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조용필의 팬’이 아니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유치원생 꼬마부터 경로당 할머니까지 좋아했다는 그의 노래에 영향받지 않았다는 말은 자기기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우 ‘조용필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물론 ‘싫어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무언가 찜찜했다’는 표현이 가장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니 그의 노래를 좋아했던 이유는 생략하고, 좋아할 수 없었던 이유만을 드러내겠다. 거창하게 말하면, 미학적 이유, 정치적 이유, 문화적 이유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미학적 이유’로는 그때 들은 조용필의 노래에 (업계의 속어로) ‘뽕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트로트곡을 많이 불렀고 몇 곡은 직접 작곡하기도 했다. 그걸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그 노래들을 흥얼거렸다고는 해도 그걸 ‘유행가’ 이상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는 말이다. 대놓고 트로트가 아닌 곡들도 조용필이 부른 노래들에서 ‘전통가요’의 냄새가 많이 났다. 다시 생각하면 ‘어떤 음악이 특정 장르에 속한다고 해서 후지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트로트란 ‘기성의 음악문화와의 타협’의 상징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정치적 이유는? 이건 1980년대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지어서 사고할 수밖에 없다. 사회의 시스템 전체를 변화시키고 싶은 욕망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던 ‘주류의 슈퍼스타’의 지위를 누리던 그는 ‘저쪽’에 있는 존재였다. “생명”이 광주에서의 학살을 다룬 것이라든가, “허공”이 1980년 서울의 봄을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은 뒤에 나온 이야기일 뿐이다. 유치한 편가르기겠지만 그를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이건 이 기획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음악인들이 ‘언더그라운드’였던 것과 조용필이 다른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용필에게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주류 가요계의 아이돌 스타’라는 것이 그의 통상적 이미지이지만 그에게는 배후의 힘이 있었고, 이 힘은 ‘록 음악’이라는 어떤 이상과 무관치 않다. 지시점을 1980년대로 잡고 이야기해 보면, 이 점은 ‘그룹 사운드 출신’이라는 그의 ‘1970년대의 과거’ 뿐만 아니라 위대한 탄생이라는 ‘1980년대의 현재’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이호준, 김석규, 송홍섭, 이건태, 김광민 그 외 더 많은 쟁쟁한 연주인들이 조용필의 ‘가수로의 탄생’의 산파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몇몇 곡을 다시 들어 보면 ‘한국적 정서를 담은 록 음악’이라는 이상적 기준에 부합하는 음악들이 발견된다. 초기작만 꼽는다고 하더라도 “축복”, “못 찾겠다 꾀꼬리”, “고추잠자리”, “한강”, “황진이”, “여행을 떠나요”, “어제 오늘 그리고”, “미지의 세계” 등등…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고 보니 그때 그 시절 조용필의 음악이 록 음악이었다”라고 전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조용필이 가끔씩 록 음악으로부터 외도를 하기는 했어도 록 음악과의 질긴 연을 끊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조용필이 트로트, 민요, 발라드(팝), 댄스 등으로 ‘외도’를 한 것이 타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그렇게 자기를 정립한 것인지…

즉, 조용필은 너무나 많은 장르를 섭렵했다. 여러 장르를 실험하면서도 하나의 중심이 있고 그 중심을 통해 자기 세계를 표현하는 ‘고전적 록 아티스트’의 정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실천이다. 오해를 피하자면 이는 ‘조용필은 아티스트가 아니다’라는 말이 아니다. 조용필을 아티스트로 인정할 만한 작품과 실천은 매우 많고 그 중에는 다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도 많다. 단지 조용필이 ‘아티스트라고만 보기에는 힘든 일도 많이 했다’는 말이다. 이런 평을 ‘외국의 예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한국에도 드물기는 하지만 그런 예가 분명히 있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이 질문에 대한 본인의 생각도 이번 인터뷰를 참고하라. 조용필은 이 점에 대해 자신이 ‘가수’이고 ‘가수는 엔터테이너’이기 때문이라고 진솔하게 말해 주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장르’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가… ‘가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스템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과거의 조용필에 대해 아주 이상적인 주문을 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 그가 그때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메인스트림 록’ 혹은 ‘록 메인스트림’이라고 부를 만한 범주를 정착시켰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주문… 역시 미래의 조용필에 대해서도 또하나의 주문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대중가수’로서, 다양한 팬층을 위해서 이런 저런 장르의 노래를 부르던 조용필이 앞으로는 하나의 음악 양식을 정립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게 꼭 ‘록 음악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록 음악인이라고 선언한 일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일 뿐이다(2000년 6월에 열린 [자유] 페스티벌을 앞두고 문화비평지 [리뷰]와 했던 인터뷰를 참고하라). 그리고 그가 앞으로 만들어낼 양식이 한국 대중음악의 허약한 체질의 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은근히 바랄 뿐이다.

물론 그게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고 말고 할 일은 아니다. 어쩌면 한국의 대중음악계라는 곳에서는 록 음악이란 늘 음각화(陰刻畵)처럼, 즉 실현할 수 없는 이상으로만 존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진지한 음악인들에게 록 음악이란 ‘정말 하고 싶지만 여건 상 할 수 없는’ 음악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게 한국에서 지배적 존재양식이라는 불길한 생각까지 들 정도로… 굳이 ‘록 음악’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다른 이름의 음악이라고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에 예외가 없는 것인지 조용필도 1990년 점차 정상의 지위에서 사라져 갔다. 그래서 관대해지는 것일까. 조용필같은 ‘지존(至尊)’이 하나 정도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계가 ‘이 모양 이 꼴’이 아니라면 이런 생각은 덜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류에서 음악을 ‘잘’ 해야 언더그라운드든, 얼터너티브든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잘 한다’고 말하는 음악에 물리고 질려야 ‘다른’ 음악이 나올 수 있지 그렇지 않다면 섀도우 복싱을 하는 기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음악인생 35주년을 맞은 그의 경력의 전반부를 훑어보기로 했다. 레코딩 경력으로 본다면 1972년부터 1984년까지의 13년이고, 무대 경력으로 따진다면 1968년부터니까 17년이다. 특히 1970년대 중반 이전의 조용필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비전(秘典)만 존재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기 그 이야기들을 풀어 놓아 본다. 취향에 따라 좋아하든가 싫어할 수는 있겠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시할 수는 없을 이야기니까.

그리고 조용필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라도 조용필 본인 뿐만 아니라 뒤에서 조용필을 빛내 주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들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이 ‘가수 조용필의 노래’일 뿐만 아니라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라는 (록) 밴드의 음악’이었다는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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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조용필 연합 팬클럽 ‘PIL 21’
http://pil21.com
조용필 팬클럽 ‘위대한 탄생’
http://choyongpil.net
조용필 팬클럽 ‘미지의 세계’
http://www.choyongpil.co.kr