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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Cow – Western Culture – Broadcast/ReR Megacorp., 1978/2002

 

 

불협화음으로 빚은 재즈 록 심포니

헨리 카우(Henry Cow)의 음악은 경계선 상에 위치한 록이다. 그것은 록이면서 록이 아니고 록을 넘어서면서도 록의 영역에 위치한 음악이다. 이들이 서 있는 지점은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와 크로노스 쿼텟(Kronos Quartet)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고 프랭크 자파(Frank Zappa)가 어슬렁대며 모습을 나타내는 곳이다. 헨리 카우에 대한 소개의 글들은 십중팔구 이들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분류하지만 이들은 킹 크림슨(King Crimson)을 사숙하던 초창기 이후 빠른 속도로 그것에서 이탈해 갔다. 헨리 카우의 마지막 앨범 [Western Culture]는 이들이 개척한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음악 세계가 과연 어디까지 도달했는가를 가장 예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Western Culture]는 헨리 카우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여러 모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앨범이다. 우선 눈에 띄는 앨범 자켓에서부터 이들은 종래의 트레이드 마크 격인 양말 그림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 라이너 노트를 집필한 크리스 커틀러(Chris Cutler)에 따르면 이 앨범은 버진 레이블과의 계약이 해지되어 비로소 멤버들이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양말 그림도 실상은 멤버들의 뜻과 무관했다는 것이다. 그 대신 이 앨범의 표지에 등장한 것은 소비에트의 상징 문양인 낫과 망치 그리고 화폐 위에 새겨진 ‘CULTURE’라는 글자다. 이들의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적 신조는 이러한 앨범 자켓에서 확연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막상 음악을 들어보면 이 점은 그리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이는 이 앨범이 순수하게 연주곡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그마 크라우제(Dagmar Krause)의 보컬이 마치 선언문을 낭독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전작 앨범 [In Praise Of Learning]과 달리 이 앨범에서 이들은 철저히 ‘소리’라는 추상적 수단에만 의존한다.

비록 가사를 통한 직접적 전달방식은 결여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Western Culture]는 이들의 음악적 신념이 가장 극단적으로 추구된 작품이다. 이 앨범에서 무엇보다도 현저하게 드러나는 점은 이들의 반상업주의다. 이 앨범의 음악에는 훅도 없고 리프도 없으며 대중음악의 통상적인 구조도 결여되어 있다. 상업음악의 필수 요소인 반복성과 예측 가능성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앨범에는 특정 장르로 규정될 만한 스타일 상의 특징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업방송은 물론 록이나 재즈 혹은 클래식 같은 전문방송에서도 틀기가 어려운 성질의 음악이다. 이 앨범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반영웅주의다. 키쓰 에머슨(Keith Emerson)이 에머슨 레이크 & 파머(Emerson Laker & Palmer)를 결성한 이유가 ‘키보드 주자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반면 헨리 카우의 멤버들은 이러한 ‘자뻑’에 빠지지 않고 철저히 ‘전체의 이익에 복무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이들 모두는 개인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연주자들이었지만 이들 중 누구도 영웅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음악적인 면에서 볼 때 [Western Culture]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전까지의 앨범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기타리스트 프레드 프리쓰(Fred Frith)가 2선으로 물러섰다는 점이다. 이 앨범을 양분하는 것은 건반 연주자 팀 호지킨슨(Tim Hodgkinson)과 바순 연주자 린제이 쿠퍼(Lindsay Cooper)의 작품들이다. 오리지널 LP의 한 면씩을 차지하는 이들의 작품은 각각 “History & Prospects”(호지킨슨) 그리고 “Day By Day”(쿠퍼)라는 제목의 조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팀 호지킨슨은 과거에도 몇몇 작품을 선보인 바 있지만 린제이 쿠퍼의 경우는 이 앨범이 작곡가로서의 데뷔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제이 쿠퍼의 작품들은 앨범의 주도적인 목소리로 부각된다. 클래식 음악의 배경을 지닌 아티스트답게 그의 접근 방식은 연주의 즉흥성보다는 작곡의 논리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프레드 프리쓰의 기타를 중심으로 한 즉흥연주가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이전 앨범들과 비교할 때 이 앨범에서 강조되는 것은 다양한 악기의 합주와 인터플레이로 만들어지는 음색과 텍스처다.

헨리 카우의 음악은 언제나 록과 재즈와 현대 음악을 세 개의 지주로 삼아왔다. 이 앨범에서도 이러한 음악 성향은 대체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게 중심만큼은 확실히 20세기 클래식 음악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자유로운 임프로바이제이션의 비중이 감소하면서 이 앨범에서 재즈의 요소는 관악기를 전면에 내세운 음색에 주로 국한된다. 반면 12음 기법을 사용한 화음과 선율은 앨범 전체에 쇤베르크(A, Schoenberg)와 베르크(A. Berg)의 자취를 강하게 드리운다. 듣는 사람에 따라 ‘이게 무슨 록이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는 성질의 음악이다. 그러나 박진감 넘치는 그루브와 가끔씩 등장하는 기타 노이즈는 이것이 철두철미한 록 음악임을 환기시킨다. 수시로 변화하는 리듬과 극도로 복잡한 구조는 여러 차례의 반복 청취를 요구하지만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팽팽한 긴장감과 날카로운 에너지는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인상적일 만큼 강렬하다.

팀 호지킨슨과 린제이 쿠퍼가 이 앨범에서 채택하고 있는 접근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팀 호지킨슨의 음악이 상대적으로 거칠고 강한 록 성향을 나타내는 반면 린제이 쿠퍼는 클래식에 기초한 보다 정교하고 짜임새 있는 음악을 들려준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팀 호지킨슨의 “Industry”는 이들 사이의 이러한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트랙이다. 프레드 프리쓰의 기타가 주도하는 오프닝 라인과 목관악기의 유니즌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종지부는 이 앨범에서 가장 록적인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지는 곡 “The Decay Of Cities”는 ‘소박한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라고 해도 좋을 만큼 퓨전 재즈의 색채가 강한 트랙이고 마지막 곡 “On The Raft”는 금관을 위주로 한 악곡 전개가 마치 메시앙(O. Messiaen)의 “승천(l’ascension)”을 듣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작품이다.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팀 호지킨슨의 곡들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황량하고 냉혹한 풍경을 묘사하는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On The Raft”의 목관과 타악기를 통해 그 사회의 이면에서 요동치는 모순의 존재를 동시에 표현해낸다.

팀 호지킨슨의 음악에 비하면 린제이 쿠퍼의 작품은 보다 추상적이고 순음악적이다. 4부작으로 구성된 그의 “Day By Day”는 마치 4악장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심포니처럼 들린다. “Falling Away”, “Gretel’s Tale”, “Look Back”, “Half The Sky” 등의 제목을 “Allegro”, “Scherzo”, “Andante”, “Finale”로 바꿔 붙여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듣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이론적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음악에 내재된 박력과 열의는 듣는 이의 주의를 단번에 사로잡는다. “Falling Away”의 주제선율이 발산하는 압도적 긴장감과 이레네 슈바이처(Irene Schweizer)의 찬조출연이 빛을 발하는 “Gretel’s Tale”의 피아노 솔로는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로 지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목관과 바이얼린과 베이스의 단촐한 편성으로 연주되는 “Look Back”은 1분 19초 동안의 완벽한 몰입을 보여주는 곡이며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Half The Sky”는 피날레에 걸맞는 장중하고 열광적인 재즈 록 마스터피스다.

ReR 메가코프(ReR Megacorp.)의 2002년 디럭스 에디션은 새로운 리마스터링과 함께 세 곡의 보너스 트랙을 제공한다. 이 버전이 여타의 리이슈와 다른 점은 원작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앨범과 보너스 트랙 사이의 8번 트랙을 공란으로 비워놓았다는 점이다. 의도 자체는 충분히 수긍할 만하지만 그럼에도 1분 30초 동안의 침묵은 좀 길다는 느낌이다. 보너스 트랙 중에서는 페레 우부(Pere Ubu)에 대한 익살스런 오마주 “Viva Pa Ubu”가 단연 돋보인다(나머지 두 곡은 합쳐봐야 길이가 2분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이 곡은 건강 상의 이유로 앨범에 참여하지 못한 다그마 크라우제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트랙이기도 하다. 앨범의 리마스터링은 전반적으로 우수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볼륨 레벨이 다소 낮은 점은 한 가지 흠으로 지적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효과적인 감상을 위해서는 볼륨을 평소보다 좀 높여야 하는 것이다. 헨리 카우의 음악은 분명 어려운 음악이다. [Western Culture]는 그 중 가장 어려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지루하거나 골치 아픈 앨범이 아니다. 누구든 열린 마음을 갖고 접근한다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고 일단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다. 20031015 | 이기웅 [email protected]

10/10

수록곡

1. History & Prospects: Industry
2. History & Prospects: The Decay Of Cities
3. History & Prospects: On The Raft
4. Day By Day: Falling Away
5. Day By Day: Gretel’s Tale
6. Day By Day: Look Back
7. Day By Day: Half The Sky
8.
9. Viva Pa Ubu
10. Look Back [Alternate Take] 11. Slice

관련 사이트

Henry Cow 비공식 사이트
http://www.scms.rgu.ac.uk/staff/dc/hcow/cow.html
Henry Cow 비공식 사이트
http://perso.club-internet.fr/calyx/bands/henrycow.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