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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ilian Hecker – Rose – Kitty Yo/Pastel Music(라이센스), 2003

 

 

비탄의 음률로 일렁거리는 로렐라이의 노래

베를린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맥시밀리언 헤커(Maximilian Hecker)는 크라우트록(krautrock)으로 대변되는 독일 전자음악의 건조하고 분석적인 사운드 작법에 대한 가장 최근의 반대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프로그레시브/아트 록이 번성했던 시절에는 비장미 넘치는 독일식 서정주의를 표방한 밴드들이 많이 있었다. 그렇다. 아트 록 팬이라면(이었다면) “For You”와 같은 애절한 발라드를 들려주었던 트리움비라트(Triumvirat)나 보다 하드한 록 발라드를 남긴 루시퍼스 프렌드(Lucifer’s Friend) 등을 기억할 것이다. 맥시밀리언 헤커의 음악은 바로 이들 서정주의 아트 록과 1970년대의 닐 영(Neil Young)이 대변했던 영미 포크의 감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팝 리리시즘(lyricism)과 조우하고 있다.

맥시밀리언 헤커는 음악 활동 초기만 해도 무명 밴드들을 전전하며 오아시스(Oasis)나 커버하는 드러머였으며, 조각 같은 외모에 걸맞게 모델 활동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음악적 재능과 감각은 솔로 활동을 하면서부터 발휘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정규 데뷔 앨범 [Infinite Love Songs](2001)로 평단의 주목을 이끌어 낸다. 이 앨범은 순진해 보일 정도로 감성적인 로맨틱 팝으로 채워져 있는데, 마초적 남성의 이미지를 탈피한 감수성 풍부한 싱어송라이터의 전형인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나 러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보다도 감정의 농도는 훨씬 진했다.

2집 [Rose] 역시 전반적으로 단아한 피아노 선율, 다소 감상적인 노래, 고전적인 연주방식이 결합된 팝 발라드가 대세를 이룬 앨범이다. 첫 곡인 “Kate Moss”는 영롱한 피아노 아르페지오와 부유하는 멜로트론 연주에 실리는 맥시의 애절한 노래가 전작의 “The Days Are Long and Filled With Pain”을 떠올리게 한다. 뒤이은 “I Am Falling Now”와 “That’s What You Do” 역시 부드러운 발라드 넘버들인데, 특히 간주나 후주 부분에 카멜(Camel)의 그것처럼 울림이 강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가 흘러 감정의 상승을 유도하고 있다.

한편, 이 앨범에는 음악적 전형성을 배반하는 다채로운 요소들도 발견되고 있다. 징글쟁글한 기타 음이 도드라지는 “Fool”과 소트프한 훅으로 넘실대는 “My Story”는 기타 팝의 방법론을 취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유로 댄스 비트를 함유한 매력적인 신쓰 팝(synth pop) “Daylight”과 드럼 앤 베이스(drum ‘n’ base)풍의 비트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My Love For You Is Insane”은 전작의 “Infinite Love Song”과 짝을 이루는 일렉트로니카 넘버들이다. 결국, 이러한 트랙들은 맥시의 음악을 그저 나긋나긋한 로맨틱 팝의 테두리에 가둬두기 어렵게 할 뿐 아니라 다소 지루하게 들릴 수 있는 유약한 연가들에 탄성과 긴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Rose]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두 곡은 각각 6분과 7분이 넘는 대곡으로서 맥시의 관심이 노이즈 실험에도 닿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비장미로 충만한 “My Friends”는 특히 중반부에 녹음이 잘못된 게 아닌지 착각이 들게 할 만큼 극단적인 굉음이 엄습한 뒤 다시 애잔한 노래와 피아노 선율로 위무하는 독특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뒤를 잇는 “Rose”에서는 중반부 이후 모든 악기들이 톤을 높여 휘몰아치는 연주가 압권이다. 그러나 클라이맥스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데, 즉 맥시는 음의 상승구조를 통해 자칫 지루하게 들릴지 모를 발라드에 자극을 가하고 있지만, 이를 모과이(Mogwai) 등이 구사하는 파괴적인 발포가 아닌 절제된 방식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라이센스 음반에는 싱글 앨범 [Daylight]에 수록된 세 곡을 포함해 총 네 곡이 보너스 트랙으로 추가되어 있다. 모두 음반의 가치를 더하는 귀중한 트랙들이고, “Fool” 싱글 버전과 “Daylight” 싱글 / 데모 버전도 색다른 감상거리를 제공하지만, 라이브로 녹음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Creep” 커버 곡만큼 관심을 끌지는 않는다. 피아노 반주만으로 5분 30초라는 이완된 러닝 타임 동안 처량하게 노래하는 맥시의 목소리는 앞선 곡들에서 들을 수 없었던 자연스런 목쉰 소리로 애절함을 더하고 있는데, 이렇게 들으니 톰 요크(Thom Yorke)와도 묘하게 닮은 것 같다.

맥시밀리언 헤커는 독일 출신이라는 언어적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전곡을 영어로 완벽하게 소화하는 국제적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 한편, 맥시의 가사는 ‘무심히 떠나간 상대에 대한 수줍은 사랑 고백과 애원’, 혹은 ‘상실감과 회한’을 토로하는 감상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혹자는 이를 닭살 돋는 사랑타령이라고 진저리를 칠지 모르지만, 오히려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풋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로맨틱한 선율과 서정적인 무드를 간직한 사운드와 가사의 내용은 잘 어울리고 있다. 특히, 존 덴버(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의 후렴구를 빌려 세파에 찌든 청년의 쓸쓸한 회한을 전하고 있는 “My Story”의 가사는 인상적이다. “…그는 담청빛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었네 / 그 언젠가 여기 와서 깨달았었지 / 꿈은 사라져버렸음을 / 꿈은 사라져버렸음을 / 어머니처럼 포근한 산, 내 고향으로 데려가주오(Mountain Mama, take me home)…”

맥시밀리언 헤커는 무감정하고 냉소적인 것이 ‘쿨’하게 인식되는 영미의 인디 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직설적인 감정발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소년기의 미성이 남아 있는 듯한 상음(overtone) 위주의 팔세토(falsetto)와 고전미를 추구하는 연주방식은 진부한 면도 없지 않지만, 영미의 인디 밴드들이 머리로 음악을 하듯 실험주의에 빠져있거나 원초적 사운드의 답습에 천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장한 서정과 고전적 연주방식의 조합이라는 과감한 문법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것이 찰나의 멜랑꼴리에 머물 로렐라이(Lorelei)의 노래가 된다 하더라도 고혹(蠱惑)의 소리들을 쉽게 떨쳐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20030924 | 장육 [email protected]

7/10

* 이 리뷰는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를 수정하여 재작성한 것임.

수록곡
1. Kate Moss
2. I Am Falling Now
3. That’s What You Do
4. Fool
5. My Story
6. Daylight
7. My Love For You Is Insane
8. Powderblue
9. Never-Ending Days
10. My Friends
11. Rose
12. Fool (Single Version) [Bonus] 13. Daylight (Single Version) [Bonus] 14. Daylight (Demo Version) [Bonus] 15. Creep (Live) [Bonus]

관련 사이트
Kitty-Yo 레이블의 Maximilian Hecker 페이지
http://www.kitty-yo.net/index2.php?show=artist&id=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