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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Infield Fly – LaylaMusic.com, 2003

 

 

다른 속도로 살아가기, 달빛요정이 묻는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살아간다. 위성 통신망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하고 이러저러한 삶의 조건들이 각각의 시대마다 달라지고, 우리들 삶의 속도가 거기서 전혀 자유롭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 속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온전히 자기 속도로 살아가는 것은 종종 비난받는다.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시대의 기준에 부합되지 못하거나, 혹은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없는 자들은 자주 손가락질 받는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100% 가내 수공업 음반’인 [Infield Fly]는 이런 자들에게 보내는 연가이다. 사실 이 이름은 어설픈 키치주의를 연상시킨다. 촌스러운 음반 커버와 더불어 ‘달빛요정’이라는 낯간지러운, 혹은 멜랑꼴리한 이름이 그렇게 만든다. 음악의 장르는? 공교롭게도 달빛요정의 사운드는 포크의 영토에 닿아있다. 어쿠스틱 기타와 전기 기타, 유난하지 않은 연주력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 장조 코드로 진행되는 업비트의 리듬.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음반의 가사. 소박하고 낙천적인 사운드에 담긴 메시지는 그러나 가볍지만은 않다. 가지지 못한 자, 소외받은 자, 혹은 공부를 못해서 가진 게 없어서 집안이 가난해서 장애인이라서 여성이어서 노동자라서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을 ‘절름발이’에 비유하고 있는 “절룩거리네”(‘절름발이 메타포’라고 할 수도 있을 듯), 시시각각 변해 가는 시대의 속도를 좇아가지 못하는 자의 푸념을 흥겹게 노래하는 “361타고 집에 간다”, 타인과 끝없이 비교하며 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조섞인 고백인 “스끼다시 내 인생”,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업비트에 실은 “행운아” 등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사운드만큼 가볍지만은 않다.

음반의 전반부가 이렇게 일상-삶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면 후반부에서는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변두리에 살고 있는 존재의 사랑이야기는 뭐 크게 다를까? 신서사이저의 몽환적인 사운드로 짧게 진행되는 “Happy Birthday, Layla”는 ‘더러운 짝짓기의 계절, 그 후일담’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이를테면 이후 이어지는 러브 송에 대한 인트로이다. 애잔한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로 진행되는 “슬픔은 나의 힘”, ‘당신은 내 청춘의 무덤’이라는 짠한 가사를 토이(Toy)같은 사운드로 읊는 “유리”, 어쨌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이야기인 “엇갈림”, “좋은 사람” 등의 곡들은 여느 사랑노래들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곡의 진행과 사운드, 부드러운 남성 보컬은 유리상자”나 “토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전반부의 노래들이 후반부의 ‘짠한 사랑이야기’의 근거가 되는 듯해서 감정이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바램을 끄적이자면, 평범한 사랑노래처럼 들리는 후반부는 차라리 과감하게 빼버렸으면 좋았을 뻔했다.

어쨌든, 이 음반을 인상적인 음반으로 각인시키는 것은 음반의 전반부이고, 그것은 삶의 변두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 때문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전기기타 사운드에 담긴 유머러스하고 은유적인 메시지는 이 음반이 노래 운동의 한 편에 닿은 듯 아닌 듯, 소위 ‘운동권 가요’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장조로 진행되는 코드가 만들어내는 따뜻하고 소박한 통기타 사운드는 그래서, 정태춘보다는 안치환에, 클럽보다는 대학 대운동장에 닿아있다. 어쩌면 이 음반을 들으며 “우리의 노래가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노래여 우리의 삶이여”라는 뭉클한 민중가요의 제목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슬픔, 혹은 현실적 부조리함, 혹은 닿을 수 없는 욕망, 혹은 내일도 오늘처럼 나아지지 않음, 아니 차라리 내 방에 켜지는 적신호, 당신은 사회부적응자입니다, 라고 적힌 고지서를 받은 기분, 뭐 이런 것들이 이 음반을 지배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막상 전체적인 느낌은 밝고 명랑하다. 나는 느리게 살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어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원래 나라는 인간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이봐, 당신도 그러한가? 달빛요정이 묻는다. 20040104 | 차우진 [email protected]

6/10

수록곡
1. Infield Fly
2. 절룩거리네
3. 361 타고 집에 간다
4. 스끼다시 내 인생
5. 행운아
6.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Bootleg Mix)
7. Happy Birthday, Layla
8. 슬픔은 나의 힘
9. 유리
10. 엇갈림
11. 어차피
12. 좋은 사람

관련 사이트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홈페이지
http://www.rockwillneverdi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