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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 –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 – 비트볼, 2004

 

 

중력의 무지개

‘단 한 장의 음반을 내고 해산한 전설적인 밴드’는 오랫동안 록의 특별한 아이콘이었다. 록에 낭만주의적 예술관이 개입하면서부터 생겨난 이 아이콘은 창조에 대한 열정,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으나 결코 서로를 인정할 수 없는 천재들 사이의 치열한 갈등, 그 열정과 갈등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산업의 욕망이 만든 프리즘을 투과하는 무지개 빛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음악 산업에 대해 예전보다 훨씬 잘 알게 된, 혹은 산업의 논리를 자신의 본성으로 떳떳이 받아들이게 된 오늘날의 음악팬들에게 이 아이콘은 너무 낡고 순진해 보인다. 돈을 초월한 예술이라는 순수한 이상이 가면을 벗은 뒤, 사람들은 썰매를 타고 껄껄거리는 산타클로스 대신 플레이스테이션 대리점 앞에 줄을 서 있는 아빠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음악을 듣는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맡에는 양말을 걸어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이하 네눈박이)의 음반을 집어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이들이 ‘전설의 밴드’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중일까? 그렇게 받아들여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것은 우리 뜻에 달린 일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 음반이 ‘오늘날의 젊고 진지한 뮤지션들이 지금 여기서 만들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이들의 곡 “Eye… Piece”가 처음 실린 [Lawn Star](2003)에 대한 내 글에는 이 밴드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따라, 나는 이들이 ‘그 당시에도 뭔가 비범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같긴 같았지만 그게 꼭 그렇지많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진 않았을까’라고 말하련다).

만약 당신이 신중현과 더 멘의 [거짓말이야/아름다운 강산](컴필레이션, 2002년 재발매)과 초기 산울림 이후, 혹은 마그마와 동서남북의 음반 이후 한국에 그럴듯한 ‘싸이키델릭’ 음반이 나온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 평가를 재고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애초에 ‘한시적으로’ 운영된 밴드였다가 결국 데뷔작이자 은퇴작인 셀프 타이틀 음반을 내고 해산한 네눈박이는 근래 보기 드문 집중력과 밀도를 가진 사운드를 예민한 연주와 설득력있는 멜로디 감각을 통해 빚어낸다.

음반의 주성분은 싸이키델릭/하드/아트 록, 재즈, 약간의 드론 사운드와 와와 페달이다. 곡들은 대부분 코드(code)보다는 모드(mode)로 진행되며, 재즈의 양식은 ‘지적이지만 허세 없이’ 사용된다(“Lamp”, “Old Fashioned”). 드럼은 변박과 엇박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다른 악기들의 연주를 섬세하게 보조해주고, 두 대의 기타는 재즈와 록 양쪽의 스케일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화려하지만 과시적이지 않은 연주를 들려준다(“Tears Stood In His Eyes”, “없다”, “타협없는 소리”). 이 음반의 거의 유일한 기타 이펙터라는 느낌마저 주는 와와 페달은 복고적인 인상을 강화한다(특히 와와로 ‘떡칠’을 한 “Chordless”). 드럼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여성 뮤지션의 연주력에 대한 ‘편견’을 구겨버리기에 충분하다.

이 모든 소리들은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세심하고 어두운 흐름’으로 청자에게 다가선다. 개별 곡들은 뚜렷한 변별점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일관된 무드를 유지한다. 곡들은 다소 느슨하게 짜여진 기본 라인에 악기들이 ‘들러붙은’ 듯한 구성을 보이는데, 반복을 통한 무아에 이르는 대신 끊임없이 주제와 스케일을 확장할 통로를 찾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Tears Stood In His Eyes”, “Invitation”). 비교적 긴 곡에서 이런 접근법은 효과적인 결과를 낳는다. 부드럽고 낭만적인 울림으로 시작하다가 중반부터 자연스럽게 표정을 바꿔버리는 “Tears Stood In His Eyes” 같은 곡이 좋은 예이다.

이런 특징들은 네눈박이의 ‘싸이키델릭’이 약물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는 최근 10여 년간 등장한 ‘몽롱한’ 음악을 하는 밴드들(모과이(Mogwai)건 랩처(The Rapture)건)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 중 하나일 것이다. 로큰롤의 뮤즈였던 약물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테크노 클럽으로 건너갔고, 엑스타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반면 오늘날의 ‘진지한 록 음악인’들은 냉정하고 빈틈없는 태도로 혼돈을 조율한다. 그 점은 네눈박이 역시 마찬가지다. 도어스(The Doors) 풍 싸이키델릭인 “타협없는 소리”를 거쳐 8분짜리 대곡인 “Hymn to Him”에 이르는 음반의 마지막 부분은 음울하고 몽롱하지만 또렷한 의식을 지닌 사운드를 흘려 보낸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로킹한’ 곡들은 억지스럽지 않은 좋은 멜로디를 뽑아낸다(“꿈을 꾼다”, “Old Fashioned”, “시대의 우물”). 이러한 곡들은 충분히 즐길 만하며, “Old Fashioned”같은 곡의 변화무쌍한 구성 속에서 흥겨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릴 테이프를 빨리 돌린 한영애’ 같은 음성(특히 “꿈을 꾼다”)을 들려주는 보컬은 특정한 정서를 표현한다기보다는 전체적인 사운드의 일부로 기능한다. “버스에 올랐어/눈물을 참았어/소년이 잡혔어/모두 집에 갔어/뻘건 거짓말/뻘건 거짓말”(“뻘건 거짓말”)과 같은 가사들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음반은 최근 한국 인디 씬이 보여주는 ‘프로페셔널한’ 성향이 싸이키델릭 록에서 어떤 식으로 발현했는지에 대한 훗날의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럼 어떤 식으로 발현되었는가. 능숙하지만 노숙하지 않게, 달리 말해 ‘잘 하면서도 진부하지 않게’ 발현되었다고 하면 어떨까. 비록 ‘싸이키델릭’ 스타일을 추구하는 음반의 기타 소리가 생각만큼 ‘다이나믹’하게 잡히지 않은 점은 납득이 잘 가지 않지만, 음반의 전체적인 구도가 ‘조화’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장점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성과가 어떤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뚜렷한 대답을 하기 어렵다. 설사 몇몇 곡에서 영향이 보인다 해도, 이것은 신중현이나 산울림, 혹은 마그마와의 직접적인 연장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는 음악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음악들이 갖고 있던 과시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성향 대신, 네눈박이는 ‘음으로 만든 소리의 풍경과 흐름이 빚어내는 관계의 양상들’을 직조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더불어 이들이 빚어낸 사운드가 갖고 있을 ‘여성적 특성’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세심하게 살필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 음반이 ‘일회적인 사건’으로 그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지만(어쨌든 밴드도 해산했으니까), 그것은 (‘전설의 밴드’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내가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점이 모여 직선이 된다는 기하학의 오래된 공리를 떠올리는 것으로 족할 수밖에. 그러나 노란색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독특한 인상의 이 음반은, 비록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아마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20040905 | 최민우 [email protected]

9/10

수록곡
1. Eye… Piece
2. Chordless
3. Lamp
4. 꿈을 꾼다
5. Tears Stood in His Eyes
6. How People Look to a Monkey
7. 뻘건 거짓말
8. Old Fashioned
9. Invitation
10. 없다
11. 시대의 우물
12. When We’re Free
13. 타협 없는 소리
14. Hymn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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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스 아티스트 [Lawn Star] 리뷰 – vol.5/no.15 [200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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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eatballrecord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