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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ous Artists – Music For Paul Auster – Pastel Music / Bon Music, 2004

 

 

정신적 삼림욕을 위한 성의있는 기획음반

지금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문학평론가가 아니고, 이 웹진도 문학비평 웹진이 아니다. 그래서 이 음반의 헌정 대상인 폴 오스터(Paul Auster)에 대해 길게 말할 처지는 못된다. 다만 그가 쓴 몇 권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읽을 때마다 늘 그가 미국보다는 유럽과 더 가까운 감수성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은 들었다.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과 로스 맥도널드(Ross McDonald),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하드보일드 탐정소설과 선문답같은 우화를 냉정하게 결합시키는 그의 스타일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핀천의 아카데믹함은 좀 더 대중적인 방식으로 변형되었지만). 어쨌든 주제넘은 짓은 여기까지.

이 음반이 ‘기획상품’이라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도자료를 인용하자면 “음악 및 나아가 문화 전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매니아들,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문학 매니아, 문학 뿐 아니라 모던락/모던팝 및 인디락/인디팝 및 재즈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을 넓히려는 사람들을 위한 기획상품이다. 음반에 실린 곡들이 신중하게 선정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위의 보도자료가 지칭하는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서건 ‘깐깐한’ 취향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곡들은 신중하게 선택된 것 같다. 재즈(티에리 랑 트리오(Thierry Lang Trio), 맬 월드론(Mal Waldron))와 슬로코어(트램(Tram), 로우(Low), 베드헤드(Bedhead))의 인상이 워낙 강력한 탓에 전체적으로 어둡고 나른한 분위기의 음반처럼 들리지만 라 부에나 비다(La Buena Vida)나 스페인(Spain), 마그네틱 필즈(Magnetic Fields), 블랙트로니카 뮤지션인 재지뇨(Jazzinho)의 곡들은 음반 중간중간마다 말랑한 공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나 아주레 레이(Azure Ray)나 페드로 더 라이온(Pedro The Lion) 같은 ‘영미권 인디 스타’들보다 개인적으로 더 반가운 이름은 두 번째 CD 끝에 ‘아닌 척’ 끼어 있는 옐로 키친(Yellow Kitchen)이다. 새 음반에 수록될 것으로 짐작되는 이 곡 “Three Swirling Stars”에서 옐로 키친은 자신들의 ‘명성’에 걸맞는 소리를 들려준다. 비인간적이고 몽환적인 효과음이 흐르는 가운데 가벼운 힙합 다운비트로 틀을 잡으면서 시작하는 이 곡은 중반부에서 갑작스러운 무드의 전환을 맞고,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바로 앞에서 꼼꼼히 세워두었던 음악적 틀을 천둥소리 샘플과 함께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음산한 앰비언트 잼 세션으로 곡을 맺는다. 온전한 평가는 음반이 나온 다음에 해야겠지만, 이 곡이 최소한 옐로 키친의 다음 음반을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음반의 기획의도가 ‘폴 오스터에 대한 헌정’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이 음반을 집어든 청자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음악과 소설이 특정한 대응관계를 이루기는 어렵다는 개인적인 판단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음반을 통해 문학과 음악 사이에 있는 공간에서 정신적 삼림욕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음반 표지의 ‘앰비언트한’ 그림 역시 도움이 될 것이다). 오스터의 소설 주인공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자아(自我)를 건 도박에 뛰어드는 것처럼 당신 역시 그냥 뛰어들기만 하면 된다. 어쨌든 이 음반을 듣는다고 해서 자아를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니까. 20040608 |  최민우 [email protected]

7/10

수록곡 
CD 1
1. A Star to My Father – Thierry Lang Trio
2. Forlorn Labour – Tram
3. No Lo Esperaba De Mi – La Buena Vida
4. La Chanson des Vieux Amants – Serge Forte Trio
5. Nobody Has To Know – Spain
6. Happy New Year – Arco
7. Vertigo – Jazzinho
8. Fade – Kathryn Williams
9. Blue Christmas – Low
10. Killjoy – The Cazrs
11. Forgotten Song – Geroge Skaroulis
12. The Present – Bedhead

CD 2
1. Voiture En Rouge – Black Heart Procession & Sobakken
2. A Thousand Years – Azure Ray
3. Progress – Pedro The Lion
4. Let Alone – Mal Waldron
5. Flower Four – Maximilian Hecker
6. La La La Song – Low
7. Smoke and Mirror (Remix) – Magnetic Fields
8. Oblivion – Hiroshi Ikematsu
9. Between the Bars – Elliott Smith
10. Three Swirling Stars – Yellow Kitchen
11. Anytime Soon – Rachel’s
12. Yunarthur, Part II – The Man

관련 사이트
파스텔뮤직 홈페이지
http://www.pastelmus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