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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is Morissette – So Called Chaos – Maverick, 2004

 

 

주류 여성 로커의 제자리걸음

미국 데뷔음반 [Jagged Little Pill](1995)의 폭발적인 상업적 성공 이후, 앨러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의 성공 케이스는 하나의 ‘전형’으로 주류 시스템 내부에 정착하게 된다. 가능성 있어 보이는 (10대의) 여성 가수를 섭외해서 거물 작곡가(혹은 프로듀서)의 ‘히트 예감’ 노래를 부르게 한다(여기서 중요한 점은 ‘송라이터’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한 두곡 정도의 작곡과 전곡의 작사는 가수 본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음반을 한 두장 정도 발매한 이후, 거물 작곡가는 다 자란 가수의 ‘독립선언'(하지만 이것이 가수 본인의 의사인지, 아니면 다음 주자에게 투자를 집중하기 위한 음반사의 전략인지는 모호하다)과 함께 그녀(들)의 음악에서 밀려난다. 이제는 ‘음악으로 승부하겠다’는 여가수의 당찬 포부가 울려 퍼질 차례다. 앨러니스 모리셋의 [Under Rug Swept](2002)가 바로 그런 음반이었고, 미셸 브란치(Michelle Branch)와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 등이 뒤를 이어(을) 이러한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남자 가수에서 그 예를 찾아보라면 가장 근접한 경우로 핸슨(Hanson)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경우, 그 거물 작곡가가 손을 떼면서부터 음악이 본격적으로 재미없어 진다는 사실이다. 2002년 발매되어 앨러니스 모리셋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던 [Under Rug Swept]의 경우, 이전까지 크레딧에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던 글렌 발라드(Glen Ballard)의 부재가 치명적으로 드러난 음반이었다. 여기서 드러난 그의 부재는 다름이 아니라, 앨러니스 모리셋 본인의 작곡 스타일이 ‘글렌 발라드 표’임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유사성을 띄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또한 시기적으로도 앨러니스 모리셋의 그간 주 소비층이었던 하이틴 소녀들이, 떡진 머리의 그런지 스타일을 표방하던 도발적인 여성 로커보다는 탱크탑을 입고 관능적인 춤을 추는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류의 티니밥(teenybop) 스타들에게 매료되어 있던 때에 여러모로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경기를 펼친 셈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약 2년 만에 발매한 새 음반 [So Called Chaos](2004) 역시 앨러니스 모리셋이 처한 난감한 상황을 타개할 만한 별다른 전략을 갖지 못한 듯하다. 음반의 첫 곡 “Eight Easy Steps”는 작년 한 해 팝 계를 풍미했던 ‘중동 선율’을 차용한 앨러니스 모리셋 표 로큰롤 트랙이지만, 이전과 비교할 때 현저한 에너지의 감소를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도 앨러니스 모리셋의 질주하는 듯한 보컬의 느낌을 살린 “Excused”와 “Knees of My Bees”, 둔중하게 찍어 누르는 사운드의 “So Called Chaos” 등이 음반의 ‘무거운’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나머지 절반은 그간 앨러니스 모리셋의 음반에서 들어왔고, 들을 수 있기를 기대했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약간은 뻔한 발라드 트랙들로 채워져 있다.

앨러니스 모리셋 음악의 변천사는 도발적인 로큰롤 트랙들의 비중을 줄이며 차분하고 내면적인 곡의 비중을 늘려오는 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최근 결과물로서 [So Called Chaos]의 발라드 넘버들은 조금 식상하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다. 물론 싱글 커트를 점치게 할 만한 트랙들은 여전히 음반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싱글로 커트되었던 “Everything”의 루핑된 드럼 사운드나 명징한 멜로디 감각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Doth I Protest Too Much”, 차분하게 읊조리는 소품 “This Grudge” 등은 나름의 미덕을 갖춘 곡들이다. 하지만 음반 전체를 통해 지나치게 비슷한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수록곡들 간의 개별성이 드러나지 않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Under Rug Swept]가 글렌 발라드의 영향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작곡 스타일을 드러냄과 동시에, 글렌 발라드 참여시의 매끄러움과 임팩트는 상실한 음반이었다면, [So Called Chaos] 역시 전작에서 드러난 문제점들로부터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음반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상업적인 음악을 버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별 욕심 없이 차분하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변호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심심함’과 ‘성숙함’은 명백히 다른 얘기이다. 과연 이 음반이 이전 공격적이고 도발적이었던 “You Oughta Know”나 “You Learn”, 주류적인 팝 감각으로 가득 차 있던 “Thank U”에 비해 얼마만큼의 대중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앨러니스 모리셋의 썩 만족스럽지 못했던 ‘독립선언’이 앞으로 어떤 결실을 맺게 될 지에 대해서도 더 이상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20040527 | 김태서 [email protected]

4/10

* 이 글은 벅스웹진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수록곡
1. Eight Easy Steps
2. Out Is Through
3. Excuses
4. Doth I Protest Too Much
5. Knees of My Bees
6. Not All Me
7. So Called Chaos
8. This Grudge
9. Spineless
10.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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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is Morissette [Under Rug Swept] 리뷰 – vol.4/no.6 [20020316]

관련 사이트
Alanis Morissette 공식 사이트
http://www.alanis.com
Alanis Morissette 비공식 사이트
http://www.alanismorissett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