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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 – 서라벌(SR 0130), 19781101

 

 

형제의 야심이 하늘을 찌르다

산울림 3집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는 초기 산울림 최대의 야심작이다. 산울림 1집 [아니 벌써/불꽃놀이/문 좀 열어줘]와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어느날 피었네/나 어떡해]가 이들의 음악적 독자성 확립에 주안점을 둔 앨범들이었다면 3집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는 다분히 영미권의 하드 록을 의식하고 만든 작품이다. 이들은 앞선 두 앨범의 성공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여기서 드디어 당시 한국의 록 매니아들을 사로잡고 있던 음악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앨범의 뒷면 전체를 하나의 대곡으로 채운다든지 블루스 곡 하나를 끼워 넣는다든지 하는 제스처는 명백히 고전 하드 록에 대한 이들의 열망을 나타낸다. 이를 위해 이들은 밴드의 사운드에도 큰 폭의 수정을 가한다. 전작 앨범들의 주력 악기로 쓰였던 오르간을 완전히 폐기하고 철저한 파워 트리오로 밴드를 재정비한 것이다. 새롭게 거듭난 산울림은 이제 “골목길”이나 “떠나는 우리 님” 같은 고리타분한 발라드는 더 이상 취급하지 않는다. 오로지 기타를 앞세운 강력한 록 넘버에만 주력하는 것이다.

산울림의 이러한 음악적 시도는 유감스럽게도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앨범의 상업적 실패도 실패려니와 음악적으로도 크게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들의 음악적 야심은 자신들의 능력 밖의 것을 겨냥하고 있었다. 애당초 블루스를 의도한 “아무도 없는 밤에”가 타령으로 변질되고 만 것은 그 하나의 사례다. 이들은 여기서 너무 의욕만 앞선 나머지 블루스의 정서적 코드를 포착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물론 보기에 따라 이것은 큰 허물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블루스와 타령의 접목이라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 여지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9분 여에 달하는 이 곡의 연주 시간이다. 산울림에게는 9분 짜리 느린 블루스 곡을 구성지게 연주해낼 능력이 애초부터 결여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연주 시간만을 늘여놓은 것은 일종의 만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탄력 없이 푸석한 리듬섹션과 단조롭고 밋밋한 기타는 9분이라는 시간을 마치 90분은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들의 대곡 지향은 한 곡에 그치지도 않았다. 18분이 넘는 괴물 트랙 “그대는 이미 나”에 비하면 “아무도 없는 밤에”는 그저 작은 소품에 불과할 뿐이다. “그대는 이미 나”는 발매 당시 엄청난 화제를 뿌린 문제작이다. 그 때만 해도 이런 대곡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으리라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산울림 이전에도 대곡을 시도한 밴드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는 이미 나”처럼 줄기차게 방송을 탄 경우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 곡은 한국인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유일한 대곡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아직도 이 곡을 한국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곡=명곡’이라는 등식이 통하던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라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연주 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 연주 시간이 채워져 나가는 방식이다.

“그대는 이미 나”에서 가장 성공적인 부분을 들자면 단연 전주와 엔딩이다. 네 마디의 기타 인트로에 이어 드럼과 베이스가 ‘두두둥’하고 쏟아져 나오는 전주와 서서히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급작스럽게 끝을 맺는 엔딩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이 곡의 하이라이트다. 반면 이 곡의 본체를 이루는 구성 요소들은 다소 굴곡이 심한 편이다. 주선율을 이루는 노래 부분은 전주의 박진감을 그런대로 잘 유지하며 그 뒤를 잇는 기타 솔로 역시 의외로 강력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연주를 들려준다. 그러나 중반부에 등장하는 ‘휘파람’ 섹션과 종반부의 삽입곡 섹션은 그리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휘파람 섹션은 필요 이상으로 길게 늘어지면서 곡을 지루하게 만들고 피날레 직전에 삽입된 동요풍 발라드는 종지부와 극적 콘트라스트를 이루지 못한 채 그저 시간만 허비해 버린다. 민첩하지 못한 리듬 섹션이 곡의 자연스러운 운동감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것 또한 이 곡의 유감스러운 점 중 하나다.

대곡들에 가려서 이렇다 할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사실 3집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의 진면목은 앞면에 수록된 소품들에 있다. 이 곡들은 앨범의 기본 노선인 록 성향을 그대로 공유하면서도 대곡들처럼 과도한 야심의 희생양이 되지는 않은 작품들이다. 따라서 산울림의 음악적 방향전환이 야기한 긍정적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곡들 보다 소품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첫 곡으로 수록된 김창훈 작사/작곡의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이다. 1996년 영화 [정글 스토리]에 삽입됨으로써 뒤늦게 유명세를 타기도 한 이 곡은 4집의 “특급열차”와 8집의 “소낙비” 등으로 이어지는 김창훈 식 ‘막가파 로큰롤’의 시발점이 된 작품이다. 이제는 이런 음악이 그의 스타일로 정착된 탓에 좀더 ‘센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지만 당시만 해도 이 곡은 한국 음악의 기존 관념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한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질풍같이 몰아치는 사운드를 배경으로 그로테스크한 괴성을 뱉어내는 김창훈의 보컬은 지금 들어 봐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탓인지 음악적인 면에서는 종종 엉성한 구석이 발견되기도 한다.

김창훈의 광기어린 질주에 이어 김창완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좀 심심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에 이어지는 “아무 말 안 해도”와 “한 마리 새 되어”는 산울림 음악의 숨은 보석들이다. 김창완은 이 두 곡에서 전작 앨범들과는 확연히 달라진 송라이팅 방식을 선보인다. 절과 후렴의 구분 없이 네 마디의 단순 주제가 반복되는 미니멀리즘적 방식이 채택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 말 안 해도”는 그나마 약간의 변주가 이루어지지만 “한 마리 새 되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같은 선율이 반복된다. 이는 그가 자신의 음악에서 ‘노래’의 비중을 극소화하고 연주의 비중을 대폭 늘이기 위해 도입한 전략이다. 즉 여기서 그는 산울림의 음악을 ‘따라 부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의 소박하고 예민한 선율은 여전히 명료하게 빛을 발한다. 결국 그의 이러한 시도가 도달한 귀결은 애초의 의도와는 좀 다른 팝/록/가요의 혼합물이다. 겉보기에 이러한 결과는 전작 앨범들의 성과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통상적인 팝/가요 송라이팅의 매너리즘에서 탈피한 그의 새 노래들은 전작 앨범들에 비해 훨씬 세련되고 모던한 감각을 표출한다.

3집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는 산울림의 앨범 중 가장 록 성향이 강한 음반이다. 이 방면에서 이 앨범에 필적할 만한 작품은 9집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멀어져간 여자] 정도 밖에는 없다. 9집이 노련한 베테랑의 경험과 관록을 과시한 앨범이라면 이 3집은 패기만만한 젊은이들의 야심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음반은 동시에 이들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앨범이기도 하다. 앞선 두 앨범에 비해 좀 나아지기는 했으나 연주력의 문제는 여기서도 여전히 이들의 결정적인 약점으로 나타난다. 연주력이라는 것이 자신의 음악적 비전을 표현할 정도만 되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그것조차 되지 않을 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욕 과잉 역시 이들 음악의 적지 않은 짐으로 작용한다. 자제가 필요한 곳에서 좀처럼 자제를 못하다 보니 이들의 음악에는 군더더기가 좀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에 대한 최종 평가는 긍정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산울림은 한국 최고의 그룹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들의 음악은 놀라울 만큼 독창적이고 무모할 만큼 용감하며 두려울 만큼 솔직하다. 이러한 덕목을 두루 갖춘 밴드의 작품이라면 아무리 졸작이라도 들을 가치는 충분하다.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는 ‘절반의 성공작’ 또는 ‘흥미로운 실패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웬만한 밴드의 성공작 보다 들을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얘기다. 20030913 | 이기웅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Side A
1.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
2. 아무 말 안 해도
3. 한 마리 새 되어
4. 아무도 없는 밤에
Side B
1. 그대는 이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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