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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e Inch Nails – Broken (EP) – Nothing/Interscope, 1992

 

 

그 음반, 흉폭하다

이 음반은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가 데뷔 당시 계약을 맺었던 소속사 TVT와의 지루한 법정 분쟁이 막 끝나가던 시점에 발매되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로 데뷔했고 그래미에서는 \”Wish\”로 \’최우수 헤비 메틀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했다. 밥 플래내건(Bob Flanagan)이 마조히즘 소시지 쇼를 선보인 \”Happiness in Slavery\”의 뮤직 비디오는 곳곳에서 방송금지를 먹었다. 하지만 진심어린 대박은 18분 짜리 [Broken] 풀 버전이었는데, 새디스틱한 게이 살인마를 주인공으로 한 이 비디오는 피와 오물, 벌레들이 사방에서 날뛰는 모습을 스너프 필름의 형식으로 꾸며놓았다. 이 음반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설명들이 음반에 대한 요약이, 혹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Broken]의 사운드가 오늘날 다소 촌스럽게 들린다면 그것은 아이팟(iPod) 옆에 놓인 소니 오토리버스 워크맨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기분을 음반의 소리에서 얻기 때문일 것이다. 첨단에 서 있다고 일컬어지던 것들이 가장 먼저 도태된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신실함\’이라는 하이에나일 것이다. 레즈너의 \’산업 혁명(industrial revolution)\’은 \”Hurt\”의 가사처럼 \’먼지의 제국(empire of dirt)\’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록 음악계를 너바나(Nirvana)와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아이들이 나눠먹으리라는 예측을 가장 합당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런지는 장렬히 산화했고 인더스트리얼은 (트립합이 그랬듯) \’분위기를 돋궈주는 서브 텍스처\’가 되었다.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뤄두자.

그럼에도 이 음반의 싸늘하고 파괴적인 일렉트로닉 메틀 사운드를 여전히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아이팟을 장만했음에도 파나소닉 디스크맨의 \’우주선 디자인\’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 때문일 것이다. 픽시스(The Pixies)와 머틀리 크루(Motley Crue)를 CG로 합성한 것 같은 \”Wish\”, 어쿠스틱으로 바꿔도 괜찮을 것 같은 \”Last\”, 쓰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의 메인스트림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Pinion\”과 \”Help Me I Am In Hell\”, 메틀처럼 들리지만 강박적인 뉴 웨이브에 가까운 \”Happiness In Slavery\”와 같은 곡들은 현대의 대중음악이 사운드와 음조(tone) 중심의 음악, 그리고 그것들의 활용과 배치에 성패가 달려있는 음악이라는 개인적인 의견에 힘을 실어준다. 설사 파괴적이면서도 상업적 성공을 위협하지 않는 사도-마조히즘과 자학적인 메시지가 선명한 선율과 함께 많은 사람들을 전율시켰다고 해도 그렇다. 이 선율과 메시지들은 금기의 가장자리에서 개인적인 좌절, \”너로 가득한 이 세상에 뭔가 진짜인 것이 있기를 바랬건만\”(\”Wish\”)이라는 멋진 훅을 토해내며 서성인다.

애덤 앤트(Adam Ant)의 \”(You\’re So) Physical\” 커버나 \”Suck\”과 같은 히든 트랙에 대해 길게 말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은 그것이 98번과 99번 트랙에 있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정규 음반 대접을 받는 드문 EP\’라는 설명은 순전히 이 사이트의 DB 구축 차원에서 덧붙이는 소리다. 단지 이 말은 해두고 싶다. 1990년대의 록 씬에서 나인 인치 네일스는 특정 세대의 목소리(voice)라기보다는 비명(screaming)이었다는 점 말이다. 이 비명은 타인에 대한 소통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소통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음반이 흉폭하긴 하지만 위협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이후 작업물들이 높아가는 예술적 야망에 비례하여 점차 웅얼거림과 같은 음의 덩어리로 변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하지만 [Broken]에서 이 비명은 아직 충분히 아프다. 이 음반은 당신이 인터넷에서 정신없이 찾아 헤매는 정신적 따가움 정도는 지금도 안겨줄 수 있다. 20050502 | 최민우 [email protected]

9/10

수록곡
1. Pinion
2. Wish
3. Last
4. Help Me I Am In Hell
5. Happiness In Slavery
6. Gave Up
98. Physical (Hidden Track)
99. Suck (Hidden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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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Nine Inch Nails 공식 사이트
http://www.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