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안녕하십니까. 2002 월드컵 직후에 ‘월드컵 시리즈’를 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아테네 올림픽이 끝났으니 이제 ‘그리스 음악’에 대해 뒷북을 치는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할까 합니다. 이번 연재는 위 제목에서 보셨듯 이번 올림픽이 열렸던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출발하여 다음 올림픽이 열리는 중국의 베이징에 이르는 기획입니다. ‘유라시아의 음악’을 훑어본다고나 할까요. 슬렁슬렁 연재하면서 3년 이상을 때워볼까 합니다.

그런데 올림픽 이야기야 화두로 띄워본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서양’ 음악 혹은 ‘서양화된’ 음악을 주로 다루는 [weiv]에서 왜 아시아의 음악을 훑어보려고 하는 것일까요? ‘중국과 일본이 미국과 더불어 올림픽 3강을 형성하고, 한국도 10위에 들 전망이 높아서 아시아의 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는 말은… 예, 예 이건 농반진반입니다. 중국은 워낙 ‘쪽수’가 많고 일본은 워낙 ‘돈’이 많아서 그럴 테고 한국은 ‘강도 높은 훈련’으로 10위권에 들었을 뿐 나머지 아시아 나라들은 올림픽에서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월드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월드 뮤직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월드 뮤직으로 수용하는 음악들을 보면 대체로 ‘서양’과 근친한 관계에 있는 음악들입니다. 대체로 유럽(의 변방),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인 것이죠. 한국에서 월드 뮤직의 수용 방법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또하나의 서양음악’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 같습니다. 월드 뮤직의 중요한 코드가 ‘이국적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럴 법도 합니다. 물론 이런 이국주의(exoticism)이야말로 참으로 엿같은 것이지만…

달리 말하면 ‘아시아의 월드 뮤직’이라는 말은 매우 모호합니다. 이는 아시아 대륙의 많은 나라들의 경우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와는 달리 유럽의 클래식 음악 외에 자국의 고전음악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국악’이 그런 예에 속하겠죠. 그래서 서양 세계에 ‘아시아의 월드 뮤직’으로 소개되는 음악은 대체로 이런 ‘아시아의 전통음악’입니다. 동아시아권으로 범위를 좁힌다면 일본의 사미센(三味線)이나 샤쿠하치(尺八), 중국의 구정(古箏)이나 얼후(二胡) 등의 전통악기를 사용한 음악들이 그것입니다.

이런 음악들이 ‘나쁜’ 음악은 아닐 것입니다. 아시아인들의 문화적 뿌리가 그것이라면 언젠가는 진지하게 주목할 음악이라는 예감도 듭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전통음악이 현재의 아시아인의 삶을 대변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전음악’이나 ‘민속음악’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권의 각 나라들의 ‘대중음악’에 초점을 두기로 하겠습니다. 과감하게 말하면 아시아에 ‘월드 뮤직’이란 건 없습니다. 전통음악과 현대음악,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이 있을 뿐이고, ‘아시아의 월드 뮤직’이란 아시아인이 아닌 나라 사람들이 지어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잠시 흥분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아시아의 대중음악에 ‘전통’이나 ‘동양’의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 이런 요소가 각국의 음악 문화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검출하는 방식은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와는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좀 요령있게 말해야 할 텐데 지금으로선 그럴 능력도 자신도 없군요. 단지 이런 건 있습니다. 월드 뮤직을 다루는 서양의 문헌들을 보면 아시아 이외의 문화권에 대해서는 ‘전통음악도, 대중음악도 아닌 그 무엇’을 월드 뮤직으로 간주하는 반면, 아시아 문화권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준 없이 전통음악도, 대중음악도 월드 뮤직에 뭉뚱그리고 있는 현상이 보입니다. 그들도 헤매고 있다는 징후로 보입니다.

각설하고, 왜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을 먼저 다루지 않느냐고 항의할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를 먼저 다루면 거기서 헤매다가 끝장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마지막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그 전에는 아테네와 뻬이징 사이에 있는 여러 지역을 슬렁슬렁 훑어보겠습니다. 저 역시 이곳의 음악은 많이 낯설고 솔직히 말해서 관심있게 들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권위 있는’ 소개를 할 처지는 아닙니다. 그래서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물론 마음 속에는 막연하게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 ‘아시아계 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증대하면서 이들이 한국의 문화적 지형도 ‘멀티컬처’의 방향을 취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꼭 노동의 이동뿐만 아니라 자본과 인력의 이동은 이미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들과 평등하게 연대하고 교류하면서 생산적인 문화가 창조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것이죠. 물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각설하고, 연재의 시작은 동방으로 가는 관문인 그리스와 터키입니다. 이번에는 그리스의 음악에 대해, 다음 번에는 터키의 음악에 대해 알아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 뒤에 연재할 계획은 아래의 가목차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제목은 미확정이고 언제 어떻게 변덕이 발생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사는 일이 팍팍하여 도중에 중단되는 일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문부터는 존칭을 생략하는 점에 대해서도 양해를 부탁합니다. 20040901 | 신현준 [email protected]

‘동방의 노래들’ 목차(가안)

I. 동방을 향하여
1. 그리스, 터키, 아제르바이잔
2. 모로코, 알제리, 이집트, 레바논
3. 러시아, 중앙아시아, 몽고

II. 중동부터 인도까지
1. 걸프, 이란, 파키스탄
2. 인도
3. 벵갈, 네팔, 부탄, 티벳

III. 동남아시아 혹은 인도차이나
1. 태국, 미얀마, 라오스
2.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3. 필리핀, 베트남

IV. 아시아의 극동 혹은 태평양의 극서
1.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2. 중국
3.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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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음악, 렘베티카부터 라이코까지 – vol.6/no.17 [2004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