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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폴(Lucid Fall) – 오, 사랑 – Toy Music/서울음반, 2005

 

 

 

변질된 서정

한국의 인디 음악 씬에서 조윤석 만큼 ‘서정성’이란 말과 어울리는 뮤지션도 없을 것이다. 일그러진 노이즈와 함께 무표정하게 냉소를 토해내던 미선이 시절에도 그의 사운드는 따스한 서정을 놓치지 않았다. 솔로 프로젝트인 루시드 폴을 통해서는 그런 정서가 더욱 내향적이고 폐쇄적인 형태로 발현되었지만, 그 골방으로부터 스며 나오는 어쿠스틱 기타 음에 실린 자학과 탄식은 절제되어 있었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물론 ‘서정성’의 개념과 모양은 모호하다. 또한 그것은 변질되기 쉽고 적정선을 지키기도 어렵다. 아쉽게도 루시드 폴의 정규 2집 [오, 사랑]은 그 증거가 되는 듯하다. 먼저 사운드 면에서는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꼭 실험적인 노이즈나 변칙적인 리듬이 있어야만 창의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평범한 포크송에도 독특한 미감을 불어넣고 힙합과 일렉트로니카로 다채로움을 더하던 그의 재능과 실험정신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유희열의 편집앨범 [A Walk Around The Corner](2002)에 수록되었던 “몽유도원”의 앰비언트 음향실험은 그저 덧붙여진 트랙으로만 생각될 뿐이고, 세미(semi) 일렉트로니카 넘버인 “꽃”은 지루하게만 들린다).

아이디어와 실험정신의 부재는 유희열, 함춘호, 김광민 등 유명 뮤지션들의 수준 높은 세션 연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의 최고급 세션 연주는 오히려 루시드 폴 특유의 서정적이고 내향적인 포크 순수주의와 절제의 미를 해치고 만다. 첫 곡 “물이 되는 꿈”에서 들려오는 함춘호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최고의 테크니션답고 가사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답지만, 중반부 이후 불쑥 튀어나오는 “아-아-하-“, “우~”하는 코러스가 곡을 완전히 망쳐놓고 있다. 또 이 앨범에 대한 유희열의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보이나요?”의 밝고 나긋나긋한 연주와 가사는 대중성을 고려해 삽입된 점을 이해하더라도 CCM 같이 착하기만 해서 민망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조윤석의 보컬도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기교와 가성이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음절 한 음절 감정을 또렷이 살리려는 창법은 작위적으로 들리는 부분이 있다. 생각해보니 이런 창법은 윤종신 같은 주류 발라드 가수의 그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특히 “오, 사랑”, “그건 사랑이었지” 등이 그렇다). 또한 유년시절, 혹은 학창시절의 소소한 추억을 고백하는 듯한 가사도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이나 “이층집 소녀”와 같은 곡이 대변하는 ‘예쁘고 아련한 사연으로 치장된 감상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 앨범의 배경이 되었을 낯선 땅에서의 유학생활은 당연히 그리움, 추억, 사랑했던 시절, 이런 것들을 끄집어내게 했을 테지만 그 화법은 진부하고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는 유년시절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한국인 모두의 추억에 기대어 짠한 감동을 전해주기는 하지만 그 감동은 보편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오, 사랑’이라는 제목이 대변하듯 이 앨범은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 서정에 호소하고 때로 주류 가요의 사랑예찬을 닮아 있을 뿐, 서정적인 선율과 소박한 내면고백 속에 도사리고 있던 치명적인 울림과 날카로운 성찰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주류 언론에서 이 앨범에 대해 ‘새봄의 서정’ 어쩌고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주류적 감상주의와 예쁜 소리로 섬세하게 직조된 이 앨범은 재능 있는 인디 싱어송라이터와 노련한(어떤 측면에서는 틀에 박힌) 세션 연주자들의 결합이 반드시 좋은 성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비교적 명징하게(lucidly) 드러난 ‘조윤석 식 서정주의 포크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라는 숙제도 던지고 있다. 다시 혼자 일을 하거나 “몽유도”식의 음향실험에 몰두하는 것이 해법이 될 것 같지만, 착하고 편안한 발라드를 부르는 데 익숙해져 보이는 그가 그런 모험을 감행할지 의심스럽긴 하다. 20050403 | 장육 [email protected]

4/10

수록곡
1. 물이 되는 꿈
2.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3. 오, 사랑
4. 삼청동
5. 들꽃을 보라
6. 그건 사랑이었지
7. 이젠 더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8. 꽃
9. 보이나요?
10. 사람들은 즐겁다.
11. 몽유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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