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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s N’ Roses – Appetite For Destruction – Geffen, 1987

 

 

거부해야할 전(前)시대의 모든 것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음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참으로 손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 고전이 이미 유효기간이 만료된 전시대의 모든 ‘구태’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기념비적인 데뷔 음반 [Appetite For Destruction](1987)은 바로 그러한 고전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1990년대 폭발한 그런지(grunge)의 ‘공적’으로 낙인찍힌 이후로 현재의 씬에 이르기까지 록 음악은 건스 앤 로지스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이들의 음악은 온갖 차별과 편견이 뒤섞인 전형적인 ‘백인 쓰레기(white trash)’ 록 음악의 대명사(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로 취급되고 있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Appetite For Destruction]이 발매되었을 당시 이 음반이 ‘주류 헤비 메틀’ 씬의 ‘대안’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본 조비(Bon Jovi)나 포이즌(Poison) 유의 파티용 메틀 음악이 판치던 시절에 짐승이 그르렁대는 듯한 음험한 기타 인트로로 차별화된 정체성을 만들어 낸 “Welcome To The Jungle”은 당시의 헤비 메틀 사운드가 잃어버렸던 원시적인 공격성을 다시금 전면에 부각시켰다. 그밖에도 에어로스미스(Aerosmith)를 연상시키는 아메리칸 하드록 “Nightrain”과 쓰래쉬(thrash) 리프와 명징한 멜로디 라인 사이를 오가며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Paradise City”, 1980년대 가장 인상적인 기타 인트로로 기억되는 “Sweet Child O’ Mine” 등이 연이어 히트를 기록하며 건스 앤 로지스는 단숨에 활력을 잃어가던 메틀 씬의 ‘차세대 거물’로 부각되었다(당시 발라드 트랙 한두 곡이 포함되지 않은 메틀 음반은 [Appetite For Destruction]이 유일했다).

싱글로 커트된 곡들 이외에도 들을만한 곡은 넘쳐난다. “Out Ta Get Me”나 “Mr. Brownstone”, “Think About You”, “You’re Crazy” 같은 타이트한 로큰롤 넘버들은 [Appetite For Destruction]이 뛰어난 싱글 몇 곡에 기대는 음반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입증해 낸다. 특히 시종일관 달려온 음반의 대미를 장식하는 “Rocket Queen”은 [Appetite For Destruction]의 성격을 요약하는, ‘허풍덩어리 강성 하드 록’ 사운드를 압축해서 들려준다. ‘로큰롤/블루스 순수주의자’ 이지 스트래들린(Izzy Stradlin’)과 ‘과묵한 로커’ 슬래쉬(Slash)의 탄탄한 트윈 기타 시스템과 액슬 로즈(W. Axl Rose)의 (하드 록 보컬리스트가 되기 위해 태어난 듯한) 카랑카랑한 금속성의 보컬, 전직 펑크 로커 더프 맥케이건(Duff McKagan)의 중량감 넘치는 베이스 라인과, (소문난 LA 슬럼가의 싸이코 액슬 로즈마저 포기한 마약중독자) 스티븐 애들러(Steven Adler)의 드러밍이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응집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으며 이후의 밴드 역시 이 시기의 소리를 다시 재현해 내지는 못한다. 멤버 개개인의 면면 또한 특별히 분장을 하지 않아도 마치 ‘로큰롤 캐리커처’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이러한 음악 내외부적인 화제성 요인들이 결합되며 건스 앤 로지스는 ‘부활한 하드 록의 신’이 되었다.

건스 앤 로지스의 모든 곡은 전부 ‘섹스’와 연관을 가진다. LA를 정글에 비유하여 적자생존의 현실을 풍자했다는 “Welcome To The Jungle”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곡에서 부각되는 것은 액슬 로즈의 “샤나나나나나나나 니~즈, 니~즈”라고 수십 번을 흉내 내 봤지만 결코 똑같이 따라할 수 없는 보컬 기교와 시도 때도 없이 끼어드는 신음소리 뿐이다. 극도로 날이 선 사운드 메이킹은 ‘세워서 찌르는’ 남근적 기타 록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거의 예외 없이 액슬 로즈의 길게 잡아끄는 보컬로 마무리되는 곡의 엔딩은 사정 후 남성의 상태를 연상시킨다. 즉, 건스 앤 로지스의 음악은 ‘남성이 주도하는 섹스’의 시작부터 끝을 노래를 통해 재현해 낸다. 그리고 이는 지극히 남성적인 섹스 환타지를 구체화시킨다. 주체로서의 여성은 배제되어있는 (‘예쁜 여자’와 ‘푸른 잔디’가 동급으로 등장하는) “Paradise City”의 가사나 발매 당시 큰 논란을 불러왔던 음반 속지의 로봇에게 강간당한 여성의 일러스트를 굳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Appetite For Destruction]이 지극히 마초(macho)적인 음반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란 어렵지 않다.

따라서 [Appetite For Destruction]은 당대(1980년대)의 팝 메틀(pop metal, 혹은 헤어 메틀(hair-metal), 이 용어들이 헤비 메틀의 ‘여성화’에 대한 비아냥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씬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기능했다. 이들이 들고 나온 원초적인 하드 록 사운드와 (슬래쉬의 표현을 빌자면) ‘kiss my ass-attitude’가 헤비 메틀의 ‘남성성’을 다시금 부각시킨 것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의 문제를 떠나)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들의 업적이다. 이들은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이후 가장 강력한 하드 록 밴드로 추앙 받았으며, 이후 밴드가 공중분해 되었을 때 믹 재거(Mick Jagger)와 키쓰 리처즈(Keith Richards)는 ‘현존하는 최고의 하드 록 밴드’ 건스 앤 로지스의 재결합을 위해 액슬 로즈와 슬래쉬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런데 여기에 ‘펑크’가 끼어들면서 얘기가 복잡해진다. 이들은 하드 록의 과시적인 사운드에 펑크의 허무주의적 태도를 결합했고, 실제 멤버들과 섹스 피스톨스(The Sex Pistols) 사이의 유대도 상당한 편이었다. 섹스 피스톨스는 그들의 ‘적자’임을 전면에 내세운 너바나(Nirvana)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인 자세를 견지한 반면 건스 앤 로지스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이후 스티브 존스(Steve Jones)는 더프 맥케이건, 매트 소럼(Matt Sorum) 및 듀란 듀란(Duran Duran)의 존 테일러(John Taylor)와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 뉴로틱 아웃사이더스(Neurotic Outsiders)를 결성하기까지 한다). 롤링 스톤스와 섹스 피스톨스로부터 동시에 사랑 받은 밴드라는 사실은 아이러닉하지만, 이들의 위치가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해 재고해볼 여지를 남긴다. 건스 앤 로지스가 펑크 씬의 재조명에 기여한 부분은 ‘스타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들이 이후 폭발하게 되는 펑크 씬과 기존의 헤비 메틀 씬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적 의미를 충분히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음악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백인-노동계급-남자’라는 독특한 마이너리티(minority) 집단의 성향을 대변하는 음악인 로큰롤이 차별 받는 소수 내에서 ‘또 다른 우월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은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 모순을 [Appetite For Destruction]처럼 극명하게 드러낸 음반은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이들의 ‘대안적 사운드’가 어째서 ‘또 다른 대안’인 얼터너티브(alternative)에 의해 그토록 가혹하게 배척당했는지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얼터너티브의 시각에서 건스 앤 로지스의 원초적인 공격성은 LA 메틀의 매끈함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었으며, 오히려 극단적인 1980년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가십성 이야기지만, 커트 코베인(Kurt Cobain)에 대한 액슬 로즈의 ‘짝사랑’과 그에 대한 커트 코베인의 ‘조소’는 이러한 대립관계의 축약판으로 보여진다).

이렇듯 건스 앤 로지스는 당시 헤비 메틀 씬의 대안임과 동시에 반드시 타파해야 할 전시대의 잔재이기도 한 애매한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후 (작곡을 전담하는) 액슬 로즈와 이지 스트래들린의 음악적 노선 차이로 내분을 겪으며 밴드는 ‘자멸’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결말을 맞이하지만, 그것은 밴드의 커리어 관리가 부실했다기보다는 건스 앤 로지스를 둘러싼 상황이 이들을 그런 결말로 몰고 갔다는 평가가 타당할 것이다. 건스 앤 로지스가 제시한 대안은 이미 굳어진 ‘로큰롤’이라는 화두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었을 뿐, 곧이어 등장할 얼터너티브의 ‘세대성’에는 동참할 수는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밴드의 책임으로 돌려야 할 까닭은 없다. 순수하게 ‘쾌락적’인 록의 ‘최후’이자 ‘최고’의 음반인 [Appetite For Destruction]은 현재에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누군가 다시 이런 소리로 음반을 채워 넣는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이겠지만, 1980년대를 마감한 (그리고 1990년대를 맞이한) 사운드로서 [Appetite For Destruction]은 (이제는 멸망한 허장성세 로큰롤에 대한 비애감만큼이나) 여전한 ‘자극’을 제공하고 있다. 20040407 | 김태서 [email protected]

10/10

수록곡
1. Welcome To The Jungle
2. It’s So Easy
3. Nightrain
4. Out Ta Get Me
5. Mr. Brownstone
6. Paradise City
7. My Michelle
8. Think About You
9. Sweet Child O’ Mine
10. You’re Crazy
11. Anything Goes
12. Rocket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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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

“Welcome To The Jungle”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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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nr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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