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 Doe, [How To Remix The Black Album] Ales Music(라이선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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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ack Album] 리믹스, 지금까지의 이야기

샘플링(sampling)과 컷앤페이스트(cut’n’paste)가 오랜 세월 힙합 음악의 핵심 작법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최근의 갑작스런 힙합 리믹스(remix) 열풍은 다소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제이 지(Jay-Z)의 ‘공식 은퇴앨범’ [The Black Album](2003)을 소재 혹은 주제로 지난 5-6개월간 전개된 미국 힙합 공동체 안팎의 ‘리믹스 전쟁’은 가히 점입가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제이 지에 앞서 이 이변에 가까운 리믹스 홍수의 물꼬를 터준 이는 공교롭게도 수년간 그와 뉴욕 주류 힙합의 아성을 다투어온 나스(Nas)였다. 요즘 한참 잘 나가는 프로듀서 나인쓰 원더(9th Wonder)가 나스의 [God’s Son]을 멋지게 재해석한 [God’s Stepson]을 작년에 발매한 후, 소울 수프림스(Soul Supremes)가 [Stillmatic]을 새롭게 포장한 [Soulmatic]으로 재빨리 뒤를 따랐다. 한편 뉴욕 인디 힙합 마왕 엠에프 둠(MF Doom)은 자신의 예전 비트들과 나스의 목소리를 절묘하게 엮어낸 [Nastradoomus]로 인디 힙합 디제이/프로듀서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자극하기도 했다.

작년 하반기에 제이 지는 [The Black Album]으로 은퇴선언을 한 직후 태연스레 이 앨범의 아카펠라(a cappella) 버전 음반을 세상에 내놓으며 노골적으로 이 리믹스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이제 비트만 준비된다면 누구나 제이 지의 탁월한 랩에 살을 붙여 마음껏 리믹스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것이다.

디제이 엘티 댄(DJ Lt. Dan)이 먼저 불을 지폈다. 리믹스 전문 디제이답게 그의 [The Black Remixes]는 힙합 팬들 사이에 적잖은 환영을 받았으며, 뒤이어 ‘변색된’ 블랙 앨범 리믹스 작업들이 줄을 이었다. 디제이 재지 제프(DJ Jazzy Jeff)의 후광을 등에 업은 실력파 프로듀서 케브 브라운(Kev Brown)의 [The Brown Album]과 노(Kno)의 [The White Album]이 준수한 믹싱 솜씨로 귀를 번쩍 트이게 했다면, 블랙 제이스(The Black Jays)의 [The Black Jays Album]은 때론 제이 지의 목소리를 망칠 정도의 실망스런 결과물로 판명 나기도 했다.

블랙 앨범 리믹스 열풍은 올 봄에 이르러 더 이상 힙합 공동체 내에 이미 이름이 알려진 디제이/프로듀서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닌 듯하다. 아마도 디제이 댄져 마우스(DJ Danger Mouse)의 [The Grey Album]을 둘러싼 지난 2월의 ‘그레이 튜즈데이(Grey Tuesday)’ 사건은 이 리믹스 현상을 보다 광범위한 대중에게 알리고 다양한 수준의 뮤지션들이 리믹스 경쟁에 참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비틀즈(The Beatles)의 고전 [The White Album]에서 추출한 샘플을 무단 사용했다는 이유로 대형 음반기업 EMI가 이 앨범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이에 맞서 다운힐 배틀(Downhill Battle) 같은 음악 저작권 관련 운동 조직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반격을 가하는 과정은 블랙 앨범 리믹스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았다.

지금 블랙 앨범 리믹스는 부틀렉 형태까지 포함해 시중에 떠도는 앨범만 20여 종에 이른다. [The Black Album]에 직접 참여했던 나인쓰 원더나 피트 록(Pete Rock), 폴 나이스(Paul Nice) 같은 지명도 높은 프로듀서들이 뒤늦게 이 리믹스 경쟁 대열에 끼어 들었을 뿐 아니라, 블랙 앨범 리믹스 작업만으로 힙합 팬들에게 새로이 이름을 알린 무명의 디제이/프로듀서 지망생도 상당수다. 가령 [Hot Buttered Soul Remix]를 내놓은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학생 엠씨 스콧디(MC ScottD)가 후자에 속할 것이다.

한편으로 RJD2의 비트와 제이 지의 목소리를 버무린 바주카 조(Bazooka Zoe)의 [The Silver Album], 하드록 밴드 메탈리카(Metalica)의 동명앨범에서 노골적으로 사운드를 빌린 칩 콜로뉴(Cheap Cologne)의 [The Double Black Album], 록그룹 위저(Weezer)의 매력을 녹여낸 제이 지저(Jay-Zeezer)의 [The Black And Blue Album]은 그 발상만으로도 흥미 만점의 음반들이다. 비록 시디 포맷은 아니지만, 인터넷과 파일공유 프로그램을 부유하는 엠피쓰리(mp3) 리믹스 ‘작품’들도 부지기수다. 뉴저지 출신 디제이/프로듀서 일마인드(Illmind)는 자신의 [The Black And Tan Album]을 아예 인터넷으로만 배급하면서 블랙 앨범 리믹스 매니아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대표적인 경우였다.

How To Remix [The Black Album]?

이쯤 되면 블랙 앨범 리믹스 경연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듯 싶다. 그래서 존 도(Jon Doe)의 [How To Remix The Black Album]은 어쩌면 블랙 앨범 리믹스 수집광들에겐 그저 또 하나의 컬렉션 아이템 정도로만 간주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음악 이력과 이 앨범의 내용물을 꼼꼼히 살펴본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듣지도 않고 시디케이스나 하드디스크 속에 묻어 두기엔 이 음반은 너무 아까운 수작이라는 말이다.

켄터키주 출신으로 애틀랜타에서 활동중인 디제이/프로듀서 존 도는 케브 브라운, 나인쓰 원더, 댄져 마우스, 피트 록 같은 이들과 견주어본다면 그다지 지명도 높은 뮤지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블랙 앨범 리믹스 열풍에 무임승차한 여타의 디제이/프로듀서 지망생들과는 분명 격을 달리하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힙합과는 전혀 거리가 먼 듯한 이 중서부 출신 백인 청년은 웨스턴 켄터키 대학교(Western Kentucky University) 학생 시절 라디오 쇼 디제이로 활동하며 힙합 프로덕션과 디제잉 기술을 연마했으며, 일찌감치 지역 인디씬의 간판급 흑인 음악 디제이/프로듀서로 명성을 쌓았다.

켄터키주와 인근이 힙합 관련작업을 진행하기엔 지역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존 도는 2000년 여름 드디어 남부 흑인 음악의 메카 애틀랜타로 활동 근거지롤 옮기게 되는데, 실력파 인디 힙합 패거리 프로페틱스(Prophetix)에 합류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2002년 프로페틱스의 정규 데뷔앨범 [High Risk]을 프로듀스하면서 지역 인디 힙합씬에 이름을 등록한 그는 이듬해에 엠에프 둠, 제이 샌드(J Sands), 엠에프 그림(MF Grimm) 등 실력파 엠씨들을 총 망라한 [Meet Jon Doe]라는 솔로 프로젝트 앨범을 통해 마침내 미국 남부 인디 힙합의 새로운 실력파 디제이/프로듀서로 자리 매김 하게된다.

이미 상당수의 출중한 디제이/프로듀서들이 블랙 앨범 리믹스 콘테스트에 뛰어들었음을 상기한다면, 사실 존 도가 뒤늦게 [How To Remix The Black Album]으로 이 판에 뛰어든 것은 어쩌면 도박으로 간주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Meet Jon Doe]를 통해 그의 빼어난 비트 메이킹 능력을 이미 접한 이들 대부분은 쉽게 이 도박의 성공을 점칠 것이다. 실제로 존 도는 이 리믹스 앨범의 제목에서부터 대뜸 자신감을 드러낸다. 기존 블랙 앨범 리믹스 음반들이 대부분 ‘변색'([The White Album], [The Grey Album], [The Brown Album], [The Blue Album]), 혹은 변칙([The Blackest Album], [The Black And Tan Album], [The Double Black Album])을 강조한 앨범 제목을 내세운 것과 달리, 그는 아예 “블랙 앨범을 리믹스하는 방법”이라는 직접적이고 ‘건방진’ 제목으로 청자들을 자극한다. 마치 지금까지 진행된 복잡한 판을 이 앨범 한 장으로 뒤집거나 정리해버리겠다는 투다.

존 도의 야심과 자신감은 그가 [The Black Album] 전곡을 리믹스해서 수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노의 [The White Album]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블랙 앨범 리믹스 작업들은 원판에서 특정한 곡들을 선별하거나 순서를 바꾸어 리믹스한 음반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예 14곡 전곡을 순서대로 모두 리믹스해 고스란히 담는 배짱을 과시한다.

제이 지의 목소리를 치장하는 존 도의 사운드 역시 자존심으로 가득하다. 비틀즈([The Grey Album])를 비롯해 메탈리카([The Double Black Album]), RJD2([The Silver Album]), 위저([The Black And Blue Album]), 페이브먼트(Pavement)([The Slack Album]) 등 익히 알려진 특정 뮤지션의 사운드를 샘플링해 제이 지의 랩과 짜깁기하는 기존 트렌드를 거부한 채, 그는 숨겨진 고전 훵크/소울 샘플과 자신만의 오리지널 비트로 과감히 승부 한다. [The Funky 16 Corners](2001) 앨범으로 익히 알려진 ‘훵크 감별사’ 에곤(Egon)과 함께 예전에 존 도가 숨겨진 훵크 고전 발굴에 헌신했음을 주지한다면, 이 리믹스 앨범의 사운드 프로덕션 방향은 대충 가늠할 수 있으리라.

역시 자신의 오리지널 비트로 리믹스 작업을 진행했던 케브 브라운의 [The Brown Album]이 원판의 향수에 기댄 사운드를 세련된 스튜디오 기계 음으로 변모시켰다면, 존 도의 리믹스 앨범은 ‘복고’와 ‘안정’에 주안점을 둔 프로덕션에 치중한 듯 하다. 물론 이 앨범이 [The Black Album] 원본의 방법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져스트 블레이즈(Just Blaze)와 카니에 웨스트(Kanye West)의 소울 향취는 보다 훵키하게 정련되고(“December 4th”, “Allure”), 역으로 넵튠스(the Neptunes)의 변칙적인 최신 소울은 훨씬 복고적으로 변모한다(“Changing Clothes”). 한편 존 도의 비트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라기보다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쪽에 가깝다. 덕분에 그의 비트는 제이 지의 목소리를 결코 짓누르지 않으며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역할에 보다 충실하다.

이 앨범이 기존 블랙 앨범 리믹스 작업과 변별되는 또 다른 장점은 풍부한 ‘부록’에 있다. 제이 지가 나스를 까발려 널리 알려진 “Super Ugly”의 리믹스를 추가한 것 외에, 존 도는 아예 보너스 디스크를 한 장 더 담아 더블 시디를 제작했다. 이 두 번째 시디는 자신이 리믹스한 전곡의 인스트루멘탈과 별도의 오리지널 비트들로 꽉 채워져 있다. 앨범 제목에서 이미 암시한 것처럼, 그는 이 보너스 디스크가 청자들이 직접 블랙 앨범 리믹스 작업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눈치다.

작년 말 이후 반년 가까이 지속된 제이 지의 [The Black Album] 리믹스 열풍은 이제 본토에서는 어느 정도 정리단계로 넘어간 듯 하다. 하지만, 기존 디제이/프로듀서들의 리믹스 경쟁이 거의 마무리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터넷과 파일공유 프로그램들을 통해 디제이 지망생들은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에게 블랙 앨범 리믹스 작업을 지원해주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성행하고 있다. 비록 늦긴 했지만 존 도의 [How To Remix The Black Album]이 블랙 앨범 리믹스 열풍을 국내에 처음 공식 소개하는 첨병 역할을 했으면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이다. 더불어, 이 리믹스 앨범이 원작에 대한 참신한 재해석을 제공할 뿐 아니라, 국내 힙합 매니아와 디제이 지망생들을 위해 [The Black Album]의 진정한 리믹스 개론 역할까지 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20040715 | 양재영 [email protected]

* 알레스 뮤직(Ales Music)의 라이센스 발매반 해설지에 수록된 글입니다.

수록곡
Disc 1
1. Interlude
2. December 4th
3. What More Can I Say
4. Encore
5. Change Clothes
6. Dirt Off Your Shoulder (Red Clay Remix)(feat. Eddie Meeks Of Prophetix)
7. Threat
8. Moment Of Clarity
9. 99 Problems (TM Outta’ Here)
10. Interlude
11. Justify My Thug
12. Lucifer
13. Allure
14. My 1st Song
15. Super Ugly

Disc 2
“How To Make Black Album Remix Instrumentals”

관련 글
Jay-Z [The Blueprint] 리뷰 – vol.3/no.21 [20011101]

관련 사이트
Jon Doe의 공식 홈페이지
http://www.meetjondoe.com
Jone Doe가 소속된 레이블 Day By Day Entertainment의 공식 사이트
http://www.daybydaye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