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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아시아 출신의 학자들과 문화예술인들과 평론가들이 참여한 행사를 조직한 일이 있다. 그들과 동아시아 각국의 음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소 뜻밖의 말을 들었다. 베트남에서 온 한 문학평론가가 김민기의 노래에 대해 “가사의 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듣자마자 그 노래들을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김민기의 노래를 어떻게 듣게 되었는가’라고 물어 보자 “알고 지내는 한 한국인 친구의 집에 방문해서 우연히 들었다”고 말했다. 일본이나 중국의 지식인들 가운데 김민기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베트남처럼 한국과 동떨어져 있던 사람에게서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반응을 얼마나 일반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런 반응은 그의 사회적 지위와 개인적 감성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 주위의 사람들이 김민기의 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다면,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라고 확신있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김민기의 노래는 동아시아 현대 문화의 보편성을 획득한 작품일까라고. 이런 질문을 현재의 맥락에서 다시 정식화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의 형식을 취할 것이다. ‘상업적으로 기획된 문화 패스트푸드’라는 ‘한류(韓流)’의 지배적 스테레오타입을 넘어 사회적 현실에 뿌리를 둔 문화적 생산물이 동아시아 권역(region)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시기의 유산으로 공유될 수 있을까.

그런데 정작 음악인으로서 김민기는 한국에서는 점차 잊혀져 가고 있는 것 아닐까. 30대 이상의 세대들에게 그가 만든 노래들은 기억에 남아 있겠지만 젊은 세대들에게는 ‘공익광고(심지어 상업광고)에 나오는 노래’ 이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한 세대에게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는 정도에 비례하여 다른 세대에게는 무지와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현상을 그저 ‘세월의 변화’로 쉽게 설명하면 될 것인가. 말하자면 그의 노래들이 정치적 억압과 문화적 검열 등으로 상징되던 ‘힘들었던 시대’에 가졌던 의미가 지금같은 ‘웰빙’의 시대에는 그때만큼의 의미는 없다고 말해 버리면 그만일까. 조금 더 비스듬하게 말한다면 이제 그런 노래들은 ‘당대(當代)’의 가치를 넘어 다른 가치로 이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노래들이 ‘흘러간 유행가’가 아니라 ‘불멸의 고전’이라는 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고전’이라는 단어 자체가 ‘오래되었다(古)’는 것을 전제한다면 이런 동의의 이면은 ‘한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반추가 때늦고 새삼스러워 보일 정도로.

그렇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김민기는 지금도 ‘인기’가 좋다. 단, 이때의 인기란 ‘음악인 김민기’의 인기가 아니라 ‘연극인 김민기’의 인기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겠지만 그가 연출하고 제작한 [지하철 1호선]은 그가 대표로 있는 학전소극장에서 10년째 높은 객석점유율을 보이며 상연 중이고, 일본, 중국, 독일을 비롯하여 외국에서도 적잖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면 ‘음악인 김민기’와 ‘연극인 김민기’ 사이에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1970~80년대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계, 나아가 언더그라운드 문화계 전반을 어느 정도 가까이에서 접한 사람이라면 김민기의 진화과정을 부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작품’으로만 김민기를 접한 사람이라면 이 과정이 그렇게 자연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인 김민기’와 ‘연극인 김민기’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가. 복잡한 사건들이 있었겠지만 ‘작품’으로만 말한다면, ‘노래굿’이라고 불렸던 [공장의 불빛]이라는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은 ‘직접 노래를 만들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던 김민기’와 ‘뮤지컬을 제작·연출하고 배우의 노래와 연기를 지도하는 김민기’ 사이의 연장점이자 계승점일 것이다. 말장난을 하자면 ‘포크송’과 ‘뮤지컬’ 사이에 ‘노래굿’이라는 묘한 예술양식이 존재했던 셈이다. 1978년에 골격이 만들어지고 1979년에 세상과 만난 작품이므로 이 작품도 ‘4반세기 전’의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묻혀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공적 평가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다. [공장의 불빛]에 대한 정당한 공적 평가를 가로막는 요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 작품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다. ‘유신 말기’라는 1970년대 말의 상황에 나온 작품은 창작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런 정치적 해석에 휘말려 들어갔다. 정치적 해석에 휘말리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닐 수도 있고, 실제로 특정 상황에서 정치적 해석은 대학가 ‘운동권’에게 좋은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도 있다(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쪽에서는 ‘불온을 선동하는 수단’으로 뱁새눈을 뜨고 백안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투쟁의 선전을 위한 수단’ 정도로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좋아할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신화’로 화석화되어 버리는 것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신화가 될 경우 대중은 오래된 것만을 찾지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원작자인 김민기도 이런 점들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난 달 이 작품은 원작자의 ‘집요한 노력 끝에’ 마침내 세상 속으로 나오게 되었다. 카셋트 테이프로 ‘무단복제’되지 않으면 배포될 수 없었던 원작은 4반세기 후 여러 가지 광채를 담은 요소들을 추가하면서 DVD 1장과 CD 1장을 패키지로 묶은 작품으로 재발매된 것이다.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DVD는 원작의 음원을 복원하고 미술과 동영상을 편집한 영상물이고, CD는 젊은 음악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개작(remake)한 것이다.

나 역시 안전하고 무난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집단에 속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원작자의 오랜 기간 동안의 집요한 노력 끝에 세상에 나온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는 정도로 글을 끝내고 싶기도 하다. 여기에 숨죽여 가면서 카세트 테이프를 들으면서 놀랬던 경험을 회상하면서, ‘그때 소수만이 경험했던 놀라움이 이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희망한다’는 바램을 추가하는 정도로 타이핑을 멈추고 싶다. 정말로 침묵이 능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평가가 신화 만들기에 저항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즉, 지금 형태로 재발매된 [공장의 불빛]은 과연 신화에 저항하면서 그때와는 또다른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미심쩍다는 말이다. 달리 말한다면, 이 작품에 담긴 서사의 구성, 음악의 배치, 나아가 음악과 서사(내러티브)의 관계에 대한 미학적 평가를 내리는 것이 정작 필요한 순간에도 이런저런 ‘잡념’들이 개입한다는 뜻이다. ‘음악평론가’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공장의 불빛]에 담긴 음악 그 자체에 대한 평이 우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건 계속 뒤로 미루어진다. 참 묘한 현상이다.

정재일이 편곡을 맡은 개작된 음원에 대해서는 태도를 미리 결정해 버리게 된다. 그건 “분명히 원작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일종의 편견이다. 실제로 녹음된 음원을 들어 보면서 이런 편견을 차례로 확인하는 것 외에 다른 감상법을 찾기 힘들다. 김민기는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1970년대 초기 힘들지만 소박했던 초기의 모습을 기억하고 초심을 잃지 않기를 부탁드리고 싶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개작된 음반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개작된 음반에서는 원작의 ‘초심(初心)’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능숙한 기술자들이 좋은 스튜디오 환경에서 만들어낸 음원에 감동할 사람들은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지식인들?)’과는 관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노동자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민기가 위의 발언을 한 자리는 “지난 10월 12일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열린 음반 패키지 발매와 출판 기념회를 겸한 기자회견과 쇼케이스”였다고 한다. 유감스럽지만 ‘삼성동’, ‘아트홀’, ‘패키지’, ‘쇼케이스’ 등의 단어는 [공장의 불빛]이나 김민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나도 안다. 이런 불만이 ‘억압 하에서의 세월이 더 행복했다’는 이상한 심리의 발현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한번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혹시 20여년 전 [공장의 불빛]의 공포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무언가 꿈틀거렸던 것이 ‘대학생과 지식인의 대리만족’은 아니었냐고…. 대리만족이었든 아니었든, [공장의 불빛]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집체창작’되고 공연된 대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의 무수한 노래굿(혹은 노래극)들은 지금 다 어디로 사라지고 [공장의 불빛]만 댕그러니 남아 있냐고…

물론 문제가 이런 기억의 재구성 차원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세상에 나온 [공장의 불빛]은 ‘그때 이곳’이 아닌 ‘지금 이곳’의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야 한다. 그건 여러 갈래 길들로 분기될 수 있다. 1970년대 노동자가 주변화된 인간 이하의 존재였다면, [공장의 불빛]의 서사와 음악은 진정으로 개작되어야 한다. 그때 ‘공순이’였다가 지금은 ‘분식집 아줌마’나 ‘보험설계 아줌마’로 여전히 삶의 테두리로 내몰린 존재들의 것으로, 혹은 그때는 한국의 농촌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외국’ 출신으로 변해서 어디론가 내팽겨진 존재들의 것으로 등등…

이는 단지 (문학적) 서사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소리의 문제일 것이다. ‘생경한’ 언어를 사용한다면 이는 그때 남한 정치권력의 가시적이고 선명한 억압으로부터 지금의 지구적 자본의 비가시적이고 모호한 지배로의 변화를 미학적으로 인식하는 문제다. [공장의 불빛]은 다른 김민기의 노래들과 더불어 서두에서 언급한 ‘동아시아 현대 문화의 보편성을 획득한 작품’인 것이 분명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작품이 구상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작품은 무로부터 창조되는 것은 아니며, 그 질료들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의 미학적 표상이 어떻게 그려질 수 있을까. 4반세기 전 김민기는 이런 소리들을 예민하게 듣고 그걸 나름의 방식으로 형상화했다. 지금은 누가 어떻게 이를 수행할 것인가. 재발매된 [공장의 불빛]은 마치 음각화처럼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20041103 | 신현준 [email protected]

* [황해문화]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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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아하 누가 그렇게/길(김민기 노래모음)] 리뷰 – vol.4/no.20 [2002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