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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e – Live Through This – Geffen, 1994

 

 

‘Bitch’, 주류의 여왕으로 등극하다

데뷔작 [Pretty On The Inside](1991) 이후 3년 만이자 커트 코베인(Kurt Cobail) 사후 넉 달 만에 발매된 홀(Hole)의 메이저 데뷔음반 [Live Through This](1994)는, ‘그런지는 죽었다(grunge is dead)’는 강령이 망령처럼 떠돌던 당시의 록 씬에서 아직 그런지가 충분히 충격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음반이다. 음반의 첫 곡 “Violet”은 홀의 음악이 [Pretty On The Inside]의 무절제하고 어수선한 언더그라운드 펑크 사운드로부터, 주류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퍼즈(fuzz)톤 기타 사운드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리고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단연 너바나(Nirvana)의 영향이다. ‘stop-n-start’식 구성은 음반 전체의 성격을 규정짓고 있으며, 지글거리는 기타 위로 노래하는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의 팝적인 멜로디는 너바나의 부재를 아쉬워할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Live Through This]가 너바나와 차별되는 점은 이 음반이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해 파괴적이고 공격적으로 노래하는 “Violet”이나, 짓이겨진 자신을 산산조각 난 인형에 비유하며 “언젠가 내가 아파한 만큼 너도 아파하게 될 거야”라고 절규하는 “Doll Parts”, 임신 중에 약물을 복용했다는 혐의로 양육권을 박탈당할 뻔 했던 당시의 심정을 자조적으로 되뇌는 “She Walks On Me”, 바로 그러한 혐의를 제기한 베니티 페어(Vanity Fair)誌에 대해 “엿이나 먹어”라고 일갈하는 “I Think That I Would Die” 등 커트니 러브는 상처 입은 여성성을 여과하지 않고 고스란히 노출 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성의 부각은 동시대의 ‘라이엇 글'(riot grrrl: 보통 ‘라이엇 걸’로 옮기지만, ‘grrrl’이라는 표기가 의도하는 공격적인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해 ‘글’로 표기하기로 한다) 밴드들과 홀을 구분 짓는 요소로 작용했다(또한 이러한 내면고백적인 모습은 싱어 송라이터로서 커트니 러브의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성성’은 ‘어머니’와 ‘색녀’라는 여성성(이것은 ‘도식적인’ 여성성임을 전제로 한다)의 양 극단에 위치하는 이미지를 통해 드러난다. 이러한 극단적인 이미지의 결합은, 조용한 버스(verse)와 폭발하는 코러스를 통해 (남성적인) 록 사운드에 여성성이 개입될 여지를 만들어낸 그런지 사운드와 결합하며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렇듯 종잡기 힘든 커트니 러브의 캐릭터는 편리하게 ‘개 같은 년(bitch)’으로 구분되었지만, 음반은 이러한 혼란을 통해 독자적인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Live Through This]가 AMG의 말마따나 ‘너바나의 공식을 따른 작업 중에 몇 안 되는 성공적인 경우’인 이유는 (너바나를 위시한) 남성 그런지 밴드들이 도달할 수 없었던 지점을 포착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그런지 음반들 중 [Live Through This] 만큼 매력적인 훅과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낸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홀의 그런지화(化), 혹은 메인스트림화가 불러온 반작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 가장 주가 되었던 것은 커트니 러브가 남편을 이용해 성공을 손에 쥐었다는 시대착오적인 내용의 비난이었는데, 심지어는 [Live Through This]의 전곡을 커트 코베인이 작곡해 줬으리라는 루머가 거의 ‘정론’처럼 거론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평단의 비교적 일관적인 찬사 역시 밴드로서의 홀보다는 ‘너바나를 추억할 수 있는’ 그런지 음반이라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Live Through This]는 인정하지만 커트니 러브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또한 (대다수가 남자인) 평단은 [Live Through This]의 그런지 사운드에 대해 너바나의 영향력을 떠들어대는 데는 주저하지 않았지만, [In Utero](1993)의 원초적인 펑크 사운드를 논하며 홀과 커트니 러브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렇듯 그런지 사운드에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접목했던 [Live Through This]를 ‘너바나의 영광’ 식으로 치부해버린 당시의 상황은 ‘여성이 록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했다’는 얼터너티브(alternative)의 ‘업적’과 비교해볼 때 상당히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커트 코베인과 커트니 러브의 관계에서 선정적인 부분이 매스컴에 극대화 되어 노출됐다는 사실이나 커트니 러브의 지나치게 강렬한 ‘악녀’ 이미지가 이러한 왜곡된 평가를 자초한 구석이 없지는 않지만, 이는 결국 ‘사내놈들’에 열광하는 ‘사내놈들’의 전유물인 록의 태생적 한계가 그리 쉽게 극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메인스트림에서의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마친 홀은 ‘그런지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자신들의 특화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되었고, 커트니 러브의 ‘bitch’ 이미지는 주류 록 내부에서 (앨러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에서 지금의 에이브릴 라빈(Avryl Lavigne)으로 이어지는)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내게 된다. 20040406 | 김태서 [email protected]

9/10

수록곡
1. Violet
2. Miss World
3. Plump
4. Asking For It
5. Jennifer’s Body
6. Doll Parts
7. Credit In The Straight World
8. Sofer, Sofer
9. She Walks On Me
10. I Think That I Would Die
11. Gutless
12. Rock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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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l Parts”

관련 사이트
Courtney Love 공식 사이트
http://www.courtneyl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