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Drop the Debt]라는 편집 앨범이 발매되었습니다. 제 3세계의 부채 탕감을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스아프리카 레이블에서 발표한 음반이었습니다. 루스아프리카라면 ‘쎄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를 발굴한 월드 뮤직 전문 레이블’로 알려진 곳이죠. 여기에 한국의 ‘국가대표’로 두 음악인이 참여하여 한 트랙씩을 수록했습니다(정확히 말하면 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입니다. 한대수는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와, 양병집은 김현보와 함께 팀을 이루어 참여했습니다). 불행히도 ‘빛을 탕감하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빚더미에 오르지 않으면 다행인 게 한국의 현실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이 음반에 대한 해설은 별도의 리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현실에 대한 신세 타령’도 이제는 그만 하고자 합니다. 저로서는 그저 한대수와 양병집이라는 이름이 다른 월드 뮤직 아티스트들의 이름과 함께 올라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을 따름입니다. 한대수와 양병집이 이른바 ‘월드 뮤직 아티스트’인지 아닌지는 재고할 여지가 있겠지만 이들의 이름에 한국의 다른 음악인 누구를 대입해도 답이 잘 안 나옵니다. 이 두 명이 가장 적절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이들의 음악이 국제적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국의 문화적 풍토를 잊지 않는 특징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국내에서의 인기에 자족하거나 외국의 것을 무조건 좋다고 따라하지도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에게는 이들의 음악이 서양의 ‘보편적’ 음악 어법에 부합하면서도 나름의 토속적 색깔을 갖춘 것으로 들린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는 서양인들의 시각일 뿐일 것입니다. 우리가 듣기에는 이들의 음악의 문화적 뿌리는 ‘한국(동양)’보다는 ‘서양’에 더 가까이 있습니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한대수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삶을 오랫동안 계속해 오고 있고 양병집도 1980년대 중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떠나 2001년 영구 귀국하기까지 한국과 호주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한대수가 경도를 달리 하는 삶을 살았다면 양병집은 위도를 달리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한대수에게 밤과 낮의 시간대가 바뀌는 경험이 많았다면 양병집에게는 계절의 기후가 뒤바뀌는 경험이 많았겠죠.

말하자면 이들은 ‘문화적 경계인’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자유를 찾아 끝없이 유랑하는 보헤미안같은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이들의 삶과 음악이 ‘1970년대 포크’에 뿌리를 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1970년대 포크’로 계박해 두려는 것이 무의미한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이 점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1980년대 이후의 음악을 들어보면 어렵지 않게 다가올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의 차이점도 많겠지만 이건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최근 한대수는 일시 귀국하여 사진전의 개최와 사진집의 출판을 준비하고 있고, 양병집은 자신이 제작을 맡은 후배 가수 김하용덕, 손지연과 더불어 생애 마지막이 될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특집을 마련하는 것은 원래 계획도 있었지만 이런 시의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제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두 명의 ‘초로의 청년’의 발자취를 뒤돌아봅시다.20031020 |  신현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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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공식 사이트
http://hahndaes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