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3년 10월 4일(토요일) 저녁 7시 00분
장소: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주최: 액세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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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ck or Treat?

“여러분 많이 아쉬우시죠. 앙코르는 없습니다.” 어리둥절해 있던 관객들 위로 짤막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공연이 끝났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관객석에서 걷잡을 수 없는 야유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릴린 맨슨 측의 과도한 음향 사용으로 인한 사고입니다. 이 곡은 정해진 공연 마지막 곡이었습니다. 앙코르는 없습니다.”

“Antichrist Superstar”의 인트로가 흐르다가 갑자기 선동적으로 몰아치는 비트와 함께 “Beautiful People”의 인트로로 바뀌자 공연장은 최절정의 흥분상태에 빠졌다. 무대 뒤로 미키 마우스를 악마적으로 변형해 만든 거대한 풍선이 떠올랐다. [Antichrist Superstar](1996)는 마릴린 맨슨 디스코그래피에서 정점을 장식하는 앨범으로 “Sweet Dreams” 리메이크(유리스믹스 오리지널)와 인더스트리얼 록 킹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의 후광을 벗어나 마릴린 맨슨을 독자적인 아티스트 밴드로 자리매김 시켰다. 수록 싱글 “Beautiful People”은 미국인의 들쥐 집단주의를 마릴린 맨슨 특유의 그로테스크 유머로 비웃는 대표곡이었다. 올해 발표한 [Golden Age of Grotesque(이하 Golden Age)]의 수록 음악을 중심으로 진행되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드디어 “Beautiful People”로 이어졌을 때 관객들이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다. 그 절정의 순간에 앰프의 전원이 완전히 나가고 일순 정적이 흘렀을 때를 설명하는 것도 내 능력 밖이다. 몰아 상태에서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열창하던 미스터 맨슨은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마이크를 던져 버리고 백스테이지로 퇴장했고 나머지 멤버들도 함께 퇴장하는 것으로 모든 공연은 중단됐다. 이것이 ‘맨슨의 자의적인 기획’이 아닌가 어리둥절해 하던 관객들은 대표 이사까지 나와 사과가 아닌 공지 식으로 ‘맨슨 측의 앰프 과다 사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자 해명, 환불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는 공연 다음 날인 일요일부터 마릴린 맨슨 공연 기획처인 액세스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www.allacess.co.kr)의 게시판을 통해 맹렬한 온라인 항의로 이어지고 있다.

최고의 쇼, 최악의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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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iful People”은 상처였다. 마릴린 맨슨에게나 관객들에게나. 저도 모르게 제자리 뛰기(?)를 하며 ‘뷰리플 피프을!’ 하고 따라 부르던 나는 난데없이 뺨을 맞은 것처럼 뻘쭘해 서 있었다. 우는 ‘애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릴린 맨슨 한 번 보겠다고 사상 최고액의 공연료를 지불하고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이십대 초반의 맨슨 워너비들이었다. 공연이 시작된 지 한 시간 이십분이 흘렀지만 미스터 맨슨(밴드 마릴린 맨슨과 구분하기 위해 리더 마릴린 맨슨이 자칭하는 이름)은 완벽하게 스테이지를 통제하고 있었다. 특유의 참혹하면서도 관능적으로 절규하는 창법은 라이브에서도 흠잡을 데 없는 힘을 발휘했고 그 외 각 포지션의 동선도 일사불란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마릴린 맨슨의 공연은 ‘즉흥적 집단 공동체’라는 록 공연 본연의 의의와는 거리가 멀다. 밴드 vs. 관객, 스테이지 vs. 관객석이라는 수직적 경계를 허물고 ‘함께 망가져 노는’ 록 공연과 달리 맨슨의 공연은 퍼포먼스의 경향이 짙기 때문에 단 한 순간도 스테이지에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전자가 ‘펑크적 즉흥성’에 기반을 둔다면 후자는 ‘통제된 양식미’를 기반으로 한다. 이번 공연의 경우, 두어 곡이 끝나고 스테이지 조명이 꺼졌다 켜지면 완전히 다른 컨셉의 쇼가 기다리고 있었다. 불협화음의 오케스트레이션과 기괴하게 삐걱거리는 신서사이저의 효과음이 인상적인 고딕 인더스트리얼 록 “Theater”가 무대를 가득 채우고 마침내 “This is new shit”과 함께 밴드 멤버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그랬다. 창백할 정도로 하얗고 깡마른 몸 위에 블랙 쓰리피스 고딕 패션으로 등장한 미스터 맨슨과 멤버들은 예의 비주얼 메이크업 때문에 ‘정교한 환영’처럼 보였다. “Beautiful People”의 선정적인 비트와 그루브를 닮은 “Doll-Dagga Buzz Zigety-Zag”에서는 스테이지 위에 마련된 두 개의 사각형 서브스테이지위에서 미스터 맨슨과 똑같이 분장한 두 명의 드럼보이가 태엽 인형처럼 감정 없이 난타했다. 관객들의 환호에 마릴린 맨슨은 시종일관 손가락을 입에 넣고 혀를 내 보이거나 침을 뱉었고 ‘mother fucking Korea’라고 도리질하며 비아냥거렸다. 그건 맨슨 식의 ‘화답’이었고 ‘밴드와 팬이 동등하게 만나는 제의’와는 차별화 된 ‘주인과 노예로서의 제의’에 가까운, 일찍이 미스터 맨슨이 자평한 바를 빌면 ‘파시즘의 미학’을 체현하는 스테이지 매너였다. 그 외에도 광대 복장으로 아이들을 살해했던 연쇄 살인마 웨인 게이시에 대한 ‘고딕 오마주’로 여겨지는 광대 코스튬이나, 순백의 교황 연단위에서 BDSM 미키 마우스 복면을 한 목사 코스튬, 피 흘리는 샴 쌍둥이로 분한 댄서들이 “Para-noir”의 코러스를 부르는 동안 위아래로 움직이는 거대한 원뿔 모양의 원맨 스테이지에 서서 전지전능의 위용을 보여주는 ‘god of fuck’의 코스튬까지, ‘쇼크록 킹’으로서의 이마골로기(imagology)를 체현해 내는데 손색이 없었다.

마릴린 맨슨 특유의 선정적 퍼포먼스가 시작된 건 관객들에게 “obscene”을 제창하게 하다 시작한 “mOBSCENE”에 이르러서였다. 고딕 드럼보이에 이어 검은색 상의에 빨간 팬티를 받쳐입은 퉁퉁한 보드빌 백댄서 둘이 서브스테이지에 등장했다. “음란해지라(Be Obscene, be be obscene, baby)”를 반복제창하며 제자리걸음을 걷던 두 댄서들은 이내 누워 다리를 벌리며, 스트립쇼에서나 볼 수 있는 외설적인(obscene) 춤을 선보였다. 음울한 고딕 인더스트리얼 발라드인 “The Golden Age of Grotesque”에서 이들이 인조 유방과 인조 엉덩이가 달린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으로 춤을 추고 키보드를 칠 때 미스터 맨슨은 드디어 ‘계약 위반(?)’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가슴과 성기를 주무르고 냄새를 맡으며 얼굴을 찡그려 보이다 급기야 “Sweet Dreams”에 이르러 엉덩이를 들고 엎드린 한 백댄서의 인조 엉덩이 사이에 마이크를 꽂고 노래를 불러 비역질(sodomy)을 암시하기까지 했다. ‘섹스/국가/종교 모독성 퍼포먼스를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품위준수각서’는 예의 ‘미디어 역이용’의 귀재인 그의 ‘한국형 사전 퍼포먼스’였을까.

하지만 그의 선정주의는 저급한 섹스어필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전광판 가득히 들어온 백댄서들의 탄력 없이 덜렁거리는 허벅지에서, 노추면 몰라도 섹슈얼리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마릴린 맨슨 특유의 신체변형 소품과 함께 그로테스크한 우화와 유머로 화했다. 그 안에서 맨슨은 최고의 팬 서비스를 선사했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의 제스처와 멘트 하나하나에 열정적으로 응답하는 관객들의 피드백에 그 자신도 취해갔다. “Sweet Dreams” 때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의 손길에 몸을 내 맡기거나 샴페인을 터뜨려 몸에 부은 것은 ‘즉흥적으로’ 보였다. 그걸 이런 식으로 망치다니, 우연치고는 너무 고약하지 않은가. 사견이지만 이것만 아니었다면 이 공연은 내가 본 방한 록 밴드 공연 중 가장 이색적이고 재미있는 공연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마릴린 맨슨, 반미국주의로 기능하는 가장 미국적인 문화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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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애가 이지메를 당하다 못해 학교에 총질을 했더니
걔넨 마릴린 탓으로 돌리대? (마릴린 탓을)…
When a dude’s gettin bullied and shoots up his school
And they blame it on Marilyn (on Marilyn)..
– 에미넴(Eminem)의 “The Way I Am” 중

세기말, 커트 코베인(너바나)의 죽음과 함께 1990년대 록 사상 가장 중요한 무브먼트였던 그런지/얼터너티브 씬은 소강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포스트 그런지’라는 명찰을 달고 나타난 수많은 록 밴드들은 연유 없는 절규와 분노로 가득 찬 사운드에 제스처만 남은 낙오주의(miserablism)를 표방했다. 메틀 록에 힙합을 수혈하면서, 마초적 폭력성에 대한 원망(願望)을 담아낸 포스트 그런지 록(혹은 얼터너티브 메틀)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런지에 진정성이 있었다면 바야흐로 그 의미가 변증법적으로 변질되어가는 시점이었다(제도 안, 반문화의 정해진 운명이겠지만 이 씬은 단순한 세기말의 극단적 문화 현상을 넘어 신세기에 와서도 린킨 파크 등을 위시한 ‘뉴메틀(nu-metal)’이라는 대세로 변형 계승되고 있다). 그리고 마릴린 맨슨 역시 포스트 그런지 씬의 한 현상이었다. 형식적으로는 나인 인치 네일즈(Nine Inch Nails)의 인더스트리얼 하드코어와 RATM,(Korn), 림프 비즈킷(Limp Bizkit)으로 이어져 오는 랩 메틀의 사이에, 시기적으로는 그런지 미학의 퇴락과 에미넴의 비틀린 대(對) 미국 만화경 사이에 자리 잡은 세기말 해프닝이라고 할까.

마릴린 맨슨은 나인 인치 네일즈, 미니스트리(Ministry), 툴(Tool), 화이트 좀비(White Zombie)등의 밴드가 융성시킨 인더스트리얼 록을 근간으로 하드코어, 글램 록, 메틀, 뉴웨이브, 일렉트로니카, 가스펠 등을 접목하고 여기에 섹스, 마약, 사회악으로 내정된 성장기, 테크놀러지와 쇼비즈니스에 대한 호러적 비전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희대의 섹스 심볼 + 희대의 연쇄 살인마’ 조합으로 이루어진 밴드명, 캠프 고딕 메이크업, 조엘 피터 위트킨의 사진 미학에 젖줄을 대고 있는 신체 절단/변형 이미지로 가득 한 뮤직 비디오, 복장전이, 본디지 페티쉬와 더불어 엘리스 쿠퍼(Alice Cooper)와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사타니즘의 제의에서 영향 받은 퍼포먼스(사타니즘의 교주 안톤 젠더 라비(Anton Szandor Lavey)가 미스터 맨슨에게 ‘목사 Reverend’ 칭호를 수여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는 이들을 1990년대 말 최대의 미디어 하이프로 자리매김 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마릴린 맨슨은 견문발검하는 미디어와 엘리티즘에 물든 평자들과, 비기독교적으로 여겨지는 모든 것을 적그리스도적 프로퍼갠더로 간주하는 신경증적인 기독교도 커뮤니티의 반응을 자신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수단으로 역이용했다. 그의 진정성은 실재하는 의미 보다 효과를 위한 전략 운용 면에서 더 쉽게 발견되었다. 미국식 미디어와 종교계의 위선적 결벽증은 마릴린 맨슨을 존재 근거를 위한 필수 자양분이었다. 미스터 맨슨의 말을 빌면 마릴린 맨슨은 “미국 사회가 낳은 산물”이었다.

독자적인 음악적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패러디와 센세이셔널리즘 특유의 단명성과 함께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이 일렉트로니카와 힙합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마릴린 맨슨의 문화 권력은 정점이었던 [Antichrist Superstar]와 [Mechanical Animals](1998)이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이즈음, 9.11 이전에 미국을 범국가적 패닉 상태로 몰아넣은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1999. 4. 20)은 마릴린 맨슨을 개점(?) 이후 최대위기로 몰고 갔다. 이에 비할 때, 기독교도들의 공연장 밖 피켓 시위와 동물 보호 협회의 ‘동물 희생제’에 대한 혐의, 유타 주에서의 성서 모독죄로 인한 몰몬교도들의 난리 같은, 이른바 ‘콜럼바인 전기(前期)’의 해프닝은 장난에 불과했다. 미디어가 콜럼바인의 두 주인공인 해리스와 클리볼드가 마릴린 맨슨의 열렬한 신봉자였다고 침소봉대하면서 마릴린 맨슨은 콜럼바인 사건을 배후에서 간접 사주했다는 지탄의 표적이 되었다.

사건 38일 후 맨슨은 롤링스톤(RollingStone)지에 직접 기고한 [콜럼바인: 누구의 잘못인가?(Columbine:Whose Fault Is It?)]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코소보인들을 학살하라고 빌 클린턴을 고무시킨 건 무엇인가? 모니카 르윈스키가 사주한 것인가? 베트남이건 존즈보로건 알캔사스건 살인은 모두 살인이 아닌가?”라며 자신에 대한 마녀사냥에 혈안이 된 미디어의 행태를 비판하고 이어 “우리(미국인)들은 오로지 인류 파멸을 목적으로 한 폭탄 제조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텍사스에서 대통령의 머리통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며 자라난다. [타임]은 더 폭력적이 된 것이 아니라 더 ‘TV화’되었다.”며 공포 정치나 다름없는 미디어 선정주의에 일격을 가했다(이는 콜럼바인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2002년 다큐멘터리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여기에서 맨슨은 무어의 인터뷰어로 출연했다). 이는 미국식 미디어와 위선적인 결벽증에 대한 ‘반동 미디어’로 기능하는 마릴린 맨슨의 정치술을 거쳐 완성된, 색깔논쟁’ 속에서 정작 중요한 논점을 잃어가는 현 미국에 대한 르뽀르따쥬이자, 자성할 줄 모르는 미국주의자들의 남루한 초상이었다. ‘도리언 그레이’ 미국이 마릴린 맨슨이 그린 초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겠지만 록 밴드로서의 맨슨은 [Holy Wood](2000)에서 좌절했다가 [Golden Age]로 ‘소소하게’ 재기했다(발매 첫 달인 2003년 5월 동안 빌보드 차트 1위 기록).

마릴린 맨슨을 진정한 반문화라고 보는 것은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이 미국 총기 소지 협회를 와해시킬 거라고 순진하게 믿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의 존재 근거는 그들이 공격 대상으로 삼으며 공생하고 있는 미국 보수 계급에 대한 ‘물리적’ 대척점에서 온다. 탐미주의적 양식미와 장르 간 격차를 빼면 그들의 정치성은 사우스 파크(South Park)와 에미넴의 근간에 놓여 있다. 그것은 곧 도시 변두리에 사는 별 볼일 없는 백인 소년들의 대상 없는 분노와 금기 위반의 충동을 대변하는 대중 예술의 계보이며 앞서 언급한 뉴 메틀로 이어지는 계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들에겐 여타 뉴 메틀 밴드과는 조금 다른 무엇이 있다. 그것이 제 3세계의 변방인에게는 어쨌거나 희한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고딕 패션과 섹스 하위문화와, 신화화되고 있는 미국식 범죄사의 효과라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엔터테이너로서의 마릴린 맨슨의 미덕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들은 적어도 다른 동인들이 위악적 프라이드로 포섭한 남성주의와 절망에 대한 자아도취적인 진지함, 힙합 컬처에서 훔쳐온 쿨한 패셔너블리즘으로부터 거리를 둘 줄 알았다. 자조적 해학과 탐미적 허무주의를 통해. 그것이 부르주아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최소한의 정치적 힘을 잃어버린 록의 방계에서는 공허한 울림을 줄뿐이다. 나로서는 무의미하게 악만 쓰며 마지막 남은 잔여 에너지까지 압착하는 린킨 파크(Linkin Park)보다 마릴린 맨슨의 그로테스크 비주얼 패러디 쇼를 보는 쪽이 더 재미있다.

* 이 글은 문화웹진 컬티즌(http://www.cultizen.co.kr)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