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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 – 이날, 이때, 이즈음에… – 서울음반, 2003

 

 

주류대중음악으로서의 반가움과 아쉬움

이승열을 이야기하는 상식적인 출발점은 유앤미블루다. 단 두 장의 앨범으로 ‘한국 모던록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는 유앤미블루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활동한 2인 밴드(방준석, 이승열)다. 94년 5월, 그들이 데뷔앨범 [Nothing’s Good Enough]를 냈을 때 ‘유투와 비슷한 모던 록 밴드’라고 말하는 건 쉬웠다. 몽환적인 딜레이와 리버브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타 톤을 만들어낸 방준석은 엣지(유투의 기타리스트)를, 걸걸하면서도 맑은 팔세토로 노래한 이승열은 보노를 연상케 했다. 영락없이 브라이언 이노를 만난 이후 시기의 유투였다. 물론 그렇게만 간과할 건 아니었다. 방준석의 기타 플레잉과 프로듀싱은 싸이키델릭 블루스, 재즈, 훵크를 포용했고, 이승열은 유앤미블루가 내포하는 다양한 음악 스타일에 맞게 음색의 고저장단강약을 조율했다.

불운한 건, 유앤미블루가 당시 한국 대중음악계 내에서 일정한 입지를 다지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유앤미블루는 특정 씬(scene)에 포용되거나 적정한 비평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팬들이 회고하듯 시대를 너무 앞섰기 때문이라기보다 당시의 현상적 상황에서 기인했다. 위에서는 서태지의 랩과 그를 추종하는 10대 소비자군이, 아래에선 커트 코베인의 죽음(1994. 4)이 불붙인 얼터너티브와 펑크(인디) 에토스가 한국화를 모색하기 시작한 때였다. 유앤미블루는 힙합이 화두가 된 주류 음악의 문맥에도, 시나위, 윤도현 등 당시 언더그라운드 씬의 주체의 어법에도 맞지 않았다. 이후, 펑크, 얼터너티브로 약진하며 변화한 ‘인디’의 지형도에서도 사정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고종석을 빌면 “좌익 원칙주의자에서부터 전향한 마르크시스트를 거쳐 신세대의 오렌지족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대중문화를 얘기하”던 때에도 유앤미블루는 문화 담론의 집중조명 밖에서 잔존했다. 속칭 그런지 주법이라 불리는 디스토션, 피드백을 활용했지만 방준석의 기타는 그런지보다는 애씨드 록과 블루스에 젖줄을 대고 있었다. ‘분노한 세대의 절규’와 거리가 먼 이승열의 창법도 ‘전복적이고 돌파적인’ 사운드와 정치학을 요하던 당시 패러다임에서는 철 지난 것처럼 들렸다. 결국 남은 운명은 ‘선별적 취향을 가졌다는’ 매니아들의 소비태로 머무는 것이었다. 애씨드 블루스와 그런지를 절충한 두 번째 앨범 [Cry…Our Wanna Be Nation!(1996)]을 끝으로 유앤미블루는 해체를 고했다.

이런 소고도 유앤미블루를 ‘시대를 앞서간 불운한 천재’라는 주관적 신화에서 분리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이라는 문화적 토양에서의 유기적 동화에 실패했다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재미교포 1.5 세대였던 방준석과 이승열은 세계 대중음악의 중추인 미국에서 얻을 수 있었던 문화적 수혜인 본토블루스 록과 재즈와 전신 얼터너티브 록(유투)을 자신들의 의미망 안에서 전유하려고 했다. 반면, 대중적(한국적?) 감수성, 혹은 가요의 구조에 융합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하거나 무지했다. 연주 밴드가 아닌 보컬 록 밴드로서, 앨범 전체의 완성도에 비해 뚜렷하게 인상에 남는 멜로디(hook)나 그루브가 부족하다는 건 문제적이었다. 애호해 마지않는 음악 스타일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새로운 문화적 존재근거, 장르가 영어 상태에 처해있는 ‘이곳’에서의 입지를 고려했어야 했다. 정작 본인들은 이런 문제에 초연했겠지만, 청자 입장에서 그 무심한 작가주의는 많이 아쉬웠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경청하지 않으면 어쩐지 ‘번안한’ 록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면 지나친 폄하일까.

이승열의 솔로 데뷔 앨범을 이야기해야 할 지면에서 그의 전 행장에 대한 사설이 너무 길었다. 그 지점에서 이승열의 신보를 읽기 시작해야 한다는 견지에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4년의 이승열은 유앤미블루 시절의 습성(?)과 한국 주류 음악계의 관행 사이에서 절충하는 행보를 보여준다(참고로, 방준석은 ‘복숭아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후아유>등, 유수 영화 스코어 음악 제작에 참여하면서 이승열과 간간이 공조했다).

싱글 “Secret”가 그렇다. 피드백과 디스토션을 걸어 거칠어졌지만 찰진 기타를 전면에 내세운 짧은 전주(intro)는 유앤미블루 시절의 모던록 사운드다. 그러나, 브라스 세션처럼 들리는 유려한 신서사이저와 함께 리프레인(후렴)과 버스(verse 節)를 뒤바꾼 역행적 진행, 나지막한 전조 파트인 “봐, 가려진 눈을 뜨고서”에 이어 절정으로 고조되는 조성 구조에서 훅에 대한 고심을 읽을 수 있다. 발라드의 절충적 타협(?)도 발견되는데 기타와 키보드의 블루지한 프로듀싱을 특화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my 발라드”와, 몽환적인(ambient) 기타, 키보드의 프로듀싱이 경건하기까지 한 “내 안에 따스한” 이 그렇다. 키보드로 캬바레 블루스의 정취를 담아낸 “Mo Better Blues”나 그런지 록의 주법을 한껏 살린 “이날, 이때, 이즈음에…” 은 유앤미블루 시절에 바친 헌시이고, <원더풀데이즈>의 수록곡이기도 했던 “비상”은, 이승열의 자작곡이 아니지만 위태로울 정도로 ‘U2的’이다.

[이날, 이때, 이즈음에…]에서 이승열은 작사, 작곡, 스트링, 키보드, 프로듀스, 프로그래밍까지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해 냈다. 일종의 ‘원맨밴드’의 개념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승열과, 최근 마찬가지로 혼자서 모든 작업을 다 한 [눈물꽃]의 정재일을 두고 많은 매체들은 주류에서의 긍정적 변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둘은 스타 캐스팅 뮤직 비디오 제작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공중파보다는 홍대 앞 클럽, DGBD 등, 인디 밴드들과의 합동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앨범을 마냥 ‘좋은 앨범’ 혹은 ‘주류에서의 진정한 작가주의의 승리’라고 말하는 것이 주저된다. 이승열의 말을 빌면 ‘일부러 화성을 틀었다’는데 탈관습적적 ‘가요’를 만들려는 복안이었겠지만, 유앤미블루 시절부터 고질적으로 발견됐던 문제점은 여전히 극복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이 점은 [이날, 이때, 이즈음에…]를 들으면서 새삼 발견한 문제이기도 하다. 전에는 한국 주류 음악계의 핍진한 현실에 무심했다고 판단했지만, 이승열에 와서 형식과 스타일이 내용과 감정을 앞선다고 재삼 판단된다. 즉, 나무랄 데 없이 세련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덜트’한 구조는 있어도 그를 받쳐주는 정서가 부재한다는 말이다.

범박하게 말하면 그것은 ‘통속성’이고, 좋은 통속성은 대중 음악을 보편적인 정서 발화기제로 만드는 요소다. 이승열에겐 좋은 의미에서의 통속성이 없다. 들으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욕망이나 트라우마로 의식과 정서를 환기시켜주는, 그런 발화점이 없다. 이는, 아트록을 동양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극찬을 받은 정재일의 [눈물꽃]에서도 드러나는 것으로, 스타일과 기술에 천착하는 대중음악인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점이다. 이승열이 정재일처럼 거대담론이나 마에스트로적 욕망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Secret” 을 빼면 감칠 맛나는 음악이 없다는 건 대중성의 측면에서 결함이다. 이는 고양된 감정을 토해내야 할 파트에서 능숙한 창법을 보여주지만, 어딘가 모르게 싱거운 듯 관조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이승열의 창법과 가사 때문이기도 하다. 뭇 가수들의 기름진 과잉 창법도 지겹지만 최소한의 극적 긴장이 증발한 노래도 무감동하긴 마찬가지다. 보노의 ‘영혼을 고양시키는’창법에 기술적으로는 다가갔으되, 심층적으로는 아직 유보 상태인 것 같다. 객관적으로는 완성도가 뛰어난 음반일진대, 개인적으로는 일상적으로 듣게 될 것같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040227 | 최세희 [email protected]

6/10

* 웹진 [컬티즌]에 수록된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수록곡
1. 5 am
2. 다행-믿어지니?
3. Secret
4. 아무일 도 없던 것처럼…
5. My 발라드
6. 기다림(영화 ing 주제곡)
7. 흘러가는 시간, 잊혀지는 기억들
8. Mo Better Blues
9. 이날, 이때, 이즈음에…
10. 분(憤)
11. 내 안에 따스한
12. 비상 (원더풀데이즈 주제곡)
13. 푸른 너를 본다

관련 사이트
이승열 공식 사이트
http://www.sybl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