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마이크 박과 얘기를 나눈 건 사실 작년 여름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를 가게 된 길에 그곳에서 자동차로 대략 40여분 정도 떨어진 사우쓰 베이(South Bay)의 작은 전원 도시 로스 가토스(Los Gatos)에 있는 아시안 맨 레코드사의 ‘본부’에 들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메일을 통해 미리 접촉한 마이크는 흔쾌히 인터뷰 신청을 응낙했고, 부모님 집의 차고를 뜯어고쳐 만든 아시안 맨의 집무실 및 창고 건물에서 대략 한시간여 동안 친절하게 질문에 응해 주었다. 그걸 근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싣는 것은 순전히 필자의 게으름 탓이다. 독자들에게는 인터뷰가 행해진 시점이 2003년임을 염두에 둘 것을 당부드린다.

20040418095115-mikepark1

아시안 맨 레코드사가 입주해 있는 차고에서, 마이크 박과 그의 아버지.

한국의 추억들

[weiv]: 신상 정보를 좀 캐묻는 걸로 시작해 보죠. 미국에서 태어난 건가요?
마이크: 서울서 났어요. 생후 4개월만에 이곳으로 왔죠. 너무 어려서 한국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고.
[weiv]: 그러면 다 크고 나서야 한국에 돌아가 본 건가요?
마이크: 여섯 살 때 쯤엔가, 여름에 한번 가족과 함께 휴가차 간적이 있어요. 그리고 나선 한동안 못 가봤다가 다 커서 가게 됐죠. 2001년에 두 차례.
[weiv]: 그게 아마 순회공연차였죠? 2001년에 일본에 갔다가…
마이크: 일본엔 여러 차례 갔어요. 한 일곱 번쯤. 하지만 한국 간 건 그와는 별개였구요. 순회공연 자체가 별개여서, 미국에서 곧장 한국으로 날아갔어요.
[weiv]: 한국에서 공연을 가졌나요? 록 페스티벌 같은 데서?
마이크: 부산에서 한 번, 서울서 두 번. 그렇게 따로따로 두 차례요. 부산에서만 공연하고 여기로 돌아왔다가, 다시 서울 가서 했지요. 부산에서 한 건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이었고, 서울에서는 그냥 일반 공연이었어요… 클럽에서 했는데, 이름은 잊어버렸네요. 한국 레이블을 통해서 음반도 하나 냈지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편집자 주: 브루스 리 밴드the Bruce Lee Band 이름으로 2001년 발매된 앨범 [Peace & Unity]. 2004년 초에 나온 영화 [목포는 항구다]의 사운드트랙 음반에도 마이크 박의 곡들이 대거 수록되었다)
[weiv]: 한국의 대중매체 계통에 있는 사람들하고 접촉을 별로 못해서 그런 건가요?
마이크: 인터뷰는 엄청 많이 했어요. 라디오, 신문, 여러 잡지들… 거기 있는 동안 아마 20번은 했을 거예요. 한국말을 못하니까 꽤 곤란했고, 그 때문에 속이 좀 상했죠(웃음).
[weiv]: 한국말을 잘 하리라고 사람들이 기대했나 보죠?
마이크: 그런 건 아니고, 한국사람인데 말을 못하니 좀 창피했어요. 한국말을 배웠어야 했던 건데.
[weiv]: (Seam의) 박수영도 한국말 잘 못하던데요, 뭘.
마이크: 그래도 저보단 나아요(웃음). 하여간 배워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어요.
[weiv]: 일본에 일곱 번이나 갔다오고 또 거기서 공연하는 게 즐거웠다고 회고했는데, 스카가 일본에서 그렇게 인기가 좋았나요?
마이크: 여전히 인기 좋죠. 많이 달라요. 한국과 일본의 음악판은. 그래서 꽤 실망도 했죠. 한국은 내 나란데, 왜 음악판은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큰걸까 하구요. 제 생각엔 그건 군복무 때문이 아닐까 해요. 밴드를 시작하더라도 군대에 가야 하니 계속할 수 없는 거죠.

스카에 빠지다: 투톤 운동(Two-tone movement)과 피쉬본(Fishbone)

[weiv]: 좋아요, 다시 어린 시절 및 성장기로 돌아가서. 부모님과 직계 가족만 이민온 건가요, 아니면 다른 친척들도 같이?
마이크: 우리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몇몇 고모 삼촌들도 같이 왔지요. 대부분 개인 사업을 시작했어요, 힘든 일들이었죠… 일단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가, 결국은 이곳 사우쓰 베이로 옮겨왔죠.
[weiv]: 아직도 이곳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다 큰 자식이 부모와 함께 사는 걸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미국에서 그것 때문에 놀림감이 되진 않았는지…
마이크: 사실은 막 이사 나갔어요(웃음). 여기서 한 15마일 떨어진 산호세 다운타운의 아파트로요. 하지만 이곳엔 여전히 매일 와서 일하니까, 여기서 살 때나 별로 다르게 느껴지진 않네요.
[weiv]: 기타와 색소폰을 연주하는 건 익히 알고 있고, 피아노도 치나요?
마이크: 아주 조금요. 음악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기본 피아노 정도죠. 대학에서 전공이 음악이었으니까, 건반악기 기본은 익혀야 했어요. 그래서 배운 거죠.
[weiv]: 스카와 자메이카 음악에 빠지게 된 건 언제쯤?
마이크: 80년대 초중반 경이죠. 고등학교 다닐 때 매드니스(Madness), 스페샬즈(the Specials) 같은 투톤 밴드들을 듣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 활동하던, 지금도 여전히 활동하는 피쉬본이라는 밴드가 있는데, 이들도 스카를 연주했죠. LA 출신이었고 (투톤 밴드들과는) 좀 달랐지만, 음악은 기막혔죠.
[weiv]: 피쉬본은 주로 훵크와 록 퓨젼을 하는 밴드로 알고 있었는데요?
마이크: 훵크를 했죠. 메탈도 했구요. 뭐든 다 한 거죠. 당시에는 스카도 많이 연주했어요. 그전까지 스카를 연주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누구든 스카 비슷한 걸 하기만 하면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었죠. 스카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피쉬본을 보러 갔어요. 왜냐면 그게 그래도 스카에 가장 가까운 거였으니까.
[weiv]: 배드 브레인즈(Bad Brains)도 좋아했나요?
마이크: 배드 브레인즈도 좋은 밴드죠. 스카가 아니라 레게지만. 피쉬본이야말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이었어요. 그 강렬한 라이브 쇼 때문에. 그게 제가 음악에 빠지고 음악을 시작하게 된 데 가장 큰 영향이었죠.
[weiv]: 그러면 음악적 영향이란 측면에선 당연히 스카, 레게, 펑크, 그리고 메탈도 약간?
마이크: 메탈은 아니었구요. 대부분 스카, 펑크,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음악이요. 밥 딜런이나 사이먼 앤 가펑클, 엘리엇 스미쓰(Elliott Smith)처럼 부드럽고 선율적인 것들이요.
[weiv]: 하지만 어쿠스틱 포크 스타일의 음악은 별로 안하지 않았나요?
마이크: (2003년) 11월에 나올 음반의 녹음을 막 끝마쳤는데, 그게 실은 죄다 어쿠스틱이에요.

스캥킨 피클(Skankin’ Pickle)과 마가렛 조(Margaret Cho)

[weiv]: 전에 몸담았던 밴드였던 스캥킨 피클 얘기를 좀 하기로 하죠. 1989년 대학 다닐 때,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게 맞는 얘긴가요?
마이크: 그렇죠. 공식적인 첫 공연이 (1989년) 4월 28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연습을 시작한 건 1988년이었고. 지금부터 오래 전 얘기죠. 우리들 중 셋이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나머지 셋은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이었어요.
[weiv]: 관중 동원이나 음반 판매 면에서 스캥킨 피클의 인기를 따진다면 얼마나 됐을까요?
마이크: 언더그라운드 밴드치고는 우리 스스로 흥행을 잘 했다고 봐요. 독자적으로 음반사를 차리고 TV나 라디오 같은 대중 매체에 나오지 않고 입소문만으로 알려 나갔죠. 그리고도 거의 8만-10만장 정도 팔았어요. DIY로 한 것 치고는 꽤 나간 셈이죠. 음악 비즈니스도 그동안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DIY 스타일로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대한 지원이 꽤 활발했죠. 우린 잘 해나갔다고 생각해요.
[weiv]: 그러니까 스캥킨 피클을 미 서해안에서 (제 3차) 스카 리바이벌의 선구자라고 봐도 좋은 건가요?
마이크: 그렇죠. 미 서해안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럽이나 일본 같은 데도 다 포함해서 말이죠.
[weiv]: 스캥킨 피클 음반을 들어본 건 사실 최근 일인데,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서 활동한 마이티 마이티 보스톤즈(the Mighty Mighty Bosstones)와도 좀 비슷한 면이 있더군요. 두 밴드 사이에 연줄이나 영향 같은 게 혹시 있었는지?
마이크: 한 다섯 번 정도 같이 공연했을 거에요. 하지만 그들의 사운드로부터 영향받은 건 아니었어요. 우리가 활동을 시작했을 땐 그들을 알지도 못했으니까.
[weiv]: 그렇다면 아마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우연이겠군요. 그럼 시기를 좀 건너뛰어서 1997년에 보스톤즈가 [Let’s Face It] 앨범으로 대박 히트를 터뜨렸을 때, ‘스카 열풍’에 편승하지 못하고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지 궁금하군요.
마이크: 아뇨. 그게 다 ‘주류 인기’로 반짝하기 전에 빠져나온 게 다행이죠. 돈이야 더 벌 수 있었겠죠. 그렇지만 더 이상 재미를 찾을 수 없었거든요. 밴드 멤버간에 서로를 정말로 지나치게 미워하기 전에 끝을 볼 수 있었던 건 잘한 일이에요. 후회 없어요.
[weiv]: 멤버들 간에 사이가 나빠진 이유가 특별히 있었나요?
마이크: 어떤 관계가 됐든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잖아요, 7년 동안 같은 사람들과 항상 더불어 지내다 보면. 그냥 멀어지게 되는 거죠. 많은 밴드들이 그래서 깨지는 거고, 우리도 그랬던 거죠.
[weiv]: 그럼 좀 분위기를 밝은 쪽으로 바꿔 봅시다. (한국계 여성 코미디언) 마가렛 조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마가렛도 아마 샌프란시스코 출신이죠?
마이크: 그래요. 그렇다고 뭐 고등학교 다닐 때 알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마가렛이 코미디를 시작하고 한창 날릴 무렵에 처음 만났죠, 아마 1992-3년 경?
[weiv]: 그때가 막 TV 시트콤(“All American Girl”) 시작하고 그러던 때 아니었나요?
마이크: 마가렛을 만난 건 그보다 좀 전이지만, 그때 이미 작업에 들어가 있었죠. 한창 그 TV쇼 얘기가 오고갈 때였으니까. 처음 만난 건 미국 시민 자유 연맹 (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주최 자선 모임에서였어요. 마가렛은 토론자로 나왔고, 저희는 밴드로 출연했죠. 그게 처음 얘기를 나누고 친구가 된 자리였는데, 요즘은 걔가 너무 바빠서 거의 보질 못해요.
[weiv]: 스캥킨 피클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It’s Margaret Cho”는 원래 그 TV쇼 주제가로 쓰이기로 했던 거였죠? 실제로 쓰일 기회가 있었는지?
마이크: 아뇨. 하지만 마가렛이 내놓은 코미디 앨범(1996년의 [Drunk With Power])에 쓰였죠.
[weiv]: 그동안 발표한 앨범들 중에는 한국말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뜻없는 횡설수설로 가사를 쓴 곡들이 몇몇 보이던데요. 묘하게도 그런 게 저한테는 마가렛 조의 코미디 연기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그러니까 자기 엄마의 서투르고 한국 억양 강한 영어를 흉내내면서 웃음을 자아내고, 부모 세대의 문화에 대해 일종의 양가감정을 드러내는 것 말이죠. 그런 망가진 한국말 가사를 쓴 것도 마찬가지로 이유로 볼 수 있을까요?
마이크: 사실 그런 가사를 쓴 이유는, 일본 펑크를 들으면서 그 억양이 마음에 들어서였어요. 처음엔 ‘일본말로 스카 펑크 노래를 해볼까’ 하다가 ‘한국말로 해 보지 뭐, 어차피 미국 청중들이 알아들을 것도 아닌데’하고 생각했던 거죠. 그렇게 해보니까 듣기 좋더군요. 그래서 그대로 밀고 갔지요.

“It’s Margaret Cho” from [Sing Along With Skankin’ Pickle](1994)

“Edumoya” from [The Chinkees… Are Coming!](1998)

이소룡과 ‘짱깨들’: 음악적인 홀로서기

[weiv]: 브루스 리 밴드 얘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스캥킨 피클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러면 일종의 사이드 프로젝트였는지요?
마이크: 그렇죠. 써놓았던 곡들 중 남아돌아가는 게 꽤 있었으니까요. 뭐가 될는지는 몰랐지만 하여간 그냥 녹음해 봤어요. 그랬더니 잘 나오더군요. 그때는 마음에 들어서 그냥 발매해 버렸죠. 그걸로 공연한 적도 없고, 후속 음반을 만들지도 않았고, 그냥 일과성으로 끝났죠.
[weiv]: 그 음반에서 같이 연주한 이들의 성씨가 한결같이 리(Lee)던데, 그거 진짠가요?
마이크: 한번 웃겨 보려고 라몬즈(the Ramones)를 따라한 겁니다.
[weiv]: 어쨌든 그걸 기점으로 해서 이후 칭키스(the Chinkees) 같은 멤버 전원 아시아계 밴드를 꾸리기 시작했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가요?
마이크: 이유야 여럿 있지요. 가장 중요한 건 미국에서 아시아계 소수민으로 자라면서 가졌던 생각이나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하는 생각에서 밴드를 시작한 거였죠. 그런 걸 다른 아시아계 음악인들과 공유하고,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이런 음악을 한다는 걸 대중들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N.W.A.(Niggaz With Attitude)같은 흑인 그룹들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시아계로서의 자부심을 나타내고 우리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하는 거죠. 특히 이런 종류의 음악, 즉 스카 펑크 같은 데서 말이죠.
[weiv]: 그렇게 보면 청중 문제도 중요할 것 같은데, 스카나 자메이카 음악을 아시아계 청중들 중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마이크: 맞아요. 힙합이나 댄스 음악은 좋아하지만… 하지만 그건 별로 문제가 안된다고 봐요. 돈을 벌려고 그런 걸 하는 건 아니니까. (스카 펑크를 좋아하는 아시아계도) 좀 있긴 있어요. 그런 이들에게 외로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죠. 일정한 자각을 이끌어내려 하는 거구요… (미국의) 대다수 한인들은 스카나 펑크 음악을 듣지 않죠. 백인 음악이니까.

20040418093549-mikepark2

2001년 서울 공연에서 마이크가 관중들을 찍은 사진

[weiv]: 스캥킨 피클에서 나온 후로는 색소폰을 더 이상 불지 않을 뿐 아니라, 점차적으로 음반에서 관악기 비중이 줄어드는 것 같던데요. 칭키스의 최근 앨범을 들어보면 관악기 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더군요. 무슨 이유라도 있는지요?
마이크: 그냥 흥미를 잃은 거죠. 칭키스의 사운드는 관악기에 기반한 게 아니구요. 지금 시점에서는 관악기로부터 벗어났어요. 그렇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다시 연주하기 시작하겠죠.
[weiv]: 1995년 아시아계 밴드 모음집 [Ear Of The Dragon]에도 참여했지요.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박수영과는 미리 알고 있는 사이였나요?
마이크: 베이 에어리어의 평론가 토드 이노우에(Tod Inoue)란 친구가 수영에게 내 얘기를 해줬어요. 그래서 소개받게 된 거고, 수영이 우리에게 부탁을 해 온 거죠.
[weiv]: 1989년에서 1996년 사이에 스캥킨 피클에 있으면서 공연을 엄청나게 했다고 하던데, 해마다 평균 몇 번 정도 한 건가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마이크: 연평균 150회 정도요. 거의 일년의 절반 꼴이죠. 처음엔 괜찮았어요, 젊었던 데다 새로운 경험이었으니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똑같은 도시들에서 되풀이해서 공연하는 데 흥을 내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더군요.
[weiv]: 칭키스의 첫 앨범은 1998년에 나왔죠. 그 전 작업들에 비해 음악 스타일이 약간 바뀐 것 같던데, 예컨대 스카 대신에 레게, 그리고 짧은 하드코어 펑크 곡들 같은 거요. 이전 밴드를 떠나서 칭키스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음악적 변화와 관계가 있는 건가요?
마이크: 아뇨, 전혀요. 칭키스도 (브루스 리 밴드처럼) 그냥 어쩌다 시작한 거에요. 애초에 밴드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고. 합주하는 일도 거의 없어요. 그냥 녹음 프로젝트인 거죠. 지난 1년간 연습 한번 안했는걸요.
[weiv]: 그러면 기본적으로 솔로 프로젝트인 거군요. 안정된 밴드로 만들 생각은 없구요?
마이크: 그런 거죠. 아마 내년쯤 영국에 2주 정도 가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여행할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것일 뿐이죠(웃음).
[weiv]: 그래도 칭키스 이름으로 계속 활동할 건가요, 아니면 다른 계획이라도?
마이크: 계속 할 거에요. 제 본명으로도 할 거고. 새 밴드를 시작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두고 봐야죠.
[weiv]: 계속 스카 펑크로 나갈 건가요?
마이크: 그럼요, 칭키스 이름으로요. 그게 칭키스를 계속 끌고 나가는 주요한 이유니까요.

99.9%의 인디 정신: 아시안 맨 레코드사

[weiv]: 이제 음악 비즈니스 얘기로 화제를 돌려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스캥킨 피클이 소속했던 딜 레코즈(Dill Records)가 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 얘기 좀 해 주시죠.
마이크: 그건 스캥킨 피클 멤버들끼리 만든 협동조합(cooperative)이었어요. 조합이 (밴드와 마찬가지로) 깨졌을 때 저는 제 레코드 회사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죠. 딜 레코즈는 그 뒤로도 한동안 존속했어요. 결국은 망했지만.
[weiv]: 비즈니스를 하게 되면서 ‘법률가들이나 매니저들이랑 상대하는 게 싫다’고 말한 적이 있는 걸로 아는데, 법률적인 문제나 소송에 휘말린 경험같은 거라도?
마이크: 예, 실은 최근에 한때 이용했던 인쇄소와 말썽이 생겼죠. 1997년에 일어난 일인데 올해 들어서야 해결했어요. 그쪽 말로는 내가 한 3,000달러 빚진 게 있다고 하는데, 하도 오래 된 일이라 기억이 나야 말이죠… 어쨌든 그냥 줘 버렸어요. 그게 딱 한 번 변호사를 고용해야 했던 경우였죠, 그쪽에서 자꾸 법률 문서를 보내오니까.
[weiv]: 전에 했던 한 인터뷰에서는 인디 레이블이 당면하고 있는 음반 배포 문제에 관해 언급했었죠. 대다수 인디 레이블이 주류 음반사와 이런 저런 관계를 맺고 있는 배포업자들과 거래를 해야 하는 상황을 지적했는데, 아시안 맨의 경우는 어떤가요?
마이크: 아시다시피 아시안 맨은 매우 작은 회사에요. 우리 음반을 배포하는 이들 중 누군가는 주류 기업에 지분을 갖고 있으리란 건 분명한 일이죠. 그걸 피해갈 길은 정말 없어요. 그런 류의 사업에 얼마만큼이나 빠져들어갈 것이냐에 달린 문제죠. 저 자신은 여전히 아시안 맨이 지극히 독립적이라고 봐요. 현존 업체들의 99.9% 보다는 더 그렇다는 거죠. 하지만 어떤 종류의 대기업(적 영향력)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의존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죠. 그래도 제 음반이 베스트 바이(Best Buy)같은 대형 체인 매장에 나와 있으리란 건 확실해요.
[weiv]: 알칼라인 트리오(the Alkaline Trio)의 작품이 지금껏 아시안 맨이 내놓은 최고의 히트가 맞지요? 가장 잘 팔린 음반은 몇 장이나 나갔나요?
마이크: 두 번째 앨범, [Maybe I’ll Catch Fire](2000)가 7만 5천장쯤 나갔어요. 아직도 잘 팔리니까, 제가 예측하기론 내후년까지 분명히 10만장 이상 팔릴 거예요. 인디 음반사 치고 그 정도면 아주 아주 잘한 거지요.
[weiv]: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에다, mp3 및 인터넷 음악 다운로드 등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CD판매를 감소시키는 추세니까 아시안 맨의 사업에도 당연히 영향이 있을 텐데요. 이런 위기를 뚫고 나갈 만큼 재정적으로 건실한지도 궁금하군요.
마이크: 괜찮긴 한데, 타격을 받는다면 아마 우리도 넘어가겠죠. 이제껏은 운이 좋았던 편이고… 어떻게 될 지는 두고 봐야겠죠(웃음). 올해로 8년째가 되는데… 의심의 여지 없이 판매고는 떨어졌어요. 제 생각엔 아마 현재의 매상이 1998년의 20%정도인 것 같네요.
[weiv]: 20%라구요? 그럼 5년만에 80%가 떨어졌다는 얘긴가요?
마이크: 그 당시는 우리가 극도로 잘 나갈 때였으니까… 25%정도가 더 정확하겠네요. 그러니까 75% 감소.
[weiv]: 몇 년 전 잘나가던 시절에는 사람도 더 쓰고 사업을 확장했나요, 아니면 지금 수준 그대로를 유지한 건지?
마이크: 그냥 그대로 돈만 챙겼죠(웃음).
[weiv]: 그때만 해도 아주 성공적인 사업가였던 셈이군요. (농담조로) 돈 벌어서 뭐했어요?
마이크: 그렇죠. 그 돈으로 집 한 채 장만했어요(웃음).
[weiv]: 그럼 지금은 꽤나 어려울 때겠군요. 요즘 보면 무명 인디 밴드들은 공연에서 직접 음반을 파는 데 주력하던데, 그게 레코드 판매에 미치는 영향이라도 있는지, 그리고 아시안 맨의 레코드 판매고를 세분해 보면 어떤지 궁금하군요. 이를 테면 얼마만큼이 레코드 가게를 통해 판매되고, 얼마만큼이 통신판매(mail order)를 통해 나가고 하는 거요.
마이크: (공연장 판매는) 밴드들이 자기 음반을 판매하는 데 크게 기여하죠. 우리같은 레코드 회사가 거기 간여하는 건 아니구요. (가게 판매/통신 판매의 경우) 지금은 놀랍게도 거의 반반인 것 같아요. 글쎄, 아마도 65%가 레코드 가게를 통해서, 35%가 통신판매로 나가든가, 아니면 60대 40이든가. 다달이 변동이 있지요. 꽤 오랜 동안 통신판매가 잘 됐었는데, 요즘은 많이 떨어졌어요. 그게 당장 제가 해결하려 하는 주요 문제점들 중 하나지요. 통신판매를 예전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구요.
[weiv]: 통신판매하는 품목에는 음반만 있는 건 아니죠? 다른 상품들도…
마이크: 예, 티셔츠, 스티커, 뱃지… 뭐든지 팔리기만 한다면야.
[weiv]: 어떻게 밴드들을 아시안 맨으로 끌어들이는지 모르겠네요. 선금을 주는 경우도 있나요?
마이크: 때로는요. 경우에 따라 다르죠. 만일 어떤 밴드가 대단한 잠재성을 갖고 있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선금을 지불하고 우리랑 음반을 만들게 하려 하겠죠.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런 일은 안 일어나죠(웃음).

20040418093549-mikepark3

‘Ska Against Racism’ 공연에서 노래하는 마이크

평화를 호소하며

[weiv]: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서, 본인의 음악적 활동에서 나타나는 인종 문제와 사회적 자각에 관련된 얘기를 해 보죠. 우선 그 오래된 스캥킨 피클의 곡 “Ice Cube, Korea Wants A Word With You”부터 시작해 볼까요. 그 노래는 한국계와 흑인 공동체 간의 알력을 드러낸 아이스 큐브의 악명높은 랩, “Black Korea”에 대한 응답으로 알려져 있는데, 불행히도 제가 접한 라이브 버전에서는 가사를 알아듣기가 참 힘들더군요… 어쨌든 음악 자체는 매우 흥겨워서 그런 첨예한 쟁점에 관련된 진지한 대응이라고 받아들여지진 않던데요.
마이크: 스캥킨 피클같은 밴드가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죠… 진지해지려고 해도 밴드 이름이 그래갖고는 좀… 그러니 가사를 통해 뭔가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죠(웃음).

“Ice Cube, Korea Wants A Word With You” from [Skankin’ Pickle Live](1996)

[weiv]: ‘Ska Against Racism’ 투어는 1998년에 시작되었죠. 본인과 더불어 레스 댄 제이크(Less Than Jake) 등이 출연했다고 하던데, 그 외에 다른 아시안 맨 출신 밴드들은 누가 또 나왔죠?
마이크: MU330, 토스터즈(the Toasters), 화이브 아이론 프렌지(Five Iron Frenzy), 블루 미니즈(Blue Meanies), 머스터드 플러그(Mustard Plug)가 나왔죠.
[weiv]: 그리고 그 투어가 나중에 ‘Plea For Peace/Take Action’ 투어로 발전한 건가요?
마이크: 그래요. 2000년에 제가 ‘Plea For Peace’를 시작했구요, 2001-2년에는 ‘Plea For Peace/Take Action’을 했어요. 올해(2003년)에는 전 안하고, ‘Take Action’은 이제 따로 떨어져나가 투어를 하게 됐어요. 내년에는 ‘Plea For Peace’로 다시 무대에 설 생각이죠.
[weiv]: 그동안은 대개 인종문제에 초점을 맞추었죠. 근데 비록 ‘Plea For Peace’가 9/11 테러 이전에 생겨나긴 했지만, 그 후에 그리고 이라크 침공 뒤론 그 이름이 아마도 더욱 의미심장해진 것 같은데요. 2004년에 다시 한다면, 반전(反戰) 문제를 쟁점화할 생각도 있는지요?
마이크: 음, 그건 그 때 가 봐서 나라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달려 있겠죠. 하지만 일단은 투표자 등록 문제에 집중하기로 결정은 내려졌어요. 18-24세 연령대의 청년집단에게 투표를 권유하는 거죠. 그게 참여율이 가장 저조한 집단이거든요. 비당파적인 의제이고, 우리 자신의 견해를 그들에게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그들을 참여하게 하고, 자기들이 알아서 결정을 내리게끔 하려는 거죠. 20030804 | 김필호 [email protected]

관련 글
평화를 호소하는 인디 록 공연: Plea For Peace 2004 – vol.6/no.8 [20040416]
Pioneer of the Third Wave Ska Revival, 99.9 Per Cent Indie Man: An interview with Mike Park – vol.6/no.8 [20040416]
Denali [The Instinct] 리뷰 – vol.6/no.8 [20040416]
Cursive [The Ugly Organ] 리뷰 – vol.6/no.8 [20040416]
Mike Park [For The Love Of Music] 리뷰 – vol.6/no.8 [20040416]
Jenny Choi [Postcard Stories] 리뷰 – vol.6/no.8 [20040416]

관련 사이트
‘Plea For Peace’ 투어 홈페이지
http://www.pleaforpeace.com
마이크 박 홈페이지
http://www.mikeparkmusic.com
아시안 맨 레코드사 홈페이지
http://www.asianmanrecords.com
칭키스 홈페이지
http://www.thechinke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