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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Furry Animals – Phantom Power – XL, 2003

 

 

 

1963년의 여름, 1973년의 여름, 2003년의 여름

수퍼 퍼리 애니멀스의 신보가 인터넷에 유출된 것은 서너 달쯤 전이었다. 전작 [Rings Around The World](2001)로 명실상부 ‘인터내셔널’한 밴드가 되었으니 인터넷에 정식 발매일이 석 달이나 남은 음반이 떴다는 사실 또한 유명세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마스터링은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가끔씩 들리는 가사로 미루어보건대 곡과 제목도 맞지 않았으며, “Juxtaposed With U” 같은 구성지고 기름진 곡도 없었다. 정식 발매가 이루어진 음반에서는 당연하게도 마스터링이 완료되었고, 곡과 제목도 제자리를 찾았으며, “Juxtaposed With U” 같은 구성지고 기름진 곡이 새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 정식 버전을 들으면서 드는 생각 두 가지는 인터넷을 떠돌던 초기 버전의 곡 배치가 좀 더 괜찮지 않았나, 하는 것과, 그럼에도 이 음반이 올 여름의 가장 뛰어난 음반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음반의 키워드는 ‘복고’다. 동향 밴드 고르키스 자이고틱 멍키(Gorky’s Zygotic Mynci)의 따스함을 빌어온 것 같은 “Hello Sunshine”과 “Liberty Belle”, “Bleed Forever”는 1960년대 ‘선샤인 팝(sunshine pop)’의 달뜬 분위기를 완연히 풍기는 포크-컨트리 스타일의 곡이고, 셔플 리듬이 귀를 잡아당기는 첫 싱글 “Golden Retriever”와 “Smoke On The Water”를 연상시키는 “Out Of Control”은 퍼즈 톤의 기타음이 난무하는 1970년대 풍의 강렬한 로큰롤이다. 이런 곡들은 어느새 거물이 된 밴드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만족스러운 훅과 소리를 담고 있다. LP의 잡음과 쓸쓸한 트럼펫 연주로 시작하여 뿅뿅거리는 전자음과 찰랑거리는 탬버린이 분위기를 돋우는 “Venus And Serena”는 음반의 백미 중 하나로서, 뚜렷한 기승전결을 가진 구성과 매혹적인 훅이 듣는 내내 청자를 쥐락펴락한다.

비교적 ‘현대적’으로 들리는 곡들 또한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간주곡인 “Father Father” #1과 #2는 웅장한 현악 사운드와 영롱한 기타 아르페지오가 짧고 우아한 여운을 남긴다. 오페라 [카르멘]의 한 소절을 샘플로 따온 “Slow Life”는 인터넷 버전에서는 맨 처음에 위치했던 곡인데, 몽글몽글한 업비트의 댄스 리듬이 리믹스를 해달라고 갈구하듯 울리는 가운데 그런 거 필요없다는 듯 무뚝뚝하게 내리꽂는 기타와 드럼 사이를 날쌘 현악 연주가 달래듯이 쓰다듬는다.

……음? 물론 그렇다. 배배꼬인 로파이 전자음과 ‘퍼지’한 기타음, 방만하다 싶을 만큼 사방으로 퍼지는 사이키델릭 무드를 옛스러운 팝 멜로디에 뻔뻔스럽게 뒤섞는 밴드가 바로 수퍼 퍼리 애니멀스였다. 복고라는 말을 이번 음반에서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음반은 복고의 형식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정도 함께 가져온 듯한 소리를 들려준다. 뿜빠뿜빠 브라스와 해먼드 오르간이 흥겹게 울려퍼지다 폭죽이 터지는 듯한 효과음으로 마무리짓는 “The Undefeated”, 슬라이드 기타의 잔향과 피아노의 가벼운 터치가 어우러진 “Sex, War And Robots”, 몽롱한 기운을 풍기는 “The Piccolo Snare”, 1970년대 AOR 라디오에서 집어온 것 같은 코러스가 울려퍼지는 “City Scrape Sky Baby”는 묘한 소리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옴에도 나긋하고 달콤하다. 옛 음악을 답습하는 것도, 조롱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유쾌하게 어울릴 뿐이다. 그럴듯하게 사람을 속이는 껍질뿐인 복고풍 음악이라 볼 수는 없다.

전체적으로, 음반은 전작인 [Rings Around The World]보다는 [Radiator]나 [Guerrilla]에 더 근접한 소리를 들려준다. 가사는 따스하다(음반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곡의 가사에 대한 밴드의 설명이 있다). “Slow Life”-“Golden Retriever”-“Liberty Bell”의 순서가 더 멋졌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Phantom Power]는 물이 오른 밴드의 음반이 어떤 것인지를 미련없이 보여준다. 이 음반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여름날의 소리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들려주는 방식은 당대적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1963년, 1973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십 년 전, 오 년 전의 여름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여름의 무덥고 시원하고 야릇한 냄새를 싱그럽고 쓸쓸하게 뇌에서 코로 내뿜고 싶을 때, 이 음반을 집어들라. 20030925 | 최민우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Hello Sunshine
2. Liberty Belle
3. Golden Retriever
4. Sex, War and Robots
5. The Piccolo Snare
6. Venus and Serena
7. Father Father #1
8. Bleed Forever
9. Out of Control
10. City Scrape Sky Baby
11. Father Father #2
12. Valet Parking
13. The Undefeated
14. Slow Life

관련 글
Super Furry Animals [Radiator] 리뷰 – vol.3/no.6 [20010316]
Super Furry Animals [Guerrilla] 리뷰 – vol.1/no.8 [19991201]
Super Furry Animals [Mwng] 리뷰 – vol.2/no.19 [20001001]

관련 사이트
수퍼 퍼리 애니멀스 공식 사이트
http://www.superfurry.com/
[Phantom Power] 공식 사이트
http://www.phantom-pow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