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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찾는 사람들 – 노래를 찾는 사람들 2&3 [20주년 기념 음반] – Dharma Music , 2004

 

 

추억의 정치학

미리 밝히자면 이 글은, 미안하게도,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이 누구인지 모르거나, ‘빨간 꽃 노란 꽃 꽃밭가득 피어도’라는 가사를, 작년 즈음 유행한 거북이의 랩 가사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글이다. 더불어 이 글은 개인적인 글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 글은 노찾사(의 노래)와 한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왜냐하면 노찾사의 새 음반은, 제목에서 밝혔듯이 사적인 감상을 배제하고는 말할 수 없는 음반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9년 전의 [비포선라이즈(Before Sunrise)]를 얘기하지 않고서는 [비포선셋(Before Sunset)]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어쨌든 시작하자면, 그래, 10년쯤 전의 일이다. 어느날 나는 학교 앞 서점에서 촌스러운 노란색 표지의 책을 한 권 샀다. [노래]라는 제목의 무크지였고, 거기에는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글이 실려있었다. 나는 그 책을 좁디좁은 내 자취방에서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아쉽게도 그 책은 군 입대를 앞두고 이렇게 저렇게 얽힌 사연들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또 다른 기억 하나. 민중가요에 대한 세미나를 당시 적을 두고 있던 학내 노래패 사람들과 진행하곤 했다. 온갖 지식으로 중무장한(더불어 굵고 힘있는 목소리를 가진) 선배들이 있었고 나는 거기서 종종 이런저런 얘기들과 주장들에 귀기울이곤 했다(무크지 [노래]는 그 교재이기도 했다). 시간이 제법 지난 지금, 나는 가끔씩 그 시간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연이어 떠오르는 기억은 노찾사를 처음 알게 된 시기이다. 1990년이나 1991년 즈음이었을까? 손석희가 진행하던 [퀴즈 아카데미]의 엔딩 곡으로 흐르던 “사계”를 들으며 그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야간 자율학습에 시달리던 십대 후반이었고 학력고사와 수학능력시험의 사이에 어중간하게 낀 입시 제도의 스트레스와 상식에 대한 강박증 덕분에 그 프로그램을 주말마다 시청하곤 했다. 당시의 나는 ‘민중가요’라는 말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때였으므로 시간이 지나 대학에서 (이른바) ‘현장’에서 그들의 노래를 들었을 때에는, 브라운관을 통해 듣(고 보)던 그들의 모습과의 괴리감을 상당히 느끼기도 했다. 이후 노찾사의 노래는 나에게, 혹자들에겐 비슷한 기억이겠지만, 학생회실에서, 거리에서, 잔디밭에서, 주점에서 즐겨 찾는 레퍼토리가 되곤 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노찾사의 20주년 기념 음반이 발매되었다. 그들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음반이 더블 패키지로 재발매된 음반을 손에 들고, 2004년의 나는 이 음반이 환기시키는 추억과 그 의미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게 된다. 이 글이 ‘음악’보다는 ‘추억’에 방점이 찍히는 까닭도 그런 이유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시장’에서 재발매라는 타이틀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재발매란 이른바 개개인의 추억을 담보로 대중음악을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과소비하게 만드는 매커니즘이기도 하다. 흔히 경멸적으로 일갈하는 ‘재탕삼탕’이라는 말에는 그런 폄하의 의미가 숨어있다. 더불어 김건모나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의 옛 음반이 재발매될 때 그것들이 재생산하는 가치는 대중음악의 낭만화(≒신화화)와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 어떤 시간의 특정한 문화적 경험들이 ‘의도적으로’ 포장되고 미화되는 과정에서, 대상은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받는다. 그 주체는? 당연하게도, 자본이다. 그런데, 문화라는 것이 단일적이지 않듯이 이런 현상도 단순화시키기 어렵다. 문화를 생산하는 것은 자본이지만 그것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은 제 각각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방식으로 제작되든 모든 현상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게 마련이므로, 재발매 음반 역시 소비되고 유통되는 과정에서 나름의 의미들을 새로 부여받게 된다. 그 주체는? 당연하게도, 대중이다. 그러므로, 당대의 대중문화란 자본과 대중(의 취향)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위에 형성되는 법이다. 이런, 노찾사 20주년 기념 재발매 음반을 들으며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사실 이 음반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바치는 연가같은 느낌이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나 “광야에서”, “사계”라든가 “그 날이 오면”과 같은 ‘알려진 명곡’들 혹은 “귀례 이야기”나 “녹두꽃”, “사랑노래”나 “일어서는 사월”과 같은 ‘숨겨진 명곡’들은 그때처럼 뜨겁고 치열하고 쓸쓸하여, 여전하다. 이 음반은 어느 시절의 나처럼 학생회실에서, 거리에서, 술자리에서 이들의 노래에 귀기울이던 사람들의 존재를 다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 음반에 대해 자본 어쩌고를 주절거릴 여지는 좁아진다. 단, 여전히 ‘심장 근처 어느 곳’을 건드리는 이 노래들이 지향하는 의미와 그것이 현재 기능하게 되는 점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얼마 전 발매된 천지인의 새 음반과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과 더불어). 단적으로 말하자면, 클래식 음반과 맞먹는 음질과 기술로 다시 만들어진 민중가요를 방에서 편안하게 듣는다는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어떤 ‘새로운’ 의미들을 파생시키게 될까? 물론 ‘그 의미는 하찮은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바램이라면 그것이 나름의 방식으로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랄 뿐. 그 뜨거웠던(혹은 뜨거운) 노래를 들으며 ‘예전의 나는 그랫지’라며 자족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지 모른다. 자족이란, 특히 ‘한때 뜨거웠던 사람들’의 자족이란, 종종 위악으로 작용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노찾사의 20주년 재발매 음반을 만지작거릴 때(혹은 들을 때), 아득하고 짠한 추억에 무장해제되는 것은 별 수 없다. 그것이 사무치는 그리움이든 씁쓸한 환기든 간에, 딱 그 순간이 스스로에게 의미있다는 점에는 추억의 공통분모를 가진 자들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문제일 지 모른다. 이른바 추억의 정치학이란, 이를테면 개인의 추억으로부터 한발 짝 떨어져 그 의미를 사유한다는 뜻이지 않을까. 하여, 이 음반의 의미는 어느새 나이 들어 변해버린 것 같은 현재에 지난 추억의 족적을 뒤쫓는 쉼표이면서 동시에, 지금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을 고민할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20041109 | 차우진 [email protected]

6/10

수록곡
CD-1: 노래를 찾는 사람들 2
1.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2. 광야에서
3. 사계
4. 마른잎 다시 살아나
5. 그날이 오면
6. 저 평등의 땅에
7. 이 산하에
8. 오월의 노래
9. 잠들지 않는 남도

CD-2: 노래를 찾는 사람들 3
1. 그리운 이름
2.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3. 귀례이야기
4. 녹두꽃
5. 만화경
6. 선언
7. 사랑노래
8. 의연한 산하
9. 일어서는 사월
10.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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