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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멀어져간 여자 – 대성음반(DAS 0069), 19830110

 

 

저기 낙엽 떨어지는 길로 돌아보지 말고 걸어가

1983년에 발매된 산울림 9집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멀어져간 여자]를 특징짓는 사항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자. 이 앨범은 동생들의 군 제대 이후(군악대였다고 한다) 초기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능란한 연주력을 담고 있는 앨범들(7집~10집) 중 하나다. 말하자면 산울림 2기 사운드가 담겨 있는 앨범이다. 또한 산울림 9집은 ‘밴드로서의 산울림’의 미학이 뚜렷이 발휘된 앨범(1집, 2집, 3집, 7집, 9집, 13집) 중 하나다. 더하여 김창완의 증언에 의하면 9집은 초기와 같은 밴드로서의 강렬함을 복원하고자 한 2기, 1980년대의 가장 중요한 시도였다. 김창훈의 증언에 의하면 멤버들이 원하는 사운드를 뽑아내기 위해서 엔지니어 없이 직접 녹음한 앨범이기도 하다. 산만하지만 포인트는 이거다. 9집은 1980년대의 산울림이 밴드로서 어떤 사운드를 보여주고자 하였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음반이다.

첫 곡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는 피킹이나 스트로크가 아닌 기타 리프에 의존한 산울림의 로킹 넘버로서의 회소성을 지닌다. 이전의 산울림의 편곡은 대체로 베이스의 훅에 의존하거나 혹은 기타와 베이스가 호흡을 같이 하며 움직이는 둔중한 리프를 구사했다. 때문에 기타 리프가 베이스와의 분업을 명확히 한 채 곡을 주도적으로 장식하는, 더구나 무려 그 리프에 ‘오버더빙’씩이나 되어 있는 이 곡은 산울림 노래 중에서도 대단히 세련되게 들리는 넘버다. 굳이 장르를 따진다면 뉴 웨이브 펑크 정도로 들린다고 할까. 한 곡에 무려 3개의 밀도 높은 기타 리프로 장식하는 것도 사실상 이례적으로 들린다. 전주의 중간에 심벌 사운드의 테이프 역주행 효과와 기타의 볼륨 컨트롤이 어우러져 싸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스튜디오 사운드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산물이다.

이 밖에 “더 더 더”에서는 기타 스트로크에 페이저 이펙트를 걸어서 아련한 분위기를 마련하고 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할 트랙 중 하나인 “소낙비”는 1집의 “문 좀 열어 줘”의 계보를 잇는 그들의 망가지듯 질주하는 넘버이다. 타석에 들어서는 수가 적어서 그렇지 어찌 보면 김창완보다 타율이 높은, 그리고 때로 가장 무겁고 강렬한 곡을 선보이는 김창훈의 작곡인 이 곡은 산울림의 노래 중 물리적으로 가장 압도적인 파워를 자랑한다. 김창훈의 아찔한 고음 샤우팅이 선보이고 디스토션 기타와 드럼 필 인으로 천둥소리를 연상시키는 효과를 구사하는 것도 인상적인 대목이다. 신촌 블루스의 2집에 수록되기도 한 “황혼” 같이 의외의 블루스 넘버도 블루스의 한국적 수용에 있어서 산울림 혹은 김창완의 지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 앨범에서 이들의 야심찬 발상과 연주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사후추론이지만 1980년대의 산울림은, 하드 록기(期)에서 메탈기(期)로 가는 중간기, 해외 록 밴드들의 성향을 산울림 식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던 듯하다. 이후의 앨범에서 비록 여전히 불안이나 혼돈스러운 느낌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을 초기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싸이키델릭 하드 록의 양식미 – 아이언 버터플라이(Iron Butterfly) 등의 영향이 느껴지는 – 로 구현하는 일은 다시는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뚜렷한 의지의 관철인 거 같다. 이들은 ‘이번 앨범은 하드코어, 이번 앨범은 테크노’하는 식으로 화려한 변신을 거듭한 적도 없지만 또한 언제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음악의 결이 미묘하게 변하는 밴드였다. 같은 씨앗이라도 다른 토양에서는 다른 모양으로 피어나듯이.

헌데 이 앨범은 왜 상업적으로 실패했을까? 그렇게 무모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던 1, 2집의 히트로 보면 의아한 일이다. 문제는 1980년대의 음반시장은 더 이상 이와 같은 시도를 받아들여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송골매의 3집이 발매되기도 한 1983년은 이미 송골매도 그 날개짓에 피로함이 깃들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1970년대 중-후반을 박차 오른 아마추어 밴드들의 시대는 이미 황혼으로 저물고, 계절은 가을로 향한다. 모 환타지 소설의 용어를 빌리자면 ‘마법의 계절’은 지났다. 1980년대 중후반은 김완선과 이은하 등 댄스 가요가 사람들의 귀를 장악하는 시기였다. 김창훈이 김완선 1, 2집(1986, 1987)의 송라이팅을 도맡은 사실이나 이은하의 1집(84)에 산울림의 곡들이 활용된 사례를 들어 당시 댄스 가요에 대한 산울림의 지분을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9집의 실패를 돌아볼 때 조금은 뒷맛이 쓴 후일담이다. “그냥 앉아있어요 지금 만난 것처럼 조금만 더 더 더”(“더 더 더”), 애절히 말해도 시대는 사정이 없다.

“저기 낙엽 떨어지는 길로 돌아보지 말고 걸어가 / 저기 너를 반겨주는 길로 돌아보지 말고 걸어가”(“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 그러나 이들이 돌아보지 않고 걸어간 결과는 웃는 모습으로 간직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앨범이 7집 정도로만 히트했더라도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산울림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9집은 그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준 듯, 삼형제 밴드로서의 산울림은 여기에서 일단 실질적으로 종막을 고한다. 10집까지 명목으로나마 남아 있던 형제들도 떠나가고 김창완의 솔로로 유지된 이후 산울림 앨범들은 사람 없는 놀이동산에 땅거미가 깔리는 듯 쓸쓸하다. 그들이 밴드로서의 스스로를 다시 한 번 회복하는 데는 10년을 기다려야 했다. 20031113 | 김남훈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Side A
1.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
2. 더 더 더
3. 소낙비
4. TV도 끝났는데
5. 빨간 신호등
6. 황혼
Side B
1. 멀어져간 여자
2. 길엔 사람도 많네
3. 저기
4. 속도위반
5. 쉬운 일 아니에요
6. 시장에 가면(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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