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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N.EX.T) – The Return of N.EX.T Part III:개한민국 – Bigbang/Sony Korea, 2004

 

 

분노보다는 공포, 혹은 한국 더블앨범의 어떤 경향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이 글을 쓰는 사람이 기억하는 최초의 사례는 이승환의 [Egg](2001)이다) 최근 한국에서 발표되는 더블 앨범은 ‘아티스트의 자의식’과 ‘시장의 논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분열적인 야심을 채우려고 한다. 이는 한국의 ‘음악성있는’ 뮤지션들이 종종 보여주던 ‘잡화점식 구성'(심각한 ‘록 & 오케스트라’ 하나, 서정적인 트립합 하나, 가벼운 보싸 노바 하나, 등등)의 ‘Expanded Version’일지도 모르지만 CD 한장을 뮤지션으로서의 야심에 온전히 바친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올해 더블 앨범을 낸 두 명의 뮤지션, 엄정화와 조 PD는 모두 CD 1에 ‘자신이 하고싶은 말/음악’을, CD 2에는 ‘대중이 좋아할만한 음악’을 담았다. 이들의 시도는 지나치거나 모자란 결과를 낳았다. 이들은 CD 1을 최대한 어렵고 재미없고 부담스럽게 만들려 애썼고, CD 2에서는 CD 1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방만하게 해소했다. 여기에 ‘재미있으면서도 충분히 의미심장한 음악’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어쨌든 상업적 측면에서 엄정화의 시도는 불발에 그쳤지만 조 PD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인순이의 인기에 재차 불을 지폈)다.

그리고 이제 넥스트(N.EX.T)다. 1997년 [Lazenca: A Space Rock Opera]를 발매한 뒤 넥스트는 해산했고, 밴드의 리더 신해철은 테크노와 인더스트리얼, 게임 음악에 열중했다. 밴드에 맛들이면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이 사실인지, 다시는 안하겠다던 밴드 형태로 내놓은 [Theatre Wittgenstein: Part 1, A Man’s Life](2000)는 홈레코딩의 퀄리티에 대한 짧은 논쟁을 남긴 채 잊혀졌다. 재작년부터였나, 신해철이 비트겐슈타인 시절의 멤버를 포함한 새로운 넥스트를 결성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이제 그 결과물이 두 장의 CD로 나왔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들을 위한 음악’으로 나뉘어서.

그럼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음악이란 무엇일까. 넥스트의 경우는 헤비 메틀이다. 정확히 말하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 리스너들 사이에서 전성기를 맞았던 ‘프로그레시브한’ 헤비 메틀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음반 속지에 적힌 제작 과정과 이펙트에 대한 세세한 설명 또한 이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대변한다. “옴 가라지야 사바하”라는 만트라를 중얼거리는 신해철의 오버더빙된 목소리에 더하여 장대한 기타 솔로와 쉴새없이 달리는 드럼, 음산한 효과음들이 청자를 짓누르는 “序曲: 現世地獄”은 뒤를 잇는 “개한민국 (Clean Ver.)”, “감염 Infested”과 더불어 일종의 ‘3부작 대하 서사시’를 이룬다. 이는 [The Return of N.EX.T Part I: The Being](1994), [The Return of N.EX.T Part II: The World](1996)와 같은 출발이다.

아쉽게도 셋 중 제일 나은 것은 [Part II]이다. 신해철의 ‘정직한’ 키보드 인트로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커다란 변화지만 이 세 곡에는 [Part II]의 “세계의 문/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Komerican Blues”에 존재하던 활기와 완급조절이 없다. 시종일관 미드 템포로 진행되는 이 곡들을 듣다 보면 기타 디스토션과 각종의 일렉트로닉 효과음들이 빚어내는 혼란으로 인해 멀미약을 찾고 싶어진다. 이런 과시적인 사운드,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무절제하게 방출하는 듯한 사운드는 메틀 음반이 들려줄 수 있는 헤비하고 꽉 찬 사운드의 안좋은 예 중 하나일 것이다.

CD 1의 다른 곡들도 메틀 특유의 강박적 공격성을 잘못 해석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롭 좀비(Rob Zombie) 풍의 인더스트리얼 “Anarchy In The Net”과 메탈리카의 “One”을 연상시키는 더블베이스 드러밍이 중동풍 찬트와 섞여드는 랩 메틀 “Dear American (Clean Ver.)”도 어지럽기는 매한가지다. 무엇보다 CD 1의 곡들에는 밴드가 내세우는 두텁고 공격적인 사운드 뭉치를 받쳐주는 구성과 리듬감이 없다. 그래서 50분 남짓한 CD 1에 대한 인상은 ‘까맣고 사나운, 어지럽게 배회하는 그 무엇’이다. 밴드의 자신감에 걸맞는 뛰어난 ‘저예산 사운드’가 돋보인다는 점과 ‘밴드의 음악’임이 전작들에 비해 분명히 느껴진다는 점 등의 미덕은 곡 자체의 문제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한다. 요약하면, CD 1은 조PD와 엄정화가 저지른 실패를 빡세게 반복한다.

그래서 CD 2가 어떤 이들에게는 반갑게, 어떤 이들에게는 심심하게 들리는 것은 CD 1에서 ‘해방’된 것에 대한 반작용의 다른 표현이다. 발라드, 훵크, 펑크 등 다양한 스타일을 건드리는 것에 대한 불만만 없다면 CD 2는 1에 비해 듣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리고 그런 만큼 밴드의 음악이라기보다는 신해철의 솔로 음반에 더 가깝게 들린다. “I Am Ssang”이나 “Devin’s Boogie”처럼 다른 멤버들이 주가 되는 곡이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Satan’s Bride”나 “Growing Up”같은 곡들에 반가워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이 넥스트의 곡이라서 반가운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다. ‘대중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접할 때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대중’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지곤 하는데, 이 음반의 CD 2 역시 그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신해철 특유의 ‘사회비판적 메시지’는 [Part I], [Part II],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넥스트의 데뷔음반 [Home](1992)에 비해 표현의 강도가 높아진 점을 제외하고는 대동소이하다. 이는 그의 인식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당시 제기했던 문제들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음반의 가사들마저 ‘그때 그 시절’의 추상적 과격함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Laura”에서 드러내는 직업여성에 대한 관점은 음악뿐 아니라 내용마저 1980년대를 좇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말이 거칠다고 해서 구체적인 표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좆같은 세계의 좆같은 부조리에 대한 좆같은 고뇌와 좆같은 존재의 좆같이 풀리지 않는 좆같이 영원한 아이러니’란 말이 구체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여전히 신해철은 감당못할 얘기를 한꺼번에 한다. “아버지와 나”에서 들려주던 예민한 감성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걸까.

결국 신해철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음반은 [정글 스토리] 사운드트랙(1996)과 넥스트의 [Part II]가 될 것 같다([노땐스 골든힛트 일집](1996)도 좋지만 그것은 윤상과의 공동작업이다). 그러나 음반의 제목만큼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아니면 언제나 시의적절하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세계를 최악의 것으로 상상하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버릇 중 하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세계가 정말 최악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요즘들어 점점 짙어진다. 비꼴 여유도 없이 직설적으로 붙여버린 음반의 ‘펑크적’인 제목은 우리가 현재 품고 있는 감정의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분노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어떤 것. 20040620 | 최민우 [email protected]

4/10

수록곡
CD 1: The Book of War
1. 序曲: 現世地獄
2. 개한민국 (Clean Ver.)
3. 감염 Infested
4. Saving Private Jesus
5. <80’s Series 01> Anarchy In The Net
6. Dear American (Clean Ver.)
7. Generation Crush (Tired Mix)
8. 서울역 Seoul Station (Frat Mix)

CD 2: The Diary of a Soldier
1. Satan’s Bride (Full Bet Mix)
2. Growing Up
3. <80’s Series 02> Laura
4. I Am Ssang
5. 아들아, 정치만은 하지마
6. Devin’s Boogie (Live)
7. Satan’s Bride (Royal Albert Mix)
8. 힘을 내!
9. 남태평양 South Pacific

관련 글
비트겐슈타인 [Theatre Wittgenstein: Part 1, A Man’s Life] 리뷰 – vol.3/no.2 [20010116]

관련 사이트
신해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 홈페이지
http://www.ghoststat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