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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 – Walking Cloud and Deep Red Sky, Flag Fluttered and the Sun Shined – Temporary Residence, 2004

 

 

핼시언(halcyon)의 사운드 스케이프

1990년대 이후 일본은 보어덤스(Boredoms), 멜트 바나나(Melt Banana), 고스트(Ghost), 그리고 진리슈프림(Xinlisupreme) 등을 배출한 노이즈/익스페리먼틀 록의 강국으로 부상했다. 실력 있는 뮤지션과 열광적이고 두터운 수용자층, 그리고 이들을 잇는 전문적인 매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대중음악 소통 시스템과 대중성이 없는 실험주의 음악도 나름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음악적 저변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본산 노이즈의 광풍은 포스트 록 씬에도 불고 있는데, 모노(Mono)라는 동경 출신 밴드가 그 중핵에 위치한다. 모노는 트윈 기타 플레이를 펼치는 타카아키라 “타카” 고토(Takaakira “Taka” Goto)와 요다(Yoda), 여성 베이시스트인 타마키(Tamaki), 드러머 야스노리 타카다(Yasunori Takada)의 4인조로서 기악곡 중심의 포스트 록 밴드에게 가장 보편적인 편성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2000년에 [Hey, You. (EP)]를 내놓으며 활동을 시작했고, 2003년 두 번째 정규 앨범 [One Step More and You Die]를 발표하며 영미 평단의 주목을 이끌어내게 된다. 또한 이 때부터 국내의 포스트 록 마니아들의 표적이 되었는데, 15분을 넘는 압도적인 대곡 “Com(?)”은 인상적인 노이즈 실험작으로 기억된다.

이들의 바이오그래피에는 “세상의 종말을 향한 사운드트랙(the soundtrack to the end of the world)”이라는 다소 거창한 말도 등장하는데, 전쟁의 공포, 그리고 이에 대한 무기력과 분노를 표현하려 했다는 전작 [One Step More and You Die]는 이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는 어둡고 파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고 전체적인 무드는 환희와 격정으로 넘쳐나고 있다(이런 변화는 그간 세계 곳곳을 떠돌며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느낀 희망 때문이었으며, 엘리너 코어(Eleanor Coerr)의 소설 [사다코와 천마리 종이학(Sadako and The Thousand Paper Cranes)]*이 전해주는 절망속에서의 희원이 앨범의 모티브가 되었다고도 한다).

음악적으로 보면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와 레이첼스(Rachel’s)를 섞어놓은 듯 기타 노이즈 중심의 장대한 대곡들과 단아한 선율의 클래식한 소품들이 섞여 있고, 전작들에서는 도입되지 않았던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 등의 스트링 세션이 강조되고 있다. 여기에 스치브 앨비니(Steve Albini)의 정교한 프로듀싱과 믹싱이 가미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일 것이다. 첫 곡인 “16.12”는 음울하게 떠돌며 고조되어 가는 노이즈가 전작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곡이며, 이어지는 “Mere Your Pathetique Light”은 딜레이가 걸린 아르페지오 기타와 무거운 첼로 연주로 시작되어 무정형의 노이즈와 함께 스트링 연주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긴장감을 높이는 곡이다. 그리고 말 그대로 ‘화창하고 평온한(halcyon)’ 느낌에서 다시 격정의 노이즈로 휘몰아쳐 가는 “Halcyon (Beautiful Days)”는 제목만큼이나 아름다운 앨범의 압권이다. 이 곡은 기타 트레몰로 음에 풍성한 스트링 라인이 실리며 조성되는 불길한 크리센도와 고즈넉한 침잠이 교차되다가 중반부 이후 갑자기 필인(fill-in)되는 기타 노이즈를 선두로 모든 악기들이 피치를 높이며 몰아치는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구성을 뽐낸다. 이렇듯 앨범은 다른 포스트 록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대곡들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피아노 연주가 등장하는 “2 Candles, 1 Wish”나 황량한 드론 노이즈와 바이올린 선율이 정처 없이 공명하는 “The Sky Remains the Same as Ever” 등의 소품들은 잠깐의 휴식도 선사하고 있다.

모노의 포스트 록 사운드는 사실 그다지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베토벤(Beethoven)이나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이들은 가사와 목소리 없이 기악연주만으로 음악적 이미지와 공간감을 창출하려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별로 새로울 게 없는 포스트 록 특유의 방법론이다. 이런 유의 노이즈 운용법과 악곡의 구성, 기타주법 등을 표방하는 포스트 록은 심하게 말해 양산되고 있고 모노도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또한 스트링 라인이 부각되어서인지 유려하긴 하되 전작에 비해 로킹한 파괴력이 덜하다는 인상도 든다(15분이 넘는 대곡 “Lost Snow”는 웅장함보다는 지루함이 느껴진다). 영미 평단의 인색한 평가는 동양 출신 밴드에 대한 뜨악한 시선도 작용한 것이겠지만 대개는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앨범은 데뷔 이후 일관되게 추구하던 사운드 미학의 정점을 구현하면서 적절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점에서 정당히 평가되어야 할 작품이다.

바다를 고요하게 만든 뒤 그 위에 알을 낳는다는 전설의 새 핼시언(Halcyon)은 태평성대와 풍요의 상징이다. 이 앨범은 바로 ‘핼시언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펼쳐보이는 듯 하다. 그러나 바다와 세상의 평화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처럼 모노가 만들어내는 선율 안에는 평화와 희망, 그리고 이에 반하는 격정과 불안도 내재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양면성과 혼란은 이 앨범의 최대 매력이기도 하다. 20050119 | 장육 [email protected]

7/10

* 이 소설은 ‘천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일본의 전설을 배경으로 히로시마 원폭 때문에 백혈병에 걸린 친구의 쾌유를 빌며 천마리의 종이학을 접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록곡
1. 16.12
2. Mere Your Pathetique Light
3. Halcyon (Beautiful Days)
4. 2 Candles, 1 Wish
5. Ode Mono
6. The Sky Remains the Same as Ever
7. Lost Snow
8. A Thousand Paper Cranes

관련 사이트
Mono 공식 사이트
http://www.mono-4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