Badalamenti
6. Eye – The Smashing Pumpkins
7. Dub Driving – Angelo Badalamenti
8. Mr. Eddy’s Theme 1 – Barry Adamson
9. This Magic Moment – Lou Reed
10. Mr. Eddy’s Theme 2 – Barry Adamson
11. Fred and Renee Make Love – Angelo Badalamenti
12. Apple of Sodom – Marilyn Manson
13. Insensatez – Antonio Carlos Jobim
14. Something Wicked This Way Comes (Edit) – Barry Adamson
15. I Put a Spell on You – Marilyn Manson
16. Fats Revisited – Angelo Badalamenti
17. Fred’s World – Angelo Badalamenti
18. Rammstein (Edit) – Rammstein
19. Hollywood Sunset – Barry Adamson
20. Hierate Mich (Edit) – Rammstein
21. Police – Angelo Badalamenti
22. Driver Down – Trent Reznor
23. I’m Deranged (Reprise) – David Bow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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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Nine Inch Nails 공식 사이트
http://www.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