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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ali – The Instinct – Jade Tree, 2003

 

 

격정을 절제하는 다중채색의 트리피 코어

2004년 ‘Plea For Peace’ 공연에 참여하는 밴드들은 모두들 인디 록 진영의 주목받는 신진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weiv]에서 소개된 아시안 아메리칸 밴드 이이(eE)와 작년에 수입음반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이모 코어(emo core) 밴드 커시브(Cursive)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국내 인디 록 팬들에겐 생소하다고 할 수 있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Richmond)에서 결성된 4인조 혼성 밴드 드날리(Denali) 역시 불분명한 발음의 밴드명만큼이나 낯선 팀인데(참고로 ‘드날리’는 알래스카 원주민의 하나인 아사바스칸(Athabascan)족이 알래스카에 있는 북아메리카 최고봉 맥킨리(McKinley) 산을 부르는 이름이라고 한다), 아시안 맨 레코드(Asian Man Records)와는 상관이 없는 제이드 트리(Jade Tree) 레이블 소속이며 멤버중에 아시아계가 속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 밴드들과의 연관도 없다. 라인업은 밴드의 프런트 우먼이자 보컬과 키보드, 기타를 맡고 있는 모라 데이비스(Maura Davis)와 베이스를 연주하는 그녀의 오빠 킬리 데이비스(Keeley Davis), 기타리스트 캐머런 디넌지오(Cameron DiNunzio), 드러머 조너던 풀러(Jonathan Fuller) 등 4명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이중 킬리 데이비스와 조너던 풀러는 버지니아 이모 코어 씬에 속한 밴드인 엔진 다운(Engine Down) 출신이다.

스파클홀스(Sparklehorse)의 마크 링코우스(Mark Linkous)가 프로듀싱을 맡고 연주에도 참여한 이들의 2002년 동명 타이틀 데뷔 앨범은 기본적으로 느린 비트와 마이너 키를 많이 쓰는 곡조, 암울하면서도 서정적인 보컬을 조합한 트립합 스타일에 가깝긴 했지만, 비트를 해체한 채 극단적인 리버브 노이즈를 배경으로 천상의 목소리가 마음껏 떠돌아다니는 드림 팝 부류의 트랙들도 혼재되어 있었다. 특히, 기억나는 트랙은 “Everybody Knows”로서 포티스헤드(Portishead)의 베쓰 기븐스(Beth Gibbons)처럼 처연하면서도 상처 입은 소녀의 목소리처럼 가녀린 모라 데이비스의 노래가 빛을 발하는 곡이다. 그밖에도 장중한 리버브 실험작 “Relief”, 피아노 아르페지오와 페이저 이펙트 기타의 이중주 “Function” 등이 인상적이었다.

한 해 지나 발표된 본작 [The Instinct]는 다소의 변화가 감지되는 앨범이다. 먼저 음반을 걸자마자 들려오는 “Hold Your Breath”의 다소 거친 기타 리프와 힘있는 드럼 비트는 사운드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조인 듯하다. 이번 앨범은 버지니아 이모 코어 씬의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기타 노이즈의 출력이 높아지고 한층 농후해진 이모 사운드로 선회하고 있다. 여기서 이모 코어라는 장르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음악적 이해가 필요한 초보자들이라면 이모코어의 조상인 허스커 두(Husker Du)나 마이너 쓰레트(Minor Threat)와 같은 1980년대 하드코어 펑크에서 출발하여 대표격 밴드인 푸가치(Fugazi)나 국내에도 상당히 팬이 많은 앳 더 드라이브 인(At The Drive In), 지미 이트 월드(Jimmy Eat World), 얼마 전 새 앨범 [Guilt Show]를 발표한 겟 업 키즈(The Get Up Kids) 등을 들어보면 될 것이다. 다만, 올해 초 서태지의 신보를 두고 ‘감성코어’라는 와닿지 않는 말로 직역된(굳이 번역한다면 ‘격정’코어 정도가 어떨까) 이 장르가 실은 그다지 나긋나긋하지 않은, 어떤 면에서 억눌린 내면의 폭발을 유도하는 거칠고 비타협적인 사운드에 가깝다는 점은 지적해둘 만하다(미국에서는 ‘의기소침한(depressed)’, 혹은 ‘크게 소리치는’이라는 뜻으로 ’emo하다’라는 신조어가 쓰이고 있다고도 한다).

페이드 인(fade-in) 되는 기타의 딜레이 이펙트가 인상적인 “Surface”는 후반부로 접어들어 디스토션과 피드백을 활용한 노이즈가 더욱 혼탁하게 휘몰아치면서 ‘이모’한 측면이 강화된 앨범의 색채를 대변한다. 이러한 특성은 후반부의 “Real Heat”나 “Normal Days” 등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나지만, 그렇게 과격하게 몰아붙이는 식보다는 최근 이모 코어 사운드의 특징인 기타 이펙트를 중심으로 한 다채로운 음향실험이 곳곳에 포진된다. 즉 “The Instinct”의 도입부와 “Do Something”에서 들려오는 인더스트리얼한 비트, 드림 팝 넘버 “Nullaby” 등은 감정의 격한 발산보다는 몽환과 침잠에 가깝다. 그리고 전작의 연장선상에서 전형적인 트립합 스타일을 구현하는 “Run Through”는 재즈 보컬의 영향을 받은 모라 데이비스의 화려하면서도 청아한 보컬이 부각되는 아름다운 곡이다.

드날리는 홈페이지를 통해 킬리 데이비스와 조너던 풀러가 그들의 밴드 엔진 다운의 새 앨범 제작을 위해 팀을 떠났고 새로운 세션 멤버들과 투어를 진행중임을 밝히고 있다. 드날리의 팬들에게 여동생에 대한 지속적인 성원을 당부하는 오빠의 뒷모습은 훈훈하지만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사운드 메이커를 잃은 모라 데이비스와 드날리의 앞날은 그리 밝지는 않아 보인다. 뭐, 그것은 알 수 없는 훗날에 관한 얘기일 테고, 보다 다채롭고 화려한 사운드를 가득 담은 [The Instinct]를 들으면서 미국 인디 록 씬의 최신 경향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지금 당장의 즐거움일 것이다. 20040416 | 장육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Hold Your Breath
2. Surface
3. Run Through
4. The Instinct
5. Do Something
6. Real Heat
7. Nullaby
8. Normal Days
9. We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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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Denali 공식 사이트
http://denalimusic.com
Jade Tree 레이블 공식 사이트
http://www.jadetree.com
‘Plea For Peace’ 투어 홈페이지
http://www.pleaforpeace.com
마이크 박 홈페이지
http://www.mikeparkmusic.com
아시안 맨 레코드사 홈페이지
http://www.asianmanrecords.com
칭키스 홈페이지
http://www.thechinke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