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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men – Save Yourself/Lauren Bacall & Moonlight Driving/The Finest Line – Repo Records, 2002/2003

 

 

모색과 실험의 흔적, 과정의 미학

리포멘(Repomen)이라는 영국 인디 밴드의 리더인 덴질 왓슨(Denzil Watson)은 필자에게 보낸 메일의 말미에 ‘[weiv]의 발전을 빈다’ 뭐 이런 식의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다음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썼다. 축구 좋아하는 영국 청년답다. 이 편안한 딴 소리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음악도 마치 어제 밤에 만들어진 친구의 데모 테이프를 듣는 것처럼 살짝 미소를 머금게 한다.

영국 셰필드(Sheffield)에서 활동중인 리포멘은 자체 발매한 4장의 EP와 이들 EP 수록곡들에 라이브 및 리믹스 버전을 끼워 넣어 정규 앨범 [Seventeen Again]을 발표했으며, 편집 앨범 [Sunset : False]에 “Songs They Never Play on the Radio”라는 곡으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거의 무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리포멘은 기본적으로 업비트의 소프트 펑크 스타일을 구사하는 밴드이지만 4곡씩을 담은 EP들에서는 여러 가지 악기를 동원하고 보통의 영국 밴드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미국의 전통 블루스까지 도전하는 등 다채로운 스타일을 펼쳐 보인다.

먼저, 세 번째 EP [Save Yourself/Lauren Bacall]은 쾌활한 리듬 라인과 부유하는 듯한 노이즈를 조성하는 기타 스크래치에 오이 펑크 식의 코러스, 그리고 그런지의 투박한 리프까지 조합한 화려한 펑크 넘버 “Save Yourself”로 포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곡들은 의외로 편안한 발라드 넘버들인데, 펑크 로커가 오아시스(Oasis)의 진득한 록 발라드를 부르는 듯한 “Lauren Bacall”과 릭 바우어(Ric Bower)의 경쾌한 12현 어쿠스틱 기타와 예쁘장한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덴질의 소박한 보컬이 들려오는 “A Calmer Moment”가 여기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차분한 어쿠스틱 기타 이중주로 이끌어 가는 포크 송 “Dive… Diver”는 후반부에 파도 소리 샘플링과 꽤 실험적인 전자 음향을 담아 또 다시 변신을 꾀한다. 관심의 영역은 넓지만 그만큼 중구난방으로 들릴 수도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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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EP [Moonlight Driving/The Finest Line]의 앨범 재킷

가장 최근의 작품인 [Moonlight Driving/The Finest Line]은 보다 진일보한 연주와 다채로운 구성이 부각되는 앨범이다. 핑거링이 빠르면서도 음산한 사이먼 틸러(Simon Tiller)의 베이스 연주와 불길하게 파열하는 기타 노이즈, 여기에 릭 바우어의 색소폰과 키보드 연주까지 가세한 “Moonlight Driving”은 풍성하고 드라이브 감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한편, 징글쟁글한 백킹 기타와 릭 바우어의 만돌린 기타 연주에 친근한 멜로디를 조합한 “The Finest Line”은 R.E.M.을 연상시키고 있으며, 부드러운 포크 발라드 “Untethered”는 전작의 “A Calmer Moment”와 맥을 같이 하는 트랙이다. 그리고 엉뚱하게 등장하는 블루스 넘버인 “Delta Blues”는 제목 그대로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에 도전한 곡인데, 울먹거리는(whining) 덴질의 보컬과 끈적거리는 블루스 리듬이 웬만한 미국 거라지 블루스 밴드 못지 않은 구성진 필을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라이브 부틀렉 버전으로 녹음된 제목을 알 수 없는 2분 여의 히든 트랙도 재치 있는 마무리이다.

이 두 장의 소품을 통해 드러나는 리포멘의 음악은 사운드의 완성도와 뚜렷한 형식미로 평가되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이다. EP라는 형식적 한계도 있고 이들이 아직 자신들만의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틀어쥐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기저기 다양한 영역을 엿보며 자신들만의 것을 찾으려하는 무명 밴드 특유의 진지한 모색의 태도와 풋풋한 열정이 느껴진다. 때로는 출중한 사운드와 연주력으로 무장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인디 밴드들의 노련함보다 컬러 복사기로 제작된 조야한 앨범 커버와 공씨디에 담겨진 투박한 습작에 매료될 때가 있다. 인디 록은 완성과 결과보다는 형성과 과정의 미학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닐까. 리포멘의 성공을 조심스럽게 예견해보고도 싶지만 성공보다 값진 것은 이런 흔적들일지도 모른다. 20040804 | 장육 [email protected]

7/10

수록곡
[Save Yourself/Lauren Bacall](EP 3)
1. Save Yourself
2. Lauren Bacall
3. A Calmer Moment
4. Dive… Diver

[Moonlight Driving/The Finest Line](EP 4)
1. Moonlight Driving
2. The Finest Line
3. Untethered
4. Delta Blues
5. Hidden Track

관련 글
Various Artists [Sunset : False] 리뷰 – vol.6/no.3 [20040201]

관련 사이트
Repomen 공식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repomen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