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05014221-elbow

Elbow – Cast of Thousands – V2, 2003

 

 

수천의 목소리를 빌린 화려한 치장

엘보우(Elbow)는 결성된지 6년이 넘었지만 여러 레이블들을 전전하다 이제야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낸 밴드이다. 그러나 V2 레코드에 정착해 발표한 데뷔작 [Asleep In The Back](2001)은 오랜 무명 세월에 대한 보상인 듯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고 머큐리 음악상 후보작에 선정되는 등 상업적, 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엘보우에 대한 평가는 유사한 스타일을 구사하는 동향 맨체스터(Manchester) 출신 도브스(Doves)에 비해 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2000년대 들어와 고전하고 있던 영국 록 음악계에 희망적인 기운을 되살린 앨범으로 떠받들기까지 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대체로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은 엘보우의 음악적 완성도가 일군의 포스트-라디오헤드(post-Radiohead) 분파들 가운데서 비교적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데뷔 앨범에서 엘보우는 에쓰닉하고 토속적인 터치의 퍼커션 비트와 앰비언트 무드의 신디사이저 연주, 섬세하게 변조된 기타 음을 조합해 실험적 기타 록의 한 극단에 다가섰다. 즉 뮤즈(Muse)가 초기 라디오헤드의 거친 록 사운드를 계승했다면 엘보우는 [The Bends](1995) 시절부터 싹트기 시작한 라디오헤드의 암울한 우주적 기운을 들이마시는데 열중했으며, 자의든 타의든 실험적 ‘라디오헤드주의’의 계보에 관한 한 엘보우는 적통으로 인식되어 갔다.

영국에서 먼저 발매된 엘보우의 신작 [Cast of Thousands] 역시 대단히 공을 들인 야심찬 노작(勞作)이다. 특히, 전작의 성공 이후 미국 진출 등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성찰적인 가사는 시적인 감성과 깊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 투어 당시에 쓰여졌다는 “Fugitive Motel”은 범죄자들의 은신처처럼 비밀스럽게 보였던 텍사스주 오스틴의 허름한 모텔에서 쓰여진 곡이다. “…나는 너에게 키스를 불어 날리지 / 내일쯤이면 네게 닿을 꺼야 / 세상의 다른 한 쪽으로부터 날아가 / 정처 없는 내 모텔 방으로부터 날아가 / 모래 폭풍이 부는 곳 어딘가로…” 안드로메다(Andromeda)의 시공간으로 날아간 라디오헤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맨체스터 한 구석에 갇혀 있던 시야는 좀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된 듯 보인다. 한편, 재킷에 등장하는 조각 인형 엘르와 보(Elle & Bo)를 깎아내는 듯한 이들의 치밀한 미세공법은 한층 화려해지고 꽉 들어찬 사운드로 표출되었다. 이렇게 좋은 요인만 작용한 것 같은 이 앨범에 대해 영국내의 반응은 예상대로 엄청난 찬사 일색이다(아직 미국에서 출시가 안되어서인지 미국의 평단은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다.

가스펠 합창단의 코러스와 힘있는 드럼 연주, 다채로운 건반 음이 뒤섞인 첫 곡 “Ribcage”에서부터 힘을 잔뜩 준 화려한 음의 상찬(上饌)이 차려진다. 재즈, 프로그레시브 록, 앰비언트 등 트랙마다 차별적인 스타일이 차용되고 있는데, 특히 두드러진 부분은 주로 퍼커션에 의지해 만들어지고 있는 다채로운 리듬 섹션이다. 뉴 올리언즈의 전설적 맹인 블루스 싱어 스눅스 이글린(Snooks Eaglin)에 대한 노래라는 “Snooks”의 에쓰닉한 리듬은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로부터 자문을 받은 것 같다. 한편, 앨범에서 유일하게 거친 기타 톤을 함유한 “Fallen Angel”의 경우 MTV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간판 싱글 넘버이며 살랑거리는 미드 템포의 발라드 “Not a Job”도 대중성에 신경을 쓴 흔적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중한 합창곡 “Grace Under Pressure”에는 앞서 등장했던 가스펠 합창단의 코러스와 2002년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공연에서 녹음된 청중들의 노랫소리가 삽입되어 있다. 이 곡은 스피리추얼라이즈드(Spiritualized)를 연상시키는 영적인 무드와 원초적 느낌을 자아내는 독특한 드럼 연주가 돋보이고 있지만 동시에 앨범의 한계를 대변하고 있다. 즉 ‘Cast of Thousands’라는 앨범의 제목이 암시하듯 수천의 목소리가 웅성거리는 집단적 주술가처럼 들리는 이 곡은 물량공세와 형식주의에 기댄 뜬금없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볼 수 있는 모든 세련된 선율과 실험적 음향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앨범은 출중하지만 매력적이지는 않다. ‘모든 것을 벽에다 던지듯이’ 작업했다는 밴드의 리더 가이 가비(Guy Garvey)의 말처럼 지나치게 가져다 붙인 장식적 요소는 현란하고 난해하다. 또한, 이들의 창의성 역시 재고의 대상이다. 다소 야박한 평가가 될지 모르지만 절반을 라디오헤드가, 그 나머지 반을 피터 가브리엘과 스피리추얼라이즈드가 차지하고, 또 그 나머지를 누구에게서 빌려온 듯한 화려한 사운드는 과연 이들의 기여분과 독보적 영역이 무엇인지 의심하게 한다. 20031026 | 장육 [email protected]

5/10

수록곡
1. Ribcage
2. Fallen Angel
3. Fugitive Motel
4. Snooks (Progress Report)
5. Switching Off
6. Not a Job
7. I’ve Got Your Number
8. Buttons and Zips
9. Crawling With Idiot
10. Grace Under Pressure
11. Flying Dream 143

관련 글
Elbow [Asleep In The Back] 리뷰 – vol.4/no.1 [20020101]
Muse, [Absolution] 리뷰 – vol.5/no.21 [20031101]
Travis, [12 Memories] 리뷰 – vol.5/no.21 [20031101]
Starsailor, [Silence Is Easy] 리뷰 – vol.5/no.21 [20031101]

관련 사이트
Elbow 공식 사이트
http://www.elbow.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