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718071807-sister4

언니네 이발관 – 순간을 믿어요 – EMI, 2004

 

 

꿈의 팝송, 순간의 현실과 조우하다

‘밝다’, ‘시끄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적이다’. 언니네 이발관의 정규 4집 음반 [순간을 믿어요](2004)에 대한 감상은 이 세 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이들은 주류로 부상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감상은 결코 씁쓸하지 않다. 음반의 첫 곡 “바람이 부는대로”의 흥겨운 백비트와 퍼즈(fuzz) 톤의 소란스런 기타, 한 점 망설임 없는 장조의 멜로디 라인은 이들의 지향이 결코 소수의 열광적 팬들을 향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가 못마땅한 이들은 “나에겐 내일이 없어 / 그저 봄 하루를 살다가 / 끝내 연기처럼 사라져”라는 가사에서 어떻게든 위안을 찾아보려 하겠지만, 곧 이어지는 “다시 돌아온다 해도 / 다시 돌아올지라도 / 노래를 멈추진 마”에선 그마저도 수월하지 않다. “태양 없이”의 스산한 기타 스트로킹과 (뽕짝을 연상케 하는) 단조의 멜로디라인이 만들어내는 비감 또한 ‘통속’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첫 두곡의 변화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음반의 변화를 확실히 각인시키는 ‘원투 스트라이크’로서 손색이 없다.

이러한 변화는 음반의 사운드 프로덕션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전 언니네 이발관의 사운드가 어딘가 빈 듯한 ‘울림’을 주는 것이었다면, [순간을 믿어요]는 빈 틈 없이 들어찬 고밀도의 ‘로큰롤’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순간을 믿어요”와 “#1” 등의 밝은 트랙에서는 물론이고, “사라지지 않는 슬픔과 함께 난 조금씩”, “깊은 한숨” 같은 내성적인 곡들에서조차도 연주는 커다란 볼륨과 비트를 유지한다. 정무진(베이스)과 전대정(드럼)이 만들어내는 리듬파트는 탄력이 넘치며, 이능룡(기타)의 (‘징글쟁글’ 사운드부터 헤비 메틀 풍의 애드립까지 섭렵하는) 플레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견고하게 음반의 사운드를 틀어잡는다. 이석원의 보컬 또한 이전의 소심한(혹자에 따르면 ‘야비한’) 가성보다는 내지르는 성격이 두드러진다. 전반적으로 이렇듯 ‘외향적’인 각각의 파트는 [순간을 믿어요]의 ‘긍정적’이고 ‘확고한’ 성격을 만들어간다. 가사 또한 은유나 암시보다는 직접적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간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이 (주로 실연의 상처를 통한)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상실을 다루었다면, [순간을 믿어요]는 분명한 대상을 마주보며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풀어가고 있다.

하지만 [순간을 믿어요]가 일관된 만족을 선사하는 음반은 아닌 것 같다. 클래식 기타 교본에 빠짐없이 실려 있는 “로망스(Romance)”를 연상시키는 연주곡 “셋넷”이나 “해바라기”는 조금 진부하고, [후일담](1998)의 수록곡을 가볍게 리메이크한 “꿈의 팝송”은 원곡의 아우라를 깎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팬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곡 “천국의 나날들”의 후반부 나레이션은 조금 낯간지럽기까지 하다. 이전 음반들의 예민하고 복잡한 감상이 비교적 직설적인 화법으로 바뀐 점 또한 누군가의 입장에선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이런 불만은 음반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지나치게 ‘착해졌다’는 점에 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순간을 믿어요”와 (마이 앤트 메리(My Aunt Mary)의 정순용이 메인 보컬을 맡은) “키다리 아저씨”의 청명한(동요 풍의) 멜로디는 기존 팬들의 입장에서도 한 번 마음먹고 받아들여볼 만한 변화일 것이다.

언니네 이발관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주주클럽 같은 밴드가 되고 싶다”고 했던 일화를 떠올려 보더라도) 주류 진입에 대한 구체적인 욕망을 가진 밴드였다. 그래서 이들의 음악은 결성 당시부터 인디 씬의 일반적인 문제의식(“우리의 음악은 주류와 다른, 주류보다 뛰어난 음악이다”)과는 방향을 달리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호불호의 문제를 떠나 충분히 존중할 만한 밴드의 고유한 정체성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놀랍도록 주류 친화적인 [순간을 믿어요]의 사운드는 그간 밴드의 지향이 본격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음반을 언니네 이발관의 경력에서 정점에 위치할 음반이라 말 할 수는 없지만(어쩌면 가장 실망스러운 작업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동안 가요계에서 이만큼 ‘제대로 된’ 상업 음반이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바라건데, [순간을 믿어요]가 부디 밴드가 원하는 만큼의 상업적인 성과를 거두어 들이기를 기대해본다. 언니네 이발관은 충분한 자격이 있는 밴드이기 때문이다. 20040718 | 김태서 [email protected]

6/10

수록곡
1. 바람이 부는대로
2. 태양 없이
3. 셋넷
4. 꿈의 팝송
5. 순간을 믿어요
6. 사라지지 않는 슬픔과 함께 난 조금씩
7. #1
8. 깊은 한숨
9. 키다리 아저씨
10. 해바라기
11. 천국의 나날들

관련 글
언니네 이발관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 리뷰 vol.2/no.22 [20001116]
언니네 이발관 2집 [후일담] 리뷰 vol.2/no.22 [20001116]
언니네 이발관 3집 [꿈의 팝송] 리뷰 vol.4/no.21 [20021101]
줄리아하트 1집 [가벼운 숨결] 리뷰 vol.4/no.3 [20020201]
데이트리퍼 1집 [수집가] 리뷰 vol.3/no.3 [20010201]

관련 사이트
언니네 이발관 공식 사이트
http://www.shakeyourbodymoveyourbod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