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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페셜리 웬(Especially When) – The Evening Air (EP) – Espousal, 2003

 

 

러닝 타임 30년짜리 EP

이스페셜리 웬은 김경모(보컬/기타/프로그래밍), 성유진(베이스/기타)으로 이루어진 2인조 밴드다. 2000년에 나온 문라이즈 컴필레이션 음반에 “Clare”와 “Sleeves”를 수록하면서 녹음 경력을 시작했다. 그때 들리던 음악과 지금 들리는 음악이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이 음반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사실이다. 두 번째는 정우민, 류한길, 에레나 정 등의 이름과 더불어 기타 세션과 키보드를 맡은 양용준, 그리고 그가 몸담고 있는 밴드 챔피언스(Champions)의 존재이다. 음반의 공동 프로듀서가 챔피언스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밑에 있는 샘플 음원을 듣기 전에 이 음반이 어떤 소리를 낼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밝고 따스한 인디 팝’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머릿속 어딘가에서 들리는 바로 그 소리이다.

네 곡의 분위기는 비슷하다. “Wild Chime”을 은은하게 장식하는 신서사이저 호른 정도를 제외한다면 편곡 방식이나 작곡 스타일도 비슷하다. 나긋나긋한 기타 스트러밍과 에코가 많이 걸린 흐릿하고 겹쳐진(layered) 사운드를 바탕으로 브리티쉬 포크-팝 스타일의 단정한 멜로디가 어색한 영어 발음과 함께 흘러나온다(“Wild Chime” 같은 경우는 배들리 드론 보이(Badly Drawn Boy)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니, 생각해보니 ‘스타일’이란 말은 빼도 되겠다. 이정도로 ‘본토’와 비슷한 멜로디를 들었던 건 위치 윌(Which Will) 이후 오랜만이다. 너무 많이 들었던 나머지 13분 남짓한 EP가 30년이 넘는 것처럼 들릴 정도이다.

EP 리뷰에 어울리게 짧게 쓰고 마치도록 하자. 간단히 말해 나는 이런 음악을 인정할 수 없다. 그것은 음반의 가사 전체가 영어라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여기에 쓰이는 영어는 보통의 댄스 가요에 코러스로 쓰이거나 분위기 조성용 랩을 웅얼거릴 때 나오는 ‘check it out!’ 정도의 용도가 아니라, 음반 전체의 성격을 규정한다. 즉 이 음반에 쓰이는 영어 가사는 애초에 ‘영어권 노래’의 멜로디를 염두에 두면서 만든 것이다. 아니라고 부정하려 해도 멜로디가 그것을 스스로 반박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여기 실린 노래들은 텅 빈 것처럼 들린다. 첫째는 자신의 존재 근거(raison d’etre)를 여기 이 곳에 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 번째는 그렇다고 존재 근거를 포기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근거를 만드는 것 같지도 않다는 점에서. 이 경우 앞으로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른 표현 방법을 고민하거나, 영어 발음을 고치거나. 20031205 | 최민우 [email protected]

2/10

수록곡
1. The Evening Air
2. Interlude
3. The Senerity
4. Wild Ch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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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spousal 레이블의 이스페셜리 웬 페이지
http://espousal.net/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