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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 Architecture & Morality – Dindisc/Virgin, 1981/2003

 

 

전자랜드로의 초대

1980년대의 가장 두드러진 문화적 특징 중 하나는 ‘인공적인 것에 대한 매혹’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나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의 비인간적으로 발달한 근육이 대중적 선망의 대상이었고 무쓰를 잔뜩 발라 뿔을 세운 머리나 미식축구 경기복처럼 커다란 뽕이 들어간 자켓이 유행하던 때가 바로 1980년대다. 음악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키보드 신디사이저, 기타 신디사이저, 베이스 신디사이저, 전자 드럼 등 전자적으로 합성된 인공적 사운드가 장르에 상관 없이 필수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음악적 흐름을 주도한 것은 영국에서 발생한 신쓰 팝이다. 신쓰 팝은 흔히 뉴 로맨틱과 결부되어 이야기되지만 엄밀히 말해서 둘 사이에는 필연적 연관이 없다. 아담 & 디 앤츠(Adam & The Ants)나 컬처 클럽(Culture Club)처럼 뉴 로맨틱이면서 신쓰 팝이 아닌 그룹도 있고 드페쉬 모드(Depeche Mode)나 펫 숍 보이스(Pet Shop Boys)처럼 신쓰 팝이면서 뉴 로맨틱이 아닌 밴드도 있다.

오케스트럴 머뉴버스 인 더 다크(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이하 OMD)는 이 중 후자에 속하는 그룹이다. 신쓰 팝은 흔히 1980년대의 대표적 상업음악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OMD, 휴먼 리그(Human League), 소프트 셀(Soft Cell) 등 이 씬의 선발 주자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언더그라운드 아방가르드 밴드로 인식했다. 실제로 이들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영향권 하에서 음악을 시작했고 1970년대 말 펑크의 전성시대에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유지해 나갔다. 음악적인 면에서 소프트 셀은 수어사이드(Suicide)의 열렬한 추종자였고 휴먼 리그는 캬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의 음악적 협력자였으며 OMD는 에코 & 더 버니멘(Echo & The Bunnymen), 티어드롭 엑스플로즈(The Teardrop Explodes) 등과 로컬 씬을 공유했다. 이들이 팝 밴드로 노선을 변경한 데는 조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그가 프로듀스한 도나 서머(Donna Summer)의 “I Feel Love”는 이 계열의 아티스트 대부분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뉴 오더(New Order)의 “Blue Monday”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조지오 모로더의 영향은 이 시기의 신쓰 팝 음악에서 매우 폭 넓게 감지된다. 예외가 있다면 OMD와 울트라복스(Ultravox) 정도를 들 수 있을 뿐이다. OMD 음악에서 팝의 요소는 무엇보다도 이들 자신의 억제할 수 없는 멜로디 감각에서 비롯된다. 여타의 밴드들이 조지오 모로더를 따라 댄스뮤직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때 이들은 전통적 팝 멜로디에 전자음을 결합시키는 독자적 음악세계를 고수했다. OMD의 이러한 음악세계가 가장 훌륭하게 결실을 맺은 작품이 바로 이들의 세 번째 앨범 [Architecture & Morality]다. 이 앨범은 한마디로 브라이언 이노와 크라프트베르크가 비틀즈(The Beatles)를 매개로 종합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성가대의 합창 샘플과 멜로트론으로 짜여지는 사운드 텍스처는 브라이언 이노의 앰비언트 음악을 떠올리게 하지만 음악을 떠받치는 전자 음향의 비트는 크라프트베르크에게서 그리 멀지 않다. 여기에 비틀즈적 전통에 입각한 팝 선율의 노래가 얹혀짐으로써 이 앨범의 음악은 완성된다.

그레고리안 성가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는 [Architecture & Morality]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잔잔한 편이다. 격렬한 광기로 내달리는 “The New Stone Age” 같은 곡도 있지만 대부분의 트랙은 “Sealand”로 대표되는 차분한 서정을 기반으로 한다. 멜로디카의 신비로운 선율로 시작하여 별다른 클라이맥스 없이 진행되는 “Sealand”는 서서히 타오르는 힘을 지닌 이 앨범의 숨겨진 보석이다. 곡의 말미에 등장하는 앤디 매클러스키(Andy McCluskey)의 보컬은 황량한 겨울바다와 같은 이 곡에 인간적 쓸쓸함의 정서를 덧붙인다. 척박하고 메마른 도시의 불안을 형상화한 타이틀 곡 “Architecture & Morality”도 이와 유사한 계열의 작품으로 분류될 수 있다. 저음의 코러스 샘플과 철컥대는 기계음은 인더스트리얼적 음산함으로 곡을 이끌지만 천상의 소리와 같은 종결부는 모든 갈등이 해소된 평화로운 경지로 듣는 이를 인도한다. OMD의 음악에서 항상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낙관적 휴머니즘이다. 비인간적 미래주의나 쾌락주의적 데카당트가 대세를 점하던 당시의 신쓰 팝계에서 인간적 서정을 추구한 이들의 음악은 분명 예외적인 것이었다.

[Architecture & Morality]는 실험성과 대중성이 상호침투하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 OMD의 역작이다. “Sealand”나 “Architecture & Morality” 같은 실험적 트랙들은 이들 특유의 친근한 멜로디를 머금고 있고 “Souvenir”, “Joan Of Arc”, “Joan Of Arc (Maid Of Orleans)” 등 히트곡들은 이들의 날카로운 실험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잔다르크를 주제로 한 두 개의 싱글 “Joan Of Arc”과 “Joan Of Arc (Maid Of Orleans)”는 부조화된 보컬 샘플, 왈츠 리듬, 합성된 백파이프, 타악기의 전면적 활용 등을 통해 신쓰 팝의 정형화된 사운드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실험적 에너지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영롱한 멜로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Souvenir”의 고급스러운 깔끔함과 “She’s Leaving”의 절제된 멜랑콜리아는 신쓰 팝의 클리셰에서 구출됨으로써 본연의 신선한 자태를 드러낸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졌다는 “Georgia”와 VCLXI 시절의 곡을 업데이트한 “The Beginning And The End”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들리는 감은 있지만 이 곡들도 전체의 흐름 속에서는 나름의 긴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유럽 전역에서 멀티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대 히트작이었지만 [Architecture & Morality]는 발매 당시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이는 당시만 해도 OMD의 존재가 미국 시장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터넷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국에 소개되는 영국 음악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알려진 것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당시의 상황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성시완이라는 DJ가 이들을 띄워보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뒤늦게 “If You Leave”를 히트시키며 한국에까지 상륙했을 때 이들은 이미 평범한 팝 그룹으로 전락해 있었다. 이들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단지 그렇고 그런 1980년대 신쓰 팝 그룹의 하나로만 남아 있는 것도 이 점에서 큰 무리는 아니다. 이 앨범은 이들에 대한 이러한 선입견을 단번에 바꿔놓을 수 있는 작품이다. 전형적인 1980년대 신디사이저 소리가 다소 귀에 거슬릴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큰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는다. 음악에 몰입하다 보면 그런 것쯤은 쉽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20031130 | 이기웅 [email protected]

10/10

수록곡
1. New Stone Age
2. She’s Leaving
3. Souvenir
4. Sealand
5. Joan Of Arc
6. Joan Of Arc (Maid Of Orleans)
7. Architecture And Morality
8. Georgia
9. The Beginning And The End
10. Extended Souvenir [bonus track] 11. Motion And Heart (Amazon version) [bonus track] 12. Sacred Heart [bonus track] 13. Romance Of The Telescope [bonus track] 14. Navigation [bonus track] 15. Of All The Things We’ve Made [bonus track] 16. Gravity Never Failed [bonus track]

관련 사이트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공식 사이트
http://www.omd.uk.com/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비공식 사이트
http://www.motionandheart.co.uk/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디스코그래피
http://cathedral.then.net/o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