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05094735-04nin-teeth

Nine Inch Nails – With Teeth – Nothing/Interscope, 2005

 

 

자외선 차단제의 고독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는 변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드라이아이스 같다. 끔찍하게 차갑지만 손을 대면 살갗이 타 버릴 것 같은 소리다. 스래쉬 메틀 드러밍과 질식할 것 같은 잿빛 노이즈의 폭풍 속에서 등대처럼 반짝이는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는 “You Know What You Are?”는 그의 음악적 방법론이 모순의 종합보다는 다이나믹의 병치와 충돌에 있다는 점을 새삼 확인시킨다.

그는 여전히 자신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You Know What You Are?”) 세상이 자신에게 위압적이라고 생각하며(“The Hand that Feeds”) 미래란 [둠(Doom)]의 강철 지옥을 평생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낀다(“Every Day Is Exactly the Same”). 그에게 있어서 삶이란 “The Collector”의 육중한 비트 같은 것에 억눌린 채 사는 것이고 그 억눌림에 비명 아니면 한숨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6년을 기다린 것에 값하는 음반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한때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신보가 단선율적(monophonic)인 음반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완성된 음반의 내용물은 질서와 혼란을 신이라도 된 것처럼 모두 틀어쥐고 있는 다성음악적(polyphonic) 일렉트로닉 메틀이다. 다음 장면에서 도끼 살인마가 나타날 걸 알고는 있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는 공포영화같은 음악 말이다.

물론 [With Teeth]를 들으면서 NIN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변화는 전형적이다. U2의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2000)에서 느꼈던 바로 그 기분이다. [The Fragile](1999)을 둘러쌌던 울적한 다운비트의 물결이 물러간 자리에 업비트의 해일이 밀려온다. 첫 싱글인 “The Hand that Feeds”에서 일렉트릭 베이스가 두드리는 뉴웨이브 스타일의 리듬 라인을 지나 두 번째 싱글로 내정된 “Only”의 디스코/하우스 비트에 이르면 NIN이 지난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Head Like a Hole”과 “Down In It”으로 음악산업의 유망주 대접을 받던 그 시절 말이다.

이는 NIN의 세계가 하나의 원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뜻한다.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와 고딕 록(gothic rock)에 매혹된 신서 팝에서 출발해 펑크 록과 헤비 메틀을 일렉트로닉 노이즈에 버무리고 앰비언트와 프로그레시브에 탐닉하는 동안 생겨났던 갖가지 논쟁은 이로써 봉인된다. 판단의 기준은 놀라운가 그렇지 않은가 보다는 팬으로 머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남은 것은 위대한 록 스타의 섬세한 자기복제이다.

[With Teeth]는 NIN의 어떤 음반보다도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고 있으며 곳곳에 감성적인 선율을 숨겨두고 있다. 또한 예외적일 정도의 활기가 가득하다. 설사 그 활기가 반세기 전에 유행하던 춤을 추면서 젊은 오빠 행세를 하는 근엄한 교수의 활기와 닮아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이제야 자신이 픽시스(The Pixies)의 팬임을 고백하는 것 같다. “Getting Smaller”는 정말로 “Planet of Sound”에 대한 헌정 같다.

음반은 “Right Where It Belongs”로 한 시간 남짓한 여정을 마무리한다(“Home”은 보너스에 가깝다). 희미하게 지글거리던 노이즈 사이로 들리던 노래가 커튼을 올리듯 맑아지면서 관중의 환호성 소리가 삽입되고 레즈너는 “Would you, would you find yourself afraid to see?”라고 힘없이 부르짖는다. 거물 록 스타들이 누려온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이보다 더 뻔뻔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고독의 감정이 뼛속까지 와 닿았던 “Hurt”에 비한다면 이 곡이 부르짖는 고독의 기운은 놀라울 정도로 무감각하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지난날을 돌아본다. 돌이켜보면 그해 여름은 놀라운 시간이었지만 막상 그 여름으로 온전히 돌아간다면 따갑게 타는 피부를 걱정하게 될 것이다. 이 음반은 그날 밤 나눴던 입술의 맛이 아니라 아침에 발랐던 자외선 차단제의 향기를 풍긴다. 20050504 | 최민우 [email protected]

7/10

수록곡
1. All the Love in the World
2. You Know What You Are?
3. The Collector
4. The Hand that Feeds
5. Love Is Not Enough
6. Every Day Is Exactly the Same
7. With Teeth
8. Only
9. Getting Smaller
10. Sunspots
11. The Line Begins to Blur
12. Beside You in Time
13. Right Where It Belongs
14. Home

관련 글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목소리 없는 세대의 비명 – no.7/vol.9 [20050501]
Nine Inch Nails [Pretty Hate Machine] 리뷰 – no.7/vol.9 [20050501]
Nine Inch Nails [Broken] (EP) 리뷰 – no.7/vol.9 [20050501]
Nine Inch Nails [The Downward Spiral] (Deluxe Edition) 리뷰 – no.7/vol.9 [20050501]
Nine Inch Nails [The Fragile] 리뷰 – vol.1/no.7 [19991116]
Nine Inch Nails [With Teeth] 리뷰 – no.7/vol.9 [20050501]
Various Artists [Natural Born Killers] (O.S.T)리뷰 – no.7/vol.9 [20050501]
Various Artists [Lost Highway] (O.S.T) 리뷰 – no.7/vol.9 [20050501]

관련 사이트
Nine Inch Nails 공식 홈페이지
http://www.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