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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d Koala – Some Of My Best Friends Are DJs – Ninja Tune, 2003

 

 

스크래치 해피랜드

빼어난 턴테이블 디제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스타일과 사운드를 뽐내기 마련이다. 올드 스쿨 시기 레코드를 전, 후진시키며 새로운 ‘스크래치’ 소음을 창조한 그랜드위저드 테오도르(Grandwizard Theodore)나 현란한 믹서 조작으로 신명나는 리듬을 만들어낸 캐쉬 머니(Cash Money)부터 갈고리처럼 재빠른 손으로 턴테이블과 믹서를 떡 주무르듯 하는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 큐버트(Q-Bert)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턴테이블리스트들이 출중한 턴테이블 기술과 개성 있는 루틴(routine)으로 자신만의 영토를 구축해왔다. 캐나다 출신 중국계 디제이 키드 코알라(Kid Koala)도 아마 예외는 아닐 것이다. 순수한 턴테이블 디제이로서 그의 가장 큰 무기는 턴테이블을 악기처럼 연주한다는 점이다. 다른 디제이들이 턴테이블 스크래치와 비트 저글링 자체를 극대화한 사운드를 강조한다면, 그는 음반이나 공연에서 아예 턴테이블로 다른 악기 소리들을 자유로이 재현해내는 신기를 과시한다. 탄력 있는 베이스나 드럼 소리 뿐 아니라, “Drunk Trumpet” 같은 곡에서는 심지어 트럼펫 소리를 모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키드 코알라를 남다른 스타일리스트로 정의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한 턴테이블 테크닉보다는 음악에 투영된 그만의 독특한 감성과 인성(personality) 때문일 것이다. 그의 스크래치와 비트 저글링, 믹싱 속에는 인간적인 유머와 즐거움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때론 유쾌하고 경쾌하며, 때론 우스꽝스럽고 짓궂은 소년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흐드러진 비트와 각종 코미디나 영화에서 따온 대화 샘플들, 과격하지만 절제된 스크래치가 농축된 그의 데뷔 앨범 [Carpal Tunnel Syndrome](2000)은 기존 턴테이블리즘 음반과는 자못 달라 보였다. 턴테이블 테크닉을 과시하거나 올드 스쿨 힙합 샘플을 전시하는 데 강박적으로 매달리지 않기에, 오히려 키드 코알라는 자신만의 정서와 태도를 음악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가 디제이 섀도(DJ Shadow)와 함께 당대의 가장 창조적이고 대안적인 턴테이블리스트로 평가받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3년만에 나온 두 번째 정규앨범 [Some Of My Best Friends Are DJs]의 첫 인상은 전작보다 성숙하고 친근해 보인다. 사실 [Carpal Tunnel Syndrome]은 멜로디와 훅을 담은 ‘노래’형식의 트랙이 거의 없기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중요한 ‘결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특유의 대화체 코믹 샘플링과 다른 악기소리를 재현하는 오밀조밀한 턴테이블 테크닉을 여전히 무기로 하되, 그간 각종 투어와 믹스 테이프를 통해 청중의 혼을 빼놓던 유려한 멜로디 감각을 새로이 보강했다. 편곡 역시 지나치게 촘촘하고 복잡한 전작과 달리 다소 성긴 듯 하면서 훨씬 여유롭고 편안하다. 특히 올드 타임 재즈와 블루스, 스카의 향취가 앨범에 골고루 스며들어 키드 코알라 특유의 유머감각에 듣는 재미를 한층 더한다.

첫 싱글로 발매된 “Basin Street Blues”는 그 중에서도 발군이다. 뉴올리언스 뮤지션 스펜서 윌리엄스(Spencer Williams)의 1928년 딕시랜드(Dixieland) 재즈 고전이자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18번’으로 익히 알려진 이 곡은 키드 코알라에 의해 근사하게 재창조되었다. 턴테이블로 재현한 둔중한 스탠드업 베이스를 필두로 밴조, 트럼본, 색소폰, 우쿨렐레(하와이언 4현 기타), 클라리넷이 고색 창연한 멜로디를 직조하고, 특유의 울부짖는 ‘스크래치’ 트럼펫 솔로가 뒤에 더해지며 곡은 절정을 이룬다. 이 우울한 딕시랜드 그루브는 종반으로 치달으며 보다 느려지고 수축되는데, 종결부의 예기치 않은 격렬한 스크래치와 무심한 듯 한차례 질주하는 힙합 비트는 극적인 마무리로 더할 나위 없다.

아련한 딕시랜드 재즈를 잇는 “Stompin’ At Le Savoy”는 오래된 블루스를 재빠른 훵크와 결합한 곡이다. 마치 스퀘어푸셔(Sqaurepusher)를 연상케 하는 베이스와 드럼의 격렬함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블루스에 수시로 흥을 더한다. 나긋한 색소폰과 신나는 스크래치가 실제 스카 연주를 듣는 듯한 효과를 전달하는 “Skanky Panky”나 블러드, 스웨트 앤 티어즈(Blood, Sweat & Tears)의 “Spinning Wheel”을 샘플로 사용한 “Elevator Hopper”도 기존 턴테이블리즘 음반에서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사운드를 담고 있다. 물론 키드 코알라 특유의 유머 감각과 재치는 여전히 앨범 여기 저기서 번뜩인다. 하와이안 기타 루프로 휴양지의 낭만을 표현한 “Vacation Island”나, 감기에 걸린 두 명의 디제이가 콜록거리고 훌쩍거리며 인사를 교환하는 듯한 효과를 턴테이블 연주로 재현한 “Flu Season”은 절로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곡이다. 한편 스킷 형식으로 배치된 짧은 트랙들은 전작처럼 재미있는 구어 샘플과 음향 효과들이 대거 삽입되어 적절한 양념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Some Of My Best Friends Are DJs]는 전혀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선사하는 음반이다. 두 대의 테크닉스(Technics) 턴테이블과 레인(Rane) 믹서, 쉰 살 먹은 불리처(Wurlitzer) 피아노 등 단순한 아날로그 장비로 키드 코알라는 턴테이블리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특히 청자의 귀에 직접 호소하는 멜로디 가득한 트랙들은, 전작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키드 코알라의 남다른 재주를 비로소 만방에 알린 듯 해서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한가지 고민은, 부록으로 수록된 무성 흑백 만화를 아직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전작들처럼 음반을 함께 들으며 수 차례 반복해서 본다면 실마리가 어느 정도 풀릴 것이다. 만화속 주인공 네가트론(Negatron)과 디제이 소년의 향후진로에 대해서는 그때 언급해도 충분하리라. 20031024 | 양재영 [email protected]

9/10

수록곡
1. Start Here
2. Basin Street Blues
3. Radio Nufonia
4. Stompin’ At Le Savoy
5. Space Cadet 2
6. Grandmaphone Speaks
7. Skanky Panky
8. Flu Season
9. Robochacha
10. Elevator Hopper
11. Annie’s Parlour
12. Bonus Materials: On The Set Of Fender Bender
13. More Dance Music
14. Vacation Island
15. Negatron Spe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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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Kid Koala의 공식 홈페이지
http://www.kidkoala.com
Kid Koala가 소속된 레이블 Ninja Tune의 공식 사이트
http://www.ninjatu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