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818123709-surferPixies – Surfer Rosa – 4AD/Elektra, 1988

 

 

변태적 감동

스톱 앤 스타트(stop-and-start) 전개방식, 짧은 길이와 간결하면서도 변칙적인 구성, 겹겹이 쌓인 기타의 노이즈와 피드백, 난해하고 불경스런 가사,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헤집는 매끈한 팝송을 불러 제끼는 기묘한 혼성 화음. 우리는 지금 너바나(Nirvana)가 아니라 픽시스(The Pixies)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이 전설적인 밴드에 대한 궁금증을 품은 이들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음반은 [Surfer Rosa]와 [Doolittle]일 텐데, 후자를 택한 사람은 픽시스가 ‘파퓰러하고 풍성한 소리를 내는 비의적인 밴드’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전자를 택한 사람은 이들이 ‘후끈하고 건조한 노이즈에 집착하는 변태적인 밴드’라는 첫인상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이는 상대적인 비교이다.

[Surfer Rosa]는 픽시스의 첫 번째 정규 음반이다. 가장 먼저 귀가 쏠리는 것은 “Bone Machine”의 드럼 톤이다. 묵직하고 탄탄하면서도 잔향이 거의 없는 건조한 소리다. 우리 ‘모던 록 팬’들은 어디선가 이와 닮은 드럼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In Utero](1993)의 “Scentless Apprentice”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혹시 안 드는가? 그 뒤를 이어 작렬하는 기타의 날선 노이즈까지.

이 두 음반의 프로듀서는 모두 인디 록의 스탈린, 스티브 알비니(Steve Albini)이다. 로우(Low)의 [Things We Lost In The Fire]나 니나 나스타샤(Nina Nastatia)의 [Run To Ruin](2003) 같은 근작에서는 비교적 질척한 기운을 뿜어내지만 이 당시 알비니가 만든 사운드는 앰프의 볼륨을 새디스틱하게 올린 쌩톤 기타음과 퍼석거리는 드럼을 전면에, 보컬을 후면에 배치한, 공명이라고는 없는 메마르고 성긴 소리였다. 비록 자신은 ‘엔지니어’의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지만 “Something Against You”에서 조이 산티아고(Joey Santiago)가 들려주는 빠르고 싸늘하며 잔인한 기타 노이즈는 분명 빅 블랙(Big Black)의 “L Dora”를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데뷔 EP에도 실렸던 “Vamos” 또한 피드백의 사이키델릭한 은총을 입어 거듭난다. 블랙 프랜시스(Black Francis)의 신경질적인 하이 톤 보컬 위에 씌워진 파괴적이고 선명한 노이즈는 무척 잘 어울린다.

그럼 알비니가 깔아준 판 위에서 뛰노는 요정들의 모습은 어떨까. 한 마디로 ‘싸∼하다.’ 전형적인 스톱 앤 스타트의 구조를 보여주는 “Bone Machine”과 “Break My Body”, “Broken Face”는 펑크와 파워 팝이 기묘하게 동거하는 곡이다. 음정을 찌그러뜨린 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파괴적인 “Something Against You”나 “Tony’s Theme”은 블랙의 무지막지한 ‘샤우트’와 기타의 피드백이 주체를 못하고 방방 뛰어다니지만 킴 딜(Kim Deal)과 데이빗 러버링(David Lovering)이 만들어내는 안정적인 리듬 섹션에 힙입어 길을 잃지 않는다. 재치있는 인트로로 문을 여는 “Where Is My Mind?”는 킴 딜의 가늘고 높은 코러스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픽시스 스타일의 (리듬보다는 선율에 중점을 둔) 리프가 흐른다. 딜이 작곡에 참여한 “Gigantic”은 그녀가 리드 보컬 또한 맡고 있는데, 이 한 곡으로 훗날의 브리더스(The Breeders)를 예견할 수 있다 말하는 것은 무리지만 까끌거리면서도 감성적이고 여린 그녀의 목소리 자체의 페르소나는 이미 여기서부터 충분히 드러난다. 물론 그 뒤에서 기괴하게 ‘훼방’을 놓는 블랙의 코러스도 빼놓을 수 없다.

픽시스의 음반 중에서도 [Surfer Rosa]는 특히 섹스에 대한 갖가지 망상들로 가득하다. 블랙이 쓴 가사에는 성희롱(“Bone Machine”), 근친상간(“Broken Face”), ‘큰 물건’과 강간 판타지(“Gigantic”), 페티시(“Cactus”) 등등의 소재들이 비속한 언어의 탈을 쓰고 출몰한다. 비영어권 청자는 싸구려 ‘아메리칸 컬처’에서 차용한 이런 소재와 이미지들의 용도, 다시 말해 ‘아메리칸 청교도’의 위선적인 엄숙주의에 대한 반작용(“Bone Machine”에서, ‘소다수를 사준 뒤 주차장에서 자기를 희롱하려 하는’ 사람은 선교사이다)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퇴폐적 언사를 이해는 할 수 있되 공감하긴 어렵다. 이를 문화적 차이라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은 아니다.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Once In A Lifetime”에 대한 ‘화답가’라는) “Where Is My Mind?”의 “발은 허공에, 머리는 바닥에 / 이렇게 물구나무서서 뱅뱅 돌아봐 / 네 머리는 우그러지겠지 / 그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다면 / 자문해 보라구 / ‘내 마음이 어디 있지?’라고 // 바깥의 물 속에서 / 네 마음이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봐”와 같은 가사에서 느껴지는 ‘성찰적 비애’나 “River Euphrates” 같은 곡의 ‘멍한 상태’에서 느껴지는 관조적 태도에서 모종의 보편적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는 말 또한 타당한 것이다. 이를 “입술도 혀도 없는 / 눈이 있던 자리엔 텅 빈 구멍만 남은” 박살난 얼굴을 가진 자(“Broken Face”)의 내면풍경이라 하면 어떨까. 이러한 가사 스타일 역시 후대의 밴드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그래도 해 두련다.

픽시스의 명성을 듣고 이 밴드의 음악을 접하는 사람에게 [Surfer Rosa]는 다소 버겁게 들릴 것이다. 분명 이 음반에는 “Wave Of Mutilation”이나 “Velouria”처럼 ‘확 땡기는’ 곡은 없으며, 표현의 중심은 기타의 파괴적인 노이즈와 음 자체의 공격성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픽시스의 음반 중에서 가장 질리지 않는 음반을 들라면 나는 [Surfer Rosa]를 고르겠다. 이 음반을 듣게 되면 건전지를 혀끝으로 핥았을 때처럼 짜릿하다. 15년 된 이 전지는 닳지도 않는다. 백만 스물 하나, 백만 스물 둘… 어라? 처음부터 다시. 200300814 | 최민우 [email protected]

10/10

수록곡
1. Bone Machine
2. Break My Body
3. Something Against You
4. Broken Face
5. Gigantic
6. River Euphrates
7. Where Is My Mind?
8. Cactus
9. Tony’s Theme
10. Oh My Golly!
11. You Fucking Die!
12. Vamos
13. I’m Amazed
14. Brick Is 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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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gantic” Live

관련 사이트
4AD 레이블의 Pixies 페이지
http://www.4ad.com/artists/catalogue/pixies/index.htm
Alec Eiffel : Pixies 프랑스 팬 사이트로 부틀렉을 포함해 방대한 디스코그라피가 잘 정리되어 있다.
http://membres.lycos.fr/alec/index.html
Breeders 공식 사이트
http://www.noaloha.com/breeders
Elektra 레이블의 Breeders 페이지
http://www.elektra.com/elektra/thebreeders/index.jhtml
4AD 레이블의 Breeders 페이지
http://www.4ad.com/artists/breed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